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꿈 - A Barefoot Drea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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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인상 

줄거리를 보자마자, 월드컵을 겨냥했구나...싶었다. 그래서 피하고 싶었다.
동티모르의 히딩크라...  
뭔가 좌절이 있을 것이고, 그걸 딛고 성공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휴머니즘 스토리.
좀 진부하다 싶었다.  
오랜만에 영화 보는데, 자주 보기도 힘든데, 헐리우드 액션 영화가 더 눈에 들어왔다.
톰 크루즈가 나온다는 그 영화. 평점은 이 영화보다 낮을지라도 시원할 것 같은데...
같이 보는 멤버 중에 임산부가 있었다. 무척 시끄러울 듯한 액션 영화를 보자고 할 수가 없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그냥 덜 지루하기만을 바랬다. 
 

2. 영화 속으로!

전직 축구스타 김원광. 한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하는 일마다 사기를 당해 궁지에 몰린 인생.
동티모르에서 커피 사업으로 재기를 꿈꾸지만 또 사기를 당하고, 거리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며, 축구용품점을 연다. 파리만 날리는 상황에서 떠올린 할부 판매!
아이들에게 축구화를 먼저 주고, 2달 동안 매일 1달러씩을 갚는 기발하고 좋은(?) 아이디어! 에서 시작된.. 그의 두번째 축구 인생. 

 이쯤에서 문득 나는 '킹콩을 들다' 영화가 떠올랐다.
이범수라는 배우를 내세워서 기대를 한껏 품게하고, 힘을 쫙 빠지게 했던 그 영화.
이런 스토리는 잔잔할 수 밖에 없다고, 지루한 건 좀 참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했던 그 영화. 

 
하지만 '맨발의 꿈'은 달랐다.

박희순의 연기력이 큰 역할을 했다. 티모르 말과 우리나라 말을 적당히 섞어가며 연기하는 그는...
보는 이로 하여금 김원광으로 쉽게 몰입하게 했다.  아이들도 어찌나 연기를 잘 하던지... 
김원광의 역전인생 뿐만 아니라 동티모르의 아픈 역사와 현실까지도 아우르는 내용.
줄거리는 탄탄했고, 연기력도 뛰어났다. 적당히 유머까지 버무려져 지루함이 전혀 없었다. 

  

3. 後

김원광의 역전인생을 바라보며...
인생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미로 같은 것임을 느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또다른 길이 열리고, 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문이 열리고, 아차차, 저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했던 실수가 때론 다른 길을 보여주기도 하고...

축구 경기를 할 때마다 마지막 한 방이  부족해서 김원꽝이라고 불렸다는 그의 말에 마음이 찡했다. 내가 그렇지 뭐...하는 자신이 만든 한계 속에서 빠져나와 아이들과 끝까지 가보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진지한 얼굴이 떠오른다. 한번도 끝까지 가보지 않았다고, 이제는 가야 한다고 말하던 그의 얼굴...

나는 어느 끝....에까지 가봤던가? 

나는 어느 끝....까지 가야할까?   

궁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지쳐서 넋 놓고 있는 내게 아직 끝까지 안 갔잖아..힘을 내...라고  
말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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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편집부 엮음 / 보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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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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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만남 

두껍고,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글씨들에 기가 눌려 책장에서 외면받고 있던 책이였다. 폴 오스터란 작가는 다른 이들의 서평에서 많이 들어봤고, 그래서 책을 사놓긴 했지만 유명하다거나, 칭찬이 자자하면 어째 좀 지루하리란...어디서 생겨났는지 모를(평론가들의 칭찬이 자자한 지루한 영화들 때문이지도) 그런 선입견때문에 몇년동안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사놓고 책장에 꽂아놓으면 언젠가는 보게 된다는 나의 변명 아닌 변명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이번엔 그렇게 이 책을 들게 되었다. 외면하던 책장을 정리하면서...난 정리하다 책을 훑어보고 하는데...조금 읽다보니 주인공 포그가 외삼촌에게 1천권이 넘는 책들을 유산으로 물려받는 장면을 보고선...부러운 마음에 아주 강한 인상이 남았고, 그 뒤에는? 하는  궁금증이 계속 일어서 결국 이 책을 펴고 말았다.  책을 다 덮고 이 책의 겉모습에 내가 얼마나 속았는지, 왜 긴장했었는지 웃음이 슬며시 났다.  

