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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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소설도 아니고, 감상적인 산문도 아닌데,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역학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이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라고 한다. 2000년에 첫 사회역학 교과서가 나오고 불과 10여 년 전부터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실하고 열심히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해왔는데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병에 걸렸을 때 그 병과 아픔을 오롯이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친구가 있다.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고 있고 건강을 위해 매일 일정하게 운동도 하고 음식에도 욕심을 부리는 일이 거의 없다. 자타공인 모범적으로 건강을 유지해왔다고 여겼는데 어느날 건강검진에서 느닷없이 당뇨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가족력도 전혀 없었기에 매우 당황스러워한다. 도무지 자신의 상황을 납득할 수가 없다. 병의 원인을 하나하나 찾아보기로 한다.

 

   태아기의 영양결핍이 성인 만성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절약형질 가설'이라고 부릅니다. 혹은 이 분야에 학문적으로 큰 기여를 한 데이비드 바커 박사의 이름을 따 '바커 가설'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태아기의 영양 결핍이 성인기 당뇨병 발생의 원인이 되는 것은 태아 입장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임산부인 어머니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없는 환경에서, 영양분이 부족할 때 태아는 생명체로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한정된 영양분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살아남는 데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해 답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태아는 뇌와 같이 살아남는 데 필수적인 기관에 먼저 영양분을 사용하고, 당장 내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췌장과 같은 기관을 발달시키는 데에는 영양분을 적게 사용합니다. 설사 그 선택이 먼 훗날 당뇨병을 유발해 수명을 단축시킨다 할지라도, 지금의 생존을 위해 먼 훗날 발생할 수 있는 성인병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이런 연구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몸에 새겨진 사회적 경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생애 초기의 경험일수록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배 속에 있는 태아나 막 태어난 아이가 굶주리는 것은 같은 기간 성인이 굶주리는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일 테니까요.

 

  몇몇 학자들은 이 역사적 비극이 인간의 건강에 장기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탐구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1945년 초 '네덜란드 기근' 시기에 어머니의 배 속에 있던 태아가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다양한 성인병에 걸릴 가능성을 연구한 것입니다. 연구 결과,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3배 높았고 조현증(정신분열증)에 걸릴 위험이 2.6배 높았으며 당뇨병에 걸릴 위험도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사실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6.25를 겪은 부모세대와 그 얼마 후에 태어난 우리 형제자매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순탄하지 못한 가족사의 원인이 여기에 닿아 있었다. 위에서 말한 친구의 당뇨병의 근본 원인도 여기에 닿아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이렇게 질병이나 죽음을 사회역학이라는 학문으로 그 원인을 찾아낸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원진레이온과 제일화학, 고용불안, 전공의 근무환경과 환자 안전, 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실태조사, 동성결혼과 성소수자 건강, 인종차별, 재소자 건강,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총기 규제...이런 일들이 과학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제대로 설명이 되는 것이다.

 

미국의 총기사건에 대한 부분에서는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미국질병관리본부 보고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연간 총기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이 31만 명이 넘습니다. 매년 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총기사고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 친구의 주장은 국민이 총기를 소유하면 모든 개인이 자신을 지킬 수 있으니까 총기에 의한 사망이 줄어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이것이 미국총기협회가 총기사건이 터질 때마다 하는 주장이자, 실제로 많은 사람이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중요한 근거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경제적으로 윤택할 수 있는 임상의사 대신 사회역학을 공부하는 학자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저자의 글에선 그의 진심과 진정성이 느껴져 다시 한번 눈시울을 붉혔다.

 

  저는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제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경험들을 계속하고 그것들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간직할 수 있기를 또 길러나갈 수 있기를, 그것이 가능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욕심이 훨씬 커요.

