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히피 로드 - 800일간의 남미 방랑
노동효 지음 / 나무발전소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이제야 잘 쓴 여행기를 고르는 기준이 생긴 것 같다. 경험담이 많이 들어갔느냐, 아니면 가긴 갔으나 책으로 공부한 내용으로 꽉 차 있느냐, 를 기준으로 삼고 싶다. 이렇게 가를 때 경험담 위주로 쓴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게 내가 지금까지 여행기를 읽고 내린 결론이다. 한비야, 김남희, 이지상, 박훈규, 태원준,. . 이런 분들이 우선 떠오른다. 류시화는 이들과는 약간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분이다. 그리고 요즘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작가로는 노동효가 있다. 이건 순전히 내 시야에서 하는 얘기니 시비따위는 건너뛰시길......노동효의 <남미 히피 로드>를 읽고 들었던 생각이다.

 

 

사람들은 내가 여행을 좋아할 거라고 여긴다. 그러나 내가 진정 사랑하는 건 언제나 '다른 곳에서의 삶'이었다. 그리고 여행을 하든, 관광을 하든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은 늘 존재하지만 '다른 곳에서의 삶'이 늘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중략) 내게 여행이란 단 한 번의 인생에서 여러 겹의 생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154쪽

 

 

엄격하게 따진다면 대부분의 짧은 여행은 '다른 곳으로 가는 길'에 해당된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여러 겹의 생을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흔한 방법은....결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체험하는데 가족만한 게 없지 않을까. 그것도 인생이 다하는 날까지. 인생 자체가 여행이다. 그러니 여행에 대한 정의는 십인십색이다.

 

내가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되도록 값싼 숙소를 찾는 이유가 여행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대도시의 호텔에서 묵기도 했고, 북미인이나 유럽인들이 모이는 호스텔에서도 묵었지만 늘 최고의 숙박업소는 그 도시나 마을에서 가장 값싼 여인숙이었다. 그곳엔 땀 냄새 나는 사람들과 진짜 파티가 있었으니까. 가진 게 적을수록 사람들은 경계심이 적었고, 덕분에 마음 따뜻한 벗들을 사귈 수 있었다.   -169

 

 

공감하지만 소심한 여행자들에겐 언감생심. 동행자 없이 혼자하는 여행이라면 해볼만할 터.

 

 

"당신은 뭔가를 살 때 돈을 주고 사는 것 같지만, 사실 당신이 지불하는 것은 그 돈을 벌기 위해 쓴 당신의 인생이다." . . .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     -172

 

 

우루과이 여행기가 특히 읽을 만했다.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없지만.

 

지금껏 수많은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인간관계에서 위아래를 구분 짓고 윗사람(?)에게 높임말을 사용하는 나라일수록 약자(연소자, 여성, 아동,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심했다. '예의'를 강조하는 나라일수록 어린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는 등 약자를 착취하는 광경을 숱하게 볼 수 있었다. 약자에 대한 착취가 경제 수준과 관련 있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가령 한국의 경우, 세계경제대국 20위권에 든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약자에 대한 착취가 일상화되어 있지 않은가? 그 원인을 '일상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아래, 위를 구분 짓는 관습과 언어'에서 찾는다면 억지일까?  -215

 

 

억지 아닙니다.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시댁 식구와 친정 식구에 대한 호칭은 충분히 왈가왈부할 만하지 않은가. 결혼 후 윗동서가 아랫동서한테 반말하는 것이 이상해서 나는 윗동서한테 반말을 들을지언정 아랫동서한테는 말을 놓지 못했다. 하여튼 결혼은 여러 겹의 생을 체험하는 일종의....여행 같은 것. 그러니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다른 곳으로 가는 길'로 가는 것만 해도 해방이 될 수 있다.

 

 

내 인생의 원칙- 로컬 식당을 이용하고, 남아메리카 출신 히피로 가득한 숙소에서 지내고, 현지인들의 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일반버스를 타는 것 - 을 고수할 수가 없었다.  -330

 

 

남미를 여행한다면 이 원칙을 고민해보고 싶다. 대부분 남미는 위험하다고 말하지만, 가봤어?

