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27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 / 이다미디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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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정기간 일을 하여 돈을 모았다가 여행을 떠나는 경우는 많지만, 여행 대신 책을 읽고 책을 저술한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인 에릭 호퍼는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에릭 호퍼의 출생부터 거리의 떠돌이 노동자로 전전하는 동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인상적인 것은, 생계를 위한 날품팔이 같은 일을 전전하면서도 독학으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 진중하고 진실했다는 점이다.

 

그 중 그가 카페테리아 웨이터 보조로 일하면서 겪은 일화가 인상적이어서 옮겨본다.

 

110쪽...나는 마침 철야 근무였다. 그 날 새벽이 가까올 무렵에 놀라운 인물이 카페테리아로 들어왔다. 나는 눈에 띄는 그의 용모와 권위 있는 분위기에 놀랐다. 그는 풍채가 좋았고 옷차림이 남달랐다. ..누구라도 그런 옷차림을 보았더라면 모든 면에서 신중히 생각해서 골랐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마 그는 넥타이를 하나 고르는 데에도 우리 같은 이들이 아내를 고르는 것보다 더 신경을 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그의 양말 한 짝에 구멍이 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뭔가를 해 주지  않는다면 하루 종일 찜찜할 것 같았다. 그의 옷차림을 보아 그는 어떤 중요한 모임에 가는 길임이 분명했다. 양말에 구멍이 난 것을 보이게 되면 체면이 손상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바늘과 양말에 맞는 색의 실을 갖고 와 그의 식탁으로 갔다...나는 양말에 구멍이 났다는 이야기를 한 다음 양말을 벗어 달라고 했다...양말을 다 깁자, 그는 지갑에서 20달러짜리 지폐를 꺼내어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거절하면서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했다...그는 다음 날 새벽의 같은 시간에 ...찾아와서 멋진 금시계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와 같은, 떠돌이 노동자로 살면서 그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 편 한 편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주로 이런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기에 철학자 혹은 사상가로서의 그의 면목은 단편적으로만 접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그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전에 에릭 호퍼라는 인물에 대한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고 더불어 이렇게 평생을 노동자로 살아온 사람이 일구어낸 사상이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다행히 그의 책이 몇 권 번역되어 있다. 에릭 호퍼의 삶과 인간적인 면모에 감동을 받은지라 찾아서 읽어야겠지만, 나 같은 인간은 오직 일하고 여행하는 데만 온 정신을 팔며 살아온 소비적인 인생인지라, 이런 다짐을 지킬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훌륭한 사람이 써 놓은 책조차 읽지 못한다는 건 무척 부끄러운 일이 될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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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9일, 휴대폰을 바꿨다.

 

어언 8년을 사용한 휴대폰이 드디어 명을 달리했다.  휴대폰 대리점 직원 왈, 이렇게 오래 사용한 사람은 처음 본다나...

 

전자제품은 고장날 때까지 써야한다는 평소의 내 지론을 실천한 마당이어서 기꺼이 새 휴대폰으로 바꿨는데...흠, 자판의 글자가 기겁할 정도로 커서, 눈살을 찌푸리면서 사용하던 습관을 수정해야하는 점, FM라디오가 시원하게 나온다는 점, 전자사전이 내 손끝에서 펼쳐진다는 점 등 내가 전화기에서 요구하는 수준은 딱 요건데 그 기대에 제대로 부응한다.

 

한가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점은, 바로 벨소리. 벨소리 때문에 전화가 자주 걸려오는 것도 꺼려질 판. 급기야 국립국악원에서 해금연주를 다운 받았는데 제대로 저장되지 않는다. 딸내미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자기 일 아니라고 대충 해보고 포기한다.

 

친구들에게 바뀐 전화번호을 알려줬더니 축하메시지를 보내온다. 드디어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들었냐고. 스마트폰은 무슨. 내 이름 자체가 전화기의 발전과 운명을 함께 하는 이름인 걸 굳이 전화기까지...

 

친구1- "헐"

친구2- "역시"

 

아직 반응을 다 살피지 못했다. 효도폰이라고 굳이 밝힐 필요는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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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 당신의 반대편에서 415일
변종모 지음 / 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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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고 모호하고 달짝지근한 세계에 몰입되지 않는 이유를 고민하게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상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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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 변종모 (A lie of yearning for nobody)
    from 512 2012-10-14 14:57 
    노련한 여행자의 솔직한 이야기.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한국에 돌아오면 제일 처음으로 읽고 싶던 책. 다른 몇 권의 책을 읽고 나서야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친구 집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몇 장을 읽고, 오랜만에 만난 녀석들과 술을 한잔 마셨습니다. 목구멍까지 술이 차올라 찰랑거렸으니, 어쩜 술 한잔이라 하기엔 좀 과할 정도였을지도 모르겠군요. ...
 
 
 
김점선 스타일 1 - 오직 하나뿐
김점선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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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나온 김점선의 인터뷰 책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는 툭툭 던지는 말투가 재밌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점선의 책을 읽게 된다. 나긋나긋한 감성이 물씬 풍기는 투의 글은 금방 질려버리지만 상대방을 적당히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는 왠지 묘한 끌림 같은 게 있다. 무엇보다 김점선의 글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김점선이 글이고 글이 김점선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명한 혹은 소위 성공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렇다. 박완서, 김중만, 장영희, 표민수, 김방옥, 신수정, 김창완, 윤여정, 최인호, 김영희, 신경숙, 이승철, 앙드레 김, 은희경, 조영남, 김혜자, 정명훈.

