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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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작가의 죽음을 생각하는 방식을 읽다보면, 죽을 때 친절하고 고상하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죽는 것을 미리 맛볼 수야 없지만 죽는 것 또한 다른 삶의 기술처럼 공부하고 대처해야 할 대상이다. 제대로 살고 싶듯, 제대로 죽고 싶다.

 

죽음에 대한 책이건만, 매우 유쾌하다.

 

암 따위로 으스대지 마시길. 훨씬 고통스러운 병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류머티즘이나 진행성근위축증도 있고, 죽을 때까지 인공투석을 해야 하는 병도 있다.

 

직접 암에 걸린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제일 아프다고 하지 않는가. 배포가 대단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또 하나, 류머티즘이 암보다 상위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프긴 아프지, 그것도 늘.

 

구두쇠가 싫은 이유는 쩨쩨함이 전염되기 때문이다. 나는 구두쇠가 아니다. 그래봤자 돈이지 않은가. 하지만 인색한 사람을 만나면 내 안에 깊숙이 파묻혀 있던 구두쇠 기질이 꿈틀꿈틀 똬리를 풀고 표면 위로 고개를 쳐든다. 나는 스스로를 추하고 좀스러운 인간이라고 여긴다. 괴롭게도 이런 나조차 쩨쩨함의 전염은 피할 수 없다.

 

이런 문장을 어디서 만나리. 구두쇠에 대한 깊은 통찰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돈과 목숨을 아끼지 말라."

"인간은 구부러진 새끼손가락을 펴기 위해서는 천 리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반면 성격을 고쳐줄 수 있는 사람이 이웃에 살아도 찾아가지 않지."

 

조금 많이 찔렸다. 아픈 손가락을 고치고자 여기저기 병원쇼핑을 다니는 내 꼴이 딱 이런 모양이다. 내 성격에 대해 내 앞에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지, 아마.

알량한 자존심부터 내세우겠지, 바보스럽게.

 

지금이 인생 중 가장 행복하다.

일흔은 죽기에 딱 적당한 나이다.

미련 따윈 없다. 일을 싫어하니 반드시 하고 싶은 일도 당연히 없다.

 

이 말 마음에 든다. '일을 싫어하니 반드시 하고 싶은 일도 당연히 없다.' 나도 뼛속 깊이 일을 싫어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반드시 하고 싶은 일도 없다.' 그런데 행복한가? 일흔쯤 되면 알게 될까?

 

나는 학교 선생과 의사가 너무 싫다.

그 치들의 눈높이는 우리와 같았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권위 속에 몸을 푹 담근 불친절한 의사를 만나면 나는 속으로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곤 한다. "당신도 내 병과 똑같은 병에 걸려봐라." 나도 학교 선생을 그렇게 싫어하고 못마땅해 했는데,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다는....나의 근본적인 모순과 불행의 시작?

 

나는 돈이 없을 때에도 돈을 잘 쓰는 게 자랑이다.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 하는 이런 말은 멋져 보인다. 정말 돈이 없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히라이: 생물학의 입장에서 보면 종족 보존은 생물의 가장 큰 존재 목적입니다. 그래서 종족 보존을 위해서라면 유전자는 무엇이든 하는 거죠. 연어는 강을 몇백 킬로미터나 거슬러 올라가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어도 저절로 나아요. 산란이 끝날 때까지는 어딘가 부서져도 유전자 프로그램이 고쳐주기 때문이죠. 그리고 자식을 낳습니다. 산란이 끝나면 '네,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유전자 프로그램이 딱 끊겨 없어집니다. 그런 다음 픽 하고 죽는 거죠. 인간도 유전자가 제대로 힘을 발휘해주는 시기는 쉰 살에서 쉰다섯 살 정도까지예요.

 

사노: 그 뒤로는 쓸모없다는 거군요.(웃음)

 

히라이: 쓸모없달까.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면, 요컨대 쉰다섯 이후로는 개인차가 굉장히 크게 벌어집니다. 생활 습관에 따라 상태가 좋은 사람은 건강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점점 나빠져요. 쉰 살까지는 유전자가 생존·생식 모드로 프로그램밍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등하게 건강히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사노: 맞아요. 노인의 개인차는 정말로 크죠.

 

히라이: 진짜 커요. 그래서 쉰다섯 살 이후 종족 보존이 끝나면 사회적으로는 세상을 위해서, 또 남들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일지언정 생물학적으로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됩니다.

 

사노: 결국 어떤 동물이든 태어나서 생식하고 죽는 게 다 잖아요? 

