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에 갈 계획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저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제천 새한서점에 다녀올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시간은 오전 6시쯤. 보통 그 시간이면 아침밥을 먹는 시간이라 특별히 일찍 서두른 건 아니었지만 아침밥은 가다가 휴게소에서 사먹기로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편애한다면 좀 그럴까? 영동고속도로의 덕평 휴게소는 복합문화단지 같아서 좋고, 서해안 고속도로의 행담도 휴게소는 자율식당에서 부페처럼 반찬을 골라서 주문하게 되어 있어 천편일률적인 휴게소의 구태에서 벗어나 있어서 좋다.
덕평을 건너뛰자는 남편의 제안이 약간 서운했으나 이내 도착한 여주 휴게소에는 다행히 자율식당이 있엇다. 찌게와 국을 멀리하는 우리는 거의 일인분 가격으로 생선까스와 제육볶음, 쭈꾸미까지 맛볼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집에서 내가 해주지 않는 음식들이다.
커피까지 마시고 천천히 시간을 끌었으나 서점으로 직행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일렀다. 얼마쯤 가다보니 이정표에 안동이란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안동에 몇 번 가본긴했으나 여기서 안동이 멀지 않다는 게 반가우면서도 이상하게 여겨졌다. 흠, 안동이 먼 곳이 아니었구나. 안동은 권선생 고향인데 우리 딸내미 수능 때 시험 잘 보라고 꽃게장을 담궈줬었지. 딸이 재수하는 바람에 그것도 두 번씩이나...남편과 이런 말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느닷없이 봉정사가 떠올랐다. 마침 엇그제 구매한 유홍준의 <산사 순례>에 봉정사가 소개되어 있었지, 아마.

채 열 쪽이나 읽었던가. 재미있는 다른 책을 읽느라 이 답사기는 겉표지 정도만을 만져봤을 뿐이다. 오히려 잘 되었다. 책을 읽고 가면 책에서 언급한 것을 찾느라고 바쁠 뿐 내 눈의 감식안을 꺼내보지도 못할 수 있다. 예습의 함정이다.
과연 유홍준 선생은 책에서 뭐라고 했을까, 궁금히 여기며 탐사에 들어갔다.

절에 오면 늘 궁금한 게 있다. 주차장은 절에서 멀리 떨어진 초입에 있어 순진한 우리는 당연히 초입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다. 주차장이니까. 그런데 숨을 헐떡이며 걷다보면 다른 차량은 계속 올라가는 거다. 뭐지? 다 스님들이 승차한 차량인가? 절에 거의 다다를 무렵이면 절 바로 코 밑에 있는 또다른 주차장이 눈에 들어온다. 앗! 또 속았어. 그냥 밀고 올라오면 되는데...그러면 뭐하나. 전에도 이랬었다. 절에 가면 무조건 끝까지 올라가보는거야. 아니면 말고. 하면서도 매번 착실하게 초입의 주차장에 차를 대곤 한다. 다음엔 안 속을거야.
그건 그렇고. 절로 향하는 진입로에 소나무들이 진한 향을 뿜어내고 있다. 유홍준 교수라면 이 길을 두고 어떤 말을 했을까?
'주차장에서 강파른 언덕, 잔솔밭을 가볍게 두어 굽이 넘어가자면 왼쪽 계곡 안쪽으로는 퇴계가 여기서 공부한 것을 기념하여 지은 창암정사와 명옥대라는 그럴듯한 정자가 있지만 지금은 봉정사가 목표인지라 거기에 발길이 닿을 여유가 없다. 여기서 다시 한 굽이 넘어서면 안쪽 주차장과 함께 새로 세운 일주문이 봉정사에 다 왔음을 알려준다. ' -56쪽
'안쪽 주차장'이 있다잖은가. 정작 가슴을 친 건 다음 말이다.
'일주문을 넘어서면 산길 좌우로는 해묵은 고목들이 높이 치솟아 하늘을 가리는데 그 나무가 굴참나무라는 사실이 차라리 놀랍다. 우리는 보통 야산에 즐비한 작은 참나무만 보아와서 참나무가 이렇게 크게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못한다.(중략)..서울 종묘를 답사했을 때 종묘 숲의 70퍼센트가 참나무인 것을 알았고 참나무의 참모습과 참가치도 그때 들어 배워서 알았다. 그러고나서 봉정사에 다시 왔을 때 나는 여기도 참나무 숲길이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됐으니 사람이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인가를 새삼 깨닫게 됐다.' -57쪽
저 '잔솔밭'만 신나게 사진에 담았지 내 눈에는 참나무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니...'모르고 지나치는' 삶을 살면서도 잘난 척하고 살고 있었다는...
' 봉정사가 세상에 이름 높은 것은 현존하는 목조견물 중 가장 오래된 집인 극락전(국보 제 15호)이 있기 때문이다.'

극락전.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게 문외한이 보기에도 초기양식이라는 것은 추측이 가능하다.

