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살이도 유쾌하게?

 

 

욕에 대한 유쾌한 정의를 들어보시라.

 욕은 본디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머리에서 피어오르고 가슴 속에서 터지는 분노에 풍자와 해학이 저며 있되,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빠야 그게 제대로 된 욕이다. 내가 사회 나와서 들은 욕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욕은 "에라, 이 공무원 같은 자식아!"였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에 들은 욕이다. 물론 모든 공무원이 다 그렇다는 뜻은 아닐 게다. 지금이야 공무원이 최고 인기 직종이라지만 그래도 여전한 철밥통 체질이나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를 풍자하는 기지가 돋보였던 욕이라 난 요즘도 비슷한 짓거리를 보면 가끔 이 욕을 써먹는다.   -78쪽

 

밑줄 부분을 접한 순간 나는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특히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빠야...'에 공감이 갔다. 왜? 나도 꾸러기 아이들을 상대할 때는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쁜 말을 들려주려고 무진 애를 쓰기 때문이다. 무슨 악랄한 선생이냐고? 체벌은 생각할 수도 없고, 점잖게 타이르는 말은 효과도 없고, 벌점은 아무리 매겨도 전혀 먹히지 않을 때, 그 때는 말을 독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본디 어려서부터 욕 먹으며 자란 성품이 아니기에 내게 욕은 전혀 자연스러운 언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상대하다보니 자연 입은 거칠어진다. 독하게 마음 먹고 아이들한테 욕을 할 때는 나 역시 기분이 몹시 상하기 마련이다. 내 인간성의 모진 부분을 끄집어내어 상대방의 자존심을 향해 가차없이 칼을 들이대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질리게 한 상대방을 몇 배로 질리게 해야 한다. 그러면 겨우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자신을 돌이켜보게 된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고 생각을 하게 되면 행동에 변화가 생긴다. 역으로 치는 방법인데 자주는 못할 짓이다. 다행히 자주 있는 일은 절대 아니고, 자주 써먹는다면 나 역시 인간성이 고갈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 는 말이 그래서 나왔지 싶다. 쓰디 쓰다.

 

욕에 대한 긴 사설을 딱 두 문장으로 정의를 내린 이 책, 유쾌하고 가볍고 매력적인데다 깊이까지 있다. 

 

출소 후에 사업을 하다가 누구와 전화로 싸울 일이 있었다. 아주 비열하게 우리 회사의 정보를 빼내서 우리를 괴롭힌 작자였다. 놈이 전화를 받자마자 난 징역에서 배웠던 모든 욕을 해댔다. 역시 욕의 강도도 중요하지만 같은 욕을 반복하지 않으면서 길게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물론 격분한 상대가 가끔씩 한마디 할 기회는 줘야 나도 탄력을 받는다. 그렇게 한 10여 분 정도 욕을 쳐 대다가 화가 좀 풀려 전화를 확 끊었다. 곧 내 자리로 다시 전화가 왔다. 놈이 다짜고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야, 인마. 너 몇 살이야?" 난 배운 대로 할 수밖에. "아저씨, 저 스무 살이에요." 완벽한 승리였다. 한국에선 역시 나이가 깡패다.

 

누군가와 싸울 때 '나이'라는 카드를 꺼내는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난거다. 참패다. 부디 이 카드는 써먹지 말기를.

 

일요일 오후, 혼자 키득거리며 읽고 있자니 세상이 평화롭게 느껴진다. 감옥에서도 꽃은 피는구나. 이 책의 저자, 이건범. 아무나 흉내내지 못할 내공이 느껴지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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