델리 아시아 문학선 10
쿠쉬완트 싱 지음, 황보석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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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쉬완트 싱 의 델리.

 

스무 살 무렵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는 듯한 자아찾기의 목적으로 인도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던 적이 있다. 이후 일본수필가와 건축가의 여행기를 통해 접하게 된 인도는 그야말로 '알면 알 수록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곳'으로 인식되다가 근래들어 유럽이나 다른 관광지와 비교했을 때 다소 청결치 못한 환경이라던가 여성여행자를 노리는 각종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인도는 한번 쯤 가봐야 할 여행지에서 결코 가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되어버렸다. 이후에 어떤 여행서를 읽어도,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는 영화를 접해도 그 생각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 책, [델리]를 며칠 씩 손에 놓지 않고 읽으면서 내가 아는 인도는 그야말로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극히 일부만을 그것도 직접이 아닌 간접적으로만 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을 다 읽은 지금 인도로 훌쩍 떠나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냐면 더 공부하고 알아두고 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델리의 주인공 '나'와 같은 가이드를 만난다면 과연 그건 행운일까? 불행일까? 고민도 하면서.

 

 

​그것이 델리다.

삶이 너무 힘겨워질 때면 니감보드 가트 화장터로 가서 죽은 자가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지켜보고 그 가족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한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그런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와 위스키를 두어 잔 털어 넣는다.

델리에서는 죽음과 술이 인생을 살 만하게 해준다. p.30

델리에서 자유기고가 이자 관광안내원으로 활동하는 '나'는 여행객들 혹은 남녀추니 바그마티와 있었던 이야기를 과거에서 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그들이 방문하는 유적지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 액자식 구성이다. 바그마티를 만나게 된 계기나 현재 가이드를 하면서 자신의 생활과 성격등의 기록은 '바그마티 편'에 해당되고 그 외에 바그마티 편과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영적 지도자들과 술탄의 일화, 델리를 침략한 정복자의 일화, 델리가 현재의 종교적 혹은 지리적 모습을 갖추게 된 역사속의 술탄 그리고 근대 영국을 비롯한 침략받은 폐허의 델리 모습등이 각각 등장한다. 화자인 '나'는 영국유학을 다녀온 나름 유식한 지식층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상대에게 대놓고 불쾌감을 표시하는가 하면 대부분의 경우 가장 큰 자신의 무기인 완벽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면서 대접받기를 바라고 이성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또한 매회 바그마티의 상스러움과 못난 외모를 지적하면서도 그녀를 잊지못하고 기다리는 순애보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도 가이드 혹은 동업자가 된 여성들의 유혹에 기꺼이 넘어가주는 호색한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이야기 구성은 작품의 핵심 주제이자 델리의 모습이기도 한 양면성은 바그마티의 신체가 양성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화자가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완벽하게 집착하지 않는 면에서 델리를 바라보는 작가 혹은 독자의 시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더불어 화자인 '나'의 모습 또한 델리라고 말할 수 있다. 유구한 역사성과 여러 술탄들 그리고 영적 지도자들을 통해 보여지는 신의 위대한 능력등을 가진 델리와 유학파의 화술과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아는 '나'가 가지고 있는 '학식 있는 모습'은 델리의 긍정적인 측면이 된다면 이와 반대로 힌두파와 이슬람파로 나뉘어져 이교도 들에게 행해졌던 술탄들의 악행이나 이들 전체를 몰락시킨 외부의 적들로 인해 상처받은 델리의 유약한 면은 남녀추니인 까닭으로 부모에게 버림받고 말투나 행동은 거칠고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단한번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가 주인이 될 수 없는 바그마티가 처한 현실은 델리가 현재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 보여진다. 등장인물과 델리의 모습을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도 있지만 더 흥미로웠던 건 '나'와 바그마티의 관계만 보면 뒤라스의 '연인'의 주인공들이 떠올랐다가 영적 스승들이 등장했던 초반에는 코엘료의 아크라 문서와 비교되었고 술탄과 티아무르 비망록을 읽을 때 쯤에는 근래 가장 인기있는 미드 왕좌의 게임의 장면이 겹쳐보였다. 물론 전체적인 느낌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헤라자데가 생각났는데 마치 이야기를 멈추기라도 하면 삶의 의욕을 상실하기라도 할 것 같은 '메르따끼'를 볼 때 그랬다.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토해내는 '나'와 작가의 모습이기도 했다.