 

 

캄피스코Campismo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쿠바 여행이 어떻게 끝났을까? ....알아보니 쿠바인의 여가생활을 위해 설립된 국영 휴양지로 쿠바 전역에 결쳐 80여 개소가 있었다....쿠바인에게만 제공하던 캄피스모를 외국인에게 허용한 건 최근의 일이었고, 그래서 아무도 다녀온 사람이 없었다.   -332

 

 

캄피스코를 발견하기 전까지 쿠바 여행이 그저그런 관광지에 불과했다는 말인데, 좀 의아했다. 아니 다행이었다. 쿠바, 하면 대단한 여행지일 줄 알았는데 미리 귀띔해줘서.

 

 

나는 평범하다. 낯도 많이 가리고 용감하지도 않다. 그러나 내 안에는 위험이 닥치면 상황을 받아들인 후, 그것을 즐기려는 무엇이 있다. '삶이란, 태어난 그 자체로 손해 볼 게 전혀 없다'는 생각에 이른 다음부터였을 것이다. 행복, 불행, 기쁨, 슬픔, 쾌감, 아픔 등 우리가 삶에서 겪는 모든 상황과 감정은 살아 있기에 체험할 수 있는 게 아닌다. 그런 이유로 나는 삶, 그 자체를 찬양한다.   -365

 

 

 

한 대륙에서 2~3년씩 세월을 보내는 여행가 노동효가 오랜 여행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 '삶이란, 태어난 그 자체로 손해 볼 게 전혀 없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되도록 여행하는 사람들이 쓴 책은 직접 구입하자는 게 나의 작은 다짐인데 이것도 참으로 지키기 어렵다. 책 값 몇 푼 든다고 손해 볼 건 전혀 없는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12-16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7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은 술을 부르는 옛 시가 유독 눈에 띈다.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야트>가 늘 내 몸 속에 흐르고 있었다, 는 과장이고 늘 궁금했었다.  제대로 된 책에 대한 열망이 있었는데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새 책을 읽기 전에 기존에 번역된 책을 보면, 피츠제럴드의 영역본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그럭저럭 갈증을 달랠 수 있었다. 몇 편 읽어보면,

 

 

 

 

 

 

 

 

 

 

 

 

 

 

 

 

30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나?

부질없는 것일랑 묻지 말게나

한 잔, 또 한 잔, 금단의 술

덧없는 인생을 잊게 해주리

 

54

이런 노력, 저런 논쟁, 시간을 낭비 말라

부질없는 추구야 허망하기 짝이 없다

쓴맛 나는 열매 먹고 슬픔 참느니

잘 익은 포도주로 즐거워하라

 

59

포도주의 절대 논리 ----- 그 앞에서

그 많은 세상 교파 무안당하네

포도주는 최고의 연금술사, 잠깐 사이

납덩이 인생을 황금으로 바꾸누나 

 

 

우선'로버이(루바이)'의 뜻. 4행시라고 불리는 로버이는 페르시아 고전문학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시형으로 1행, 2행, 4행은 각운이 같고, 3행의 각운은 비교적 자유로운 시 형식으로 로버이여트는 로버이의 복수형이라고 한다.

 

 

다음은 새로 나온 책.

 

 

 

 

 

 

 

 

 

 

 

 

 

 

 

 

 

오마르 카이얌 → 오마르 하이염

루바이야트 → 로버이여트

 

명칭이 이렇게 바뀐 건 페르시아 원전을 번역하면서 원음에 가깝게 쓴 것이라고 하는데, 입에 붙으려면 시간이 걸릴 듯하다. 워낙 '오마르 카이얌, 루바이야트'가 입에 배었다.