이 책은 글자가 빼곡한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세사람이 나오는만큼 총3부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다. 이 긴긴 이야기 속에서 독자를 어떻게 이토록 쉼없이 빠져들게 할 수 있는지 난 '폴 오스터'란 작가가 존경스러웠다. 그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이 책의 맨 마지막...겉장 표지에는 폴 오스터의 작품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 책을 포함해 13권의 책인데 모두 열린책들에서만 출간했다고 한다. 출판사에 대한 믿음인가?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열린책들이 좋아졌다. 두껍고, 빽빽한만큼 번역이나, 출판시에 꼼꼼하게 신경을 쓴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간혹 어떤 책들은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오타에 신경이 거슬리기도 했다)

- 이야기 

이 소설에서는 총 3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포그, 에핑, 솔로몬 바버... 
1부는  포그의 이야기이다.
포그는 아버지는 모르는 채 엄마와 단둘이 살다가 버스 사고로 엄마를 잃고 빅터 삼촌과 함께 산다. 빅터는 클라리넷 연주자인데, 결혼에도 실패하고, 클라리넷 연주자로도 앞날이 없는 우리가 판단하자면 실패한 인생의 주인공이다. 1천권이 넘는 책을 소유하고, 망상을 즐기고, 해박한 지식으로 터무니 없는 이야기들도 많이 하지만 포그에겐 유일한 혈육이며,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은 엄마나 애초에 없었던 아버지를 대신하는 척을 하지 않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인 척하지 않는 어른이였다. 그래서 포그는 그를 사랑했다.  포그가 대학을 다니는 중에 빅터가 갑자기 죽는다. 이에 포그는 심한 충격에 휩싸이고, 이때부터 포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포그는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그것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수중에 남아있던 돈을 아끼기 위해 하루 식사를 한끼로 줄이고, 1천권의 책을 빠르게 읽어나가는 동시에 헌책방에 내다판다. 전기가 끊기고, 건물주에게 쫓겨나고, 거리로 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부랑인의 삶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머릿 속으로는 그런 사람과 다르단 생각을 하며..서울역에 가면 포그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때론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 개똥철학을 늘어놓으며, 천원만 달라고 히죽 웃고 있지 않을까...그 사람들이 포그와 다른 게 있을까? 결국엔 자신의 인생에서 도망쳐버린 낙오자일 수 밖에는 없지 않을까...내내 그런 생각을 하며 포그의 이야기를 읽었다. 도무지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거지? 대학도 졸업했으니 직장을 구하고,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정상적인 삶을 충분히 유지할 수도 있겠건만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일반적인 생각은 이렇지만, 유일한 가족을 잃은 포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도망치는 일(본인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선택이라고 말했지만) 밖에느 할 수 없었을 강한 무력감이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선택이라기 보단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겠지. 살아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단 생각이 들었을테니 말이다.
포그는 결국 친구 짐머와 첫눈에 그녀를 보고 반하는 키티 우의 사랑으로 삶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제정신을 차리게 된다.  

여기까지가 1부...2부는 포그가 에핑이라는 노인의 비서로 취직을 하면서 시작된다.
짐머에게 신세 지는 일이 미안했던 포그는 아무 일이나 구해보잔 심정으로 일을 구하러 간다.
그리고 에핑의 집으로 들어간다. 에핑은 아주 괴팍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노인이다.
다리는 움직이지 못하고,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때론 악랄해 보이고, 때론 따뜻하기도 한 그런 노인이다. 
에핑은 죽음을 앞두고, 포그와 함께 자서전을 쓰는 작업을 시작한다. 
여기서 새로운 에핑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에핑의 첫번째 삶...줄리언 바버로써의 삶이 시작되고, 부유한 화가였던 그가 서부로 떠나는 일, 그곳에서의 사고, 동굴에서의 삶...그리고 에핑으로 다시 시작된 인생.  
에핑의 이야기들은 참 소설스럽다. 포그의 이야기도 그닥 현실적이진 않지만, 에핑의 이야기는 더욱 소설스럽고, 흥미진진하고, 스릴마저도 느껴진다. 에핑과 포그가 함께 작전을 짜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일도 황당하지 않은가? 
에핑은 삶에 진 빚을 그런 식으로  청산했다. 그리고 완성된 자서전을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자신의 아들 솔로몬 바버에게 전해달라고 포그에게 부탁한 후, 자신이 정했던 죽음의 날에 떠나간다.  

