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로 몰려다니는 여행을 하고와서 기록하지 말아야지 싶었는데 그래도 뭔가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쳐지나가는 여행만큼이나 기억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도 아쉽고 아깝다. 아깝다는 생각에 조금 정리해본다.

 

잘츠부르크를 다녀왔다. 다녀왔다? 내 스스로 찾아가서 길을 묻고 거리를 헤맸다면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4~5시간 버스로 이동한 후 1~2시간 잠깐 가본 것을 가지고 '다녀왔다'라고 말하기가 좀 그렇다. 잠깐 눈치만 살피고 왔다, 가 더 어울리겠다. 하여튼.

 

 

 

잘츠부르크 야경.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자물쇠가 좀 징글징글하다. 다리에 하중을 가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현지 가이드를 따라다니다 의도치 않게 모차르트와 마주쳤다. 아, 그렇지. 잘츠부르크가 음악 축제로 유명한 곳이었지. 예습없이 수업에 임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느닷없이 맞닥뜨리면 곤란한데... 생각할 여유도 없이 가이드 말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위 사진은 모차르트 생가. 5층 불켜진 방 밑에 있는 방이 모차르트 가족이 살던 곳이란다.

 

 

 

출입문 옆에 붙어있는 안내판.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는데 들어가지 못했다.

 

 

 

 

 모차르트가 드나들었던 계단이라 그런지 남달라보인다.

 

 

 

남이 떠먹여주는 밥을 먹는 것처럼 잠깐 눈으로 보고, 사진 두어 장 찍고나면 그것으로 끝. 미처 숨돌릴 틈도 없이 끝나버린다. 자세한 것은 돌아와서야 알게 된다.

 

 

 

 

 

 

 

 

 

 

 

 

 

 

 

이 책에 인용된 글을 다시 인용한다.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 9번가 모차르트의 생가를 개조한 박물관 1층 벽면에 있다는 글이다.

 

모차르트는 평생 17차례 여행했다. 여행 기간은 3,720일로, 환산하면 10년 2개월 2일이다. 이 기간은 모차르트 일생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한다. 모차르트는 6세 때인 1762년 뮌헨으로 처음 여행을 떠났고, 1791년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을 초연하기 위해 프라하로 마지막 여행을 갔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3개월 전이었다.    -64쪽

 

 

일생의 3분의 1을 여행으로 보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삶이 단순하지 않았겠구나 싶었다.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의 철제 간판들. 문맹이 많았던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간판이라고 한다.  위는 줄자와 가위가 있으니 양복점, 아래는 거리 분위기에 맞게 겸손해진 맥도날드 간판으로 세상에서 제일 작은 M이라나....

 

 

 

 

 

키가 작아서, 그림자나마 잔뜩 키워 키에 대한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이 양반은 누구일까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등을 이끌면서 평생 1,200여 장의 음반을 남겼으며 총 음반 판매고도 2억 장에 이르렀다'는 분.....바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실제로 이 분의 키가 173cm쯤 된다고 하는데,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그런데 왜 여기서 키가 중요하지?

 

 

 

모차르트에 대한 나의 관심은 딱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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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20-01-2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츠부르크에서 고작 몇 시간밖에 머물지 못하셨다니 너무 아쉬웠겠습니다.^^

모차르트 생가, 게트라이데 거리 말고도, 호엔 잘츠부르크 성, 카라얀 생가, 미라벨 정원 등등 볼 게 참 많은 도시인데 말이지요...

잘츠부르그 풍경을 담은 (제가 직접 만든) 유튜브 영상 하나 링크해 드립니다.^^
https://youtu.be/5o72oPoKCt8

nama 2020-01-30 12:37   좋아요 1 | URL
어떤 곳을 제대로 보려면 최소 3일은 묵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성에 안 차지만 다음을 기약해야지요.
잘 보겠습니다.

hnine 2020-01-29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음 여행 장소로 눈독들이고 있는 나라가 오스트리아인데 어쩜.

nama 2020-01-30 12:39   좋아요 0 | URL
저도 오래 전부터 오스트리아 노래를 불렀는데 고작 잘츠부르크 몇 시간, 비엔나 몇 시간에 불과한 여행을 하고 왔지요. 다시 간다면 최소 3일 씩은 묵고 싶어요.

얄라알라 2020-01-30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물쇠 사진이 너무나 강렬해서 계속 다시 스크롤을....사랑의 맹새와 자물쇠 우와 정말 강렬해요

nama 2020-01-30 12:40   좋아요 0 | URL
잘츠부르크가 낭만적인 도시라서 사랑의 맹세도 더 많은가봐요.^^
 

 

우연찮게 두 남자의 인생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하나는 책으로, 또 하나는 영화로. 바로 미국의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와 팝 가수 에릭 크랩튼이다.

