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땅만 보고 걷다가 작정하고 하늘만 보고 걸었다. 나무만 있는 단순한 풍경을 도시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빌딩도 아파트도 전봇대도 얼씬대지 않는다. 새들도 안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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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교육계 '수업하는 교장' 논란-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670667.html

 

그러니까 벌써 40년도 더 된 옛날 일이긴 하다. 내가 살던 경기남부의 읍소재지에는 공립이 아닌 사립중학교만 4곳이 있었다. 작은 지역에 학교가 많다보니 두 학교는 한 학년에 각각 2학급, 3학급씩인 작은 학교일 수 밖에 없었다. 구슬상자를 돌려 분홍색 구슬이 걸렸던 나는 구슬색깔대로  하필  한 학년에 2학급인 제일 멀고 제일 작은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그때까지만해도 별 고생없이 살았던 나는 중학교에 다니는 일 자체가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버스정류장, 우체국 등을 지나서 동네 끝자락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거의 트레킹 수준이었다. 밭 길, 논 길, 산 길, 과수원 길, 공동묘지 길을 모두 거쳐야만 학교에 다다를 수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도 40여 분이 걸렸다.

 

설립한 지 3년 밖에 안 된 우리 학교. 어쩌다가 지금의 아이들한테 내가 다니던 이 학교 얘기를 하면 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본다. 마치 육이오적 얘기마냥 듣는다. 전기도 안 들어오고, 수돗물도 없고, 겨울엔 난로도 없고, 심지어 교실 바닥마저 초벌구이 모양 그대로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말이 안 되는 학교에 다녔던 것이다.

 

더 말이 안 되는 건, 학교를 설립한 이사장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고, 선생님들이 월급을 안 준다고 수업거부를 하는 바람에 훌쩍훌쩍 울면서 그냥 집으로 돌아온 날도 있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모두 중학교 1학년 때 겪었다. 믿고 따르던 담임선생님은 월급 안 나온다고 우리반 아이들이 맡긴 장학적금을 월급 대신 챙겨서 학교를 그만두었다. 나는 아직도 그 이름을 잊을 수 없다. 노정자 선생님. 나도 반에서 두 번째로 저금을 많이 했었다. 우리를 '맹꽁이'로 불렀던 선생님을 우리는 친언니처럼 무척이나 따랐었는데...지금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오죽했으면.

 

3개 학년이라야 전부 6학급인 작은 학교에 교사 수가 많을 리 없다. 국어1, 수학1. 과학1, 영어1,사회1,음악/미술1, 가정1, 체육1. 체육 담당의 코치1. 그리고 한문은 교장선생님이, 도덕은 교감선생님이 맡으셨다. 교장인 한문선생님은 말주변도 없는 어눌한 분이셨지만 마음은 따뜻한 분이셨고, 도덕을 맡은 교감선생님은 외판원같은 매끈함이 돋보이는 분이었지만 어딘가모르게 퇴출 직전의 기생 같은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다.

 

이렇게 열악하기 짝이 없는 중학교를 다녔지만 이 학교에 다니고, 이 학교를 졸업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시기였음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나마 '학교'라는 곳에 몸을 두게 된 것도, 오로지 중학교 교사로 만족하게 된 것도, 걷기를 좋아하게 된 것도, 모두 내가 졸업한 중학교의 영향이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써도 온 몸이 다 젖으면서도 산길을 걷는 기쁨은 청량감 그 자체였다. 잔디와 잡초로 무성한 산길에 작은 시냇물처럼 흐르는 빗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고, 초봄의 이름모를 야생초와 야생화나 늦가을의 단풍잎은 언제나 하교 시간을 늘어지게해서 집으로 걸어 가는데 두어 시간씩 걸리곤 했다.

 

그래서 영국의 서머힐 관련 책을 읽다보면 내가 다니던 중학교가 바로 서머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작은 학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경험을 작은 중학교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특히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그랬다. 나야 워낙 외톨이 성향이 강해서 선생님 자체를 두려워하고 가깝게 지내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선생님들과 스스럼없이 지냈다. 물론 그 선생님들 중에는 교장,교감 선생님도 들어 있다. 약간의 경계심과 거리가 있었지만 수업 중에 만나는 교장, 교감 선생님의 약간은 초라하고 쇠락한 분위기에서 삶의 이면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교장, 교감도 수업에 투입하라는 경기도 교육감의 발언이 옛추억을 떠올려서 오늘 아침나절을 이런 글을 쓰느라고 애쓰고 있다, 지금.)