3부는 포그가 솔로몬 바버에게 자서전을 전달한 후, 그와 친구가 되고...키티 우와의 이별을 한 후, 에핑이 살았다던 서부의 동굴을 찾아 솔로몬 바버와 떠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부터는 더욱 소설스러워서... 알고보니 솔로몬 바버는 포그가 몰랐던 아버지였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포그의 엄마, 에밀리 포그의 묘지에서 울먹이는 솔로몬 바버의 모습을 보고 포그가 알아차린다) 솔로몬 바버는 관을 묻으려고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 뼈가 부러지고,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다. 누구를 아버지로 삼고 싶으냐 물으면 가장 아버지로 삼고 싶었던 진짜 아버지 솔로몬 바버가 그렇게 떠나고, 키티 우와도 완벽한 이별을 한 포그는 에핑이 살았다던 동굴을 찾아 홀로 떠난다.   

책을 다 덮고 이 방대한 이야기에 입이 쩍....벌어졌다.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로 시작되는 이 소설이 이런 식으로 돌고 돌아 마침표를 찍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터라 나는 그동안 읽었던 이야기들을 찬찬히 떠올려 보았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 

- 제목의 의미? 

이 책에는 달의 궁전이라는 중국 레스토랑이 나온다. 그리고 달도 많이 나온다. 소설의 첫 시작은 달이였고, 포그가 삶에 절망하고 굶주리고 있을 때, 환상처럼 달의 궁전 간판을 발견하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노란 둥근 보름달도 등장한다.  

어디서는 포그의 환상을 대변하는 듯하고, 마지막에서는 의외로 따뜻한 달빛을 느껴보라고도 한다. 폴 오스터에게 달은 무슨 의미일까? 
달이 이지러졌다가 다시 차는 모습처럼, 주인공들의 삶의 모습을 반영했다는 역자의 말을 계속 떠올리며 이  책을 읽었다. 그러고보니 그런 것도 같다.
포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삶을 끝내려 했고, 에핑은 줄리언 바버로써의 삶이 다 끝났다 여겨졌을 때 에핑으로서 다시 태어났고, 솔로몬  바버 또한 최고의 삶에서 에밀리 포그와의 스캔들로 나락까지 떨어지는 삶을 맛보았다.
그런 굴곡의 삶에서 그들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살펴보며 이 책을 읽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노란 둥근 보름달은 포그의 앞으로의 희망찬 인생을 말한다고 믿고 싶다.  
달이 이지러졌다가 다시 차는 것처럼...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기 하지만 때때로 더 큰 힘이 작용해서 인간을 무력화 시키기도 한단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달이 항상 변하듯이 우리 인생의 굴곡도 어찌할 수 없는 필연이란 생각...닥쳐오는 인생에서는 우린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잠시 생각해보았다.  

내용이 많아서 생각도 많이 하게 되는  소설이다. 
그 안에 들은 더 많은 생각들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너무 재밌어서 멈추고 싶지 않았고, 얼른 읽어버리고 싶단 의욕,
새로운 전개에 흥분했던 시간들이 너무도 좋았다. 다음 뉴욕 3부작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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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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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나보다.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린 후  얼음 동동 띄운 물을 벌컥벌컥 마셔버리듯이 그렇게 단숨에 읽어내렸다.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다. 그저 대학생이였을 때, 스무살 정도였을까?

