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이 분 칼럼을 신문에서 읽을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살아있는 정신이야, 하고. 그래서 읽게 된 책이다.

 

고독에 대한 통찰을 읽어보는데 loneliness 와 solitude를 이렇게 구분했다.

 

loneliness는 비자발적이고, 공간적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 자신이 살아가야할 세상에서 속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온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solitude는 다릅니다. (중략) 모든 것을 불신하고 깨뜨리며 오직 자신을 신뢰하는 적극적이고 강인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186 

 

물론 이 분이 강조하는 건 solitude이다. 주장은 계속 이어진다.

 

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의미에서의 고독이 우리 사회에도 훨씬 더 주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어요. 사회의 쏠림이나 대세, 흐름에서 벗어나서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과 입장과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자세, 이것이 제가 집중하는 '고독'의 의미입니다. 바로 그런 고독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참으로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187

 

결국, 고독하다는 건 주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개인성의 확보와 다르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개인성은 사회나 국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지요. 혼자서 사고하고, 혼자서 행동하고,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힘을 갖는 게 고독입니다. 그런데 사회와 국가는 그런 개인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기본적으로 흡수하고 동화하려는 경향을 띠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저는 고독을 기본적으로 저항이라고 생각해요. 저항을 위해서 고독하는 것이지, 저항의 의미없이 그냥 고립된 삶을 산다는 것은 다소 무의미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95

 

 

읽다보면 '그래, 맞는 말씀이야.'하고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지당한 말씀이라 그저 밑줄만 긋는다.

 

 

그런 체면 문화는 한국인이라면 다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 체면 차림에서 과시욕이 생겨난다고 봐요.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시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나친 자기 존대랄까요. 자기 스스로 자기를 높이고 내세우는 그런 문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217

 

 

이 책에서 딱 한 문장을 고른다면 바로 이 문장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시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무슨 일을 하다가도, 무슨 생각을 하다가도 나는 이 '시시하다'라는 표현에 사로잡히곤 했다. 누군가에게 섭섭한 생각을 하다가도 이 말을 떠올렸고, 내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게 될 때도 이 말을 떠올렸다. '내가 시시하구나.'하고. 딱히 내 자존심이나 자긍심 따위를 거론할 필요가 없을 때에도 여지없이 이 말이 떠오르곤 했다. 일거수일투족 마저 심히 시시해졌다고나 할까. 모처럼 겸손하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loneliness로 보내는 명절 연휴이다보니 그 시시함의 깊이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시시함의 바닥을 치고 진정한 solitude 를 향해야겠다. 더 시시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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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먹는엔지니어 2020-01-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참 잘 쓰시는것 같아요. 제목이 눈에 들어와 글을 읽었는데 다시책으로 님의 필력에 반하고 갑니다. ^^

nama 2020-01-28 11:39   좋아요 0 | URL
혹 박홍규 교수님의 글을 제 글로 오독하신 건 아니지요? 필력이라니....언감생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