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5년 만에 돌아가신 시아버지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나는 독한 년이었다. 당신의 무능과 비겁함, 무엇보다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모습 앞에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없었다.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난다.

울컥 울컥 눈물이 나와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가도 보이지 않는 눈물이 고인다.

2002년 대선 때, 나는 투표도 하지 않았다. 투표 종사 요원으로 차출되어 새벽부터 투표장에서 유권자들에게 표를 나눠주는 일을 거들며 사전에 하는 부재자 투표도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 내가 그 분을 위해서 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누군가가 비난의 말을 던질 때 나도 슬쩍 한마디씩 거들곤 했다.

그런데도 자꾸 눈물이 난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이 비겁하고 뻔뻔한 나라에서 살아가야 할 일에 눈물이 고인다.

19년 전, 우리 아버지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1~2년 뇌졸중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다가 가족 고생시킨다며 홀연 선택한 죽음이었다. 자살한 사람은 큰 죄를 지은 것이라며 미사조차 매몰차게 거절당하는 것을 보고 종교라는 게 인간이 만든 작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통렬히 깨달았다. 그때 나는 깊게 깨달았다. 나의 한 시절이 끝났다는 것을.

아버지 생각에 다시 눈물이 고인다.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 해에 32살 나이로 직장다운 직장에 들어갔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나는 처치 곤란한 백수의 모습만 보여드렸다. 아프다.

"대통령이 말을 저렇게 밖에 못하나"라고 누군가 비난을 할 때 "그러게" 밖에 맞장구 친 일 밖에 없는데도 가슴이 아프다. 이승만 시절 끝 무렵에 태어난 나는 그분을 통해서 비로소 바른 세상을 만나고 정치라는 것이 그래도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통렬히 깨닫는다. 이제 한 시대가 가는가?

눈물이 마른자리에 분노가 고인다.

세계 어느 나라에, 소위 민주국가라는 한 나라의 수도에 국민의 집회가 두려워 멀쩡한 광장에 전경버스로 바리케이드 치고 겹겹이 전투경찰로 에워싸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시원하게 잘 다듬어진 그 광장의 잔디밭 한 번 밟으며 마지막 가시는 분 분향 한 번 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이 옹졸함이 판치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눈물겹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이 비겁하고 뻔뻔한 나라에서 새삼 길을 묻는다.

어디로 가야하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