(중략)

그리고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이 분은 의사가 되었어도 훌륭한 의사가 되었을 텐데....이런 의사를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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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소설이지만 두 표지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원서의 표지에서는 목가적인 배경이 연상되면서 깊은 사색에 빠진 남자의 절망과 고뇌, 혹은 무능함 같은 게 읽혀진다. 반면 번역서의 풋사과는 좀 더 직설적인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채 익지도 않고 모양이 예쁘지도 않은 사과 껍질을 투박하게 깎는 행위를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미완성. 사랑의 미완성. 풋사랑.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오른쪽을 택하고 싶다. 뭔가 아련한 분위기가 좋다.

 

작가의 나이 81세에 발표했다는 소설. 책을 다 읽고나니 가을추수를 막 끝낸 기분이 들었다. 가슴 한 편이 저리면서도 알싸한 가을 냄새를 맡은 것도 같다.

 

 "나도 미안해요." 그가 말했다. "내가 일을 이렇게 만들었어요.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엘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가 따라준 차를 마셨다. 아무런 맛이 없었다.

 "나한테 그런 성향이 있어요." 그가 말했다. "입 다물고 있으면 안 되는 때 말을 아끼는."

 

절제된 글에서 우러나는 통찰. 인간에 대한 연민. 윌리암 트레버를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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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800~900미터 까지 올라가는 저 구절양장의 산길을 다녀왔다. 주변에서 하도 험하다고 해서 그간 쉽게 갈 수 없었던 길을 용감무쌍한 남편을 따라 한바퀴 주행했다. 다행스럽게도 길 낭떠러지 쪽으로는 안전을 확보하는 가드레일이 거의 전구간에 걸쳐 설치되어 있고, 길도 대부분 포장이 되어 있어서 소문보다 훨씬 안전하고 편했다. 많은 사람들의 노고 덕택임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인도 라다크의 험난함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리 만만한 길은 아니다. 가슴을 조이며 주행하느라 감히 사진 한 장 찍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동영상을 찾아볼 수도 있는데,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다 싶다. 자전거도 못 타는 주제에 나는 잠시 저 길을 자전거로 주파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트레킹도 꿈을 못꾸게 된 주제에...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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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에 이어 법수치 오두막으로 책을 옮기는 작업을 재개했다. 오두막으로 들어가는 곤란함에 대해선 작년에 글을 올렸었다.

 

http://blog.aladin.co.kr/nama/8646249

 

작년에는 나올 길이 없어 옆집 대문 밑으로 빠져나와야만 했었는데, 올해는 상황이 더욱 가관이다.

 

 

아마도 대문 밑으로 드나드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나보다. 대문 아래쪽에 레이스같은 펜스를 쳐서 대문을 통과하는 자체를 원천적으로 철저하게 차단했다. 개 한 마리 드나들 수 없게 해놓았다.

 

 

 

대문 옆 나무 울타리 역시 철조망을 둘러놓았다. 키가 웬만한 사람이라면 울타리를 타고 넘어갈 수도 있는 통로 아닌 통로였는데 이마저도 주인의 눈에는 가시였나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다른 방도가 있었으니...사진 오른쪽 아래로 가파른 비탈길이 생겨났다. 산나물이나 버섯 채취를 위해 원주민들도 이 길을 이용해야 했기에 임시방편으로 길이 만들어졌고, 역시 원주민들이 민원을 넣어 조만간 이 대문도 철거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확한 측량결과 대문이 들어선 이 땅이 이 집 주인의 땅이 아니었다나.

 

이런 상황에서 옆집을 통과해서 무언가를 옮긴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오른쪽 비탈길로 내려가더라도 고르지 못한 돌무더기 길을 지나고 덤불을 헤치며 200m 이상을 족히 걸어가야 하는데 짐이 없는 빈 몸이어도 쉽지가 않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오른쪽으로 보이는 개울을 건너가야 한다. 물이야 그리 깊지 않아서 무릎이 잠길 정도라지만 바닥에 깔린 돌에 이끼가 껴서 첨범대며 여유있게 건널 수가 없다. 한여름이라면 일부러 물에 빠지는 일도 즐겁겠지만 책 꾸러미 들고 저 개울물을 여러 차례 지날 일을 생각해보면, 저절로 인정머리 없는 옆집주인에게 화가 치밀고야 만다. 책 꾸러미 뿐이랴. 저 원목과 벽돌은 어떻고.

