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일에 태극기를 꼭 게양해야 하나? 귀찮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부모님 슬하에 있었을 때, 30여 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셨던 아버지는 국경일만 되면 이른 아침부터 우리 자식들을 들볶으셨다.

 

"빨리 태극기 달아라."

 

해가 지면 아버지의 성화가 다시 이어진다.

 

"태극기 걷어들여라."

 

아버지의 성화는 때마다 어김없이 되풀이 되었지만 국경일이 되면 우리 자식들은 한번도 스스로 태극기를 게양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늘 반복되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나는 아버지의 태극기에 대한 지극정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향을 떠나 독립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태극기 게양에서 해방되었다. 국경일이 돌아오면 무슨 재미있는 일이 없나 놀 궁리만 했지 태극기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늘도 국경일이라고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국기를 게양했다. 국기함에 고이 모셔둔 태극기를 꺼내서 정성껏 게양하는 모습이 흡사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를 뵙는 것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아버지와 달리 남편은 가족 누구에게도 강요하거나 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국기를 달았다.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문자며 다시 기념일이 된 게 얼마나 좋은 일이냐며.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오신 것 같은 기분...아실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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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체공개했다가 비공개로 돌렸는데, 다시 전체공개를 한다. 마음 바뀌면 다시 비공개로 돌릴지 모른다. 사적인 얘기여서 조심스러운데 낙태죄에 대해 한마디쯤 하고 싶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더니 내게는 직장, 결혼이야말로 일말의 공짜도 허용되지 않는 견고한 철옹성 같은 벽이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나도 소위 '보통 사람들'의 세계에 진입해서 늦은 나이에 출산도 했다. 서른 초반의 직장, 서른 중반의 결혼. 요즘은 이런 게 대세라서 별로 얘깃거리가 되지 않지만 내가 20대를 보냈던 80년대엔 흔치 않은 경우였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나도 모르게 시대를 앞서가고 있었다.

 

아이를 낳았으나 나는 아이를 키워보지 못했다.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주말에만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즈음에야 아이와 함께 시어머니께서 우리집으로 오셔서 함께 살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처음부터 우리 아이를 키워주시겠다고 하셨다. 기왕 키워주는 것이니 둘째도 낳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이 전혀 고맙게 들리지 않았다. 시댁 식구중에는 이런 말을 서슴지 않는 분도 있었다."애 하나 더 낳아. 두 사람이 맞벌이하니까 한 사람이 버는 건 애 키워주시는 시부모님 생활비로 쓰면 되겠네." 내가 애 낳으려고 결혼했나. 시부모님 부양하려고 결혼했나.

 

42살에 어쩌다 임신이 되었다. 재고의 여지도 없이 애를 지웠다.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았다. 남편에게조차. 나는 결혼 전부터 나름대로 가족계획을 하고 있었다. 자식을 낳는다면 딸 하나만을 낳으리라고. 그리고 그걸 이루었으나, 애를 낳아서 키워보지도 못하고 돈 벌어 시부모 봉양하고...이게 결혼이냐는 회의감만 깊어졌다. 

 

어느 토요일에 낙태 수술을 받았다. 물론 혼자 갔다. 수술대에 누운 나를 보고 어린 간호사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애기가 불쌍해요."를 남발했다. '이런 잡것들' 이라는 욕이 목까지 올라왔으나 한편 내가 죄를 짓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마음을 되돌릴 생각같은 걸 할 내가 아니었다. 의사도 그랬다. '자궁외 임신이라 어차피 낳지 못할 아이입니다.'라고.

 

토요일에 수술을 하고 다음날인 일요일엔 교재연구를 위해 시내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고 구입해왔다. 다음날인 월요일엔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는데 몸이 너무나 아팠다. 오후 수업을 몰아서 오전에 해치우고 조퇴를 신청했다. 그 당시 근무한 학교는 신설 학교라서 소수의 교사가 많은 업무를 맡고 있는 상황이라서 누구에게 부탁할 처지도 아니었다. 병가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월요일 오후에 몸을 추스르고 어김없이 화요일에 출근했다. 서러웠다.

