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옆자리 동료와 같은 공간에서 지낸 지 8개월이 되었다. 나이도 비슷하다. 급식을 거부하고 소박한 점심을 함께 먹은 지도 꽤 되었다. 하루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는 통증을 달고 사는지라 틈만 나면 내 옆자리 동료에게 하소연을 하곤 했다. 오늘은 어디가 아프고 어떻다고....미안할 정도였다. 병원이 어떻고 하는 얘기도 귀가 따갑게 읊었다.

 

오늘, 내 옆자리 동료가 그런다. 자기도 가끔 손가락이 아프지만 며칠 지나면 그냥 낫는다며 나도 그런 거 아니냐고 묻는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나.

 

내 부어오른 손가락을 볼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는 자주 당신의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을 식구들에게 보여주곤 하셨다. 종종 있는 일이고 엄마를 뺀 나머지 식구들은 아프지 않은지라 위로의 말도 별로 건네지 않고 그냥 무심히 듣곤 했다. 기껏해야 병원에 가보시라는 말 정도를 했을 뿐이었을 게다. 그러면 엄마는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실망하는 표정을 짓거나 섭섭하다는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그냥 가만히 계셨다. 그게 다였다. 다시 일상이 이어지고, 며칠 후 엄마는 손가락을 보여주시고, 우리는 또 무심히 엄마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아무데도 아프지 않은 우리는 엄마가 얼마나 아프셨는 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부끄러운 얘기이다.

 

내 가방에 달고 다니는 노란색 세월호 리본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얼마나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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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미학 - 20주년 개정판
승효상 지음 / 느린걸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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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이지만 학교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공간이 아닌 곳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공간. 업무 아닌 업무. 인솔하고 온 학생들은 저쪽 공간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나는 이쪽 공간에서 주어진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오늘의 내 업무는 수업이 아니라는 것. 수업 받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일이다. 좋다. 잠시나마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이 작은 책을, 이 작디 작은 책을 여러 공간에서 나누어 읽는다. 역시 아이들을 인솔하는 일을 끝낸 후, 딸을 만나러 간 대학교정 나무 그늘에서 읽고, 오늘은 연수원에서 아이들이 수업 받는 교실 옆에서 이 책을 읽는다. 낯선 공간에서 읽는 맛이 각별하다. 이 책은 책을 읽은 공간을 품게 될 것이다, 나에게는.

 

나는 이를 '빈자의 미학'이라 부르기로 한다.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I shall call this the "beauty of poverty".

Because of poverty. Here, it is more important to use than to have, to share than to add, to empty than to fill.

 

승효상의 철학이 담겨 있는 명문장이다.

 

우리말 어감도 좋지만 영어 표현도 매우 매끄럽다. 착착 감긴다.

 

 

반기능

우리가 지난 몇 십 년간 교육 받아온 '기능적'이라는 어휘는, 그 기능적 건축의 실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화시켰는가. 보다 편리함을 쫓아온 삶의 모습이 과연 실질적으로 보다 편안한 것인가. 살갗을 접촉하기보다는 기계를 접촉하기를 원하고, 직접 보기보다는 스크린을 두고 보기를 원하고, 직접 듣기보다는 구멍을 통해 듣기를 원하는 그러한 '편안한' 모습에서 삶은 왜 자꾸 왜소해지고 자폐적이 되어가는가.