 

 

42

내게 말들 하지, 술 취한 자는 지옥 간다고

허나 그릇된 말이니 마음 둘 필요 없지

사랑하는 자, 술 마시는 자가 지옥 간다면

내일은 빈 손바닥 같은 천국 보게 될 것이리라

 

64

우리가 없더라도 세상은 존재할 것이며

우리는 이름도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네

이전에 우리 없었어도 아무 이상 없었듯

이후에 우리 없더라도 그러할 것이니라

 

93

나 마음에서 학문을 멀리한 적 결코 없었네

명명백백 밝혀지지 않은 비밀 많지 않았네

나 일흔두 해 동안 밤낮으로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았음이 명확해졌네

 

116

하이염이여, 술에 취했다면 즐기거라

달처럼 고운 이와 함께 있다면 즐기거라

세상사 그 끝은 무無인 것이니라

너 지금 존재하지만 없는 것과 같으니, 즐기거라

 

 

대강 페이지를 넘기며 몇 편 읽어보는데도 가슴이 설레인다. 허무주의 같기도 하고, 권주가 같기도 한 시들이 눈에 쏙쏙 박힌다. 세상 다 산 것 같은 노인의 주사 같은 시에서는 시큼한 술 냄새도 나는 듯하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 시를 쓴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1048년 생.20대 중반에 이스파한에서 천문학과 수학을 연구. 이후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달력의 모체가 되는 잘릴리력을 완성하고 유클리드 기하학 연구와 2차 방정식의 기하학적, 대수학적 해법, 3차 방정식의 기하학적 해법 등을 발표하여 당대 최고의 학자로서 명성을 쌓음....1131년에 사망.

 

이런 양반이 권주가를 즐겨 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술 얘기가 나왔으니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도 한번 읽고가야겠다. 

 

 

 

 

한 잔 먹새 그려 또 한 잔 먹새 그려. 꽃을 꺾어 술잔 수를 세면서 한없이 먹세 그려.

이 몸이 죽은 후에는 지게 위에 거적을 덮어 꽁꽁 졸라 묶여 (무덤으로) 실려 가거나, 곱게 꾸민 상여를 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울며 따라가거나, 억새풀, 속새풀, 떡갈나무, 버드나무가 우거진 숲에 한 번 가기만 하면 누런 해와 흰 달이 뜨고, 가랑비와 함박눈이 내리며, 솔 솔 바람이 불 때 그 누가 한 잔 먹자고 하겠는가?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가 놀러 와 휘파람을 불 때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번역 출처:http://blog.daum.net/hogeol44/5045 )

 

 

대학 때 부전공으로 들었던 국문과의 <가사문학> 시간에 배웠는데 다른 건 다 잊고 유독 이 시만 머리에 남았다. 나도 한때는 술에 쩔기도 했다는 것.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12-10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1 0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보통 이렇게 소개된다.

'미국 리얼리즘 미술을 대표. 현대 미국인의 고독을 생생히 표현한 것으로 유명.'

 

그의 그림을 살펴보면 '고독'이란 단어가 썩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주헌은 다음 책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그 자신이 고독을 즐기는 심성이었던 것도 현대 미국인의 고독을 그리는데 도움이 되었을 듯싶다. 그는 파리에 그림 공부를 하러 갔을 때도 학교에 적을 두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밤이면 카페에 앉아 물끄러미 세상을 바라보기만 했다고 한다. 남다른 '고독 취향'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 P.80

 

 

 

그러나 미국인의 고독을 그렸던 에드워드 호퍼 뒤에는 더 고독한 사람이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에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호퍼의 실제 삶은 그림과 달랐다. 그가 적막한 공간 속에서 고립된 인물의 소외감을 주로 그려냈던 것과 달리 그 자신은 놀랍도록 평온하고 정돈된 생활을 했다. 그는 초기 무명생활을 제외하고는 평생 삶에서 두드러진 굴곡이나 심리적인 갈등을 겪은 적이 없다. 거주지조차 옮기지 않았다. 그는 죽을 때까지 50년 동안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의 워싱턴 스퀘어 노스 3번 꼭대기 층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살았다.

이렇듯 작품에만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안정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아내 조의 헌신적인 내조와 희생 덕분이다.       -p.65

 

 

아내인 조 호퍼 역시 화가였는데 남편인 에드워드 호퍼가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고통스러워할 때는 그녀가 먼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호퍼가 다시 그릴 수 있도록 격려했다고 한다. 또한 호퍼는 오직 한 여인을 모델로 썼는데 바로 그의 아내 조였다고 한다.

 

그의 그림 속에는 고독이 그득하지만 그보다 더 고독한 사람이 바로 그의 아내 조였다. 조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자.

