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걷다 -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떠나는 섬 여행
강제윤 지음 / 홍익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내게 돈이 많이 있다면 조그마한 섬을 통째로 하나 사서 나의 왕국을 만들면 좋겠다는 꿈. 나는 한때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나간 나의 꿈이 떠올랐고 몹시 부끄러웠다.  

어쩌다 놀러 다니곤 했던 섬은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무엇보다도 물이 아쉬웠다. 야영이라도 하게 되면 제대로 씻을 수 없어서 이내 불평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는 어서 빨리 섬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당연히 섬에서의 추억이라고 할 것도 별로 없다. 부족함과 불편을 참아낼 엄두도 못내면서 섬을 하나 사겠다니 도대체 이 무슨 황당한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이렇게 비현실적인 꿈 속을 거닐 때, 이 글을 쓴 강제윤이라는 분은 직접 두 발로 섬을 걷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에 있는 4400여 개의 섬 중에 유인도 500여 개. 10년 동안 이 유인도를 모두 걸어갈 예정이라한다. 지금까지 그는 100여 개의 섬을 걸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간의 기록이다. 

여행이 일반화된 시대라 몇십 개국 여행은 이제 얘깃거리도 못되는 풍요의 세상에서 그의 고독한 섬 걷기 여행 기록은 나즈막하면서도 진지하게 마음 속으로 파고든다. 새로운 곳을 밟았다는 흥분이나 남이 가보지 못한 곳에 갔다는 자랑 같은 것은 이 책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여행기나 기행문과는 거리가 멀다. 

섬이 죽어가고 있다. 죽어가는 섬을 지키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노인들뿐이다. 이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생애의 스승이고 나침반이라고 저자는 쓸쓸하게 말한다.'세계의 어느  길에서도 나는 이 나라 섬에서 만난 노인들보다 더 훌륭한 스승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104) 강한 군사 집단이 이웃 나라를 침략하여 노략질을 하고 땅을 빼앗고 백성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 해적질과 무엇이 다를까. 역사가들은 이를 정복이란 이름으로 미화하기도 하지만 해양 왕국의 역사가 바로 해적의 역사다. 먼저 세력을 키워 나라를 세운 해적 두목은 왕이 되고 뒤에 나타난 세력은 해적으로 이름이 남겨졌을 뿐이다.....중국에서는 '관리가 되려면 먼저 도적의 수령이 되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였다. 그 격언은 여전히 이 시대 이 땅에서까지 통용된다...이 땅의 정치인들이 나라를 거덜 내는 도적질만을 일삼는 것은 그들의 뿌리가 도적의 뿌리와 같기 때문이다. 

(199) 우리는 모두가 슬픔의 후예다. 우리는 모두가 고난의 후예다. 슬픔과 고난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들의 후예다. 그 모진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기란 진실로 희귀한 일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후예로 살아 있다는 것은 마침내 기적 같은 일이다.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인 삶이여! 

(210) 기도란 무엇일까? 내 안에 신이 있고 내 안에 불성이 있다면 기도란 내 안의 부처와 신에게 기원하는 것이 아닐까. 기도하는 것도 나고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도 나다. 그러므로 기도처에서의 기도는 소망을 이루기 전에 자기 스스로를 인간 정신의 높은 곳으로 이끄는 고귀한 행위다. 정신의 고양을 통해 스스로 신과 불보살의 경지에 이른 다음에야 나는 나의 기도를 이루어 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기도를 누군가 대신 해준다면 그것도 기도라 할 수 있을까? 

내 안에 있는 쓰레기 같은 못된 것들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어서 한 편으로는 아픈 책이다. 그러나 더욱 아파할 일이다.  

우리 나라의 섬을 다 둘러본 저자의 목소리를 언젠가 다시 듣고싶다. 그때도 지금처럼 아프다면 나는 분명 세상을 잘못 살았을테지만.... 

사실이 너무 잔혹하지 않고 꿈이 너무 비현실적이 아닌 나라에서 살았으면...버나스 쇼가 했다는 이 말에 다시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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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정생 유언장 

 

유언장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1일 쓴 사람 권정생  

 


 

2. 장영희 유서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3. 노무현 유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I've been in debt to too many people.

The suffering caused by me is too great to too many people.

I can't imagine the countless agonies down the road.

The rest of my life would only be a burden for others.

I can't do anything because I'm not healthy.

I can't read books, nor can I write.

 

Don't be too sad.

Isn't life and death all part of nature?

Don't be sorry.

Don't blame anybody.

It's fate. 
 


Please cremate me.

And please leave a small tombstone near home.

I've long thought about that.  

 


  

 

4. 시인 오규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시...죽기 전 제자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쓴 시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5. 하이타니 겐지로 유언장

 

가깝게 지내던 분들께

아무래도 명이 다할 때가 가까워진 듯합니다.

가족과 친지들에게 내 마음을 전해 두려 합니다.

들판의 나비나 잠자리처럼 살다 죽고 싶습니다.

삶은 그렇지 못했지만 죽음은 자연에 맡기고 싶습니다.

