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근무를 할 경우 일일이 수기로 시간을 써넣던 것을 개선하고자 당직실에 지문인식기가 설치됏다. 기초작업으로 지문을 등록해야 한다기에 오른손 검지를 인식기에 넣었다. 등록 실패! 오른손 엄지도 실패. 물티슈로 다른 손가락들을 박박 문질렀다. 왼손 엄지, 검지도 실패. 이것만은 아닌데 하며 마지막으로 왼손 가운데 손가락을 넣었는데 이것도 실패다. 지문이 닳아서 그렇다는데, 아, 내가 일을 많이 하긴 했구나! 예전에 우리 엄마도 지문이 닳아서 주민등록증 만들 때 애를 먹었노라고 하셨다. 실제로 엄마의 손은 노동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난 거친 모습이었다. 그에 비하면 내 손은 아직도 아름다운 자태(?)를 뽑내고 있다. 옛말에 '손 발 예쁜 미인이 없다' 고 하듯 내 손은 내가 미인이 아님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로써 더할나위 없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학창시절엔 친구들이 '손콘테스트'에 나가라고 할 정도였다.
결국 손가락 등록을 포기하고 아라비아숫자로 된 비번을 따로 암기하기로 했다. 과히 나쁘지 않다. 아니 다행이다. 적어도 게으르게 살아온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이젠 내 손을 아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