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노장의 책을 읽었다.

       

 

 

 

 

 

 

 

 

 

 

 

 

 

 

     

 

 

 

 

 

 

 

 

<분노하라>...스테판 에셀. 1917년 독일 출생.

<인생>...지셴린. 1911년 중국 산둥성 출생.

 

어제는 나보다 2년 연상인 동료교사의 장례가 있던 날이었다. 췌장암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지 채 만 1년도 안 되어서 운명을 달리했다. 작년 말썽 많던 우리반의 악동들때문에 쩔쩔매는 나를 무던히도 도와주려고 애쓰셨던 분이었다. 그저께 문상을 다녀온 탓에 어제는 장례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하루종일(개교기념일이었다) 조신하게 지내며 위의 두 책을 읽었다.

 

두 책 모두 90세를 전후로 해서 쓰여진 책이다. 90세라...엄마가 계신 요양병원에 가보면 90세 넘은 노인분들이 많이 계신다. 대부분 평생 글하고는 관계없이 살아오신 분들이라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는 분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90세에 책을 쓴다는 건 따라서 대단한 일이거니와 한번쯤 읽고 무언가를 배울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물론 위의 책을 쓴 분들은 평생에 걸쳐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한 분들이다. 그 세세한 내력들이 있지만 사실 내게는 별 관심있는 사항이 아니다. 그저 이 책을 통해 한 세기를 살아온 사람의 생각을 알고자 할 뿐이다.

 

먼저 <인생>. 사실 크게 와닿는 부분은 많지 않다. 새로울 것도 없는 당연한 말들이다, 싶은 내용이다. 그 중 '노년에 하지 말아야 할 10가지'를 옮겨본다.

 

1. 말을 삼가자.

2. 나이로 유세 떨지 말자.

3. 사고가 경직되는 것을 막자.

4. 세월에 불복하자.

5. 할 일 없음을 걱정하자.

6. 무용담으로 허송세월하지 말자.

7. 세상과 벽을 쌓지 말자.

8. 늙음과 가난을 탄식하지 말자.

9. 죽음에 연연하지 말자.

10. 세상을 증오하지 말자.

 

위에서 '새로울 것도 없는 당연한 말'이라고 했지만 그건 내가 아직 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주위의 노인분들을 보면 위의 10가지를 실천할 수 있는 분들이 많지 않다. 당장 우리 엄마나 시어머니를 봐도 그렇다. 젊었을 적부터 마음의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초라한 모습으로 늙어갈 것이다. 제대로 나이 먹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분노하라>. 이 책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나이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다. 100세를 앞두고도 세상을 향해 "무관심이야말고 최악의 태도! 지금은 분노하고 저항해야 할 때"라고 외치는 꼿꼿한 청년이 있을 뿐이다. 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39쪽)...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호소하는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21세기를 만들어갈 당신들에게 우리는 애정을 다해 말한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라고.

 

<인생>이 세상에 대한 방어적 자세라면 <분노하라>는 사뭇 공격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인생>에선 '말을 삼가자'라고 했는데 <분노하라>에서는 세상을 향해 포효하고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자고.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일으키자고.

 

어떻게 늙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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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서랍 - 이정록 산문집
이정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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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남편에게 말한다.

"나더러, 다른 일 하지말고 넌 평생 책이나 읽고 있어라. 라고 하면 좋겠어."

"밥은 해줘야지."

"물론 밥은 해줄게."

 

이정록 시인의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책만 읽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산문집을 완독하는데도 일주일이나 걸리는 빠듯한 생활에서 책만 읽고 산다는 생각은 실현 가능치 않은 야무진 꿈에 불과하리라.

 

어제는 유독 숨가뿐 날이어서 더욱 이런 꿈을 꾸는지도 모른다. 1~5교시 연속으로 수업을 하고, 6교시- 동료교사의 수업연구 참관, 7교시- 수업연구에 이은 컨설팅 장학을 겸한 교과협의회, 이어진 교직원 연수는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끝이 났고, 다시 이어진 회식자리. 사이사이에 유예학생 처리하라는 요구가 밀려들고 교과협의회 회의록 작성해달라는 부탁조의 지시가 떨어지고, 학급종례마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했다.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일주일 전 일요일. 생태공원에 가서 작은 숲에 둘러싸인 정자에 두 다리 뻗고 앉아 이 책을 읽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고 바람결에 실려온 해당화, 찔레꽃 내음. 한창 물오르기 시작하는 수십만 평에 이르는 갈대밭의 푸른 빛깔. 책을 읽기에는 완벽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런 공간에 어울리는 완벽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시인의 능청스럽고도 구수한 이야기를 읽다가 키드키득 웃음이 흘러나오면 그대로 입 밖으로 방출해버리고, 혼자 웃기 아까우면 옆에 있는 남편에게 방금 읽은 페이지를 손을 짚어가며 넘겨주었다.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행복한 책읽기는 현실의 삶을 더욱 고달프고 무의미하게 혹은 답답하게 만들기도 한다. 거꾸로 일상이 따분하고 고달퍼서 책을 읽는 한순간이 그리 달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 읽는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하는 이 책 덕분에 나의 평상심이 흐트러지고 일상의 삶이 고달프게 다가오는 역설적인 현상을 오갔다.