 

이 책이 중고샵에 떴길래 무슨 책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김점선의 책이기에 그냥 구입했을 뿐, 사실 나는 유명인사에게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의 성공에도 관심이 없는 건 매한가지. 그러나 새겨들을 만한 부분이 있어서 소개해본다.

 

107쪽...어느 날, 김창완 어머니가 버스를 탔다. 옆자리 할머니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어머니가 물었다. "왜 그러셔요?" "말두 마셔. 영감이 10년이나 누워 있다가 죽어서 화병이 나서 그런다우." 그렇게 할머니가 말했다. 김창완 어머니가 김창완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1971년에 중풍으로 쓰러져서 1998년에 돌아가신 이야기를 했다. 옆자리 할머니가 내릴 때 김창완 어머니에게 90도로 절을 했단다.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 두 군데 나오는데 역시 들을 만하다.

 

142쪽...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감성이 풍부하고 매우 인간적이고 정서가 안정되어 있다. 빈부를 초월하여 늠름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 깊은 믿음이 있다.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모호한 믿음. 자신의 영혼이 좋은 데와 닿아 있다는 믿음. 무조건적인 안정감.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예의와 부드러움이 있다. 무례하지도 않고 덤비지도 않고 차분히 존재한다.

 

163쪽...성공한 사람들은 나이를 초월해서 밝고 깨끗하다. 열정적이고 순수하다. 인간 최초의 순수 같은, 맑은 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꾸밈없이 말하고, 환하게 웃고, 예의 바르고 따뜻하다. 이제까지 보아온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던 빛나는 특징이다.

 

흠, 나 같은 인간은 도저히 성공한 부류에 속하지 못하리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앙드레 김에 대한 얘기가 인상적이다. 보통은 거부감으로 다가오는 그의 말투, 옷차림, 그리고 무성한 근거없는 소문들을 일축시키기에 충분하다.

 

169쪽...(앙드레 김은) 일관된 정서가 평생을 지배한다. 고결한 상대를 사랑하듯이 자신을 사랑한다. 누구나 자기애와 운명애를 느끼지만 그 실천 과정에서 인생이 결정지어진다. 희미하게 흐지부지하게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흐지부지하게 인생을 끌고 다니다가 끝낸다....(앙드레 김은) 일관되게 나타나도록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다....범죄 취조실에 잡혀와서 사는 게 인생이 아닐진대, 자신이 되고 싶은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것은 자유이자 권리다. 많은 사람들이 포기해서 앙드레 김이 돋보일 뿐이지!

 

2권도 있는 데 중고샵에 뜨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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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인류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담으로 세상 읽기 지식여행자 14
요네하라 마리 지음, 한승동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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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의 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라면 <프라하의 소녀시대>가 되겠고 그 다음으로 기꺼이 이 <속담인류학>을 꼽고 싶다.

 

세상에 떠도는 온갖 속담을 끌어다놓은 것도 재밌고 그 속담을 빗대어 세상 이야기를 슬쩍슬쩍 끄집어내는 것도 무척이나 유쾌하다. 잡다한 속담에 빗댄 잡다한 이야기의 범벅이지만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혼자서 키득키득 웃음을 베어물게 된다. 그 많은 속담을 어떻게 수집했을까도 내내 궁금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역시 압권은 미국과 그 미국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고이즈미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부분은 직접 지은이의 말을 들어보는 게 좋겠다.

 

p86...유럽, 심지어 일본을 포함해 세계는 미국 없이도 잘해나갈 수 있다는 인식에 다가가고 있다. 거꾸로 미국은 세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자각하기 시작했다. 세계로부터 물자와 돈의 유입이 중단되는 것, 이것이 미국 경제에 가장 큰 공포이며, 바로 이것을 어떻게든 저지하기 위해 세계의 자금과 자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유럽이나 일본만큼 중동 석유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미국이 중동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집착하는 것은 바로 세계의 돈과 자원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실제로 유럽과 일본이라는 구세계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미국에겐 늘 세계적인 혼돈과 동란 상태가 필요하다.

 

p154...그러고 보면 북한이 핵탄두를 보유했다고 슬쩍슬쩍 드러내 보여도 미국 정부의 대응은 이라크에 비해 훨씬 더 관용적이다. 아마 미사일방어체제를 일본과 한국에 팔아먹는 데 아주 좋은 구실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한국과 통일이라도 하면 동아시에서 미국의 존재 가치는 날아가버릴 것이다.

 

역시나 요네하라 마리의 국제적인 감각이 매우 돋보이는 책이 이 책인데 단 하나, 때때로 이 책은 19세 이상의 등급을 요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속담이란 게 원래 해학적인 요소가 강한 민담 수준의 내용이 많을 수밖에.

 

 

학교 일이 참 만만하지 않다. 작년엔 아이들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는데, 올해는 온갖 공문 처리하느라 내 몸의 일정 부분을 따로 작동시켜야 한다. 겨우 반쯤 읽은 이 책을 이렇게라도 어설프게 남기려는 이유라면 이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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