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면 이런저런 달력을 얻을 때도 있고 얻지 못할 때도 있다. 특히 주거래 은행에서는 해마다 문자를 보내어 달력을 수령해가라고까지 한다. 그러나 어디 직장이란 곳이 '하찮은' 달력 하나 얻으려고 쉽게 자리를 이탈할 수 있는 곳인가. 감히 7시간의 무단 이석 행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정신이 나갔거나 짤릴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어찌어찌해서 겨우 얻은 달력에 정을 붙여갈 즈음이면 일 년이 다 갔을 때다. 처음부터 마음을 확 사로잡는 그림으로 시작하면 안될까? 그래서 저질렀다. 1만 6천 원이 넘는 거금이다. 이 작은 사치 덕분에 내년이 성큼 다가와서 나이 한 살 더 먹는다쳐도 별로 섭섭할 것 같지 않다. 단, 지난 전시회 때 직접 내 눈으로 본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지만 사진으로 접하는 건 좀 감흥이 떨어지는 일이긴 하다. 뭐, 그때의 감흥을 되새김질하는 수밖에.

 

 

 

 

 

 

 

 

 

 

 

 

 

 달력이 담긴 저 택배상자는 처음 보는 알라딘택배 상자이다. 예전의 LP판을 넣을 수 있는 크기인데 LP판 보다 피자를 넣으면 어울릴 성싶다.

 

 

달력 뒷면. 이런 그림들이 실려 있다.

 

 

어? 빨간 날이 없다. 한 달 내내 경건하게 살아야할 듯. 당연 음력표시도 없다. 표시된 거라곤, Full Moon, New Moon, First Quarter, Last Quarter, 외국의 주요 명절 정도. 각종 기념일을 무시하고 살아도 될 것 같다. 한마디로 '내 맘대로 달력'이다.

 

 

 

달력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몇 년 째 못버리고 주방 한쪽에 걸어놓은 달력이 있다.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다.

 

 그 유명한 차마고도 일대를 한 지역씩 톺아가며 만든 달력이다. 위 그림은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리장(여강)이다. 지금도 저 그림을 보면 집과 집 사이를 흐르던 작은 수로들이 그리워진다. 다시 리장에 간다면 저 달력을 사오리라. 저 달력 때문에라도 리장에 다시 가야할 것 같다.

 

 

달력으로 잠시 사치스런 생각을 해봤다.

 

 

달력을 일찍 구매한 이유.....내 나이 먹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런 시절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염원에서다. 염원이다. 그리고 내년에 대한 희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 돼지님의 손글씨를 보고 나도 손글씨가 쓰고 싶어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땐 담임선생님의 부탁으로 우리반 생활기록부(졸업 후 50년간 보관함)를 기록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생수병 뚜껑 따는 것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린다. 이러니 앞으로 손글씨를 쓸 일은, 아마도 거의 없을 터이다. 손글씨를 쓴 적이 언제던가. 몇 자 써보는 것도 참 낯설다.

 

 

-손글씨에 대한 추억

중학교에 들어가니 모든 공책 필기는 잉크와 펜을 사용해야 했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잉크병은 바닥으로 떨어지기 일쑤였고, 책상속에 넣어두어도 자칫 무심한 손짓에 바닥에 떨어지거나 잉크가 쏟아지곤 했다. 쓰러진 잉크병에서 흘러나온 잉크는 공책에 교복에 교과서에 퍼런 자국을 남기곤 했다. 천방지축인 중학생들에게 왜 잉크와 펜을 사용하게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모를 일이다. 물론 그 혹독한 훈련 덕분에 글씨체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잉크를 묻힌 펜촉으로 글을 쓰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어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중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도 같다. 힘들게 했던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공책필기도 제대로 해야 했으니, 제목, 날짜를 기록해야 하는 건 물론 공책이란 공간의 적절한 배분, 시각적인 가독성도 고려해야 했다. 가히 종합 예술이라고나 할까.

 

요즘은 우리 세대처럼 손글씨를 강요하지 않는다. 공책 활용 방법도 가르치지 않는다. 공책이란 그저 숙제할 때나 필요한 정도여서 공책 없이 책만 달랑 들고 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다 숙제할 일이 생기면 다른 과목 공책에 쓰거나 친구의 공책에서 한 장 찢어내 성의없이 내용만 채운다. 아,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을 하지만 공책 제대로 안 쓴다고 지도할 여력도 없다. 몇 년 전만해도 일제히 공책을 걷어서 숙제검사를 하곤 했는데 이젠 그 수고로운 행위도 잘 하지 않는다. 대신 ppt 제작 같은 것을 시키거나 그냥 암기를 시킨다. 그나마 논술쓰기를 하니 손글씨를 무시하지는 못하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앞으로 30년 쯤 후에는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밑에 적혀 있는 설명 .... '아쟁 비슷한 악기...' 를 바로잡고 싶어서 올린다.