 

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이 시인이 너무나 좋아져서 그의 시집 <의자>를 서둘러 구입했다. 읽을수록 사랑스런운 시 <의자>를 베껴본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에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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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2012-06-04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고 저랑 같은 분필과 칠판지우개전공이시군요.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마음이 우쭐해지네요. 공부가 짧아서 깊이도 없는 글인데, 제 추억의 언저리까지 동행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게다가 '의자'란 시까지. <의자>시집에서 제가 지금도 촉촉하게 읽는 시는 "머리맡에 대하여"랍니다. 점심 맛나게 드세요. 상추드실 때 아기달팽이 조심하시고요.

nama 2012-06-05 07:31   좋아요 0 | URL
직접 댓글을 남겨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마침 이 책을 한 번 더 읽고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답니다. 좋은 글 덕분에 울멍울멍 눈물겹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사 중에서 가정사에 얽힌 문제가 제일 고질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란게, 일단 문제를 안고 있으면, 예를 들어 우환 같은 게 있으면, 그 세대가 끝나기 전까지는 해결될 수 없는 난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풀리지 않는 난제에 압사당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 치다보면 세상사에 일정한 거리감 내지는 무심함이 자신을 대신하게 된다. 가정사에 빠져있으면서 세상을 돌아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진짜 새삼 깨닫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세상을 향한, 세상의 변화를 촉구하는 진지한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마음에 또 하나의 바윗덩어리를 얹는 것처럼 무게를 더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독서라는 게 무게에 무게를 더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가정사에, 세상사에 압사당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자신을 투사해야 할 일임을 그저 묵묵히 실천할 뿐이다.

 

  참다운 이 책을 요렇게밖에 소개하지 못하는 게 무척 아쉽다. 그래도 이나마 끄적거리는 이유는 이 책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215쪽) 시민이 자신이 속한 집단과 계층의 진정한 이해에 눈을 뜨면 그것이 날줄이 되고,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 연대의 필요성을 각성하면 씨줄이 된다. 날줄과 씨줄이 촘촘하게 그물처럼 엮이면 빈곤선 이하로 추락하는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 안전망이 되고, 기득권을 가지 이들로부터 양보와 동의를 받아내는 압력 수단이 될 것이다.

 

 

 

무거운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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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영혼일 때 떠나라 - 떠남에 서툰 당신을 위한 청춘 여행법
노동효 지음, 안시내 그림 / 나무발전소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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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활동으로 아이들 데리고 시립도서관에 갔다가 눈에 띄어 빌려온 책이다.

 

60여 명이 넘는 인원이 도서관에 들이닥쳐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소란을 떠니 참다못한 도서관 직원이 바로 학교에 전화를 했다. 아이들 지도 좀 잘 해달란다. (나를 포함한 지도 교사 두 명 중 한 사람은 자전거 타다 부상한 아이를 데리고 병원 가는 바람에 60여 명의 아이들은 오로지 내 책임이었다). 학교가 그렇듯 공공도서관 역시 학생들이 이용해주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안되는 곳인데 기껏 아이들 데리고 왔더니 소란 떤다고 그런다. 학생들도 고객인데 친절하게 가르치거나 안내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넓은 도서관 구석구석에서 학생들 지도를 기대하는 그대들, 교사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것 아닌가.

 

그 와중에 눈치를 보며 빌려온 책이 이 책이다. 웬만하면 반납하기 귀찮아서 그냥 나오거나 나중에 인터넷으로 살 요량으로 제목만 적으련만, 이 책을 집어들고 첫 장을 펼쳐 읽는 순간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반납 따위, 그건 나중 일이다.