긴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것은 무집착의 사상,

다시 말해서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배워 온 그대로 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삶에 아무런 후회도 없습니다(조금은 있을지도).

죽음을 무턱대고 멀리하지 않고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때로는 죽음도 축하할 일이라는 생각이 나는 더없이 좋습니다.

나의 단 한 가지 바람이라면, 머잖아 찾아올 나의 죽음을

그런 마음으로 받아들여 준다면 고맙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 덧붙이면, 어떤 혹독한 현실에서든 자신과 타자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있으며 희망을 잃은 채 이 시간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한 발 먼저 갑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장례식이나 추모회 등은 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럼 언젠가 저세상에서 만나 뵙지요.

 


2006년 11월 23일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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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5년 만에 돌아가신 시아버지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나는 독한 년이었다. 당신의 무능과 비겁함, 무엇보다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모습 앞에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없었다.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난다.

울컥 울컥 눈물이 나와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가도 보이지 않는 눈물이 고인다.

2002년 대선 때, 나는 투표도 하지 않았다. 투표 종사 요원으로 차출되어 새벽부터 투표장에서 유권자들에게 표를 나눠주는 일을 거들며 사전에 하는 부재자 투표도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 내가 그 분을 위해서 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누군가가 비난의 말을 던질 때 나도 슬쩍 한마디씩 거들곤 했다.

그런데도 자꾸 눈물이 난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이 비겁하고 뻔뻔한 나라에서 살아가야 할 일에 눈물이 고인다.

19년 전, 우리 아버지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1~2년 뇌졸중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다가 가족 고생시킨다며 홀연 선택한 죽음이었다. 자살한 사람은 큰 죄를 지은 것이라며 미사조차 매몰차게 거절당하는 것을 보고 종교라는 게 인간이 만든 작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통렬히 깨달았다. 그때 나는 깊게 깨달았다. 나의 한 시절이 끝났다는 것을.

아버지 생각에 다시 눈물이 고인다.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 해에 32살 나이로 직장다운 직장에 들어갔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나는 처치 곤란한 백수의 모습만 보여드렸다. 아프다.

"대통령이 말을 저렇게 밖에 못하나"라고 누군가 비난을 할 때 "그러게" 밖에 맞장구 친 일 밖에 없는데도 가슴이 아프다. 이승만 시절 끝 무렵에 태어난 나는 그분을 통해서 비로소 바른 세상을 만나고 정치라는 것이 그래도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통렬히 깨닫는다. 이제 한 시대가 가는가?

눈물이 마른자리에 분노가 고인다.

세계 어느 나라에, 소위 민주국가라는 한 나라의 수도에 국민의 집회가 두려워 멀쩡한 광장에 전경버스로 바리케이드 치고 겹겹이 전투경찰로 에워싸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시원하게 잘 다듬어진 그 광장의 잔디밭 한 번 밟으며 마지막 가시는 분 분향 한 번 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이 옹졸함이 판치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눈물겹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이 비겁하고 뻔뻔한 나라에서 새삼 길을 묻는다.

어디로 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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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올해 내가 담임을 맡은 아이들 얘기다. 

학생1. 한부모 자녀. 남학생. 중학교 2학년인데 아직까지 알파벳을 외우지 못한다. 한글도 그럴까싶어 테스트해봤더니 다행히 한글은 깨쳤는데.....학기초. 겁이 없는 것인지 혹은 물색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생각이 없는지 "저 영어 몰라요. 선생님, 개인 지도 좀 해주세요." 보통 이렇게 드러내놓고 개인 지도를 요구하는 녀석은 없다. 그런데 이 녀석은 대담하다 싶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내가 진지하게 공부하자하면 말없이 수그러들고 조용해진다....해서 엄마에게 알렸다. 이 아이만 붙들고 하나하나 가르치기에는 기초학력이 너무 부족하다고...엄마는 나중에야 말했다. 내 말이 너무 야속했노라고... 하루에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200 여명이다. 하루 중 겨우 두어 시간 비어있는데 그 시간에 여러가지 잡무 처리를 하고 나면 겨우 숨돌릴 시간이다. 아시는지...어느날은 교복 단추가 떨어졌다며 내게 도움을 청해왔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10시에 들어오는 엄마에게 단추 달아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모양인지 아니면 학교와서야 단추 떨어진게 생각나는 건지 모르겠다. 한번은 별 것 아닌 일로 다른 아이와 싸워서 머리에 상처를 입혔다. 다친 아이 부모가 함께 와서 담임인 나도 곤욕을 치렀다. 당장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했다며 그냥 두지 않겠다며 어름장을 놓고 갔다. 두어 바늘 꿰맸는데 CT촬영도 했다. 그 다음은 양쪽 부모에게 맡겼다.