우리는 이제 '기능적'이라는 말을 다시 검증해야 한다. 더구나 주거에서 기능적이라는 단어는 우리 삶의 본질하머 위협할 수 있다. 적당히 불편하고 적절히 떨어져 있어 걸을 수밖에 없게 된 그런 집이 더욱 건강한 집이며, 소위 기능적 건축보다는 오히려 반(反)기능적 건축이 우리로 하여금 결국은 더욱 기능적이게 할 것이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도로가 꽉 막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나도 이따금 그 인파 중의 하나가 되지만 나는 그 많은 사람들을 집 밖으로 몰아내는 주된 이유가 아파트라는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파트는 거주 공간으로는 대단히 편리한 곳이다. 지붕이 샐 염려도 없고, 집안으로 빗물이 들이닥칠 일도 없고, 빨랫줄에 넌 빨래를 걷어야 할 걱정도 없고, 땔감이나 연탄을 들여놔야 하는 걱정도 없다. 집을 지키는 똥개 따위를 키울 필요도 없다. 도대체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반면, 숨을 데가 없는 곳이 아파트이다. 어린 시절 그 불편하고 바람 숭숭 들어오는 재래주택에서 살 때는 속상한 일이 생기거나 숨어들고 싶을 때는 아무도 찾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집안 곳곳에 있었다. 생쥐가 드나드는 광, 어두컴컴한 다락방, 낡고 못쓰는 물건들이 쌓여있는 뒤란에서 상처난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러나 아주 편리하고 기능적인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 숨을 곳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이제 숨을 곳이 없으니 그 숨을 곳을 찾아 밖으로 밖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너무 편리해서 심심한 곳이 되어버린 게 아파트이다.

 

하나 더. 이런 아파트가 돈이 되어 버린 세상이 안타깝다. 아파트는 집이 아닌 곳이 되어버렸다.

 

 

저자의 말처럼, '적당히 불편하고 적절히 떨어져 있어 걸을 수밖에 없게 된 그런 집이 더욱 건강한 집'이고, '기능적 건축보다는 오히려 반(反)기능적 건축이 우리로 하여금 결국은 더욱 기능적이게 할 것이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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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10-19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 노무현대통령 묘역 설계하신 분이시죠?
봉하에 갔을 때 승효상님이 어떤 의미로 설계하신건지 조금은 알것 같았어요

nama 2017-10-20 07:0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제가 봉하에 갔을 때는 묘역 완성 전이라 좀 아쉽네요.
부여에 있는 신동엽문학관도 이 분이 설계하셨는데 인상적이었어요.

보통 2024-01-19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리뷰를 보고 책 구입을 결심했습니다. 건축이라는 학문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글이었어요. 감사합니다.

nama 2024-01-25 12:55   좋아요 0 | URL
제겐 좋은 책이었는데 보통님에게도 좋은 책이 되길 바랍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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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소설도 아니고, 감상적인 산문도 아닌데,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역학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이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라고 한다. 2000년에 첫 사회역학 교과서가 나오고 불과 10여 년 전부터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실하고 열심히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해왔는데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병에 걸렸을 때 그 병과 아픔을 오롯이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친구가 있다.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고 있고 건강을 위해 매일 일정하게 운동도 하고 음식에도 욕심을 부리는 일이 거의 없다. 자타공인 모범적으로 건강을 유지해왔다고 여겼는데 어느날 건강검진에서 느닷없이 당뇨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가족력도 전혀 없었기에 매우 당황스러워한다. 도무지 자신의 상황을 납득할 수가 없다. 병의 원인을 하나하나 찾아보기로 한다.

 

   태아기의 영양결핍이 성인 만성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절약형질 가설'이라고 부릅니다. 혹은 이 분야에 학문적으로 큰 기여를 한 데이비드 바커 박사의 이름을 따 '바커 가설'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태아기의 영양 결핍이 성인기 당뇨병 발생의 원인이 되는 것은 태아 입장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임산부인 어머니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없는 환경에서, 영양분이 부족할 때 태아는 생명체로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한정된 영양분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살아남는 데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해 답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태아는 뇌와 같이 살아남는 데 필수적인 기관에 먼저 영양분을 사용하고, 당장 내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췌장과 같은 기관을 발달시키는 데에는 영양분을 적게 사용합니다. 설사 그 선택이 먼 훗날 당뇨병을 유발해 수명을 단축시킨다 할지라도, 지금의 생존을 위해 먼 훗날 발생할 수 있는 성인병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이런 연구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몸에 새겨진 사회적 경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생애 초기의 경험일수록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배 속에 있는 태아나 막 태어난 아이가 굶주리는 것은 같은 기간 성인이 굶주리는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일 테니까요.