 

 

낙태는 임신을 한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해도 결정권은 임신한 사람에게 있다.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는 어린 소녀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우리나라는 참 잔인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녀는 얼마나 무섭고 서러웠을까? 여자를 이렇게 대접하는 나라에서 저출산 운운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자식을 몇 년간 돌봐주신 시어머니에 대한 부채감은 시어머니가 생존하시는 한 평생동안 지속된다. 내가 그렇다. 그나마 아이가 하나였으니 망정이지 둘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할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있을 수 없는 얘기지만, 만약 내가 다시 아이를 낳는다면 내 손으로 오롯이 아이를 키우고 싶다. 아이가 크는 과정을 오롯이 함께 하고 싶다.

 

 

낙태죄 운운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코웃음만 나온다. 도대체 낙태가 죄가 되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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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7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7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7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a 2018-10-07 22:12   좋아요 1 | URL
그렇다면 낙태와 임신 중단이 어떻게 다른가요?
결국 뱃속의 태아를 없애는 건 똑같은 사실인데 표현을 다르게 한다고 사실이 달라지나요? 임산부를 존중하는 표현이 임신 중단이겠지만 낙태라는 씁쓰름한 죄의식이 전혀 없다고도 볼 수 없거든요.

2018-10-08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9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9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9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나라 2018-10-08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죄의식을 느끼기엔 여성인 ‘나‘의 현실이 더 씁쓰름하지요. 현재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할 때 낙태 문제는 오롯이 해당 ‘여성‘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nama 2018-10-08 14:13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나의 현실이 씁쓰름하니까 낙태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낙태 문제를 여성의 판단에 맡기지 못한다는 것이 어처구니 없으면서 역시 씁쓰름합니다.

2018-10-08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9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평택 안성천(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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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6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멋집니다 저쪽 언덕위에 자전거 한대가 보여도 좋겠습니다~ㅎ

nama 2018-10-06 22:24   좋아요 0 | URL
이 길은 자전거도로라서 연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어요. 나름 유명한 곳이라네요. 저는 처음 가본 곳이지요. 이 길을 계속 가면 길가에 코스모스가 말 그대로 흐드러지게 피었어요. 에이, 사진 한 장 더 올리지요.

카알벨루치 2018-10-06 22:24   좋아요 0 | URL
자전거 맞네요 자전거가 어울리는 자전거도로 🚲 ~즐거운 주말 되세요^^

nama 2018-10-06 22:48   좋아요 1 | URL
˝책은 육수, 삶은 뼈.˝ 자꾸 떠오릅니다.
책보다 먼저 걸어야지요.^^

카알벨루치 2018-10-06 23:55   좋아요 0 | URL
코스모스 좋아요 아🎶🤩

spo 2018-10-06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풍이 지난 후에 보는 파란 하늘은 마술같아요~

nama 2018-10-06 22:34   좋아요 0 | URL
잠시 마술같은 풍광에 젖어보네요.^^

spo 2018-10-06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비교불가인 듯 합니다^^

nama 2018-10-06 22:45   좋아요 0 | URL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아름답지요.

sabina 2018-10-06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즘, 자꾸 하늘을 보게 되네요. 그 때마다 하늘은 벅찬 감동을 줍니다.
나마님 사진속 푸른하늘이 마음마저 파랗게 물들입니다.
파랗게 맑아진 마음으로 살라 하는 것 같습니다.

nama 2018-10-07 02:11   좋아요 0 | URL
하늘을 보면 잠시나마 일상의 번잡합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아요.
이쁜 걸 마음이 이뻐지듯 파랗고 맑은 마음이 되지요.

2018-10-07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7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봉정사에 갈 계획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저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제천 새한서점에 다녀올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시간은 오전 6시쯤. 보통 그 시간이면 아침밥을 먹는 시간이라 특별히 일찍 서두른 건 아니었지만 아침밥은 가다가 휴게소에서 사먹기로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편애한다면 좀 그럴까? 영동고속도로의 덕평 휴게소는 복합문화단지 같아서 좋고, 서해안 고속도로의 행담도 휴게소는 자율식당에서 부페처럼 반찬을 골라서 주문하게 되어 있어 천편일률적인 휴게소의 구태에서 벗어나 있어서 좋다.

 

덕평을 건너뛰자는 남편의 제안이 약간 서운했으나 이내 도착한 여주 휴게소에는 다행히 자율식당이 있엇다. 찌게와 국을 멀리하는 우리는 거의 일인분 가격으로 생선까스와 제육볶음, 쭈꾸미까지 맛볼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집에서 내가 해주지 않는 음식들이다.