 

 

 

 

 

 

 

 

 

 

 

 

 

 

 

 

(출처: daum)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랄까. 뭐 그런 게 눈에 띄었다.

에릭 크랩튼 .... 1945년 생(생존)

레이먼드 카버.....1938년 생(1988년 사망)

 

동시대를 살았고, 둘 다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고,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 못하기도 했고, 생활고에 찌들어 먹고 살기 바빴거나(레이먼드 카버) 외조부모를 부모로 알고 성장하는(에릭 크랩튼) 흔치 않은 인생사를 겪기도 했으나....... 이 두 사람을 끝까지 지켜준 것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이 끝까지 버리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레이먼드 카버에게는 소설이 있었고, 에릭 크랩튼에게는 음악이 있었다. 소설이나 음악은 그들을 세상과 이어주는 끈이자 삶의 동력이 되었으며 그들을 비범한 존재로 우뚝 설 수 있게 해주었다.

 

 

세상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끈에 대해 생각해보는 책과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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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7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8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홍규. 이 분 칼럼을 신문에서 읽을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살아있는 정신이야, 하고. 그래서 읽게 된 책이다.

 

고독에 대한 통찰을 읽어보는데 loneliness 와 solitude를 이렇게 구분했다.

 

loneliness는 비자발적이고, 공간적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 자신이 살아가야할 세상에서 속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온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solitude는 다릅니다. (중략) 모든 것을 불신하고 깨뜨리며 오직 자신을 신뢰하는 적극적이고 강인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186 

 

물론 이 분이 강조하는 건 solitude이다. 주장은 계속 이어진다.

 

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의미에서의 고독이 우리 사회에도 훨씬 더 주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어요. 사회의 쏠림이나 대세, 흐름에서 벗어나서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과 입장과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자세, 이것이 제가 집중하는 '고독'의 의미입니다. 바로 그런 고독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참으로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187

 

결국, 고독하다는 건 주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개인성의 확보와 다르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개인성은 사회나 국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지요. 혼자서 사고하고, 혼자서 행동하고,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힘을 갖는 게 고독입니다. 그런데 사회와 국가는 그런 개인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기본적으로 흡수하고 동화하려는 경향을 띠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저는 고독을 기본적으로 저항이라고 생각해요. 저항을 위해서 고독하는 것이지, 저항의 의미없이 그냥 고립된 삶을 산다는 것은 다소 무의미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95

 

 

읽다보면 '그래, 맞는 말씀이야.'하고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지당한 말씀이라 그저 밑줄만 긋는다.

 

 

그런 체면 문화는 한국인이라면 다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 체면 차림에서 과시욕이 생겨난다고 봐요.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시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나친 자기 존대랄까요. 자기 스스로 자기를 높이고 내세우는 그런 문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217

 

 

이 책에서 딱 한 문장을 고른다면 바로 이 문장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시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무슨 일을 하다가도, 무슨 생각을 하다가도 나는 이 '시시하다'라는 표현에 사로잡히곤 했다. 누군가에게 섭섭한 생각을 하다가도 이 말을 떠올렸고, 내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게 될 때도 이 말을 떠올렸다. '내가 시시하구나.'하고. 딱히 내 자존심이나 자긍심 따위를 거론할 필요가 없을 때에도 여지없이 이 말이 떠오르곤 했다. 일거수일투족 마저 심히 시시해졌다고나 할까. 모처럼 겸손하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loneliness로 보내는 명절 연휴이다보니 그 시시함의 깊이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시시함의 바닥을 치고 진정한 solitude 를 향해야겠다. 더 시시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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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먹는엔지니어 2020-01-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참 잘 쓰시는것 같아요. 제목이 눈에 들어와 글을 읽었는데 다시책으로 님의 필력에 반하고 갑니다. ^^

nama 2020-01-28 11:39   좋아요 0 | URL
혹 박홍규 교수님의 글을 제 글로 오독하신 건 아니지요? 필력이라니....언감생심입니다.^^
 



2020년은 여행으로 시작합니다. 무릎 시려오면 책이랑 더 친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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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별 것 아니지만, 모친의 태중에 내가 잉태되어 별 탈 없이 출산된 날이었다.   -434쪽

 

 

어제는 생일이었다. 여덟 글자면 될 말을 서른두 개의 글자를 써서 표현했다. 일부러 웃기려고 한 것도 아닌데 이런 표현을 읽다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무거웠던 머리가 가벼워지면서 긴장감도 스르르 소멸되는 것 같은 기분에 젖는다. 재밌다는 말을 이렇게 하게 된다. 평소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 키득거리며 끝까지 읽게 되었다는, 그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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