극락전 내부. 천장을 보면 어떤 견고함과 강직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전문가는 이걸 이렇게 풀어 쓴다.
'봉정사 극락전의 이 간결하면서도 강한 아름다움은 내부에서 더 잘 보여준다. 곱게 다듬은 기둥들이 모두 유려한 곡선의 배흘림을 하고 있는데 낱낱 부재와 연등천장이 남김없이 다 드러나면서도 뻗고 걸치고 얽힌 결구들이 이 집의 견고성을 과시하듯 단단히 엮여 있다. 그리고 곳곳에 화려한 복화반 받침이 끼여 있어 가벼운 리듬과 변화를 일으킨다.'
복화반 받침이 어딨는거야?

진입로에 있는 만세루. 이제야 만세루가 뭔지 겨우 이해하고는 있다만.
'봉정사의 절집 진입로는 만세루인 덕휘루 아래로 난 돌계단으로 되어 있다. 정성을 다해 가지런히 쌓았으면서도 천연의 멋을 다치지 않았다. 돌계단을 밟고 만세루를 향하면 품에 안을 듯 압도하는 누각에 몸을 맡기고 싶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누마루 아래로 난 돌계단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서야 안마당으로 들어서게 되니 성역에 들어가는 겸손을 저절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하하하. '반드시...고개를 숙이고서야'... 나에겐 해당이 안 된다. 난 도대체 고개 숙일 일이 없다. 키가 작으니까. 그러니 '겸손'은 내가 따로 배워야 할 덕목이다. 농담!

봉정사 대웅전. 만세루에 누워, 만세루 지붕이 살짝 보이면서 대웅전이 나오게끔 사진을 찍었다. 멋 좀 부려봤다.
'봉정사 대웅전 앞마당은 전형적인 산지중정형으로 남북으로는 대웅전과 만세루, 동서로는 선방인 화엄강당과 승방인 무량해회가 포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앞마당에는 석탑이나 석등 같은 일체의 장식물이 없고 반듯한 축대에 반듯한 돌계단이라는 정면성이 강조되어 있다. 수평면에서도 대웅전을 슬쩍 올렸다는 기분이 들 뿐 평면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 단순성과 표정의 절제로 우리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말간 느낌의 절마당을 맛보게 된다.'
되지 않는 멋만 부렸지 도대체 절마당이 어디메 있나? 절마당을 보긴 본건가?

극락전과 앞마당.
'..극락전의 앞마당은 중정에 귀여운 삼층 석탑이 자리잡고 돌계단 양옆으로는 화단이 있어서 정겨운 공간이 연출되고 그 앞으로는 거칠 것 없이 시원한 전망이 열려 있어서 대웅전 앞마당 같은 엄숙과 위압이 없다. 이 대조적인 두 공간의 병존이 우리로 하여금 봉정사의 가람배치에 경탄을 금하지 못하게 하며 우리나라 산사의 대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찬사를 보내게 하는 것이다.'
'귀여운 삼층 석탑'은 찍었는데 돌계단 양옆에 있는 화단은 찍히지도 않았으니 '정겨운 공간' 운운하기도 가련하다. 이쯤되면 자조적인 웃음밖에 안 나온다. 나의 어리석은 무지와 안목없음에 경탄을 금하지 못하게 되니 감히 '우리나라 산사의 대표적인 아름다움'을 입에 올리기에도 남부끄럽다. 그저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영산암 우화루. 설명을 들어본다.
'영산암은 낡고 낡은 누마루인 우화루 밑으로 대문이 나 있고 안에 들어서면 서너 채의 승방이 분방하게 배치되어 있다. 안마당은 굴곡과 표정이 많아서 우리가 본 봉정사 대웅전이나 극락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일부러 가산(假山)을 만들고 거기에 괴석과 굽은 향나무를 심고 여름꽃도 갖가지, 관상수도 갖가지다. 툇마루도 있고 누마루도 있고 넓은 정자마루도 있으며 뒤뜰로 이어지는 숨은 공간도 많다. 뭔가 부산스럽고 분주하면서 그런 가운데 질서와 묘미를 찾으려고 한 흔적이 역연하다.'
저 우화루를 거쳐 영산암에 들어가보았으나 대단히 부산스럽고 분주해보였다. 툇마루에는 수십 개의 상자가 쌓여 있었고 한쪽 구석에서는 무슨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도저히 사진에 담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름답고 운치있는 공간이라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빨랫줄이 그 어수선함을 대신해준다고나 할까.

영산암을 등지고 우화루 아래에서 내다 본 바깥이 더 인상적이었다. 머리는 조심할 일이 없으나 발은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는 것만 빼고.
결론.
'그러고 보니 봉정사에 와서 우리는 서로 성격이 다른 세 개의 마당을 보았다. 대웅전 앞의 엄숙한 마당, 극락전 앞의 정겨운 마당, 영산암의 감정 표현이 강하게 나타난 복잡한 마당. 마당을 눈여겨볼 줄 알 때 비로소 한옥을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건축의 에센스는 마당에 있다. (중략) 우리의 전통 음악에서는 음과 음의 사이, 전통 회화에서는 여백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던 것처럼 전통 건축에서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방과 방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가 더욱 중요한 공간이었다. 즉 단일 건물보다는 집합으로서의 건축적 조화가 우선이었던 까닭에 그 집합의 중심에 놓이는 비워진 공간인 마당은 우리 건축의 가장 기본적 요소이며 개념이 된다.(중략) 마당은 이처럼 건물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도 또 유기적으로 분할하고 건물의 성격과 표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겉표지의 사진이 바로 봉정사임을 이제사 깨달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