 

커피까지 마시고 천천히 시간을 끌었으나 서점으로 직행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일렀다. 얼마쯤 가다보니 이정표에 안동이란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안동에 몇 번 가본긴했으나 여기서 안동이 멀지 않다는 게 반가우면서도 이상하게 여겨졌다. 흠, 안동이 먼 곳이 아니었구나. 안동은 권선생 고향인데 우리 딸내미 수능 때 시험 잘 보라고 꽃게장을 담궈줬었지. 딸이 재수하는 바람에 그것도 두 번씩이나...남편과 이런 말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느닷없이 봉정사가 떠올랐다. 마침 엇그제 구매한 유홍준의 <산사 순례>에 봉정사가 소개되어 있었지, 아마.

 

 

 

 

 

 

 

 

 

 

 

 

 

 

 

채 열 쪽이나 읽었던가. 재미있는 다른 책을 읽느라 이 답사기는 겉표지 정도만을 만져봤을 뿐이다. 오히려 잘 되었다. 책을 읽고 가면 책에서 언급한 것을 찾느라고 바쁠 뿐 내 눈의 감식안을 꺼내보지도 못할 수 있다. 예습의 함정이다.

 

과연 유홍준 선생은 책에서 뭐라고 했을까, 궁금히 여기며 탐사에 들어갔다.

 

 

절에 오면 늘 궁금한 게 있다. 주차장은 절에서 멀리 떨어진 초입에 있어 순진한 우리는 당연히 초입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다. 주차장이니까. 그런데 숨을 헐떡이며 걷다보면 다른 차량은 계속 올라가는 거다. 뭐지? 다 스님들이 승차한 차량인가? 절에 거의 다다를 무렵이면 절 바로 코 밑에 있는 또다른 주차장이 눈에 들어온다. 앗! 또 속았어. 그냥 밀고 올라오면 되는데...그러면 뭐하나. 전에도 이랬었다. 절에 가면 무조건 끝까지 올라가보는거야. 아니면 말고. 하면서도 매번 착실하게 초입의 주차장에 차를 대곤 한다. 다음엔 안 속을거야.

 

그건 그렇고. 절로 향하는 진입로에 소나무들이 진한 향을 뿜어내고 있다. 유홍준 교수라면 이 길을 두고 어떤 말을 했을까?

 

'주차장에서 강파른 언덕, 잔솔밭을 가볍게 두어 굽이 넘어가자면 왼쪽 계곡 안쪽으로는 퇴계가 여기서 공부한 것을 기념하여 지은 창암정사와 명옥대라는 그럴듯한 정자가 있지만 지금은 봉정사가 목표인지라 거기에 발길이 닿을 여유가 없다. 여기서 다시 한 굽이 넘어서면 안쪽 주차장과 함께 새로 세운 일주문이 봉정사에 다 왔음을 알려준다. ' -56쪽

 

'안쪽 주차장'이 있다잖은가. 정작 가슴을 친 건 다음 말이다.

 

'일주문을 넘어서면 산길 좌우로는 해묵은 고목들이 높이 치솟아 하늘을 가리는데 그 나무가 굴참나무라는 사실이 차라리 놀랍다. 우리는 보통 야산에 즐비한 작은 참나무만 보아와서 참나무가 이렇게 크게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못한다.(중략)..서울 종묘를 답사했을 때 종묘 숲의 70퍼센트가 참나무인 것을 알았고 참나무의 참모습과 참가치도 그때 들어 배워서 알았다. 그러고나서 봉정사에 다시 왔을 때 나는 여기도 참나무 숲길이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됐으니 사람이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인가를 새삼 깨닫게 됐다.' -57쪽

 

저 '잔솔밭'만 신나게 사진에 담았지 내 눈에는 참나무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니...'모르고 지나치는' 삶을 살면서도 잘난 척하고 살고 있었다는...

 

 

' 봉정사가 세상에 이름 높은 것은 현존하는 목조견물 중 가장 오래된 집인 극락전(국보 제 15호)이 있기 때문이다.'

 

 

극락전.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게 문외한이 보기에도 초기양식이라는 것은 추측이 가능하다.

 

 

 

극락전 내부. 천장을 보면 어떤 견고함과 강직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전문가는 이걸 이렇게 풀어 쓴다.