 

위의 한겨레신문 기사에 <교총은 ‘수업하는 교장’ 대신 학교 경영자로서 ‘연구하는 교장’을 제시하면서 이 교육감의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는 구절이 있다. '연구하는 교장'이라고라...물론 연구는 한다. 어떻게 부수입을 챙기나, 어떻게 술자리를 만드나...지금까지 학교 현장에 있으면서 책 읽는 교장을 몇 명이나 보았을까. 책 읽는 교장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는 건 내 기준이겠지만 나는 적어도 교장이라면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지 않는 교장은 내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연구하는 교장'은 곧 책을 읽는 교장이고, 책 읽는 교장이라면 아이들과도 능히 소통할 수 있다고 본다. 교장이 누군가. 교사중의 교사, 최고의 교사가 아닌가. 이 분들이야말로 아이들을 최고로 잘 가르칠 수 있는 분들이어야 한다. 교장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아이들이 어떻게 감히 거부할 수 있겠는가. 일반평교사는 담임을 한 해만 하지 않아도 빈 틈이 생기고 긴장감이 떨어져 업무가 느슨해진다. 하물며 수업과는 거리가 먼 교감, 교장은 어떠하랴.

 

결론은....교장, 교감에게도 수업할 권리와 의무를 주어라. 교육현장이 많이 바뀔 것이다. 가히 혁명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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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띠 2014-12-25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직 교사다. 24년차되는.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친.

흔히 학교 밖에 있는 분들은 이 글을 쓰신 분처럼 교감이나 교장이라면 교사 중의 교사 최고의 교사라고 본다. 그런데 학교 안에서 보는 교감이나 교장은 글쎄..... 수업하기 싫어서 또는 담임하기 싫어서 교감이나 교장이 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아니 거의 99.99%가 그렇다. 아니면 권력지향적이다 보니 교장이 되는 경우이다. 그런 교감과 교장에게 수업을 하라는 것은 교육계를 떠나라는 말처럼 들릴것이다. 아니면 수업을 하는 교장에 대단히 모멸감을 느낄 것이다.

내가 만나 본 교장 중 책을 가까이 하고 늘 책을 읽는 교장은 딱 한 분 뿐이었다.그 분은 평교사였을 때도 어마어마한독서광이셨고, 교감을 거쳐 교장이 되었을 때에도 닥치는 대로 읽는 분이셨다. `연구하는 교장`은 바로 이런 분에게나 붙일 수 있는 표현일텐데 위 글을 쓰신 분의 표현처럼 대부분의 교장은 정말이지 무지무지 독특한 연구(?)만을 하신다. 내가 아는 책 읽는 그 교장선생님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수업에 들어가고 싶어 하셨고, 선생님들의 갑작스런 결근이나 일들로 수업 결손이 생길 때면 어김없이 교실에 보강을 들어가셨다. 그리고 30 학급의 적지 않은 학교에서 전교생의 이름을 거의 다 알고 계셨다. 매일 복도를 순회하시고, 복도의 휴지는 맨손으로 스스럼 없이 줍고, 아무 때나 교실 뒷문으로 들어오셔서 교실 뒤에 놓인 휴지통에 손에 잔뜩 들고계신 쓰레기를 무심한 듯 버리고 가셨다. 그리곤 선생님들의 수업을 다 꿰고 계셨다.

이런 교장선생님을 이제는 볼 수 없다. 수업하기를 좋아하고 아이들 만나기를 즐기지 않는 교사는 교사도 교감도 교장도 더이상 아니다.

수업하는 교장, 그런 의무과 권리를 가진 교장이 탄생하는 날 대한민국의 교육은 살아날 것이다.


nama 2014-12-25 17:27   좋아요 0 | URL
99.99%..라는 표현, 제가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자제한 표현인데, 감사합니다.
책 읽는 교장, 저도 딱 한 분 뵈었지요. 역시나 다른 면모를 보였는데, 글쎄 교육청 입장으로서는 미운 털이었지요. 이런 분은 평생 두 번 만나기 힘들지요.

0.01%에 해당하는 교장이 설치는 교육현장이 되면 교육은 살아납니다. 분명.
 

