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먼저 먼저 학교에서 딱 한번 비담임을 해봤으니 그간 줄기차게 담임을 한 셈이다. 한 학교에서 5년 근무하니까 15~16년만에 비담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드디어.

 

부장교사나 원로교사가 아닌 이상 중학교에서 비담임이 되는 건 매우 어렵다. 부장교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 영역이 아닌 것 같고, 원로가 되기에는 아직 때 이른 애매한 상황에서, 차라리 비담임으로 남으면서 대신 업무를 맡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도서관장이 되었다. 물론 아무도 도서관장이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도서실담당자에서 도서관장으로 승격시켰을 뿐이다. 아무렴 어떠랴. 면적으로 따지면 도서실보다 더 큰 교실이나 교무실은 없다. 체육관 빼고.

 

그러나 사서교사 없는 도서관의 실상을 짐작조차 못하고 덜컥 맡은 도서관 일은...어렵다. 컴퓨터 작업이 왜 이리 많은지...담임이었을 때는 눈치껏 어깨너머로 따라하면 되는데 이 일은 따라할 사람도 없다. 3시간 연수 받은 게 전부다.

 

이 시점에서 깨달은 사실 하나. '사서'가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었구나!

 

다행인 것은 제자 중에 사서가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은 그 제자한테 한 수 배웠는데, 선생이 제자가 된 셈이다. 흠, 그것도 괜찮았다. 배우는 게 도대체 끝이 없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 5년차, 즉 마지막 해이다. 내년 이맘때는 다른 학교에 있을 터이다.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이다 싶어 제대로 해야겠다는, 모처럼의 다짐이 오래가야 할 텐데...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초임시절의 어리둥절함, 막무가내,  얼렁뚱땅, 그리고 약간의 설레임이 있다. 살아있는 느낌 같은 것? 여행지에서 맞닥뜨리는 낯설음과도 닮았다. 다만 여행지에서의 실수를 닮지 말아야 할 텐데...좀 걱정이다. 잘한 짓인지 모르겠다.

 

도서관장이 되기까지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것은, 아마도 이 알라딘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 놀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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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3-13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장님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ㅋㅋ

nama 2015-03-14 09:20   좋아요 0 | URL
취임 ? ㅋㅋㅋ
오늘 아침도 7시30분~9시까지 컴퓨터와 씨름했다는...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원맨쇼.
 

 

 

 

 

 

 

 

 

 

 

 

 

 

얼마 전 <일단은 즐기고 보련다>를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이 책. 도서관 서가에서 눈에 들어올 때마다 읽을까 말까를 망설였었다. 그러기를 4년 째, 드디어 오늘 읽었다. 그간 이유도 없는 약간의 선입견 때문에 주저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이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웃음과 눈물로 범벅이 되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깨끗하게 읽었다. 생선살을 깨끗이 발라먹듯이.

 

재미와 감동. 이 낡은 표현이 이 책에는 참 잘 어울린다. 시간을 이겨내고 이 책이 부디 오래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이다. 출간된 지 오래되었다고 도서관 서가에서 사라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나 같은 눈 어두운 독자에게도 기회를 줘야하니까.

 

나는 아무래도 재미보다는 눈물을 찔끔 흘리게 하는 부분에 더 마음이 머문다.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면 함께 울었을 지도 모른다.

 

  살기가 힘들어서 죽을 결심을 하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찾아뵈었을 때, 내 마음을 아시기라도 한 듯 어머니께선 내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넌 이제 괜찮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더 이상 망할 것도 없다. 맨 밑바닥까지 갔으니 이젠 올라오는 길밖에 안 남았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머니의 그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나는 다시 일어섰다. (133쪽)

 

자식 키우던 얘기 하나 더.