 

 

'봉정사 극락전의 이 간결하면서도 강한 아름다움은 내부에서 더 잘 보여준다. 곱게 다듬은 기둥들이 모두 유려한 곡선의 배흘림을 하고 있는데 낱낱 부재와 연등천장이 남김없이 다 드러나면서도 뻗고 걸치고 얽힌 결구들이 이 집의 견고성을 과시하듯 단단히 엮여 있다. 그리고 곳곳에 화려한 복화반 받침이 끼여 있어 가벼운 리듬과 변화를 일으킨다.'

 

복화반 받침이 어딨는거야?

 

 

 

진입로에 있는 만세루. 이제야 만세루가 뭔지 겨우 이해하고는 있다만.

 

'봉정사의 절집 진입로는 만세루인 덕휘루 아래로 난 돌계단으로 되어 있다. 정성을 다해 가지런히 쌓았으면서도 천연의 멋을 다치지 않았다. 돌계단을 밟고 만세루를 향하면 품에 안을 듯 압도하는 누각에 몸을 맡기고 싶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누마루 아래로 난 돌계단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서야 안마당으로 들어서게 되니 성역에 들어가는 겸손을 저절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하하하. '반드시...고개를 숙이고서야'... 나에겐 해당이 안 된다. 난 도대체 고개 숙일 일이 없다. 키가 작으니까. 그러니 '겸손'은 내가 따로 배워야 할 덕목이다. 농담!

 

 

 

봉정사 대웅전. 만세루에 누워, 만세루 지붕이 살짝 보이면서 대웅전이 나오게끔 사진을 찍었다. 멋 좀 부려봤다.

 

'봉정사 대웅전 앞마당은 전형적인 산지중정형으로 남북으로는 대웅전과 만세루, 동서로는 선방인 화엄강당과 승방인 무량해회가 포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앞마당에는 석탑이나 석등 같은 일체의 장식물이 없고 반듯한 축대에 반듯한 돌계단이라는 정면성이 강조되어 있다. 수평면에서도 대웅전을 슬쩍 올렸다는 기분이 들 뿐 평면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 단순성과 표정의 절제로 우리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말간 느낌의 절마당을 맛보게 된다.'

 

 

되지 않는 멋만 부렸지 도대체 절마당이 어디메 있나? 절마당을 보긴 본건가?

 

 

극락전과 앞마당.

 

'..극락전의 앞마당은 중정에 귀여운 삼층 석탑이 자리잡고 돌계단 양옆으로는 화단이 있어서 정겨운 공간이 연출되고 그 앞으로는 거칠 것 없이 시원한 전망이 열려 있어서 대웅전 앞마당 같은 엄숙과 위압이 없다. 이 대조적인 두 공간의 병존이 우리로 하여금 봉정사의 가람배치에 경탄을 금하지 못하게 하며 우리나라 산사의 대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찬사를 보내게 하는 것이다.'

 

'귀여운 삼층 석탑'은 찍었는데 돌계단 양옆에 있는 화단은 찍히지도 않았으니 '정겨운 공간' 운운하기도 가련하다. 이쯤되면 자조적인 웃음밖에 안 나온다. 나의 어리석은 무지와 안목없음에 경탄을 금하지 못하게 되니 감히 '우리나라 산사의 대표적인 아름다움'을 입에 올리기에도 남부끄럽다. 그저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영산암 우화루. 설명을 들어본다.

 

'영산암은 낡고 낡은 누마루인 우화루 밑으로 대문이 나 있고 안에 들어서면 서너 채의 승방이 분방하게 배치되어 있다. 안마당은 굴곡과 표정이 많아서 우리가 본 봉정사 대웅전이나 극락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일부러 가산(假山)을 만들고 거기에 괴석과 굽은 향나무를 심고 여름꽃도 갖가지, 관상수도 갖가지다. 툇마루도 있고 누마루도 있고 넓은 정자마루도 있으며 뒤뜰로 이어지는 숨은 공간도 많다. 뭔가 부산스럽고 분주하면서 그런 가운데 질서와 묘미를 찾으려고 한 흔적이 역연하다.'