 

 

내가 금요일 기도에 반드시 참석하기로 했던 것은 기도가 끝난 뒤 사람들로부터 받는 칭송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델리 사람들은 나를 사랑했고, 나는 그들과 그 도시를 사랑했다. p.337

 

 

정복자들의 이야기로 치닫는 후반부는 참혹한 델리의 모습이 묘사되어 읽으면서 표정이 내내 어두어졌다. 여전히 작가 특유의 위트가 '나'와 '바그마티'를 통해 종종 등장했지만 마치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하는 노랫말이 떠올라 글을 읽는 내표정은 애처로움 그자체였다. 역자의 말처럼 그런 역사적 사항은 그야말로 꼭 우리나라와 닮아 더 맘이 쓰였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자면 전쟁이 끝나고 자주권을 되찾고 나면 마치 평화가 올 것 같았지만 인도와 한국 모두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도, 외부에서 그들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여전히 평화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는 점이 그랬다. 무엇보다 지난 해 강상중 교수의 강연회에서 교수가 말했던 자살률이 높은 국가에서는 오히려 젊은 층이 전쟁을 기다리고 전쟁이 자신들의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게 해줄 계기가 되어줄거란 기대가 크다는 내용이 떠올라서 슬펐다. 인도의 일부사람들도 지금보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지배받던 그 때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는건 아닐까 섣부른 오해를 하게 되었다.

4년간의 전쟁이 끝났어도 인도에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전쟁 중에 더 평화로웠고 전쟁이 끝나자 더 혼란스러웠다. ​ p.502

기회가 된다면 델리,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진 것은 물론 안타깝게도 아시아에서 출판된 이 책, 개정판 델리 외에 전부 절판상태라 작가의 다른 책을 구해서 읽고 싶어졌다. 문화적 사대주의 여부를 떠나서 인도의 멋진 작품들이 묻히고 있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올 겨울 성년이 안된 아이들이 마법의 힘을 얻어 먼길을 떠나는 여정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에로틱하며 그야말로 실재했던 이야기가 담긴 쿠쉬완트 싱의 델리로 정말 멋진 밤을 함께 해보길 추천한다. 아마 한 챕터라도 읽게 된다면 이 리뷰가 엄청 고마워질 것 이다. 작품과 델리에 대한 애정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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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헤드라인 100 - 세상을 뒤흔든 사건들을 단 한 줄로 꿰뚫다
제임스 말로니 지음, 황헌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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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헤드라인 100

 

지난 번 유럽1,2 역사서를 읽고서 언론이 발달하게 된 계기와 본격적으로 시민들이 '신문'이라는 매체에 집중하게 된 점을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리뷰를 남겼던 적이 있었다. 때마침 접하게 된 행성비 출판사에서 출간한 [세계사를 바꾼 헤드라인 100]은 영국저널리스트 겸 작가인 제임스 말로니의 책은 여러모로 근대사를 한번 더 쭉 훑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머리말에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세계사를 바꾼다는 주제가 있긴 했지만 결국 개인적인, 영국저널리스트의 시각인지라 영국이나 미국권이 아닌 곳에 거주하는 독자들은 저마다 다른 의견을 표출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책을 무작정 읽기전에 목차를 훑어보면서 나름의 중요도를 표기해보았다. 그리고 다 읽고나서 저자와 한마음으로 뽑은 헤드라인과 여전히 갸우뚱하게 되는 헤드라인을 비교해보는 것도 독후활동으로 꽤 재밌었다. 혹 아이와 함께 책을 읽게되는 독자라면 읽기전에 참고하는 것도 좋다.

 