신경숙 작가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이 책이 유명했고, 제목도 독특해서 그녀의 책을 기웃거렸었나보다. 도서관에서 그녀의 책을 검색해 보니 모두 대출 중이였다. 도대체 어떤 작가이길래? 그녀의 글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궁금증이 일었다. 

그러고 난 후 내가 처음 만난 그녀의 소설은 "깊은 슬픔" 이였다.
엇갈린 사랑을 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지독하게 가슴이 먹먹해 오는 소설이였다.서로의 뒤만을 바라보는, 몹시도 마음을 주는 때가 어긋나 사랑이 아닌 상처만을 주는, 그런 세 사람의 이야기.   
제목 그대로 깊은 슬픔이 느껴져 마음이 아려오고, 감당하기 어려웁게 슬퍼지는 그런 소설이였다.

 

"깊은 슬픔" 이후... 그녀가 쓴 책은 거의 챙겨 보았다. 외딴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등등... 그때만 해도 그녀의 글은 너무 자신 안에 박혀 있는 게 아니냐고들 했다.
모르겠다. 그래서 난 더 좋았는지도...
나지막히 말하는 그녀의 소설이 좋았다. 내 귀에 대고 조곤조곤 말하는 듯한 그 느낌이 좋았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항상 조곤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다 한동안 그녀의 소설을 잊고 살았다.  엄마를 부탁해는 읽었지만  엄마 이야기라 그런지 예전 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였다.
여전히 그녀는 내게 속삭이고 있지만... 

그동안 육아책 본다고 소설을 멀리(?) 해왔던 터라 나는 이 책을 받자마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저 내 손에 이 책을 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랄까?

읽으면 읽을 수록 "깊은 슬픔"이 떠오르는 이 소설. 맘에 들었다. 
그동안 내가 이런 것들에 목말라했구나 새삼스러웠다. 
사랑이야기라서 그랬던 걸까? 죽음이 나오는 이야기라서?
"깊은 슬픔"이 자꾸 떠올랐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 조금 더 밝았다고 할까?
 

스무살을 갓 넘은 윤, 명서, 미루, 단...이들의 사랑  이야기와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이야기라고 하면 적절할까?
"깊은 슬픔"이 상처로 속이 곪아터진 은서를 두고 그냥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면 이 책은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과  희망이 엿보인다. 그게 바로 차이점이다. 

 
그녀는 작품 속에서 무수히 '견뎌내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녀 소설 속의 인물들은 뭐 그리 견뎌낼 일이 많은지...
윤은 어머니와 단이의 죽음을, 미루는 언니의 죽음과 그 죽음을 통해 알게된 의문투성이인 사람들의 죽음을, 명서는 미루언니인 미래의 죽음과 미루의 죽음을, 단이는 윤에 대한 짝사랑과 시대의 어두움과 그 속에서의 자신의 방황을...견.뎌.내.야.한.다.

끊임없이 걷고, 쓰고를 반복하며...그들은 그렇게 견뎌간다.
혼자 견디기 힘든 순간에 그들은 함께였고, 서로의 손을 어루만져주며 다시 견뎌낸다. 견디지 못한 이들이 떠나갈 때, 자신들은 무얼 하고 있었나 분노하며 그 상실을 또 견뎌낸다. 

삶의 무게...크리스토프의 이야기를 통해 나온다.
산다는 것 자체가 무거운 삶의 짐을 지고 가야 하는 일이라고.
이미 강을 건너기로 한 이상, 멈출 수도 없고, 되돌아갈 수도 없는 일 그저 묵묵히 물살을 가르고 건너야만 한다고.

 
[우리는 지금 깊고 어두운 강을 건너는 중입니다. 엄청난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강물이 목 위로 차올라 가라앉아버리고 싶을 때마다 생가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짊어진 무게만큼 그만한 무게의 세계를 우리가 발로 딛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불행히도 지상의 인간은 가볍게 이 세상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비상하듯 살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매순간 우리에게 힘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합니다.산다는 것은 無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中 291쪽 ]

 

이십대의 마지막에 서 있는 나...

