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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
사랑에 빠진 여자만큼 바보같은 사람도 없을 것이고, 사랑을 놓친 여자만큼 어리석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하지 않는 여자만큼 불쌍한 사람도 없다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사랑을 하고 있는 지금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게 사랑인데 이 책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를 읽으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 때때로 나보다 더 욕심이 많은 여자인 것 같아 질투도 났다. 그리고 뜻밖이 었다고 해야 할까. 저자가 마스다미리. 그녀의 만화를 읽어본 이들이라면 분명 사랑에 관한 그녀의 이야기에 동일한 작가가 맞는지 의심스러웠을 것 같다. 모범생이라기 보단 보통의 여성들이 사랑을 할 때 보여주는 질투와 괴로움보다 더 많은 복잡한 감정을 이토록 잘 알고 있는 그녀, 역시 무심한 듯 던지던 만화속 여인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우연이 아닌 작가의 탄탄한 내공이 바탕이 된 것이었어!
책을 읽는 동안 사랑에 관한 영화 그리고 소설속 인물들이 떠올랐다. 아마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애인있는 사람을 만난다거나 내가 동시에 여러사람을 좋아한다거나 그저 연애감정을 느끼기 위해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사랑에 빠진 상황이 다르다고 감정마저 달라지진 않는다. 그를 사랑하고 있는 동안에 '그녀'들의 모습은 쌍둥이처럼 똑같으니까.
이미 몇 번 이고 스스로의 규칙을 깨는 요즘.
이 문자에 대답이 없으면 포기하자.
다음 주말에도 못 만나면 깨끗하게 포기하자.
내 전화에, 이번에도 "왜"라고 한다면 정말로 포기하자.
통화 중에 또 텔레비전을 보며 웃는다면, 정말로 정말로 포기하자.
연애를 하다보면 위의 그녀처럼 다들 적어도 한가지쯤 스스로에게 다짐하는게 있다. 하지만 참 간사한게 사람맘이라고 어느새 그를 위한 변명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이전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자멸하고 있음을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또 어리석게도 여전히 그런 자기만의 규칙을 그 다음 사랑이 오기전에 만들어버린다. 마치 씨야의 '그놈 목소리'의 노랫말이 들리는 것 처럼.
'다짐이나 말지! 마지막이라고!'
사랑을 줄 줄 몰랐던 남자와 헤어졌으니 후련해야 하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설득해보지만, 제대로 사랑받지 않았으니까 미운 것이다.
헤어지고 주지못한 사랑에 우는 사람들은 어쩌면 스스로가 그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나를 받으면 두개를 줘야지, 둘을 받으면 셋을 줘야지 하면서 상대방의 사랑이 커지기를 기다리다보니 정작 상대보다 몇 배 더 커져버린 감정을 전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위의 문장을 보면서 생각해봤다. 만약 그런거라면 정말 미워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진다.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
제목은 사랑을 하고 있다더니 이별에 관한 혹은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네 싶겠지만 이별하는 그 순간도 사랑의 연속이지 싶다. 상대방이 종료를 외친다고 혹은 누군가 이 사랑은 끝났다고 알려준다고 내 사랑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이별이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충분히 주고 받고 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더 줄게 없을 때, 더 받을 게 없을 때 서로가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된다면 그 이별은 그야말로 진짜 '사랑의 끝'이 아닐까 싶다.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에 모두 공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보다 어린 여성이 아닌 연상의 여성에게 상대를 빼앗기면 왠지 억울하다고 하는 부분들이 그렇다. 이 책의 독자의 연령층은 20대 초중반은 아닌 듯 싶고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라고 해도 연상의 여자들은 그야말로 가장 무서운 '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알거 다 알고, 집착의 부질없음을 아는데다 심지어 사랑에 빠질 정도의 연상이라면 '외모'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자기관리'의 신이거나 나이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 '매력'의 신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피곤 한 밤에도 팩이나 욕실에 가는 것을 게을리 할 수 없다는 말에는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특히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누군가의 세컨드나 비밀스러운 사랑따위도 여전히 부정적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 아니라 양쪽 모두 '결코 해서는 안되는'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까.
만약 그가 죽는다면?
생각만 해도 무서워서 울음이 나올 듯 하다.
그가 없으면 누가 나를 알아줄까? 응석을 받아주고, 위로 해주고, 화를 내줄까? 그가 없으면 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
그런 소중한 사람을 얻었는데 '설렘'까지 바라는 건 뻔뻔한걸까?
그래도 역시나 사랑을 하고 있을 때의 심리는 다들 똑같은 것 같다. 서로만의 암호로 이야기 하고 굳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상의하거나 말해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불편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 물론 그렇다해도 설레임만큼은 정말이지 포기가 안된다.
30대 전후 여성들의 사랑이다보니 주변사람에게 죄인이 된 듯 듣게 되는 질문, '결혼은 안할거니'에 대한 괴로움을 작가는 마지막 에피소드로 골랐다. 정말이지 결혼! 결혼! 작가와 나와 그리고 결혼은 미정인 수많은 '그녀'들의 답은 이거다.
내게 필요한 사람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둘이서 매일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다. 즐거운 나날들, 사랑을 하고 있다. 그걸로 좋다.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왼손 약지에 백금반지 같은 건 없어도 좋다.
불안함도 질투도 그리고 스스로에게 드는 자책들도 모두 누군가를 향한 마음의 표현이라면 그것은 모두 사랑이라고 작가 마스다 미리는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일반적이지 않은 것 같은 에피소드 속 인물들의 등장도 거부감을 가질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나의 사랑을 타인에게 이해받을 필요도 반드시 인정받을 까닭도 없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결국 상처를 받게 되는 것 또한 나 자신 뿐이니까. 그래서 결론은 지금 우리 모두는 과거부터 미래까지 늘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