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을 먹고, 손가락만 까딱하면 영화상영시간 알아보는 것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냥 가서 표 끊고 기다리면 되겠지 싶어 아무 의심없이 영화를 보러 갔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영화상영은 딱 세 차례. 08:30, 12:00, 17:00.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조조영화를 보기 위해 일요일지만 마음 먹고 일찍 일어났다.

 

 

mbc PD 였던 최승호의 집요함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영화이리라. 기록의 힘 내지는 중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덕분에 모호했던 그간의 언론탄압 과정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무관심과 게으름으로 저간의 사정에 어두웠는데 이 영화 한 편으로 미안한 마음을 살짝 덜어낼 수 있었다. 영화 한 편으로 면죄부를 산 느낌이랄까.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지던 날. 과 친구들과 잔디밭에 앉아 교내사진사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던 날이었다. 그날 사진을 왜 찍었을까. 다음 해 5.18 때는 또 다시 내린 휴교령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는 것도 없었고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뭔가를 궁리하는 것조차 금지된 시간이었다.

 

우리 부모세대에게 6,25가 있었다면 우리세대에게는 5.18과 세월호가 있다. 우리세대에게 의무가 있다면 우리가 세상에 남아 있는 날까지 제대로 알고 기억하고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지만, 내가 알고 기억하고 저항하는 한 세상은 변하지 않을 수 없다는 믿음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영화관람이 참여의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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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생활에 익숙한 나 같은 생활인에게 치앙마이는 내 생활 패턴을 바꿔야만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더운 곳이라서 그런지 뜨거운 대낮에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다. 한낮엔 그저 숙소에 들어와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거나 냉방이 잘 된 카페에서 더위를 식히거나 하는 정도의 일 밖에 없다. 그러다가 더위가 한풀 꺾이고 난 저녁부터는 도시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도시 곳곳에 야시장이 서고 노점식당들이 앞을 다투며 문을 열기 시작하는데, 이 사람들은 저녁밥을 모두 나와서 먹나 싶을 정도이다. 매일 매일 밤이 축제 같다. 단지 며칠 머무르는 우리 가족을 위해 이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을 리는 없을 테니 매일 밤이 이렇다면 이곳에서 한 철쯤 보내는 것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제주 한달살이' 처럼 '치앙마이 한달살이'를 꿈꾸는 것이겠지. 실제로 애들 데리고 나와서 치앙마이 한달살이하는 젊은 엄마를 본 적도 있다.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살림하면서 살아보는 일이 있을까, 내 생전에...

 

 

환율 좋은 환전소를 찾아가는 도중 타패게이트에서 공연하는 한 무리를 보았다. 단박에 그들이 프로임을 알 수 있는 내 프로 감각. 환전을 하고 돌아오니 여전히 그들은 공연삼매경에 젖어 있었다.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가 저절로 그들 앞에 있는 판매용 cd를 사고 말았다. 가격은 너무나도 착한 100바트(약 3,400원) 돌아와서 유튜브를 검색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에 올려놨다. 감상하시라.

 

 

TuKu Didgeridoo Band라고 검색하면 동영상이 여러 개 뜨는데 위 동영상이 내가 밤에 본 풍경과 비슷하다.

 

오로지 음악만하면서 살아가는 듯한 저 거리 예술가들이 부디 그들의 꿈대로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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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 제일 성가신 것은, 제일 흔하고 만만한 대중교통 수단인 송태우(트럭을 개조한 것)를 타는 일이다. 여행안내서에는 하나같이 요금을 흥정한 후 타라고 쓰여 있는데 며칠 지내고보니 그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물론 거리가 먼 경우에는 흥정이 필요하지만 가까운 경우에는 그냥 짧게 행선지만 말하고 타면 된다. 이런 식이다.

 

-여행 초반

나: 마야 쇼핑몰까지 얼마예요?

송태우기사: 일인당 40바트입니다.

나: 30바트로 합시다.

기사: 오케이

 

-여행 중반

나: 마야 쇼핑몰 가나요?

기사: 오케이

 

내릴 때 3인 분으로 100바트짜리를 낸다. 그러면 기사가 알아서 40바트를 거슬러준다.

 

-여행 후반

나:(단호하고 짧게) 마야!

