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철학적인 하루
피에르 이브 부르딜 지음, 강주헌 옮김 / 소학사(사피엔티아)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어제 하루종일 책정리를 했다. 이리 꽂아보고 저리 쌓아보고 정신없는 와중에 '언젠간 리뷰를 써야지..'라며 구석에 쌓아놓은 책들이 눈에 띄였다. 어머나... 이렇게나 많이...^^;;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대학 신입생 때였다. 중고생이 읽을만한 책을 고르던 중 우연히 눈에 띄여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읽고 난 뒤 난 프랑스가 너무 부러웠다. 막 수험생을 벗어난 내게 필이 느낀 일탈은 사치스러움 그 자체였다. 대입이라는 고지를 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학교와 책상 앞에서 보냈던가. 어느 날 갑자기 '나'란 존재가 누구인지, 우리집이 진짜인지, 혹시 나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 아닌지, 이 세계는 그저 환영이 아닐까 등의 의문이 든다고해서 하루를 완전히 제낄 수는 없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사실 의논할 상대도 없다. 만약 부모님께 그런 의심을 이야기 한다면 공부나 해라는 핀잔을 들을테고, 친구들한테 이야기 하면 자기들 일도 바쁜데 쓸데없는 생각 한다고 비웃을지도 모르고, 선생님께 이야기 한다면 공부하기 싫어서 대는 핑계쯤으로 여길테니까.

그런 점에서 필은 행운아다. 태어나면 누구나 한번쯤 그런 고민을 해 본다. 나 역시 어릴 적 그런 상상을 해 보았다. 나는 누구일까. 누가 내 이름을 부르면 나는 의심없이 대답하지만, 과연 그게 정말 나일까. 어느 날 갑자기 가족들이 사라지고 나만 홀로 다른 세상에 떨어지지는 않을까.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진짜일까. 나는 누군가의 꿈 속에 있는 건 아닐까.

존재에 대한 의심, 나에 대한 확신... 어쩌면 그런 의문이 들 때 날 이끌어 줄 수 있던 스승이 계셨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저 잠깐의 의구심으로 치부되고 다시 수험의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던 그 때는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아마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지 않을까. 그러니 철학은 머리 아픈 낡은 학문으로 취급하고, 그저 돈 벌이가 되는 학문들을 찾아서 실용적인 것들만 공부하고...

얼마 전 인문학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했다고 하는데, 사실 좀 기분이 그랬다.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만 하는 이유가 무언가. 좋은 대학 가면 보다 나은 미래가 기다리기 때문 아닌가. 요즘 애들은 물론 내가 학교 다닐 때도 그랬고 연구를 위해서 대학에 가는 게 아니다. 그저 성적이 최고다. 좋은 성적을 가진 애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 잡아서 좋은 집에 살며 끼리끼리 결혼하고... 그런 가치관을 어릴 때부터 심어놓고선 대학 가서 학문을 연구하라고? 인문학을 살리려면 인문학이 상아탑에만 갇혀 있을 게 아니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프랑스처럼, 누구나 하나의 주제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고, 누구의 사상도 비웃지 않으며, 어린 아이의 질문이라고 그냥 넘어가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하긴 아직도 반공을 외치고 있는데 자유로운 사상 토론이란 너무 어려운 일이긴 하다.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지. 요즘 한창 대학자율화니 삼불정책이니 떠드는데 아래부터 쌓아서 올라가는 게 교육일진대, 실컷 위쪽만 개혁한답시고 하는 것도 웃기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위시하여 예능이며 체육이며, 기타 등등 애들을 괴롭히니 애들이 사고할 시간이 어딨나. 논술 교육도 거의 외우는 식이더만. 아예 이 문제는 이렇게 풀고 저런 질문이 나오면 이런 대답이 옳다라고 가르치면 그게 논술인가?

과거 일제가 조선을 병탄한 뒤 썼던 가장 악랄한 정책이 바로 문화말살정책이었다. 그 때 우리는 조선말을 쓸 수 없었고, 조선 이름을 가질 수 없었고, 조선 문화를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오로지 일본말을 쓰고 일본 이름으로 불리고 천황 폐하 만세를 외쳐야 했다. 그 정책을 20년만 더 썼더라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완전히 일본이 되었을거라고 한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 우리말을 버리고 영어를 선택하려고 기를 쓴다. 왜냐? 국제화 시대에 돈이 되니까. 프랑스 애들, 영어 안 쓴다. 꼭 필요할 때만 쓴다.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 대단하다. 그래도 우리보다 잘 산다.

우리 사회에 철학이 얼마나 부족한지 가슴이 아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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