첫 시작은 우표다. 애국심에 뽑은게 아닐까 할 정도로 세계사의 우표가 처음 등장한 건 영국이 시초다. 본문에 부연 설명을 읽기 전까지는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았었다. 우리나라에서 서한을 주고 받는 것은 익숙한데다 빈부의 격차가 우편을 주고 받는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은 달랐다. 보내는 사람이 우편수수료를 지불하는게 아니라 받는 사람이 수수료를 내는 방식으로 실제 돈이 없어서 편지받기를 거부하거나 아에 도망을 다니는 사람들까지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편지지를 그대로 접어 보내는 경우가 많아 우표가 발달 된 이후 봉투도 함께 활성화되어 그 때부터 연애편지를 활발하게 보낼 수 있었다니 영국인 입장에서는 세계를 바꿀만한 발명인 것 같긴하다. 2번째 헤드라인 부터는 제법 역사서에서 자주 접했던 굵직굵직한 발명과 사건이 중심이 된다. 이때부터는 학창시절 공부했던 역사이야기, 성인이 된 이후에 강좌나 책을 통해 접했던 일들에 보충설명격이라 집중이 잘되고 그만큼 검색하고 추가적으로 포스트잇을 붙여가기 시작하며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더뎌졌다. 재미난 사실은 헤드라인이 초기에는 단순한 단어배열이었지만 뒤로 갈 수록 좀 더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서술 구조로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한 신문사의 헤드라인을 발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론사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가령 남북전쟁이나 대통령 피살의 경우는 사건의 중요성과 심각성 그리고 애도의 느낌을 담은 듯 시대와 상관없이 간결한 문구로 헤드라인이 작성되었다.

      

 

책 세계사를 바꾼 헤드라인 100 의 구성은 당연 헤드라인기사와 해당 언론사와 날짜 그리고 몇몇 기사에는 함께 실렸던 삽화 및 사진이 함께 게재되어 있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헤드라인이 지목한 사건에만 집중하는게 아니라 그 사건의 전후 상황을 함께 실었다는 점이다. 인간의 달착륙에 관한 헤드라인의 경우는 미국에서 달착륙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시작점과 그 이후 우주인들의 활동을 간략하게나마 기재하였고 동인도 회사 세포이 항쟁의 경우는 마지막 까지 그들의 항쟁의 역사적 중요성을 언급해주었다. 동성애자들에게서 발견된 희귀암(에이즈)의 경우도 기사가 난 이후 관련 내용을 기재하여 아주 간단한 의문사항은 추가적으로 찾지않아도 될정도다. 그런가하면 서두에 밝힌 것처럼 공감가지 않은, 별거 아닌 사건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세계사를 바꿨다라는 점에서는 공감되지 않았던 헤드라인들도 보인다. 스코틀랜드 축구장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은 관람객들이 갑작스레 퇴장하면서 일어난 참사로 최근에 국내에 모 행사장 환풍기 사건을 떠올리게는 했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예나 지금이나 안전불감증에 빠져있다는 점에서는 과연 무엇을 바꾸었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책에 실린 기사들은 세계사를 바꿨다는 전제하에 공감여부를 떠나 들었지만 잘 몰랐던 사건등에 대해 간략하게 나마 사건 전후를 알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역사가 그저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추천하고 싶다.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더 찾아보고 싶은 시점이 있고 자기만의 기준으로 세계사를 바꾼 헤드라인은 어떤 것인지 비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 독서 및 NIE 활동에서 교육중인 한국을 바꾼 헤드라인 100이란 주제로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가서 기사를 뽑아보는 것도 좋다. 이 책은 책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활용도가 높다는 점에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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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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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

 

사랑에 빠진 여자만큼 바보같은 사람도 없을 것이고, 사랑을 놓친 여자만큼 어리석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하지 않는 여자만큼 불쌍한 사람도 없다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사랑을 하고 있는 지금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게 사랑인데 이 책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를 읽으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 때때로 나보다 더 욕심이 많은 여자인 것 같아 질투도 났다. 그리고 뜻밖이 었다고 해야 할까. 저자가 마스다미리. 그녀의 만화를 읽어본 이들이라면 분명 사랑에 관한 그녀의 이야기에 동일한 작가가 맞는지 의심스러웠을 것 같다. 모범생이라기 보단 보통의 여성들이 사랑을 할 때 보여주는 질투와 괴로움보다 더 많은 복잡한 감정을 이토록 잘 알고 있는 그녀, 역시 무심한 듯 던지던 만화속 여인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우연이 아닌 작가의 탄탄한 내공이 바탕이 된 것이었어!

 

책을 읽는 동안 사랑에 관한 영화 그리고 소설속 인물들이 떠올랐다. 아마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애인있는 사람을 만난다거나 내가 동시에 여러사람을 좋아한다거나 그저 연애감정을 느끼기 위해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사랑에 빠진 상황이 다르다고 감정마저 달라지진 않는다. 그를 사랑하고 있는 동안에 '그녀'들의 모습은 쌍둥이처럼 똑같으니까.

 

이미 몇 번 이고 스스로의 규칙을 깨는 요즘.

이 문자에 대답이 없으면 포기하자.

다음 주말에도 못 만나면 깨끗하게 포기하자.