 

  몇몇 학자들은 이 역사적 비극이 인간의 건강에 장기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탐구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1945년 초 '네덜란드 기근' 시기에 어머니의 배 속에 있던 태아가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다양한 성인병에 걸릴 가능성을 연구한 것입니다. 연구 결과,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3배 높았고 조현증(정신분열증)에 걸릴 위험이 2.6배 높았으며 당뇨병에 걸릴 위험도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사실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6.25를 겪은 부모세대와 그 얼마 후에 태어난 우리 형제자매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순탄하지 못한 가족사의 원인이 여기에 닿아 있었다. 위에서 말한 친구의 당뇨병의 근본 원인도 여기에 닿아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이렇게 질병이나 죽음을 사회역학이라는 학문으로 그 원인을 찾아낸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원진레이온과 제일화학, 고용불안, 전공의 근무환경과 환자 안전, 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실태조사, 동성결혼과 성소수자 건강, 인종차별, 재소자 건강,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총기 규제...이런 일들이 과학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제대로 설명이 되는 것이다.

 

미국의 총기사건에 대한 부분에서는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미국질병관리본부 보고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연간 총기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이 31만 명이 넘습니다. 매년 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총기사고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 친구의 주장은 국민이 총기를 소유하면 모든 개인이 자신을 지킬 수 있으니까 총기에 의한 사망이 줄어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이것이 미국총기협회가 총기사건이 터질 때마다 하는 주장이자, 실제로 많은 사람이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중요한 근거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경제적으로 윤택할 수 있는 임상의사 대신 사회역학을 공부하는 학자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저자의 글에선 그의 진심과 진정성이 느껴져 다시 한번 눈시울을 붉혔다.

 

  저는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제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경험들을 계속하고 그것들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간직할 수 있기를 또 길러나갈 수 있기를, 그것이 가능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욕심이 훨씬 커요.

(중략)

그리고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이 분은 의사가 되었어도 훌륭한 의사가 되었을 텐데....이런 의사를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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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소설이지만 두 표지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원서의 표지에서는 목가적인 배경이 연상되면서 깊은 사색에 빠진 남자의 절망과 고뇌, 혹은 무능함 같은 게 읽혀진다. 반면 번역서의 풋사과는 좀 더 직설적인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채 익지도 않고 모양이 예쁘지도 않은 사과 껍질을 투박하게 깎는 행위를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미완성. 사랑의 미완성. 풋사랑.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오른쪽을 택하고 싶다. 뭔가 아련한 분위기가 좋다.

 

작가의 나이 81세에 발표했다는 소설. 책을 다 읽고나니 가을추수를 막 끝낸 기분이 들었다. 가슴 한 편이 저리면서도 알싸한 가을 냄새를 맡은 것도 같다.

 

 "나도 미안해요." 그가 말했다. "내가 일을 이렇게 만들었어요.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엘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가 따라준 차를 마셨다. 아무런 맛이 없었다.

 "나한테 그런 성향이 있어요." 그가 말했다. "입 다물고 있으면 안 되는 때 말을 아끼는."

 

절제된 글에서 우러나는 통찰. 인간에 대한 연민. 윌리암 트레버를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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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800~900미터 까지 올라가는 저 구절양장의 산길을 다녀왔다. 주변에서 하도 험하다고 해서 그간 쉽게 갈 수 없었던 길을 용감무쌍한 남편을 따라 한바퀴 주행했다. 다행스럽게도 길 낭떠러지 쪽으로는 안전을 확보하는 가드레일이 거의 전구간에 걸쳐 설치되어 있고, 길도 대부분 포장이 되어 있어서 소문보다 훨씬 안전하고 편했다. 많은 사람들의 노고 덕택임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인도 라다크의 험난함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리 만만한 길은 아니다. 가슴을 조이며 주행하느라 감히 사진 한 장 찍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동영상을 찾아볼 수도 있는데,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다 싶다. 자전거도 못 타는 주제에 나는 잠시 저 길을 자전거로 주파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트레킹도 꿈을 못꾸게 된 주제에...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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