 

 

퇴근길

 

물 위에 모여 있는 점들은 철새 오리떼

 

추울수록

겨울이 깊어질수록

차디찬 물 위에서 뭉치는 녀석들

 

추위도 제 것

공원도 제 것

세상이 온통 너희 것이구나. 

 

나는 오늘도 오리털 패딩을 입고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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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25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g폰 사진이 멋있어요 나름 분위기 있죠? 요새 화질 좋은 사진들이 많으니 상대적으로 분위기 있네요~ㅎㅎ

nama 2014-12-25 09:16   좋아요 0 | URL
2g폰도 처음 나왔을 때는 가히 충격이었지요. 사진까지 찍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신기했는데 새록새록 신무기가 등장하니 머지않아 박물관행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라지기 전에 열심히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자기가 아는 대로 진실만을 말하여,

주고받는 말마다 악을 막아

듣는 이에게 편안과 기쁨을 주어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지나치게 인색하지 말고,

이기심을 채우고자 정의를 등지지 말고,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위험에 직면하여 두려워 말고,

이익을 위해 남을 모함하지 말라.

객기를 부려 만용하지 말고,

허약하여 비겁하지 말며,

사나우면 남들이 꺼려하고 나약하면 남이 업신여기나니.

사나움과 나약함을 버려 지혜롭게 중도를 지켜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와 처지를 살필 줄 알고,

부귀와 쇠망이 교차함을 알라.

 

-잡보장경에서

 

 

*몇 년 전 선운사에서 구입한 다탁보에 쓰여져 있는 글로, 때때로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기 보다는 마음을 가라앉힌다.

 

언젠가 진짜 <잡보장경>을 펼쳐 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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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주 2014-12-30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을 읽으며 꼭 나를 위해 지은 글 같다고 생각했어요. 유리하다고 교만했으며 불리하다고 비겁해졌지요. 지나고 생각하면 부끄럽고 부끄럽지만 또 `여우의 신포도`처럼 나와 같은 사람이 많기도 많은가 보다 위로해 보기도 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nama 2014-12-30 07:32   좋아요 0 | URL
이 시간에 벌써 컴퓨터 앞? 늘 `주고받는 말마다 악을 막아 듣는 이에게 편안과 기쁨을 주어라.`를 실천하시는 샘을 보고 감탄합니다. 저 글은 읽을 때마다 무슨 삶의 지침처럼 여겨져요. 특히 `분노를 잘 다스려라.` 감사함에 감사합니다.
 

며칠 전부터 마음 먹었던 공예트렌드페어에 다녀왔다.(나보다는 남편이 더 관심을 기울였다.) 코엑스에서 열렸다. 많은 작품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었는데 일일이 다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다. 특히 도자기류가 상당히 많았는데 처음엔 흥미롭다가 이내 관심이 시들어버렸다. 점점 피곤해졌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도 살아남기가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내 앞가림도 힘든데 남의 앞가림까지 걱정하고 있었다. 주제넘게.

 

 

얼굴컵. 부처님 얼굴 못지않은 평화가 가슴속으로 밀려든다.

 

 

귀엽다. 조카들 어렸을 적 얼굴이 떠오른다.

 

 

어디에 쓰이는 지는 모르겠다. 장식용?

 

 

 등. 생각하는 사람이 앉아 있다.

 

 

등을 앞에 놓고 기도하는 사람에게서 간절함이 느껴진다.

 

 

저 위에 뭘 올려놓으면 좋을까.

 

 

고양이 발, 돼지 발 모양의 손잡이가 재밌다.

 

 

기와집 접시 세트.

 

 

나무로 만든 과일 접시. 포크 꽂이가 기발하다.

 

 

저런 발을 쳐보는 게 로망인데 딸내미가 옆에서 하는 말 "우리집과는 안 어울려."

 

 

호두까는 도구. 마침 집에 호두가 있길래 호두 하나 밑에 넣어봤다. 이건 19,000원 주고 구입.

그 돈 준다고 해도 내가 만들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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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12-24 0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저도 가보고 싶어요.
호두까는 도구, 그냥 손으로 만지작거려도 촉감이 참 좋을것 같아요. 저는 지금까지 호두깔때 망치로 두드려서 껍질을 깻어요 ㅋㅋ
올리신 사진 속의 작품들, 나 내꺼 했으면...^^

nama 2014-12-24 07:20   좋아요 0 | URL
실물복사기 있으면 모두 복사해서 드리고 싶습니다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