내 전화에, 이번에도 "왜"라고 한다면 정말로 포기하자.

통화 중에 또 텔레비전을 보며 웃는다면, 정말로 정말로 포기하자.

 

연애를 하다보면 위의 그녀처럼 다들 적어도 한가지쯤 스스로에게 다짐하는게 있다. 하지만 참 간사한게 사람맘이라고 어느새 그를 위한 변명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이전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자멸하고 있음을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또 어리석게도 여전히 그런 자기만의 규칙을 그 다음 사랑이 오기전에 만들어버린다. 마치 씨야의 '그놈 목소리'의 노랫말이 들리는 것 처럼.

'다짐이나 말지! 마지막이라고!'

 

사랑을 줄 줄 몰랐던 남자와 헤어졌으니 후련해야 하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설득해보지만, 제대로 사랑받지 않았으니까 미운 것이다.

 

헤어지고 주지못한 사랑에 우는 사람들은 어쩌면 스스로가 그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나를 받으면 두개를 줘야지, 둘을 받으면 셋을 줘야지 하면서 상대방의 사랑이 커지기를 기다리다보니 정작 상대보다 몇 배 더 커져버린 감정을 전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위의 문장을 보면서 생각해봤다. 만약 그런거라면 정말 미워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진다.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

 

제목은 사랑을 하고 있다더니 이별에 관한 혹은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네 싶겠지만 이별하는 그 순간도 사랑의 연속이지 싶다. 상대방이 종료를 외친다고 혹은 누군가 이 사랑은 끝났다고 알려준다고 내 사랑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이별이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충분히 주고 받고 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더 줄게 없을 때, 더 받을 게 없을 때 서로가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된다면 그 이별은 그야말로 진짜 '사랑의 끝'이 아닐까 싶다.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에 모두 공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보다 어린 여성이 아닌 연상의 여성에게 상대를 빼앗기면 왠지 억울하다고 하는 부분들이 그렇다. 이 책의 독자의 연령층은 20대 초중반은 아닌 듯 싶고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라고 해도 연상의 여자들은 그야말로 가장 무서운 '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알거 다 알고, 집착의 부질없음을 아는데다 심지어 사랑에 빠질 정도의 연상이라면 '외모'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자기관리'의 신이거나 나이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 '매력'의 신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피곤 한 밤에도 팩이나 욕실에 가는 것을 게을리 할 수 없다는 말에는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특히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누군가의 세컨드나 비밀스러운 사랑따위도 여전히 부정적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 아니라 양쪽 모두 '결코 해서는 안되는'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까.

 

만약 그가 죽는다면?

생각만 해도 무서워서 울음이 나올 듯 하다.

그가 없으면 누가 나를 알아줄까? 응석을 받아주고, 위로 해주고, 화를 내줄까? 그가 없으면 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

그런 소중한 사람을 얻었는데 '설렘'까지 바라는 건 뻔뻔한걸까?

 

그래도 역시나 사랑을 하고 있을 때의 심리는 다들 똑같은 것 같다. 서로만의 암호로 이야기 하고 굳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상의하거나 말해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불편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 물론 그렇다해도 설레임만큼은 정말이지 포기가 안된다.

 

 

30대 전후 여성들의 사랑이다보니 주변사람에게 죄인이 된 듯 듣게 되는 질문, '결혼은 안할거니'에 대한 괴로움을 작가는 마지막 에피소드로 골랐다. 정말이지 결혼! 결혼! 작가와 나와 그리고 결혼은 미정인 수많은 '그녀'들의 답은 이거다.

 

내게 필요한 사람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둘이서 매일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다. 즐거운 나날들, 사랑을 하고 있다. 그걸로 좋다.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왼손 약지에 백금반지 같은 건 없어도 좋다.

 

​불안함도 질투도 그리고 스스로에게 드는 자책들도 모두 누군가를 향한 마음의 표현이라면 그것은 모두 사랑이라고 작가 마스다 미리는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일반적이지 않은 것 같은 에피소드 속 인물들의 등장도 거부감을 가질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나의 사랑을 타인에게 이해받을 필요도 반드시 인정받을 까닭도 없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결국 상처를 받게 되는 것 또한 나 자신 뿐이니까. 그래서 결론은 지금 우리 모두는 과거부터 미래까지 늘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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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렛 도넛
배정진 엮음, 트래비스 파인 원작 / 열림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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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저는 언제나 해피엔딩이 좋아요."

