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돼지님의 손글씨를 보고 나도 손글씨가 쓰고 싶어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땐 담임선생님의 부탁으로 우리반 생활기록부(졸업 후 50년간 보관함)를 기록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생수병 뚜껑 따는 것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린다. 이러니 앞으로 손글씨를 쓸 일은, 아마도 거의 없을 터이다. 손글씨를 쓴 적이 언제던가. 몇 자 써보는 것도 참 낯설다.

 

 

-손글씨에 대한 추억

중학교에 들어가니 모든 공책 필기는 잉크와 펜을 사용해야 했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잉크병은 바닥으로 떨어지기 일쑤였고, 책상속에 넣어두어도 자칫 무심한 손짓에 바닥에 떨어지거나 잉크가 쏟아지곤 했다. 쓰러진 잉크병에서 흘러나온 잉크는 공책에 교복에 교과서에 퍼런 자국을 남기곤 했다. 천방지축인 중학생들에게 왜 잉크와 펜을 사용하게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모를 일이다. 물론 그 혹독한 훈련 덕분에 글씨체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잉크를 묻힌 펜촉으로 글을 쓰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어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중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도 같다. 힘들게 했던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공책필기도 제대로 해야 했으니, 제목, 날짜를 기록해야 하는 건 물론 공책이란 공간의 적절한 배분, 시각적인 가독성도 고려해야 했다. 가히 종합 예술이라고나 할까.

 

요즘은 우리 세대처럼 손글씨를 강요하지 않는다. 공책 활용 방법도 가르치지 않는다. 공책이란 그저 숙제할 때나 필요한 정도여서 공책 없이 책만 달랑 들고 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다 숙제할 일이 생기면 다른 과목 공책에 쓰거나 친구의 공책에서 한 장 찢어내 성의없이 내용만 채운다. 아,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을 하지만 공책 제대로 안 쓴다고 지도할 여력도 없다. 몇 년 전만해도 일제히 공책을 걷어서 숙제검사를 하곤 했는데 이젠 그 수고로운 행위도 잘 하지 않는다. 대신 ppt 제작 같은 것을 시키거나 그냥 암기를 시킨다. 그나마 논술쓰기를 하니 손글씨를 무시하지는 못하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앞으로 30년 쯤 후에는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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