 

저 우화루를 거쳐 영산암에 들어가보았으나 대단히 부산스럽고 분주해보였다. 툇마루에는 수십 개의 상자가 쌓여 있었고 한쪽 구석에서는 무슨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도저히 사진에 담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름답고 운치있는 공간이라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빨랫줄이 그 어수선함을 대신해준다고나 할까.

 

 

 

영산암을 등지고 우화루 아래에서 내다 본 바깥이 더 인상적이었다. 머리는 조심할 일이 없으나 발은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는 것만 빼고.

 

 

결론.

 

'그러고 보니 봉정사에 와서 우리는 서로 성격이 다른 세 개의 마당을 보았다. 대웅전 앞의 엄숙한 마당, 극락전 앞의 정겨운 마당, 영산암의 감정 표현이 강하게 나타난 복잡한 마당. 마당을 눈여겨볼 줄 알 때 비로소 한옥을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건축의 에센스는 마당에 있다. (중략) 우리의 전통 음악에서는 음과 음의 사이, 전통 회화에서는 여백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던 것처럼 전통 건축에서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방과 방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가 더욱 중요한 공간이었다. 즉 단일 건물보다는 집합으로서의 건축적 조화가 우선이었던 까닭에 그 집합의 중심에 놓이는 비워진 공간인 마당은 우리 건축의 가장 기본적 요소이며 개념이 된다.(중략) 마당은 이처럼 건물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도 또 유기적으로 분할하고 건물의 성격과 표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겉표지의 사진이 바로 봉정사임을 이제사 깨달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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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5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8-10-05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동 봉정사를 다녀오셨군요. 저는 지난 주말에 성묘하러 고향 가는 길에 안동을 슬쩍 지나쳤는데, 우리 일행도 서울에서 새벽 6시쯤 두 대의 차량으로 출발했고, 마침 여주 휴게소에서 만나 ‘아침 식사‘를 했답니다. 거기서 커피도 한 잔씩 사먹었고요. 그런데 저는 고교 3년을 꼬박 안동에서 학교를 다녔으면서도 정작 봉정사엔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네요.(하회마을, 병산서원, 도산서원, 퇴계종택, 이육사 문학관, 농암고택 등도 따지고 보면 결국 어른이 되고 나서야 가봤지만요.) 그렇지만 nama 님이 올려주신 봉정사의 풍경들과 책 속에서 인용해 주신 글들을 보니 급관심이 가네요.

이 책의 표지에 담긴 사진이 봉정사라는 사실은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고, 책 소개글을 더 자세히 살펴 봤더니 이미 들렀던 산사들이 적잖이 눈에 띄어서 더욱 반갑네요. 어쩌다 한두 번쯤 들렀던 산사들인 영주 부석사, 해남 대흥사, 미황사, 고창 선운사, 부안 내소사, 영암 도갑사, 강진 무위사 등등에 대해 유홍준 님은 과연 책에서 어떤 흥미로운 글들을 남겨놓으셨을지도 궁금하네요.

nama 2018-10-05 21:58   좋아요 0 | URL
안동에서 학교를 다니셨군요. 저는 수원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수원화성에는 관심조차 없었지요. 어른이 되어서야 관심을 갖게 되었구요. 때가 되어야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되는 무슨 법칙 같은 게 있는 듯해요.

저도 부석사, 대흥사, 선운사, 내소사, 선암사, 운문사, 수덕사, 개심사, 연곡사. 도갑사 (그러고보니 많이 다니기도 했네요.^^) 등을 다녀봤는데 이 책 읽기가 약간 겁나기도 해요. 살짝 머리가 아파지기도 하고요. 책이 편하게 읽혀지지 않아요. ‘내가 그간 뭘 보고 다닌거야?‘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oren 2018-10-05 22:11   좋아요 0 | URL
수원 화성은 대학 1학년때 따스한 봄날 하루 날 잡아서 일부러 1호선 전철 타고 수원까지 내려가서 구경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결혼하고 보니 처가가 수원이고, 아내도 마침 ‘베레모가 멋있었던‘ 수원여고 출신이라서, 이래저래 수원에 대해서는 차츰 빠삭해 지더군요. 더군다나 대학때 만나 여태 어울리고 있는 친한 친구들 가운데 무려 두 넘이 수성고 출신이라서 수원과는 이래저래 인연이 있는 듯해요. 지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수원여고 여학생들 보고 ‘물여고‘라고 놀렸대나 어쨌다나 하는 이야기도 듣고요.^^