학생2. 한부모 자녀. 여학생. 예쁘고 말 잘하고 잘 따지고 야무지게 생겼다. 이 아이와 말씨름하면 백전백패하기 십상,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말 잘하는 선생도 이 아이와 말 섞기를 꺼려한다. 얼마전,16,000원이 채 안되는 방과후 수강료를 납부하지 못해 행정실에서 쪽지가 왔다. 두세번 독려를 하고 엄마한테 문자도 넣었다. 보다못한 방과후 담당 교사가 엄마한테 전화를 넣었다가 큰 말다툼으로 번졌다.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큰소리가 오고가고 욕지거리만 없었지 내용은 욕과 진배 없었다. 50대 중반의 담당교사에게 무지 죄송한 일이었다. 몇 푼 안되는 그 돈을 내지 못하는 그 엄마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싶다. 그 엄마는 학비지원 신청도 하지 않았고 일정한 직업도 없다. 몇차례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고 문자를 넣어도 답신 한번 없었다.

학생3. 한부모 자녀. 남학생. 부모 둘 다 재혼을 해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누나와 단 둘이 살고있다. 손버릇이 약간 나쁘고 금방 들어나는 거짓말을 가끔씩 한다. 아이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있고 이따금씩 이 아이와 시비가 붙는다. 재혼한 엄마는 새엄마가 이 아이를 돌봐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어쩌다 오는 아빠는 모처럼와서는 혼만 내고 간단다. 하기야 이 아빠는 학교에 와서도 당당하게 할 말을 다하고 갔다. 자식 맡긴 부모가 죄인이 아니라 학생 맡은 담임이 죄인이다...얼마전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점심 시간에 잠깐 아이를 외출시켜줄 수 있겠느냐고. 점심 시간에 집에 갔다온 아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엄마가 맛있는 걸 해주셨단다. 이런 엄마 마음이야 또 오죽 아플까만은... 

학생4. 한부모 자녀. 여학생.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가 이혼하여 아빠와 언니와 살고있다.툭하면 아프다하여 참아보라며 조퇴시켜주지 않고 기다려보면 다시 멀쩡해지는 아이다. 반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며 눈물을 펑펑 쏟는다. 나한테 와서는 여러가지 하소연을 많이하는데 막상 친구들한테는 제 속 표현을 제대로 하지못해 사이만 벌어진다. 학급 친구를 만들어줘야하는 게 내 숙제다. 점심 시간에 함께 밥 먹을 친구를 만들어주는 게 당장의 급선무이다. 친구문제로 아이의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엄마 없다고 무시하는 거 아니냐,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혼한 아이 아빠가 두려워 말을 많이 아끼는데 아이에 대한 정성은 다른 엄마와 다르지않아 내 마음을 약하게한다. 원격 조종할 수 밖에 없는 이 엄마의 처지가 눈물겹다.에고... 

학생5,6,7,8 한부모 자녀.여학생 2, 남학생 2. 

이 아이들의 성적은 한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닥권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알고있다. 어떤 선생님이 무슨 문제를 낼지를. 시험을 앞두고 던지는 질문은 쪽집게 저리가라일 때가 많다. 교사의 생각을 읽을 줄 안다. 생각을 읽을 줄 안다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세상이 그렇게 가혹하지 않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인 위와 같은 아이들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이 아이들에게 공부는 무엇일까. 바닥을 깔아주는 이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 사는 요령을 가르쳐줄 사람은 누구인가. 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꿈을 심어주는 일...누구의 몫인가.  

자립고, 특목고 얘기가 나오면 속이 울컥 거린다. 진정 화가나면 말이 안나오듯 정말 말이 안나온다. 빌어먹을 세상.... 

어제, 진로특강이라고 외부강사의 강연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이 외부강사는 공부에 대한 세간의 명언들을 결론삼아 제시했는데 그중의 한 구절이 내 폐부를 찌른다.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성공은 성적순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도 구분하지 못하는 강사의 질이야 이미 알아본 바이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진로라는 게 있는가.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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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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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_________선생님 

With Love, 

장영희

 

위의 빈 칸에 내 이름이 떡하니 들어간, 저자의 친필 사인이 적혀있는 이 책을 작년에 한 교과서 출판업체로부터 받았다. 교과서 선정을 앞두고 소위 로비라고 건네준 책이다. 이 책을 받고는 책상 위에 그냥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며칠간 야릇한 행복감에 젖었었다. 친필 사인의 책이라서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생각도 들지 않을 수 없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교사들에게 자신이 지은 교과서 홍보를 위해 기계적으로 사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20여 종이 넘는 교교서와 경쟁하다보니 어떤 외압(?)같은 것이 있었으리라는 짐작과 함께 사인의 고단함이 느껴졌다고나할까. 

솔직히 이 책을 끝까지 읽지는 않았다. 이 분의 글에서는 뭐랄까.....지적이긴한데 뭔가 절실한 생활이 부재한다고할까. 생활에서 오는 어떤 깊은 울림 같은 게 전해지지 않았다. 범생이에게서 엿보이는 단정함은 무미건조함의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싶다.   

이 분이 집필한 교과서로 수업을 한 지도 벌써 4년째. 알게 모르게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이름이 입에 붙어버린 장영희. 

돌아가신 이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음에,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분이건만, 서럽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를 대신할 수 있는 말을 찾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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