 

내가 아주 행복하고 생기가 돌 때면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호퍼는 먹어야 하지. 내가 어쩌다 그림 그리는 동안에는 더더욱 그래. 그러면 나는 화가 나지. 호퍼가 그림 그리는 동안에는 분위기를 유지해야 돼. 영원히 방해받지도 않고 그런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말이지. 그가 그림에 대한 영감이 떠오를 때면 나는 결코 그의 신경을 건드리거나 괴롭혀서는 안 되고 인내심을 가지고 식사를 제공해야 하지. .......한 때 나는 스스로 예술가라 생각하고 다른 길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나 자신이 부엌데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어디에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아.     -p.66

 

한 남자의 성공 뒤에 가려진 여자의 슬픔과 고독이 진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호퍼는 조가 '창작하고픈 충동을 갖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집요하게 견제하기까지 했다고 하니 호퍼의 '고독'은 조의 고독을 자양분삼아 유지되었던 셈이다. 로댕과 까미유 클로델이 잠시 떠오르기도 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검색하면 많이 나오지만 조 호퍼의 그림은 보기 힘들 터. 이 자화상마저 '분실 또는 파손됨'이라니....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0-02-18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실 또는 파손

이런 설명문구는 처음 봤어요...

분실과 파손의 간극이 너무도 큰데 or라고 병렬해놨네요?

nama 2020-02-19 09:27   좋아요 1 | URL
분실이든 파손이든 참 황당하고 무책임한 말이지요. 유명 화가의 아내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상징하는 것 같아 씁쓸하네요.
 

 

 

 

 

 

 

 

 

 

 

 

 

 

 

도서관 신간코너에 있는 책인데 갈 때마다 늘 그 자리에 꽂혀있기에 내가 데리고 왔다. 이 책은 그러니까 아는 사람만 아는 책이다. 그럴 수밖에.

 

내가 대학 다닐 때는 졸업하려면 소위 <졸업논문>이라는 걸 써야 했다. 원고지 80장 정도의 분량인데 지금으로 치면 웬만한 리포트에 불과할 양일 것이나 그 당시의 수준에서는 꽤나 가슴 벅찬 과제였다. 3학년 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해서 4학년 말까지는 완성본을 제출해야 했다.

 

외국문학. 어학도 안 되는 상태에서 문학이라니. 말도 안 되는 과를 꾸역꾸역 다니는 건 고역이었다. 어쨌거나 그래도 졸업을 해야 그 말도 안 되는 과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하라는 건 해야했다. 고심과 고민 끝에 고른 소설이 바로 위의 책이었다. 수업시간에 배운 적도 없는 소설이고 들어보지도 못한 작가였는데, 내가 어떻게 이 작가를 선택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상하고 특이한 것에 끌리는 성향이 없지 않지만 그보다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서 마치 내 모습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어딘가 뒤틀려있다는 자각, 외국문학을 공부하면서 발견한 내 모습이다. 외국어는 내 모국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주눅들었던 시절, 이 사실이 대학 시절 내내 나를 우울하게 했다.

 

 

 

 

 

그당시 나의 변변찮은 어학 실력으로 이 원서를 다 읽는다는 건 언감생심. 문고판 번역본을 옆에 놓고 소설 속의 단편을 더듬더듬 읽었을 뿐이다. 아마 어느 석사학위 논문에 언급된 부분을 참고삼아 원고지 80장을 채워나갔을 것이다. 제딴에는 참신한 생각을 작품에서 추출했노라고 우쭐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가소로울 뿐이지만.

 

셔우드 앤더슨(1876~1941). 미국 출생. '성공적인 결혼과 사업을 이루며 평탄한 삶을 살던 중 1912년 서른여섯 살에 사무실을 나간 뒤 행방불명. 나흘 뒤 기억을 잃은 채로 발견, 신경쇠약 치료후 그길로 사업을 정리하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1919년 위의 책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로 인정 받기 시작. 존 스타인벡(1902~1968),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 등 동시대의 작가들은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해 '영문학의 바이블''영어로 글을 쓰는 가장 훌륭하고 섬세한 작가'라고 평했으며 지금도 20세기 미국 문학 강의 교재로 가장 많이 쓰이는 작품이 바로 이 책이다.(책 날개에 소개된 부분)

 

어학 수준도 형편없었던 풋내기 시절의 내가 이 작품을 알아본 건 거의 '촉'의 수준으로 봐야겠다. 원서도 제대로 읽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제 모든 영어에서 해방된 눈으로 다시 읽어보니 과연 위의 찬사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이것도 자신 없는 말이지만.

