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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시계만큼 시간의 흐름을 착각하게 만드는 장치가 또 있을까. 주기적으로 돌고 도는 바늘을 한참 바라보면, 시간도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오후 4시 27분이 24시간마다 완벽하게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직선이 곡선으로 왜곡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계를 떠올린다. 삶의 시계는 이야기 안에서 직선으로 뻗은 철길처럼 펼쳐진다.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기에 반복되거나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시간과 관계들. 제각기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공통적으로 펼쳐지는 상실감은 바다를 연상시키는 책 표지처럼 깊다.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을 즐겨본다. 『보다』,『말하다』,『읽다』시리즈로 추상적으로만 접하던 작가. TV를 통해 실물을 보니 호기심이 생긴다. 일단 목소리가 좋다는 이유 하나면 충분하다. 드라마 <킬미힐미>가 생각난다. 이런 목소리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어떤 글을 쓸까. 그의 소설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책을 읽을 때는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는 편이다. 표지를 관찰하고, 표지 안쪽의 작가 소개를 꼼꼼하게 읽는다. 본문을 읽듯 차례를 읽고 마지막 표지 뒤편까지 한 장 한 장 눈자국을 찍는다. 이번에는 뒤에 실린 「작가의 말」부터 본다. 편집자의 의도대로 재배치된 순서대로 읽고 싶지 않다. 작가가 교정을 보며 다시 읽어보았다는 발표 순서대로 7편을 읽는다.
다 읽고 나서는 「작가의 말」을 다시 읽는다. 그 어떤 작가도 스스로 쓴 작품에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글을 잘 분석하는 사람이다. 7편의 이야기는 ‘상실’이라는 기본 코드를 공통적으로 지닌 채 다양한 전개로 변주된다.
판타지적인 요소도, 추리 소설처럼 극적인 반전이 있는 요소가 곳곳에 펼쳐진다. 얼핏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은근히 다음이 궁금하다. 결말이 도무지 예측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에서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슈트」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후배가, 「최은지와 박인수」에서는 주인공 아버지의 죽음이 잠시나마 등장한다. 「아이를 찾습니다」에서도 아버지의 관점에서 실종되었다 찾은 아이와 아내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일부러 표현하지 않아도 절로 풍기는 ‘고독’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p12, 「오직 두 사람」)’이 배어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어떤 말을 남에게 하고 살지요.(p38, 「오직 두 사람」)’ 소설이 다큐는 아니지만, 이 글들을 썼던 당시의 작가는 외로웠을 것 같다는 짐작을 감히 해본다.
묘하다. 마냥 슬픈 것도 아니고, 마냥 아픈 것도 아니고, 마냥 먹먹한 것도 아니고,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뒤엉켜서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아버지의 감정들이 그대로 내게 투영되어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이었다, 어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내 가족을 향했다, 언젠가 들었던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옮겨간다. 내게 아직 남아있을 관계의 앙금들이 선명하게 다시 떠오른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그것이 일상이 되었다.(p65, 「아이를 찾습니다」)’는 문장이 무섭다. 꿈에서 깨어나서도 여전히 계속되는 상황을 겪는 「신의 장난」처럼 풀리지 않은 관계들이 화석처럼 굳어져 무감각한 일상이 되어 버릴까봐.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드라마든 소설이든 열린 결말이나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 뒤에는 찜찜함이 따라온다. ‘그래서 그 둘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류의 동화 같은 끝맺음이 좋다. 밥을 먹고 나서 숭늉까지 마신 후의 개운함과 비슷한.
그런 걸 왜 좋아할까. 책을 덮고 나서 다시 한 번 내면을 들여다본다. 이미 알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동화 같은 엔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싶던 건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안간힘이었음을.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p269, 「작가의 말」)’ 애써 가리고 있던 위선이 한 꺼풀 벗겨진 기분이다. 그래도 마음 한켠 위안이 되는 것은 이런 상실감을 깊이 느끼고 글로 표현한 사람이 세상 어딘가 있다는 사실이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겠지만, 조금은 덜 외롭게 견뎌내며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읽는 내내 먹먹하고 답답하고 뭉클했지만 해피엔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후련하다. 슬픔을 슬픔으로 위로해주는, 누군가와 함께 실컷 울고 난 후에 느껴지는 따뜻한 개운함이었을까.
*p40,6째줄: 실을 요전까지 쓰다~ → 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