 

이미 저만치 흘러가 버린 20대의 여행이라.....내 나이 또래는 30대에 접어들어서야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다. 그것도 나 처럼 제 때에 자리잡지 못한 경우에나 여행이 가능했지 착실히 살아온 내 친구들에게는 여행이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취직, 결혼, 아이들로 이어지는 일련의 삶의 연속에서 어디 만만한 구석이 있는가. 얼마 전 명퇴를 하고 동유럽 여행을 떠난 내 중학교때 단짝의 경우도 누구나 쉽게 마음 먹는다고 할 수 있는 여행이 아니다. 이래저래 여행은 만만한 게 아니다.

 

그래서 20대의 무모한 여행을 기록한 이 책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한 장 한 장을 한숨을 섞어가며 읽었다. 이런 게 회한이라는 건가.

 

이 무모한 여행에서 지은이를 보살펴주고 지켜준 건 여행의 신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렇게.

 

(313쪽) 당신이 모험길에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의 신은 당신을 내려다보기 시작한다. 아무리 힘든 여행길이라 할지라도 내일을 위한 계획은 하되, 걱정은 하지 마라. 당신을 내려다보던 여행의 신은 당신이 정말 간절히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이 곧, 여행이다.

 

작년 10월 이후로 전혀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 오른쪽 다리의 고통으로 어제는 급기야 종합병원에 가게 되었다. 그간 네 군데의 동네 의원을 전전했건만 결국은 시간 낭비 돈 낭비였던 것 같다. 한 달 후로 잡힌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근전도검사와 혈류 검사 예약지를 앞에 놓고 인터넷검색으로 알아본 이들 검사 내용은 그리 반가운 것들이 아니었다.

 

걱정 반 우울 반의 기분을 그래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만큼은 잊을 수가 있었다.

 

'여행은 재산'이라고 말하는 지은이의 혜안에 깊이 공감하며 내게도 여행 신의 강림을 간절히 기원하고 또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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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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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겉표지에는 세 개의 문장이 울타리처럼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박노자의 삐딱한 국가론.

폭력으로 유지되는 국가와 결별하기.

 

많은 내용 중에서 두 가지가 인상적이다.

 

하나.

 

(37쪽)...우리가 국가를 '합리적인 조절자'로 생각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음의 극치인 셈이다. 계급국가는 합리적이지 않으며 합리적일 수도 없다. 예컨대 지금의 남한처럼 모국어 이해마저 잘 안 되는 서너 살짜리의 유아들까지 혀 수술을 받아가면서 '영어 유치원'에서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워야 할 정도로 전국적인 '영어 광풍'을 일으키는 것은 합리성이 아니고 그 반대다. 영어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 다수가 영어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그저 다수에 대한 가혹 행위이자 엄청난 규모의 낭비일 뿐이다. 그러나 영어 능력을 그 주된 문화자본으로 삼고 있는 남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서 '영어 광풍'은 너무나 필요하다. 그러한 분위기에서야 영어를 무기로 삼는 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합리화하고 세습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3월 초. 원어민 교사의 첫 수업. 영어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강연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강사는 중국에서의 영어 열풍을 보여주면서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는데 강연장의 분위기는 뭐랄까 흡사 종교 집회와 흡사했다. 소름이 끼쳤다. 아무리 영어가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해도 종교는 아니잖은가. 수업이 끝나고 이 문제의 동영상에 대해서 한마디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종교적인 강연같다고. 그랬더니 그 다음 시간 부터는 수업 중에 내 눈치를 살짝 보는 듯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할 걸 그랬나 싶다. '영어가 무슨 종교냐?" 고.

 

버겁다. 불편하다. 괴롭다. 고통이다. 무엇이? 영어가. 

 

둘.

 

(287)...우리 모두가 그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대체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 이런 빚을 지고 있을까?

 

(287)...'또라이'로 취급받아도, 이등/삼등 시민으로 전락해도, 그들은 군사주의적 독재의 유순한 '국민'되기를 거부했다.

 

그나마 초기 기독교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여호와의 증인이다.

 

11쪽에 걸친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부분(277~287)을 읽으며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침례교회-여호와의 증인-천주교-불교의 영향을 차례대로 받아온 내게 여호와의 증인은 쉽게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었다. 변호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남들처럼 그들을 비웃거나 조롱할 수는 없었다. 아련한 동정심 같은 걸 갖고 있었는데 이제야 그들도 제대로 평가를 받는구나 싶어 감격스러운 것이다. 이 부분을 그대로 옮기지 못해 애석하다.

 

여호와의 증인하면 떠오르는 소책자가 있다. <깨어라>, <파수대>. 어렸을 때 한번도 얼굴을 뵌 적 없는 먼 친척 고모가 상당기간 이 잡지를 집으로 보내준 적이 있다. 그 고모도 음지에서 살았을까, 왜 한번도 얼굴을 뵐 수 없었을까.

 

 

내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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