기사:(고개만 끄덕)

 

내릴 때 3인 분으로 60바트를 내면 기사가 밝은 얼굴로 요금을 받는다.

 

 

가격이 언제 올랐는 지는 모르지만 송태우 지붕에는  일인당 요금이 30바트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대부분 20바트씩을 내고 있다. 눈치껏 할 일이다.

 

 

이렇게 적으니까 속지 않고 제대로 다니는 것 같지만....공항에서 시내로 처음 진입할 때는 언제나, 어디서나(세계 어디서나!) 바가지 택시요금에 당하고 만다. 치앙마이에서도 그랬다. 1층 출구에서 택시요금을 지불하면 곧바로 택시를 탈 수 있는데 요금이 300바트였다. 예약한 숙소주인의 이메일에 따르면 160바트면 숙소까지 올 수 있다고 했는데, 따질 겨를도 없이 얼떨결에 택시에 오르고 말았다. 남편과 딸아이도 돈문제에는 왜 그렇게 너그러운지... 그랬던 것이 치앙마이를 떠나는 날, 올드시티에서 치앙마이공항까지 송태우를 탔는데 150바트였다. 그것도 도착 때보다  먼 거리였다. 수업료 없는 여행이 어디 있으랴. 처음 가는 곳에선 늘 겪는 일인데 늘 속고 늘 나중에 깨닫는다. 그런들 어떠하리. 누구든 작은 횡재 없는 인생은 너무 팍팍하지 않은가.

 

그래도 치앙마이에선 마음 놓고 환전할 수 있다. 물론 몇 개의 환전소를 비교해가며 유리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있지만 적어도 환전소에서 사기 당할 염려는 없다고 본다. 작년 발리에서는 몇 차례 사기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화폐단위가 크다보니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바로 눈 앞에서 사기를 당하고 만다. 예를 들면 100,000짜리로 줄 것을 10,000짜리로 주면서도 눈동자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특히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꾸따해변에서는 제대로 된 환전소를 찾는 일이 말 그대로 일이었다. 우붓은 그나마 안전하나 역시 사기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발리는 외국인 여행객 위주로 돌아가는 동네 같은 분위기인데 반해 치앙마이는 아무리 많은 외국 여행객이 밀려들어도 중심이 잘 잡혀있는 태국인들의 삶의 터전이다. 내 짧은 소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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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는 여름이 비수기, 겨울이 성수기라서 숙박비에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 겨울에는 가보지 못했으니 확인할 수 없는 일이나, 참고가 될까 싶어 숙박비 내역을 정리해본다.

 

1. Viengping Mansion : 치앙마이의 청담동이라 불리는 님만해민에 위치한 콘도로 마야쇼핑몰 바로 뒤에 있다. 위치 좋고 시설 좋고 깨끗하고...우리 집보다 더 좋았음...모두 만족스러운 만큼 가격이 만만치 않다. airbnb로 예약.

 

    *1박: 약 93,000원(청소비포함이라고 하나 중간에 청소해주는 일은 없음.)

 

 

  각종 리모콘 갯수가 우리집의 3~4배 정도.

 

 

2. Roongruang Hotel: 치앙마미 올드시티의 중심지 타패게이트에서 도보 1분 거리로 중앙도로변에 위치하여 아무리 길치여도 호텔을 못 찾는 일은 없을 듯. 길을 걷다가 '50%할인. 아침식사포함, 투어 할인'이라고 써붙인 종이를 보고 들어감. 한 때는 잘 나가는 호텔이었으나 지금은 쇠락한 기운이 역력함. 쇠락한 모양새가 우리 부부 모습 같아서 친근감이 들었음.^^

 

    *1박(3인실): 900THB(한화 약 30,879원)

 

 

3. Jason House: 치앙라이의 한국식당인 아리랑식당 바로 앞에 위치. Mercy라는 호텔이 마음에 들었으나 도미토리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여 대강 들어간 곳. 깨끗하고, 아침밥 주고, 투어 할인해주고, 에어컨 빵빵하고. 저렴하고......더 이상 뭘 기대함?.

 

    *1박: 350THB(한화 약 12,000원) 저렴한 가격 덕분에 방 두 개를 얻어 딸아이를 독립시킴.