nama 2018-10-05 22:18   좋아요 0 | URL
수원여고. 자주색 베레모, 자주색 교복, 자주색 가방, 자주색 스타킹, 자주색 구두. 개혓바닥 모양의 블라우스 카라. 그렇다면 부인께서는 제 후배쯤 되겠는데요. 우리보다 한 수 낮았던 수성고...우리는 그렇게 여겼었는데 감히 우리를 ‘물여고‘라고 불렀다니...처음 듣는 소리인데요.ㅎㅎ

oren 2018-10-05 22:36   좋아요 0 | URL
제 아내도 수성고가 수원여고 보다는 한 수 아래였다는 말을 틈날 때마다(?) 자주 하긴 하더군요. 그 당시엔 경기도뿐 아니라 충청도 등 전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웬만한 지방 중학교에서는 어쩌다 한 명 입학하기도 어려웠다고 하더군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도 경북 도내에서는 커트라인이 가장 높았던 명문이라고 가끔 우겨 보지만, ‘어디 수원여고에 비교를 하느냐‘는 바람에 번번이 꼬리를 내리긴 합니다.^^

nama 2018-10-05 22:54   좋아요 0 | URL
역시 수원여고 출신이 확실하네요. 약간의 과장도..ㅎ. 전 34회 졸업생이랍니다. 부질없는 이야기지만.

oren 2018-10-05 22:55   좋아요 0 | URL
나중에 아내한테 몇 회 졸업생인지 슬쩍 함 물어봐야겠네요.
혹시나 nama 님과 동기생쯤 될까봐 약간 걱정되기도 합니다.^^

nama 2018-10-05 22:57   좋아요 0 | URL
오호! 기대되네요.^^

oren 2018-10-05 23:05   좋아요 0 | URL
저는 고교 졸업 30주년 행사를 2011년에 했습니다만, 제 아내는 그런 행사를 언제 했는지 잘 모른답니다. 집에서 살림만 하느라 동창 모임엔 거의 안 나가거든요.^^
http://blog.aladin.co.kr/oren/5135761

nama 2018-10-05 23:10   좋아요 0 | URL
동창회에는 가본적이 없지요. 제가 3학년 4반이어서 34회 졸업생이라는 걸 기억할 뿐이에요.^^

nama 2018-10-05 23:18   좋아요 0 | URL
고교졸업 30주년 기념사진들이 감동적이네요. 부러우면 지는 건데 안동고가 수원여고보다 센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우리들 가슴을 주물럭거리곤 해서 #미투에 올릴까 고민하고 있답니다. 잊지못할 고약한 선생님을 두었다는 건 슬픈일이지요.

oren 2018-10-05 23:32   좋아요 0 | URL
허걱~ 그런 고약한 선생님이 있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네요.

oren 2018-10-06 21:21   좋아요 0 | URL
아내에게 물어보니 다행히도(?) nama 님과는 간발의 차이로 동기는 아니네요. 제 아내가 후배인 게 맞고요. 제 아내도 나이가 적잖다고 여기고 있는데, nama 님께서도 연배가 결코 만만치 않으시네요. ㅎㅎ 어쨌든 nama 님께서 제 아내의 선배분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어 더욱 반갑습니다.^^

nama 2018-10-06 21:32   좋아요 0 | URL
두 살 아래의 이종사촌여동생도 수원여고 출신인데 혹시 동기가 아닐까 싶네요.
어떤 선으로 연결되어있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요?^^

oren 2018-10-06 21:42   좋아요 0 | URL
세월이 너무 오래 흐르면 같은 고교 동기를 만났는데도 학창 시절의 옛 얼굴이 퍼뜩 잘 떠오르지 않아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더라구요. 올 봄에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갔다가 그런 경험을 했었지요.(혼주 되는 친구 녀석이 워낙 마당발이라, 고교 졸업후 처음 보는 동기들이 꽤 여럿 나타났더라고요.) 그런데, 여고 동창생들끼리는 그런 경향이 남자들보다 조금 더 심하지 않을까 싶은 상상도 문득 해보게 됩니다.^^

nama 2018-10-06 22:04   좋아요 0 | URL
여고 동창들이 오랜만에 만나면 분명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런 거짓말을 한다고 하지요.
˝어쩜. 넌 옛날 그대로니. 호호호.˝
남들 보기엔 그들이 늙어보이는데도요.

