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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2학년때 같은 반 친구였던 J양.
그 아이에 대한 나의 기억이라고는 같은 동네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는 것.
옷차림이 항상 참 단정했다는 것. 웃는 모습이 참 소박했다는 것.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나는 영상은, 바로 그 아이가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고 있었다는 것이다.
분명, 1년 내내 그 아이가 이 책을 들고 다녔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아이와 짝꿍을 했던 기억도 없으니, 어떻게해서 내가 그 아이가 <외딴방>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기억하듯, 내 기억 속에 그 아이는 항상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고 있는 모습일 뿐이다....
그런데 그토록 그 모습을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을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그 아이와의 연락도 끊어져 버렸다.
드디어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게된, 스물셋의 겨울.
문득, 그 아이의 소식이 못견디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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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던 ‘나’는, 줄줄이 딸린 동생들로 인해, 서울에서 홀로 공부하고 있는 큰오빠의 밥을 해 주기 위해, 그리고 지독한 시골집을 탈출하기 위해, 열여섯. 어린나이에 서울로 상경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간에는 스테레오 라디오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1번’이란 이름으로 살고, 야간에는 영등포 여고에 나가 비로소 제 이름과 제 나이를 찾아 학생이 된다.
장남으로써 책임을 어깨에 무겁게 진채 공무원생활을 하면서 야간대학에 다니다가, 방위군이 되어서도 새벽마다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큰오빠와, 함께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나중에 새를 찍는 사진기사가 되고 싶어하는 외사촌과, 야간대에 갔으면 하는 큰오빠의 바램이 무색하게 법대에 지원하여 데모를 하는 셋째오빠가 ‘나’의 서울살이 가족들이다.
‘나’는 그곳에서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 그리고 드디어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 드디어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된다.
그 후 여러날이 지나고, 정말 꿈에도 그리던 ‘작가’가 된 ‘나’는 어느 날 그 옛날, 함께 영등포 여고에 다니던 동창에게 전화 한통을 받게 되고, ‘너는 왜 우리들 이야기는 안쓰니? 우리가 창피하니?’란 질문을 듣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잊고 지냈던, 아니 잊고자 애썼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던 ‘나’는 희재언니란 이름 하나를 기억해 낸다.
공단에서 2블럭 떨어진 곳에 존재하던 3층짜리 건물에 무려 37개의 방이 흩어져 있었던 ‘나’의 외딴방. 같은 집 1층에 세들어 살고 있던 ‘희재언니’. 왜 ‘나’는 그토록 그녀에 대한 기억을 잊고자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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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난 참 마음이 아팠다. ‘나’가 참 안쓰러웠고, 한편으로는 기특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기어코 꿈을 이루고야 만 그 모습이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다.
만일, 열여덟. 그 교실에서 J양이 읽고 있던 <외딴방>을 나도 읽었다면, J양과 좀더 친해질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나는 달라져 있을까? 포기한 꿈을 계속 꾸고 있었을까? 어쩌면.. 벌써 이루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