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삶아 메주 만들고, 그 메주로 간장과 된장 담그던 엄마를 옆에서 지켜보며 자랐으나 그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공부만 착실히 하면 되었기에 손에 물 묻히는 가사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직장 생활을 끝냈을 무렵, 평생 내 손으로 장 한번 못 담가봤다는 사실에 문득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우연히 손에 들어온 호박 물엿과 그 뚜껑에 적혀 있는 고추장 담그는 방법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고추장을 담그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려운 게 아니라 관심 부족이 문제다.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뭐 당연한 말이겠지만.
된장, 된장...노래했더니 기회가 왔다. 생활협동조합원을 대상으로 장 담그기를 한다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바로 신청했다. 날짜에 맞춰 갔더니, 살림살이에 도가 튼 중년의 주부들과 한창 살림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나는 나이만 먹은, 일 못하는 어르신이었다.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게 인생이라지만 어떤 일은 제 때 배우지 않으면 좀 폼이 안 난다. 이 나이에 발레를 배우겠다고 덤비는 것도 아닌데 뭔지 모를 부끄러움.
2025년 2월 18일 (내가 찍은 사진 아님)
기록삼아 레시피를 옮긴다.
*재료: 메주 1말 기준(메주 4덩어리)
소금(천일염) 4킬로그램
물 20리터
(메주 1덩어리당/ 소금(천일염)1킬로그램/물5리터)
*담그는 법
1. 잘 뜬 메주를 준비한다.
2. 메주는 깨끗한 물에 재빠르게 씻어 말린다.
3. 항아리를 깨끗하게 씻어 말린다.
4. 소금물을 준비한다.
5. 항아리에 메주를 차곡차곡 담는다. (항아리의 80%를 넘지 않게)
6. 준비한 소금물을 붓는다.
7. 숯을 달궈 항아리에 넣고 마른 고추, 대추(선택)를 넣고 메주가 물 위로 뜨지 않게 대나무나 나뭇가지로 눌러 놓는다.
8. 유리 뚜껑으로 덮는다.
*발효 기간
음력 1월 장: 70~80일 발효
음력 2월 장: 50~60일 발효
음력 3월 장: 40~50일 발효

2025년 4월 24일 장 가르기 중 메주 으깨기
장 가르기는 소금물과 메주를 가르는 일로 메주를 꺼내어 손으로 메주의 콩을 으깨고, 소금물을 거르는 걸 가리킨다. 이렇게 거른 소금물은 간장이 되고, 으깬 메주는 여름 내내 발효 과정을 거쳐 된장이 된다. 소금물을 잔뜩 먹어 흐물흐물해진 메주지만 손으로 으깨는 일은 만만치 않다. 착착 짓이겨서 아기 엉덩이처럼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나...메주 네 덩어리를 세 명이 기를 쓰고 으쌰으쌰 열심히 비비고 으깨었는데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일 못하는 내가 참으로 마음에 안 들었다.
그동안 날로 먹은 된장을 헤아리면 나도 염치없는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