 

소설이 원작이 아닌 영화가 먼저 개봉한 작품 '초콜렛 도넛'. 포스터 혹은 책 표지만 봐도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가 정상적인 보통의 아이가 아니란 것즘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이틀은 그런 표지이미지와 반대로 보통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 초콜렛 도넛이다. 이혼 후 딸 아이를 자주 만날 수 없고 아버지의 사랑을 줄 수 없었던 것이 마음 아팠던 트래비스 파인 감독의 초콜렛 도넛은 감독이 딸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을 더한 70년대 실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다운증후군 아이 마르코.

 

이성애자인 줄 알다가 고등학교 럭비시합 중 우연하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게된 현직 검사 폴은 이혼 후 우연히 노랫소리에 이끌려 방문 한 바에서 여장을 하고 노래하는 루디를 만나게 된다. 루디는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지만 경제적 여건이 여유롭지 않아 게이바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무대에서 짙은 화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루디의 모습에 폴은 첫 눈에 반했고, 바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댄디한 차림의 폴을 보고 루디도 첫 눈에 반한다. 둘은 서로의 사랑을 바로 확인한 후 약간의 소음은 있었지만 연인들이 초반에 하는 가장 큰 실수, 밀당은 없었다. 이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건 다름아닌  '마르코'였다. 아마도 그 둘이 실존인물이었다면 '문제'라고 표현한 내가 맘에 들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장애아 마르코는 문제가 아닌 축복이자 행운이었다. 루디 옆집에 사는 마리아나는 마약중독인데다 마르코를 제대로 돌보지않았다. 마약범으로 체포된 이후 아동보호국에서 마르코를 위탁가정으로 데려갔지만 임시로 마르코를 맡아준 집에서는 마르코에게 그 어떤 안락함과 평온함도 안겨주지 못했다. 오히려 '초콜렛 도넛'이 먹고싶다던 자신의 아이에게만 도넛을 내어주고 꼬르륵 소리가 나는 마르코에게는 주지도 않는다. 이때부터 마르코에게 도넛, 그것도 '초콜렛 도넛'은 누군가와 동등해지는 것,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는 바로 그 자체가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엄마를 만난다면 초콜렛 도넛이 먹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마르코는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여기는 마르코의 집이 아니었다. p.53

 

이후 자신의 집을 찾아 무작정 걸어가던 마르코를 발견하고 루디가 마리아나를 대신 해 폴과함께 마르코와 함께 살게된다. 그 첫날 마르코는 자신이 그토록 먹고 싶어하던 초콜렛 도넛을 먹게되면서 세사람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런 행복한 길지 않았다.

 

사실 이 행복한 시절 이후는 읽고 싶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던 밤 루디에게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를 들려달라던 마르코의 요청이 맘에 걸렸을 뿐 아니라 동성애 커플이 아이를 맡아 기르는 것을 합법적으로 인정받는 다는게 결코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아빠가 아이의 장래를 책임질 수 있는지에 대해 법이 판단하려던 영화 '아이엠 샘'처럼 분명 이 세가족을 떼어놓을려는 사회적측면에서만 '정상인'인 사람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이 소설이 제발 해피엔딩이길 마르코가 루디에게 원한 것처럼 그렇게 소원하며 결말까지 읽었다. 누구나 무엇이 옳은지 어떤게 행복인지 단정하고 확신할 순 없다. 특히 아동문제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인권을 지키기 위해 세워진 법이 과연 개인의 행복을 위해 늘 옳은 판견을 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초콜렛 도넛은 진지하게 독자에게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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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
김경 지음 / 이야기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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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목이 시건방지다는 것을 인정한다. 김경의 첫 소설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라니 이렇게나 건방진 독자가 있을까 싶지만 실은 그녀의 전작들에 모조리 별 다섯개 평점을 바치고 한 권을 제외한 작품 모두를 소장하고 있는 애독자이자 이번 작품역시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읽었다는 것을 밝힌다. 첫 소설로는 더 좋을 수 없는 이유는 아나운서에서 여행작가로, 그리고 소설가가 된 손미나씨나 전직이 패션지 에디터였다는 점에서는 작가 백영옥씨와도 매우 흡사한데 그것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소재, 잘 쓸 수밖에 없는 소재를 택했기 때문이다. 소설가로서 저자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패션잡지의 피처에디터의 삶과 그녀가 현재 고층빌딩 숲을 떠나 진짜 '숲'에서 살고 있는 이야기를 글로 옮겼으니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다.

