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단은 즐기고 보련다>를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이 책. 도서관 서가에서 눈에 들어올 때마다 읽을까 말까를 망설였었다. 그러기를 4년 째, 드디어 오늘 읽었다. 그간 이유도 없는 약간의 선입견 때문에 주저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이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웃음과 눈물로 범벅이 되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깨끗하게 읽었다. 생선살을 깨끗이 발라먹듯이.

 

재미와 감동. 이 낡은 표현이 이 책에는 참 잘 어울린다. 시간을 이겨내고 이 책이 부디 오래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이다. 출간된 지 오래되었다고 도서관 서가에서 사라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나 같은 눈 어두운 독자에게도 기회를 줘야하니까.

 

나는 아무래도 재미보다는 눈물을 찔끔 흘리게 하는 부분에 더 마음이 머문다.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면 함께 울었을 지도 모른다.

 

  살기가 힘들어서 죽을 결심을 하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찾아뵈었을 때, 내 마음을 아시기라도 한 듯 어머니께선 내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넌 이제 괜찮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더 이상 망할 것도 없다. 맨 밑바닥까지 갔으니 이젠 올라오는 길밖에 안 남았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머니의 그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나는 다시 일어섰다. (133쪽)

 

자식 키우던 얘기 하나 더.

 

   나는 아이들을 참 엄하게 키웠다. 십수 년이 지난 뒤까지도 마음에 걸린 일이 있다. 아버지 장례식 때 문상객들 있는 데서 작은애가 밥투정을 하며 칭얼댔다. 어른들 앞에서 야단치긴 그렇고, 그냥 두지도 못하겠고 그래서 밖으로 업고 나갔다. 다섯 살배기 아들은 과자라도 사줄 줄 알았는지 등에 업혀 노래를 불렀다. 그런 걸 집 뒤 산으로 올라가서 눈밭 위에 내려놓고 느닷없이 뺨을 때렸다. 대번에 코피가 터졌는데 닦아주지도 않고 눈으로 닦으라고 소리쳤더니 울지도 못한 채 눈을 뭉쳐 피를 닦아냈다. 왜 맞았는지 설명해 주었더니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눈 위에 무릎 꿇고 앉아 고사리 손 모아 쥐고 싹싹 빌었다. 그후로 밥상 앞에서 칭얼대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일이 오랫동안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얼마 전에 아들에게 "이 에미가 너무 엄하게 대해 미안하다"고 그때의 일을 적어 사과 메일을 보냈다. 아들은 답장을 보내왔다. "아이구, 어머니가 이제 늙으셨나봐요. 전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상처로 남았을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말해 주는 아들에게 더 미안하고 고마웠다. (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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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길을 걸으면 그만큼 현명해지는 걸까? 더 겸손해지고 겸허해질까? 더욱 더 자연에 가까워질까?

 

자연의 모습을 담으며 아들이 더 낮아지고 작아지는 법을 배울 수 있길 바란다. (231쪽)

 

어느 날 직장과 직업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서 길을 헤매게 될 때 나는 이 분의 결단과 한 발 한 발 내디딘 그 용기를 흉내내게 될 지 모르겠다. 꼭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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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7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9 0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3-07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설프게 머리로 한 생각으로 쓴 글보다 이렇게 몸으로 겪고 몸으로 단련된 글에서 감동을 받을때가 있지요. 저도 이 책 꽤 오래전에 읽었는데 인용해주신 부분은 지금도 기억이 나요. 지금은 돌아가신 저자의 어머니 사시는 모습이 TV 인간극장에서 방송된 적이 있어서 봤는데 저자 블로그에서 힘들게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시는 과정 읽으며 저도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nama 2015-03-09 07:16   좋아요 0 | URL
울림이 큰 책이에요. 친구들에게 <일단은 즐기고 보련다>를 추천했는데 이 책으로 바꿔야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