 

쉰 살까지는 유전자가 생존·생식 모드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는 이 말에 그간의 내 모든 신체적인 고통과 통증의 원인이 단번에 파악되었다. 흡연과 음주와도 거리가 멀고, 15년 이상 꾸준히 매일 1시간씩 걷고, 음식도 욕심부리지 않고 적당히 먹었는데 내 몸이 왜 이리 망가져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최근 유방암에 걸린 내 친구도  나와 비슷한 말을 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나는 심지어 이런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저주받은 유전자 때문'이라고. 자식으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한 부모님을 끝까지 원망하는 이런 못된 자식이라니...내 몸은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었을 뿐이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이 깊은 깨달음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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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2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2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4-02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무래도 이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네요. 다른 문제도 아니고 죽음에 대해서 이 정도 경지에 이를 수 있을 정도라면 작가가 참 대단한 사람이다 싶어요.
나는 내 몸에 대해 나쁜 일을 한 적 없는데 여기 저기 아프면 정말 속상하지요. 그때문에 더 울적해질 수도 있고요.

nama 2017-04-02 20:30   좋아요 0 | URL
읽을 만해요. 책이 얇아 금방 읽어버리는 게 좀 아쉽긴해요.
내 몸이 아픈 데는 원인이 없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어요. 속상하긴 하지만 위 주장처럼 쉰 다섯이 넘었다면 그렇게 속상해할 필요도 없을 듯해요. 평균수준의 건강한 삶을 유지해왔다고 생각하면 고맙기도 한 일이지요. 이 책에서 얻은 위안이라고 할까요.^^
 

 

서재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박이문 선생의 책을 뒤져보았다. 20대의 백수시절을 뜻깊게 했던 책들 중에는 <하나만의 선택>이 있었다. 고상한 책들이 있어, 막연한 시절이었지만 고상(?) 한 시절이기도 했다. 지금은 책에 밑줄 하나 긋지 않고 곱게 보지만 예전에는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는데 그 흔적들이 보인다. 내 젊은 날의 흔적이어서 반갑다. 그중 몇 줄.

 

종교 발생의 가장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모든 것을 설명코자 하는 인간 이성의 요구에 있다고 믿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종교도 하나의 지식이다.

 

신을 믿지 않더라도 가장 고귀한 정신적 행위는 가능하다.

 

니이체는 참다운 초인의 싹을 스스로의 충동적 본능을 극복하고 창조적인 일에 전념하는 사람들 속에 있다고 본다.

 

 등등....

 

 

 

물론 이 책을 다 읽은 건 아니다. 언젠가 읽겠지 했는데 아직 못 읽었다. 고상한 시절은 쉬이 오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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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유가 궁금하다. 뭔가 이곳과는 다른 것이 있으리라. 그래서 읽은 두 권의 책.

 

 

 

 

 

 

 

 

 

 

 

 

 

 

이 책은 치앙마이를 효율적으로 여행하기 위한 안내서가 되겠다. 주로 먹거리, 즐길거리 등 전형적인 소비지향적 여행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태국관광청 추천 도서'라고 쓰여 있듯, 정보는 알차지만.... 좀 내 취향은 아니다. 내게는 너무나 과한 정보다.

 

 

 

 

 

 

 

 

 

 

 

 

 

 

치앙마이에서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라 조분조분하고 정겹다. <치앙마이를 가장 멋지게...>가 피상적으로 읽히는 반면(이런류 안내서는 여행후에야 눈에 더 잘 들어온다.), 이 책은 굳이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지명 따위가 머리에 쉽게 입력된다. 공부도 스토리가 있어야 이해가 빠르고 길게 간다. 치앙마이로 여행가기 전 예습 서적으로 알맞다. 꿈을 꾸게 하고 설레게 한다. 이런 좋은 책은 새 책을 구입해야 저자에게 도움이 되는 건데..... 중고책으로 산 게 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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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지 않은 담장으로 둘러싼 작은 텃밭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텃밭의 동백나무 한 그루 대신 담장에 그려진 동백꽃이어도 좋다.

 

 

 

통영 동피랑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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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녀온 딸아이가 선물로 사다준 동백꽃 우산. 봄비가 내리는 날, 동백꽃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퇴근해야지, 벼르고 있는데 아직 비 소식이 없다. 박인수의 목소리로 <봄비>까지 듣는다면...좀 징그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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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3-21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오는 날 쓰기엔 너무 예쁜 우산인데요.^^
nama님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nama 2017-03-22 07:48   좋아요 1 | URL
아깝긴하나 제 몫을 해야 아름답지요.^^
고맙습니다.

하나 2017-03-22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백꽃과 비내리는 풍경의 어우러짐~ 기대되네용

nama 2017-03-22 11:54   좋아요 0 | URL
비 내리는 풍경을 사진 찍어서 올리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