 

"토니 모리슨이 그랬어. 자유의 역할은 다른 누군가를 자유롭게 하는 거라고. 당신이 더 이상 좌절한 상태가 아니거나,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삶의 방식에 속박되지 않게 되었다면 당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라고."    p.251

 

나처럼 그녀의 애독자-굳이 팬이라고 적기에는 낯간지러운-인 사람들은 SNS를 통해 그녀의 소식을 종종 접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아주 묘하게 웃음질 수 밖에 없는데 그냥 소설이거니 작정하고 간략하게 책 내용을 말하자면 패션지에서 야근을 밥먹듯 살면서도 언젠가 값이 오를지 몰라 빚을 내고 사놓은 아파트 대출금과 그녀가 속해있는 그야말로 트렌드를 쫓아야 하는 잡지기자 생리상 갖춰야 할 불필요한 머스트해브 아이템등을 사느라 돈을 벌지만 늘 가난하게 살던 어느 날, 영혼이 아름다운 시골마을 화가를 만나게 되어 연애를 한다는 '로맨스 소설'을 가장한 '저항 소설'이다. 무엇에 대한 저항인지는 독자의 상황과 심리상태에 따라 조금 다를 수도 있으니 그것까지는 적을 순 없을 것 같다. 확실한건 읽는 내내 '영희'가 '경'이의 연애스토리라고 착각하고 혼동하는 것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기자들이 작가에게 제발 묻지 않았으면 싶은 질문인 '본인 이야기인가요?'를 떠올리며.

 

" - 근사하잖아? 빚져도 되는 유일한 대상은 사랑하는 사람뿐이라는 거? 그 빚 때문에도 서로 평생 사랑하고 의지하고 존중할 수 있다면, 그 빚은 사실 상 빛 그러니까 'Light'처럼 좋은 거고." p.193

 

패션지 기자인 영희가 세네카의 말을 따라 편지를 통해 화가에게 접(?)근하고 또 그 화가와 연애를 하며 혼인신고를 하기까지의 스토리는 닭살이 돋고 그야말로 신진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 느껴지는 지나친 묘사덕분에 조금 힘겨웠다. 과연 내가 김경의 애독자가 아니었다면 초반에 그런 장애물을 잘 견뎌내고 그녀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로맨스인듯 로맨스아닌 로맨스소설 이지만 저항소설인 작품 전체를 다 흡수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니 이점은 읽기전에 약간의 각오까진 아니지만 염두해 두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초반을 넘어 슬슬 현재 자신의 방식을 털어내고 점차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 소로가 월든에서 말하던 삶, 사진작가 권부문이 진짜 삶을 깨닫는 시기를 만나게 된다.

 

"생각보다 훨씬 혹독했죠. 속초에서의 시간이. 그런데 그 혹독한 시간을 견디며 나라는 사람의 다른 국면을 만나 거죠. 뭐. 세르반테스가 바깥세상에서 사기 치고 남의 돈 갖고 장난치다가 감옥 들어가서 정신차렸듯이...... 그리곤 감옥에서 [돈키호테]를 썼지요? 아마....."   p.230

 

작품에서 위에 언급한 스토리로 책을 쓰겠다는 여자에게 남자는 조금 뻔하지만 그 때문에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더 수월하게 이해될 수 있을거라고 말했던 것처럼 어찌보면 16부작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닥 보고 싶지 않은 뻔하고 통속적인 몇 장면도 있지만 결말에 이르게 되면 갈등이 해소되고 제법 어록이라 할 만큼 괜찮은 말들과 인용구도 많다. 그런가 하면 결혼과 동시에 제주도 주부가 되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가수 이효리, 이상순 부부의 삶과도 비교되어 외딴 곳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자연과 벗하는 삶을 꿈꾸게 만들기에도 충분했다. 심지어 책속 부록처럼 등장하는 영희의 취향리스트를 훑어보면 역시 그동안 읽어왔던 저자의 에세이의 밑거름이 되고 작품에서도 등장했던 작가, 가수, 음반 등이 약간의 코멘트와 함께 수록되어 있어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공감과 반전에 의한 감동은 없지만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질문을 던지는 정도라면 첫 소설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두번째 소설에서는 저자가 또 얼만큼 성장해서 독자를 찾아줄지 기대감도 높아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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