 

   나는 아이들을 참 엄하게 키웠다. 십수 년이 지난 뒤까지도 마음에 걸린 일이 있다. 아버지 장례식 때 문상객들 있는 데서 작은애가 밥투정을 하며 칭얼댔다. 어른들 앞에서 야단치긴 그렇고, 그냥 두지도 못하겠고 그래서 밖으로 업고 나갔다. 다섯 살배기 아들은 과자라도 사줄 줄 알았는지 등에 업혀 노래를 불렀다. 그런 걸 집 뒤 산으로 올라가서 눈밭 위에 내려놓고 느닷없이 뺨을 때렸다. 대번에 코피가 터졌는데 닦아주지도 않고 눈으로 닦으라고 소리쳤더니 울지도 못한 채 눈을 뭉쳐 피를 닦아냈다. 왜 맞았는지 설명해 주었더니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눈 위에 무릎 꿇고 앉아 고사리 손 모아 쥐고 싹싹 빌었다. 그후로 밥상 앞에서 칭얼대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일이 오랫동안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얼마 전에 아들에게 "이 에미가 너무 엄하게 대해 미안하다"고 그때의 일을 적어 사과 메일을 보냈다. 아들은 답장을 보내왔다. "아이구, 어머니가 이제 늙으셨나봐요. 전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상처로 남았을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말해 주는 아들에게 더 미안하고 고마웠다. (143쪽)

.

힘들게 길을 걸으면 그만큼 현명해지는 걸까? 더 겸손해지고 겸허해질까? 더욱 더 자연에 가까워질까?

 

자연의 모습을 담으며 아들이 더 낮아지고 작아지는 법을 배울 수 있길 바란다. (231쪽)

 

어느 날 직장과 직업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서 길을 헤매게 될 때 나는 이 분의 결단과 한 발 한 발 내디딘 그 용기를 흉내내게 될 지 모르겠다. 꼭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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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7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9 0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3-07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설프게 머리로 한 생각으로 쓴 글보다 이렇게 몸으로 겪고 몸으로 단련된 글에서 감동을 받을때가 있지요. 저도 이 책 꽤 오래전에 읽었는데 인용해주신 부분은 지금도 기억이 나요. 지금은 돌아가신 저자의 어머니 사시는 모습이 TV 인간극장에서 방송된 적이 있어서 봤는데 저자 블로그에서 힘들게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시는 과정 읽으며 저도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nama 2015-03-09 07:16   좋아요 0 | URL
울림이 큰 책이에요. 친구들에게 <일단은 즐기고 보련다>를 추천했는데 이 책으로 바꿔야할 것 같아요.^^
 

 

 

 

 

 

 

 

 

 

 

 

 

소설가 전경린의 네팔여행기. 10년 전 여행기를 읽는 건 철 지난 바닷가를 정처없이 거니는 것과 같다. 눈이 꽂히는대로 읽다가 마음이 머무는 곳을 찾아냈다.

 

<나는, 꼭 가지고 싶은 것은, 마음을 다해 가집니다.>

 

   경허 스님은 술을 좋아해서 즐겨 마셨다고 한다. 어느 날 술을 마시며 파전을 맛나게 먹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보던 다른 스님이 은근히 나무라며 자신의 무심함을 자랑삼아 말했다.

"여보게 경허, 나는 파전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또 그만이라네. 자네는 어떤가?"

"나는 파전이 먹고 싶으면, 장에 가서 파씨를 구해다가 땅을 갈아서 씨를 뿌리고 한철을 키워서 파가 자라면 밀가루와 잘 버무려서 이렇게 맛나게 부쳐 먹는다네."

   그러자 스님은 경허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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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만나서 동대문시장에 갔다가 지인의 지인인 화가의 전시회를 보러 갔다.

 

화가 김종숙. 이 전시회의 정보는 한겨레신문을 통해서였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679786.html

 

검색해보니 박기범의 아래 책에 삽화를 그린 분이었다.

 

 

 

 

 

 

 

 

 

 

 

 

 전시회장의 또 다른 방에서 <그 꿈들>의 삽화그림도 전시하고 있다.

 

그림은....짠하면서 힘찬 느낌이다. 매우 강하다.

