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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 벌레 이야기
이청준 지음, 최규석 그림 / 열림원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평화로운 마음으로 떠나가며, 그 자비가 희생자와 가족에게도 베풀어지기를 빌겠다.”
어린이 유괴살해사건의 범인이 사형 집행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란다. 참 기막히다.
이청준이란 작가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아 이 소설을 썼다고 서문에서 말한다.
사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벌레 이야기” 서문을 보면 다 나온다.
소설의 중심은 유괴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의 엄마의 심리상태다. 결국 주인공은 아이의 엄마 이야기다. 따라서 벌레는 이 엄마다.
무참히 짓밟히고 상처 받았지만, 자신의 상처를 용서할 수 있는 권리조차도 허락되지 않은 벌레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인 아이의 엄마 이야기.
줄거리는 단순하다. 아이가 유괴되어 사체로 발견되고, 범인이 잡혀 사형을 당한다. 아이의 엄마는 처음엔 분노하다가, 교회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고, 그 범인을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그를 찾는다. 그러나 그에겐 아이 엄마의 용서가 필요 없다. 그는 이미 자비하신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새 삶을 얻어 마음의 평안을 찾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용서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이 엄마는 다시 한 번 절망에 빠지게 된다. 이젠 분노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어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나님은 어떤 죄를 지은 자라도 용서하시고, 품어주신다. 그래서 우린 그 앞에 나가 고개를 숙이고 회개를 하고 그 자비하심에 감사한다. 그게 나라면... 그 인자하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감사하다. 하지만 내게 상처 준 사람도, 아무 이유나 대가 없이 그저 하나님을 믿고, 그 앞에 나가 회계하는 것으로 용서하신다면 나는 좀 억울할 것 같다. 내 상처가 좀 쓰릴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아픈 내 맘, 내 상처를 봐서라도... 나중에 용서해주시면 좋을텐데 할 것 같다.
내 자식을 죽인 자도 용서하셨다면 어떨까? 나보다도 먼저 용서하셨다면... 그럼 분명 배신감을 느끼겠지. 화가 나겠지. 내가 지은 죄의 용서를 구하면서도 난 그에게 분노하겠지.
서문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어떤 말을 덧붙여도 이 말을 넘어설 수 없단 생각이 든다.
“사람은 자기 존엄성이 지켜질 때 한 우주의 주인일 수 있고 우주 자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주체적 존엄성이 짓밟힐 때 한갓 벌레처럼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그 절대자 앞에 무엇을 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는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목사님의 기도 중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지금 우리는 슬퍼하며 눈물짓고 있지만, 이 죽음에는 하나님의 더 큰 뜻이 숨겨져 있다고,
우리의 머리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이젠 할머니를 좋게 보내드리자는 기도였다.
나는 그 순간 그렇게 기도했던 것 같다.
“하나님! 저는 솔직히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이것 또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이 순간이 우리의 무엇을 위한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잘해드리지 못한 안타까움과 후회스러움만 가득한데... 이런 지난 일들에 대한 후회를 위한 것은 분명 아닐텐데... 할머니를 천국으로 모셔가는 그런 뜻인가요? 저는 하나님의 뜻을 알 길이 없으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 뜻이 궁금했지만... 나는 더는 생각지 않았다. 주님의 뜻이기에..어차피 내가 더 생각해도 닿을 수 없다고 여겼던 때문이리라.
[밀양]을 봤다. 원작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주제는 그대로였다.
포스터를 보니.. “사랑 이야기”라고 쓰여있다. 혹여나 러브스토리로 착각할까 걱정스럽다. 멜로물을 기대한 관객에겐 얼마나 당황스런 작품일까...실제로 영화의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갈 때 “허~~”하는 마지막 탄성과 황당함을 호소하는 웅성거림을 느꼈다.
신 앞에 하찮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진지한 작품을 혹여 오해하고 비난할까 안타깝다.
소설과 다른 점은... 엔딩장면이다.
소설에서는 아이 엄마가 자살을 선택하는데... 영화에서는 다시 꾸역꾸역 살아간다.
나는 사실 그 점이 맘에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게 인간의 특징이고, 멋이 아닐까?
아파서 가슴을 쥐어뜯고, 꺼이꺼이 울다가, 하늘을 바라보며 당신이 맘에 안 든다고! 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짓들을 골라가며 하지만, 결국엔 실패하고, 신의 뜻대로 제자리를 찾고 말아, 화가 나서... 그를 이길 수 없는 데 화가 나서... 여보란 듯이 손목을 그어보지만 이내 뛰쳐나가 아무나 붙잡고 살려달라고 눈물을 질질 짠다.
나약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서 하늘에선 콧방귀를 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게... 맘에 든다. 그건 지지 않았다는 뜻이고, 나약하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다시 한 번 붙어볼 수 있단 가능성이기도 하고.
소설에서는 아프기만 했는데, 영화에서는 희망이 엿보였다. 그게 바로 태양의 비밀(밀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