요즘은 작은 결혼식을 많이 하네요. 예전처럼 아는 사람을 모두 불러들이는 그런 결혼식이 점차 사라지는 듯해요.

oren 2018-10-06 22:24   좋아요 0 | URL
결혼식이 확실히 예전과 달라진 건 사실이죠. 이젠 주례 선생님도 없는 결혼식도 흔해 졌고요. 올봄에 있었던 제 친구 녀석의 아들 결혼식에는 신부의 아버님이 주례를 맡아서 깜짝 놀랐답니다. 그날 장가를 간 친구의 아들은 총각 시절에 ‘자전거 여행‘으로만 블라디보스톡에서 영국까지 건너 갔고(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 영국땅에서 신부를 만났더군요. 암튼 그때 아들을 장가 보낸 그 친구 녀석은 오랜 동안 노인들한테 ‘장수 기념 사진‘을 찍어드리느라 아직도 주말이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는 ‘참 마음씨 착한 녀석‘이에요. 여러 해 전에는 우리 마을에도 저와 함께 다녀온 적이 있었고요. http://blog.aladin.co.kr/oren/5903921

nama 2018-10-06 22:57   좋아요 0 | URL
장가간 친구 아들을 보고싶군요. 저는 지난 여름 타클라마칸에 발자국만 찍고 왔는데 그곳을 자전거를 타고 넘었다고요...하기야 히말라야를 자전거로 넘는 사람들도 봤어요. 에고, 저는 자전거도 탈 줄 모르고 운전면허도 없는 오로지 뚜벅이 인생인데요.

‘참 마음씨 착한 녀석‘을 친구로 두셨군요. 그런 분의 아드님이니 여행이나 결혼식이 ‘의식‘이 있군요.

spo 2018-10-0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고 동창생끼리의 거짓말
˝넌 옛날 그대로다˝는 완전한 거짓말은 아닌 듯 싶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어도 분명 친구의 얼굴을 단박에 알아본다는 것은
학생 때 보았던 얼굴이 남아있음입니다.
그러니 옛날 그대로인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사회에서 지금 만나는 분들은, 지금의 내 모습 만 알고 있지만
옛 친구들은 나의 리즈시절(?)을 알고있으니
어릴 적 모습을 기억 해주는 옛 친구들이 더 소중한 이유가
한 가지 더해집니다.

nama 2018-10-06 22:43   좋아요 0 | URL
함께 늙어갈 옛 친구가 있다는 건 인생 5복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서로 늙어가는 모습도 보고 화장발도 필요없는 그런 친구들이 정말로 소중하지요.

spo 2018-10-0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 5복을 다 갖기는 어렵겠죠?
하지만 함께 늙어갈 옛 친구가 있다는 복은 욕심이 납니다.

nama 2018-10-06 23:01   좋아요 0 | URL
내가 먼저 주고, 계산하지 않고, 마음 주고...이런 친구들은 결국 서로의 노력이지요.
 
아는여행 01 : 단양 그리고 영월 아는여행 1
어반플레이 지음 / 어반플레이(URBANPLAY) / 2018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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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전문서점인 새한서점이라고 해서 헌책만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은 새 책이다. 작은 다이어리만한 크기의 책으로 표지디자인이 독특해서 손에 집어들었는데 꼭 사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생협에 가면 공정무역 설탕과 커피가 있듯 이 책은 공정무역 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도시의 대형서점에서는 절대로 다둘 것 같지 않은 책이다. 제호 자체도 <단양 그리고 영월>이다. 단양과 영월에 살거나 그곳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집어들 리 없는 그런 소박한 책이다.

 

'다섯 사람의 로컬 큐레이터

그들이 아는 단양과 영월'

 

다섯 명의 로컬 큐레이터로는 초등학교 교사, 고등학생, 영화감독, 브랜드 파머(농부), 천문학자가 등장해서 자신들의 추억이 깃든 장소, 먹거리 등을 소개한다. 뒷 부분에는 쉴 거리도 소개하고 있어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머물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안내책자가 되리라고 본다.

 

서울만이 살 곳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눈에는 절대로 띌 수 없는, 아주 눈 밝은 독자에게만 보이는 작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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