나 역시 견뎌야만 했던 무수한 순간들이 있었다. 잊으려 할수록 또렷해지는 기억을 밀쳐내려고.. 고개를 저어도, 소리를 쳐봐도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다. 고민했고, 방황했고, 아파했으며 너무 아파서 신음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순간들.

견디고 있었다. 그저 말없이 견디고... 생각나면 생각나는대로  잊혀지면 잊혀지는 대로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실은 할 수 있는 일이 내겐 없기도 했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들도 있었다.

나도 명서처럼 그랬다. 누가 말해주었으면....하고 애타게 바랬었다. 
 

괜찮다거나, 잊혀질 거다 아니면 다들 그렇게 견디며 살고 있다 라거나...아득해 지는 순간 아니 시간이 언.젠.가.는 올 거라고 말해주었으면 했다. 

[누군가 약속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말이야. 믿을 만한 약속된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쫓기고 고독하고 불안하고 이렇게 두려움 속에서 보내고 나면 다른 것들이 온다고 말이야. 이러느니 차라리 인생의 끝에 청춘이 시작된다면 꿈에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中 107쪽 ]

 
돌이켜보니 청춘의 시간만큼 아름다웠던 시간은 없을 듯 싶다.
뭐 하나 바르지 않아도 뽀얗던 곱디 곱던 피부며, 며칠 밤을 세도 끄덕없을 체력이며,무엇보다 계산할 줄 몰라 상대에게 순수하게 온마음을  줄 수 있었던 시간들.
아름다웠던만큼 고민과 방황도 컸던 시간들,   
상처가 감당하기 힘겨워 점점 내 안으로 갇혀가던 시간들. 눈이 부시던 봄날과 같던 사랑의 순간이 한순간에 무릎이 꺽이는 실연의 상처로 다가오던 시간들.
순수했기에 마음을 다 주었고, 마음을 다 주었기에 찬란하게 사랑했고, 너무나 찬란했기에 그만큼 상처도 컸으며, 상처가 컸기에 가슴을 도려내는 듯 아파했다. 그만큼 아파했기에 이제는 추억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견뎌냈던 시간들...나는 견뎌내는 동안 내 안에서 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윤과 명서가 하염없이 걸었듯이, 끊임없이 글을 썼듯이...
나도 나를 살펴보았다. 내 자신이 참 낯설단 생각을 했다. 그렇게 들여다보니...내가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이러는지, 내가 어떻게 내 자신이 되었는지,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왜 아파하는지...
매번 나를 살펴보다보니 내 안의 상처도 아물어 가는 듯 싶다. 
 

아직도 청춘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청춘을 지나쳐 오고 있나보다.
충분히 아프고 방황하고 고민해야만 견딜 수 있다. 아프다는 건 살아있다는 또다른 말이 아닐까?

작가는 그런 말이 하고 싶었나보다. 언.젠.가.는 그 상처가 아물테니까 너무 두려워 말라고...

이 책을 덮고 노란 책 표지를 더듬어 보았다. 잘 살펴보니 가로로 아주 작고 흰 글씨로 문장들이 적혀 있다. 

 
내가 그쪽으로 갈까?

너를 좋아해 그때의 그 기쁨만큼 그때의 그 슬픔만큼 절망만큼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나를 무작정 걷게 하던 그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쓰라린 마음들은

우리는 숨을 쉬고 있다

 
...내 마음에도 하얗게 새겨진다. 그녀의 문장들...

  

소설 끝에 나오는 그녀의 당부...

 
함께 있을 때면 매순간 오.늘.을.잊.지.말.자. 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갖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언제든 내.가.그.쪽.으.로.갈.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언제 어느 시간에라도 서로를 향해 달려가던 윤과 명서가 떠오른다.
새벽에 술 취해 어디에 쓰러져 있을지도 모르는 명서를 찾아  헤매는 윤이 눈 앞에 가물거린다.
서로의 상처를 위해 그들은 '달려가는 일'을 할 수 밖에는 없었겠지.
상처받은 이에게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사람. 그래... 그런 사람이 돼야지. 

 
혼란스럽고 아득하기만 하던 청춘의 시간들이여... 

눈이 부셔서 바로 볼 수 없었던 시간들이여...안. 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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