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소설이지만 두 표지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원서의 표지에서는 목가적인 배경이 연상되면서 깊은 사색에 빠진 남자의 절망과 고뇌, 혹은 무능함 같은 게 읽혀진다. 반면 번역서의 풋사과는 좀 더 직설적인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채 익지도 않고 모양이 예쁘지도 않은 사과 껍질을 투박하게 깎는 행위를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미완성. 사랑의 미완성. 풋사랑.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오른쪽을 택하고 싶다. 뭔가 아련한 분위기가 좋다.

 

작가의 나이 81세에 발표했다는 소설. 책을 다 읽고나니 가을추수를 막 끝낸 기분이 들었다. 가슴 한 편이 저리면서도 알싸한 가을 냄새를 맡은 것도 같다.

 

 "나도 미안해요." 그가 말했다. "내가 일을 이렇게 만들었어요.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엘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가 따라준 차를 마셨다. 아무런 맛이 없었다.

 "나한테 그런 성향이 있어요." 그가 말했다. "입 다물고 있으면 안 되는 때 말을 아끼는."

 

절제된 글에서 우러나는 통찰. 인간에 대한 연민. 윌리암 트레버를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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