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올해 내가 담임을 맡은 아이들 얘기다.
학생1. 한부모 자녀. 남학생. 중학교 2학년인데 아직까지 알파벳을 외우지 못한다. 한글도 그럴까싶어 테스트해봤더니 다행히 한글은 깨쳤는데.....학기초. 겁이 없는 것인지 혹은 물색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생각이 없는지 "저 영어 몰라요. 선생님, 개인 지도 좀 해주세요." 보통 이렇게 드러내놓고 개인 지도를 요구하는 녀석은 없다. 그런데 이 녀석은 대담하다 싶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내가 진지하게 공부하자하면 말없이 수그러들고 조용해진다....해서 엄마에게 알렸다. 이 아이만 붙들고 하나하나 가르치기에는 기초학력이 너무 부족하다고...엄마는 나중에야 말했다. 내 말이 너무 야속했노라고... 하루에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200 여명이다. 하루 중 겨우 두어 시간 비어있는데 그 시간에 여러가지 잡무 처리를 하고 나면 겨우 숨돌릴 시간이다. 아시는지...어느날은 교복 단추가 떨어졌다며 내게 도움을 청해왔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10시에 들어오는 엄마에게 단추 달아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모양인지 아니면 학교와서야 단추 떨어진게 생각나는 건지 모르겠다. 한번은 별 것 아닌 일로 다른 아이와 싸워서 머리에 상처를 입혔다. 다친 아이 부모가 함께 와서 담임인 나도 곤욕을 치렀다. 당장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했다며 그냥 두지 않겠다며 어름장을 놓고 갔다. 두어 바늘 꿰맸는데 CT촬영도 했다. 그 다음은 양쪽 부모에게 맡겼다.
학생2. 한부모 자녀. 여학생. 예쁘고 말 잘하고 잘 따지고 야무지게 생겼다. 이 아이와 말씨름하면 백전백패하기 십상,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말 잘하는 선생도 이 아이와 말 섞기를 꺼려한다. 얼마전,16,000원이 채 안되는 방과후 수강료를 납부하지 못해 행정실에서 쪽지가 왔다. 두세번 독려를 하고 엄마한테 문자도 넣었다. 보다못한 방과후 담당 교사가 엄마한테 전화를 넣었다가 큰 말다툼으로 번졌다.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큰소리가 오고가고 욕지거리만 없었지 내용은 욕과 진배 없었다. 50대 중반의 담당교사에게 무지 죄송한 일이었다. 몇 푼 안되는 그 돈을 내지 못하는 그 엄마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싶다. 그 엄마는 학비지원 신청도 하지 않았고 일정한 직업도 없다. 몇차례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고 문자를 넣어도 답신 한번 없었다.
학생3. 한부모 자녀. 남학생. 부모 둘 다 재혼을 해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누나와 단 둘이 살고있다. 손버릇이 약간 나쁘고 금방 들어나는 거짓말을 가끔씩 한다. 아이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있고 이따금씩 이 아이와 시비가 붙는다. 재혼한 엄마는 새엄마가 이 아이를 돌봐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어쩌다 오는 아빠는 모처럼와서는 혼만 내고 간단다. 하기야 이 아빠는 학교에 와서도 당당하게 할 말을 다하고 갔다. 자식 맡긴 부모가 죄인이 아니라 학생 맡은 담임이 죄인이다...얼마전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점심 시간에 잠깐 아이를 외출시켜줄 수 있겠느냐고. 점심 시간에 집에 갔다온 아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엄마가 맛있는 걸 해주셨단다. 이런 엄마 마음이야 또 오죽 아플까만은...
학생4. 한부모 자녀. 여학생.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가 이혼하여 아빠와 언니와 살고있다.툭하면 아프다하여 참아보라며 조퇴시켜주지 않고 기다려보면 다시 멀쩡해지는 아이다. 반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며 눈물을 펑펑 쏟는다. 나한테 와서는 여러가지 하소연을 많이하는데 막상 친구들한테는 제 속 표현을 제대로 하지못해 사이만 벌어진다. 학급 친구를 만들어줘야하는 게 내 숙제다. 점심 시간에 함께 밥 먹을 친구를 만들어주는 게 당장의 급선무이다. 친구문제로 아이의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엄마 없다고 무시하는 거 아니냐,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혼한 아이 아빠가 두려워 말을 많이 아끼는데 아이에 대한 정성은 다른 엄마와 다르지않아 내 마음을 약하게한다. 원격 조종할 수 밖에 없는 이 엄마의 처지가 눈물겹다.에고...
학생5,6,7,8 한부모 자녀.여학생 2, 남학생 2.
이 아이들의 성적은 한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닥권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알고있다. 어떤 선생님이 무슨 문제를 낼지를. 시험을 앞두고 던지는 질문은 쪽집게 저리가라일 때가 많다. 교사의 생각을 읽을 줄 안다. 생각을 읽을 줄 안다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세상이 그렇게 가혹하지 않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인 위와 같은 아이들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이 아이들에게 공부는 무엇일까. 바닥을 깔아주는 이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 사는 요령을 가르쳐줄 사람은 누구인가. 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꿈을 심어주는 일...누구의 몫인가.
자립고, 특목고 얘기가 나오면 속이 울컥 거린다. 진정 화가나면 말이 안나오듯 정말 말이 안나온다. 빌어먹을 세상....
어제, 진로특강이라고 외부강사의 강연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이 외부강사는 공부에 대한 세간의 명언들을 결론삼아 제시했는데 그중의 한 구절이 내 폐부를 찌른다.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성공은 성적순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도 구분하지 못하는 강사의 질이야 이미 알아본 바이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진로라는 게 있는가.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