 

... My own vocabulary was small. I had on Latin and no Greek, no French. When I wanted to arrive at anything like delicate shades of meaning in my writing I had to do it with my own very limited vocabulary.

  And even my reading had not much increased my vocabulary. Oh, how many words I knew in books that I could not pronounce.

  But should I use in my writing words that were not a part of my own everyday speech, of my own everyday thought?

  I did not think so.       -  p. 13

 

 

쉬운 단어와 구어체로 글을 분명하고 군더더기 없이 쓰기. 글쓰기의 모범이 될 만하다. 지금도 강의 교재로 쓰이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들어가본다.

 

For several weeks the tall dark girl and the doctor were together almost every day. The condition that had brought her to him passed in an illness, but she was like one who has discovered the sweetness of the twisted apples, she could not get her mind fixed again upon the round perfect fruit that is eaten in the city apartments.

 

 몇 주 동안 키 크고 어두운 피부의 여자와 의사는 거의 매일 함께 있었다. 그녀로 하여금 의사를 찾아가게 했던 그 상황은 병의 단계로 보자면 고쳐졌지만, 그녀는 비틀린 사과의 단맛을 알게 된 사람과 같았고 이에 도시의 아파트에서 소비되는 완벽히 둥근 과일에는 더 이상 마음이 가지 않았다.

 

 

글의 섬세한 면이 매력이지만 책 전체로 보면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다. 끝까지 읽을까 말까 계속 망설이게 되는 책이다.

 

 

 

하여튼 이 작품에 대한 평으로 졸업논문을 제출했다. 제출했다는 뿌듯함은 있었지만 과연 이 과제물을 교수가 읽어는봤을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과제물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 잘했다...등 한마디 언급도 없었으니까.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이 글 제목에 나오는 내 친구 Y양.('양'자를 붙인 건 성last name이 양 씨이기도 해서). 대학 졸업 후 얼마만에 만났을 때 내 친구 Y양은 내게 이런 사실을 고백(자백)했다. 졸업논문 쓰기가 너무 어려워서 지도교수를 찾아뵙고 도저히 못 쓰겠노라고 했더니 '알았다' 하고 끝냈다고. 자기는 논문도 쓰지 않고 졸업했다고.

1학년 때 체육시간에는 수영을 배웠는데 그때도 물이 무서워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씀드려서 자기는 물 속에 들어가지 않았노라며, 그래도 점수는 나왔다는 얘기도 했다. 뭣이라고?

 

 

대학 졸업 후 Y양을 여러 번 만났다. 한번은 수원 팔달문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갔다. 8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밝은 분위기에 세련된 이 카페에는 떡하니 피아노 한 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내 친구 Y양이 카운터로 가서 몇 마디 물어보더니 이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순간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실내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내 친구 Y양의 피아노 솜씨에 탄복하고 말았다. 내 주변에 이렇게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물이 무서워서 수영장에 들어가지도 않고, 졸업논문이 무서워 교수를 찾아가 통사정했던 그녀에게는 다른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내 친구 Y양이 나를 감동시켰던 곡은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미국작가 셔우드 앤더슨과 내 친구 Y양이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마는... 내 친구 Y양이 꼭 이 연작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 같아서다.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12-03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03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12-04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셔우드 앤더슨이라는 이름을 분명 예전에 어디선가 접한 적이 있는데 어디서였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그 사람의 소설을 제가 읽었을리는 없고 그럼에도 이름은 눈에 익은것을 보니 아마 대학때 교양영어책에 이 사람의 글이 실렸던 정도일까? 궁금해져요.

nama 2019-12-04 20:36   좋아요 0 | URL
셔우드 앤더슨....꼭 영화배우 이름 같지 않나요? ㅎ
 

흥미가 당기는 작가편부터 읽다가 끝까지 읽었다. 재미없으면 중간에 덮으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전쟁과 평화>, <레 미제라블>은 읽어야겠다. 세상을 움직이는 1%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