위 사진의 악기는 아쟁이 아니라 해금 비슷한 악기이다. 아시아 일대에서는 해금 비슷한 악기가 많은데, 중국에서는 얼후, 인도네사아에서는 레밥, 캄보디아에서는 트로우, 타이에서는 소우, 라오스에서는 소이라고 부른단다. 홍콩이나 베트남, 대만, 라오스 등을 여행하다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매우 대중적인 '아시아의 악기'라고 할 수 있다. 라오스에서 거리의 걸인이 이 악기를 켜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책, 여행보다는 독서에 더 치중한 책이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는 퇴근 후 의정부에 있는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나 보다 나이가 한참 어리나 마음이 잘 통하는 지인의 남편상이었는데, 지인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고 작은 아들 역시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스무살 먹은 큰아들이 상주노릇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지인은 상태가 호전되어 정신이 돌아와 의사표현은 하게 되었다하나 남편도 자신처럼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줄 알고 있단다. 작은 아들 역시 제 아빠의 죽음을 모르고 있고. 대형 교통사고였다.

 

오늘이 발인인데, 어쩌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5-11-04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슨 말을...마음이 너무 무겁네요..

nama 2015-11-04 13:3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일이 참 많아서 아픈 날들입니다.
 

 

 

 

 

 

 

 

 

 

 

 

 

 

 

 

징역살이도 유쾌하게?

 

 

욕에 대한 유쾌한 정의를 들어보시라.

 욕은 본디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머리에서 피어오르고 가슴 속에서 터지는 분노에 풍자와 해학이 저며 있되,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빠야 그게 제대로 된 욕이다. 내가 사회 나와서 들은 욕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욕은 "에라, 이 공무원 같은 자식아!"였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에 들은 욕이다. 물론 모든 공무원이 다 그렇다는 뜻은 아닐 게다. 지금이야 공무원이 최고 인기 직종이라지만 그래도 여전한 철밥통 체질이나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를 풍자하는 기지가 돋보였던 욕이라 난 요즘도 비슷한 짓거리를 보면 가끔 이 욕을 써먹는다.   -78쪽

 

밑줄 부분을 접한 순간 나는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특히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빠야...'에 공감이 갔다. 왜? 나도 꾸러기 아이들을 상대할 때는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쁜 말을 들려주려고 무진 애를 쓰기 때문이다. 무슨 악랄한 선생이냐고? 체벌은 생각할 수도 없고, 점잖게 타이르는 말은 효과도 없고, 벌점은 아무리 매겨도 전혀 먹히지 않을 때, 그 때는 말을 독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본디 어려서부터 욕 먹으며 자란 성품이 아니기에 내게 욕은 전혀 자연스러운 언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상대하다보니 자연 입은 거칠어진다. 독하게 마음 먹고 아이들한테 욕을 할 때는 나 역시 기분이 몹시 상하기 마련이다. 내 인간성의 모진 부분을 끄집어내어 상대방의 자존심을 향해 가차없이 칼을 들이대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질리게 한 상대방을 몇 배로 질리게 해야 한다. 그러면 겨우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자신을 돌이켜보게 된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고 생각을 하게 되면 행동에 변화가 생긴다. 역으로 치는 방법인데 자주는 못할 짓이다. 다행히 자주 있는 일은 절대 아니고, 자주 써먹는다면 나 역시 인간성이 고갈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 는 말이 그래서 나왔지 싶다. 쓰디 쓰다.

 

욕에 대한 긴 사설을 딱 두 문장으로 정의를 내린 이 책, 유쾌하고 가볍고 매력적인데다 깊이까지 있다. 

 

출소 후에 사업을 하다가 누구와 전화로 싸울 일이 있었다. 아주 비열하게 우리 회사의 정보를 빼내서 우리를 괴롭힌 작자였다. 놈이 전화를 받자마자 난 징역에서 배웠던 모든 욕을 해댔다. 역시 욕의 강도도 중요하지만 같은 욕을 반복하지 않으면서 길게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물론 격분한 상대가 가끔씩 한마디 할 기회는 줘야 나도 탄력을 받는다. 그렇게 한 10여 분 정도 욕을 쳐 대다가 화가 좀 풀려 전화를 확 끊었다. 곧 내 자리로 다시 전화가 왔다. 놈이 다짜고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야, 인마. 너 몇 살이야?" 난 배운 대로 할 수밖에. "아저씨, 저 스무 살이에요." 완벽한 승리였다. 한국에선 역시 나이가 깡패다.

 

누군가와 싸울 때 '나이'라는 카드를 꺼내는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난거다. 참패다. 부디 이 카드는 써먹지 말기를.

 

일요일 오후, 혼자 키득거리며 읽고 있자니 세상이 평화롭게 느껴진다. 감옥에서도 꽃은 피는구나. 이 책의 저자, 이건범. 아무나 흉내내지 못할 내공이 느껴지는 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