 

 

 

*치앙마이의 숙소는 선택범위가 매우 매우 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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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100쪽 가량 읽었을 때,

- 카잔차키스의 책을 모조리 읽고 싶다. 이 작가의 책을 모두 읽기 위해서라면 당장 퇴직해도 여한이 없겠다. 아, 빨리 퇴직하고 싶어. 

 

200쪽 가량 읽었을 때,

- 역시 대작가야. 어, 내 생각이랑 닮았네, 우와...

 

300쪽 쯤에선

- 흐흠, 이 챕터는 건너뛰자.

 

그러다 셰익스피어 부분에선,

- 번역이 문제인가, 내 독해력이 문젠가. 졸립다. 좀 자고보자.

 

 

번역본을 읽는 게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원본을 술술 읽을 정도의 실력은 못 되고... 거장의 책은 좀 다르긴 하다. 한 권을 마치 몇 권의 책처럼 읽게 된다.

 

이 책에 쓰인 어떤 부분을 남편에게 얘기해주다가 중간에 말이 막혀 끝을 흘려버린 적이 있다.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 옮겨본다. 영국에서 왜 그렇게 언덕마다 양들이 풀을 뜯게 되었는 지를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환경이 어찌나 불결했던지 전염병이 돌 때마다 사람들이 쓰러져 나갔다. 14세기에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흑사병>이 돌았다. 먼저 아시아에서 시작된 병은 1347년에 키프로스를 덮쳐 쑥대밭으로 만든 다음 그리스, 이탈리아, 북아프리카로 퍼졌고 1348년 1월에는 프랑스까지 올라가 8월에 영국 해협을 건넜다. 모든 나라들이 결딴났다. 죽은 사람들을 묻어 줄 사람조차 살아남지 못한 지역들도 많았다. 영국의 4백만 인구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250만에 불과했다.

때로 <운명>의 작용이 아주 미묘하듯이, 이 끔찍한 참사가 대영 제국을 형성하는 주요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유린된 마을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거액의 재산을 챙겼다. 버려진 지역의 공동 삼림과 들, 목초지를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졌다. 영지를 경작해 줄 일꾼을 찾을 수 없게 된 영주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땅을 임대하거나 처분하여 빵 값을 만들었다. 이처럼 뜻밖의 토지를 손에 넣게 된 농민들은 그 땅을 모두 경작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양 사육에 뛰어들었다. 그 바람에 양 떼가 엄청나게 불어났다. 영국은 순식간에 다량의 양모를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고 그것을 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이제 예전처럼 고립된 섬나라로 머물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장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들의 시장이 필요해진 영국은 양모를 운반할 상선들과, 상선을 보호하고 바다를 장악할 군함들을 함께 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의 운명은 바다를 장악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것이 바로, 흑사병에서 목양의 필요가 생겨나고, 목양이 풍부한 양모를 낳고, 이 풍부한 재화가 상선과 군함들이 탄생하게 된 내력이다. 그리고 이 함대들이 대영 제국을 낳은 것이다!

 

이어서 이어지는 표현도 멋지다.

 

운명은 단기간 내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1시간 단위가 아니라 백 년 단위로 움직인다. 바로 이것이 <운명>이 작용하는 미묘한 방식이다. 따라서 아무리 큰 참사라도 재난이라 부를 수 없고 아무리 큰 행복이라도 행복이라 부를 수 없다. 먼 훗날 그것들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으므로.

 

처음에는 꼼꼼하게 읽다가 뒤로 갈수록 대강 읽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읽게 될 것 같지는 않고. 위에 옮긴 부분이라도 정확하게 기억하고자 한다. 영국의 언덕마다 하얗게 구더기처럼 깔려있는 양떼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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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17-08-14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중반까지만 꼼꼼하게 읽는 책들이 꽤 됩니다. 그런데 막상 다시 읽겠다고 놔둬도 자리만 차리하지 몇 년이 지나도 펼쳐보진 않더라구요. 기억하고 싶은 문구라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노력, 참 소중한 것 같아요. 덕분에 풀뜯는 양에 관한 이야기는 저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네요.^^

nama 2017-08-14 23:33   좋아요 0 | URL
한 권의 책에서 한가지만이라도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도 책을 읽는 보람이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 책을 도중에 중단해도 그다지 괴롭지 않아요. 괴로워하며 굳이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