 

 

(2g폰 사진)

 

원목을 속초에서 구입했는데 배달비 7만 원은 따로 였다. 그러면 뭐하나. 언덕에서 개울까지, 개울에서 집까지 100m이상을 날라야 했다. 언덕에서 개울까지는 남편과 내가 합심해서, 개울 건너기는 남편 혼자서, 다시 언덕을 올라가야하는 오두막까지는 작은 손수레에 의지해서 역시 남편과 내가 일일이 옮겼다. 그리고 책은 큰 배낭에 넣어서 수차례 물을 건너고 손수레에 실려 오두막으로 옮겼다. 여기까지가 지난 8월, 1박 2일에 했던 작업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벽돌을 구입했으나 지난 번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으나, 개울물은 한여름의 물이 아니다. 남편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이 개울물을 차마 건널 수가 없어 인정머리 없는 옆집 대문 비탈길로 빙 돌아서 가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해서 집에 있는 책을 저렇게 옮겨놨다. 옮겨놓고 보니 몇 권을 빼놓고는 아까운 책이 별로 없어서 누군가 집어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왕이면 좀 더 좋은 책을 많이 구입해야겠다는 새로운 다짐까지 생겨났다. 물론 저 책의 3~4 배 정도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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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음력 생일에 익숙하다. 음력 날짜를 따지는 일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새 세대인 딸아이의 생일은 양력으로 쇤다. 어떤 이유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내가 태어난 정확한 양력 날짜가 궁금했다. 해마다 음력으로 따져서 알아내는 양력 날짜가 아니라 바로 내가 태어난, 정확한 서기0000년 00월 00일 하는 날짜 말이다. 그래서 내가 사용하는 2g폰을 이용해서 날짜 검색에 들어갔다.

 

 

 

오른쪽 하단에 표기된 오늘의 음력일은 7월 29일이다. 손가락 하나로 빨간 사각형을 움직이면 과거를 나타내는 위와, 미래를 가리키는 아래로 무한정 날짜와 달과 연도가 바뀐다. 그래서 끝까지 가보았다. 음력 날짜가 표기되는 과거의 시작일과 음력 날짜가 끝나는 미래의 마지막 날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음력 날짜 표기 시작 일: 1900년 1월1일

*음력 날짜 표기 마지막 날: 2040년 12월 31일

 

이 휴대폰에는 무려 140년 간의 음력 날짜가 입력되어 있었다. 덧붙이자면 1900년 1월 1일 이전이나 2040년 12월 31일 이후에는 그냥 양력 날짜만 나오지 음력 날짜는 더 이상 표기되지 않는다. 그런데 음력 날짜 표기가 끝나는 날을 2040년으로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즘 되면 더 이상 음력 날짜를 따지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게 될까? 아니다. 더 이상 이런 고물 같은 휴대폰이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손가락 한 마디로 140여 년을 넘나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여 분 남짓. 해보시라. 해보면 알겠지만 멀미가 난다. 과거의 온갖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된 숫자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듯하지만 제각각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멀미 기운이 느껴진다. 이상 야릇한 경험이다. 2g폰으로 이런 경험이 가능하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그래서 난 아직도 2g폰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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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0-02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비가 많이 왔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은 것 같아요.
명절 앞두고 인사드리러 왔어요.
nama님, 즐겁고 좋은 추석연휴 보내세요.^^


nama 2017-10-04 19:45   좋아요 1 | URL
여기저기 다녀오다보니 인사가 늦었어요.
서니데이님도 건강하고 즐거운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