 

카메라를 들고 있었지만 감히(?) 찍지는 않았다. 사람을 마주보며 아무런 허락없이 사진을 찍는 행위 같아서였다. 함께 간 친구들에게 지인에게서 얻어들은 화가의 이력을 대충 설명해주며 그림감상에 들어갔는데...친구들 마음에 그림이 박히기 시작했다. 잠시 후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서로에게 그림을 사라고 종용내지는 권유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화가에게 직접 그림을 사는 건 아니고 큐레이터를 통해서 사는 것이라는 친구A의 말에 따라 친구B가 담당 큐레이터의 명함을 얻어가지고 왔다. 건대앞에서 생선구이 식당을 하는 친구B는 전시회 그림중 <열갱이>그림을 마음으로 점찍고 있었는데, 평생 그림구입을 해본 적이 없은 처지들이라 이런 과정들이 너무나 멋적고 낯설어서 망설이기만 했다. 일단 전화나 해보자고 친구C와 내가 서두르자 친구B가 번호를 누르고 친구A가 통화를 시도했다. 결과는....직접 작가와 협의해보란다.

 

우여곡절 끝에 가격을 알게 되었는데...평생 그림 한점 사본 적 없는 소심한 우리들은 침만 흘리고 말았다는. 100만원 넘는 그림가격에 발발 떨어서야 어디 평생 그림 한 점 사겠는가.

 

그간 이런저런 그림 전시회를 다녀보았지만 그림을 사고 싶은 생각은 거의 한번도 들지 않았었다. 집에 걸어둘 공간도 없고 돈도 그렇고... 그러나 이 화가의 그림을 보고 강한 구매욕구를 느꼈다. 삶의 고달픔과 말 못할 슬픔이 붓질 하나하나 비늘처럼 박혀있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 아픔을 그려넣은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너무나 강렬해서 내 슬픔이 알알이 떠오르다가 결국 눈물이 핑돌게 된다. 그런데 그림에는 또한 힘이 있다. 그게 슬픔을 이겨내는 힘인지, 힘을 내서 살아보자는 결의인지, 슬픔에도 힘이 있다는 역설인지는 모르지만 힘이 있는 그림임에는 틀림없다. 묘한 매력이다.

 

질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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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1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1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ojin 2015-03-04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속도다` 전시회 후기 잘 읽었습니다.
˝질러보고싶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nama 2015-03-04 19:32   좋아요 0 | URL
전시회 제목이 `속초다`인데요....`강원도` 화가라는 게 중요한 듯싶어서요.
 

 

 

 

 

 

 

 

 

 

 

 

 

 

도서관에서 빌려서는 며칠째 가방 속에 넣고 다니다가 드디어 읽기 시작했다. 학교는 2월이 연말이고 3월이 연시라서 좀 어수선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어제는 송별회가 있었다. 모든 작별은 감추어둔 외로움을 들춰내는지 외로움 실린 송별주 두어 잔에 위장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속이 쓰리다.

 

소설가 김탁환이 라디오에서 이야기했던 소설들을 글로 정리한 책이다. 그런 방송이 있는 지는 잘 모른다. 내게 라디오란 오전6시와 오후6시에, 아침밥 지을 때와 저녁밥 지을 때 잠깐씩 듣는 음악방송이 전부이다.

 

목차를 훑어보고 마음이 동하는 부분 먼저 읽는다. 놀란다. 이렇게나 좋은 소설들이 있었던거야? 하고. 늘 깨닫는 것이지만 내가 접하는 부분은 늘 한정되어 있다. 그래도 요즘은 책 꽤나 들춰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사실 별 게 없다. 한심한 건 아닌데 시원찮다. '분발'이라는 단어가 번뜩 떠오르지만 분발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는 이 한가운 마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구미가 당긴 소설은 그냥 보관함에 넣어둔다. 그런데 난 왜 이런 '책에 관해 쓴 책'을 찾아 읽고 있는가? 마음 한편에선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안 읽어도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달콤하다. 다이제스트격인 이 소설이야기에 빠져있다보면 나름 만족감이 생기나보다. 참을 수 없는 독서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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