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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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를 구석구석 살핀다. 겨드랑이 보듯 앞뒤 책날개를 들춰본다. 앞날개에서 저자의 윤곽선을 파악하고 뒷날개에서 파생된 책들이나 연관검색어를 파악한다. 컬러풀한 속지를 조금 바라보며 책과의 연관성을 파악한다. 1페이지부터 시작! 한 권의 책을 읽는 나의 순서도이다.

뒷날개에 한 개 이상 해당된다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합니다.’의 체크리스트가 8개 제시되어 있다. 미술책만 펼치면 졸음이 쏟아진다? NO! 미술관을 동물원 간 듯 구경하고 나온다? NO! 일곱 번의 NO!를 지나 마지막 문항을 체크한다. 재미없고 지루한 건 딱 질색이다? 격하게 YES! 이런 목적으로 쓴 책이라면 적어도 집어던지고 싶어지지는 않겠구나.

이 책을 보며 광활한 시야가 깊이 있게 펼쳐지는 장면을 떠올렸다. 여수에 있는 카페에서 본 장면과 겹쳐졌다.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모양의 스카이타워의 67m 전망대에 있던 카페에서였다. 들어갈 때에는 인식하지 못했다. 중앙에 두터운 유리로 된 바닥의 존재를 나올 때가 되어서야 인지했다. 순간 발바닥이 바르르 떨렸다. 발 아래로 펼쳐진 공간감이 확 몰려오면서 자이로드롭을 타고 내려올 때처럼 쭈뼛했다.

 

뭉크, 칼로, 드가, 고흐, 클림트, 실레, 고갱, 마네, 모네, 세잔, 피카소, 샤갈, 칸딘스키, 뒤샹 등 열네 명 예술가의 삶이 작품들과 함께 우르르 심장으로 쏟아졌다. ‘자신의 심장을 열고자 하는 열망에서 태어나지 않은 예술을 믿지 않는다.(p13)’던 뭉크의 말에, ‘예술에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개인과 그의 삶이며, 우리는 죽어버린 자연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p16)’는 생각으로 그려진 뭉크의 작품에, ‘색에 나의 감정을 온전히 담고 싶다(p94)던 고흐의 열망에, ‘정열은 생명의 원천이고, 더 이상 정열이 솟아나지 않을 때 우리는 죽게 될 것(p163)’이라던 고갱의 붓끝에, ‘단순함도 아름다운 것(p189)’이라던 마네의 관점에, ‘오직 빛이 보여주는 세상을 솔직하게 포착해 그린(p217)’모네의 인상주의에, ‘그림 속 사물 간에 화음(p237)’으로 완벽한 조화와 균형(p237)’을 꿈꾸던 세잔의 구성에, 수백 개의 시점을 한 작품에 녹여낸 피카소의 혁명에, <나와 마을>(p274)에서 가느다란 선으로 디테일의 극치를 보여준 샤갈의 표현에, ‘인생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p333)’했다는 뒤샹의 답변에 심장이 후끈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라도 한 듯 말이다.

 

적당한 온도를 지닌 죽을 떠먹듯 가뿐하게 소화시킬 줄 알았다.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마음에 전혀 부담이 없을 줄 알았던 거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갑자기 다가오는 뭉클한 느낌에 당황스러웠다.

예술을 한다는 건 고독을 안고 걸어가는 걸까. 나의 심장을 뜨겁게 한 지점은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내던 과정이었다. 열네 명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기존의 흐름에 얹혀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표현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입체주의, 야수주의, 추상주의, 다다, 초현실주의, 분류되지 않음에 이르기까지. 책에 소개된 미술가들은 사조들의 선구자였다. 첫걸음이란 얼마나 설레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가. 치열하게 엎치락뒤치락하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세계를 창조했던 그들의 심장은 한결같은 열정으로 뜨거웠으리라. 그들의 삶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며 예술적인 세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의 전율만큼이나 강렬했다. 삶이 이끌었든 누군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든 얼떨결에 문을 열었더라도 독특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그들의 몫이었다.

 

매력적인 책이다. 어디에선가 들어본 듯 익숙한 내용은 조금도 담겨있지 않다. 익숙한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들을 보면서도 신선했다. 등장하는 미술가들 역시 기존의 틀을 고집하는 보수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조원재작가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틀에 속하기를 거부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리라.

재구성된 에피소드와 작품들을 좇아가다보니 아담한 미술관을 들렀다 온 듯 했다. 작가는 순간순간 지루할 틈 없게 관람객들을 이끌어가는 도슨트이자 전체적인 기획을 영리하게 해낸 큐레이터였다. 기획의도와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인다. ‘뜨겁게 가슴으로 공감하는 미술이 되기를(p7, 들어가며)’ 바란 그의 의도대로 미술가의 삶에 공감했고, 그들의 작품에 마음이 몰랑몰랑해졌다.

사람은 사람으로 큰다.(p226)’며 미술가들의 관계를 통찰했던 작가의 시각도 마음에 든다. 덕분에 감성의 키가 한 뼘쯤 자라났다. 미술이란 예술 분야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다. 색과 형태를 넘어 폭넓은 시각으로 미술을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졌다.

 

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화가의 삶과 그림에 담긴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구성된 내용이라 작품들을 감상하며 즐기면 그만이었다. 한데 미술에 대한 책을 읽었건만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진다. ‘관객은 작품이 지닌 심오한 특성을 해독하고 해석함으로써 창조적 프로세스에 고유한 공헌을 합니다.(p326)’ 뒤샹이 한 이 말은 문학에도 적용되는 의미일 거다. 이 책을 문학의 관점에서 읽고 받아들였다. 동일한 작가의 책이 서로 다른 독자에 의해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와 같은 맥락이다.

문학을 예술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예술이 되는 글이 담아야 할 필수 요건이 무엇인지 감이 온다. 유일무이한 작품을 낳은 미술가들처럼 작가도 세상에 단 한 편밖에 없는 작품을 써야 하는 것이리라. 글을 쓰는 관점에서 책속의 문장들을 바라보니 마음에 와 닿는 깊이가 달랐다.

뜨거워진 심장으로 나의 삶을 바라보았다. ‘삶을 살아가는 데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각자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삶의 빛이 있을 뿐이죠.(p168)’ 내가 옳다고 여기는 삶의 빛은 무엇일까. 글을 쓰는 것일까. 나만의 답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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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10-04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은 청각 예술, 미술은 시각 예술이라면 문학은 촉각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글이 주는 감각은 머리보다 피부로 느끼는 경우가 더 많아서요^^

나비종 2019-10-05 08:48   좋아요 1 | URL
따뜻한 글을 부드러운 감촉으로 심장을 어루만지고, 슬픈 글은 따끔한 감촉으로 심장을 찌르는 듯 고통을 주죠. 음.. 심장으로 스며든 글이 피부감각으로 감지가 되는 촉각 예술이 맞는 것 같습니다.^^
 
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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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공포인가. 다리 한 짝쯤은 질질 끄며 미역 줄기인 양 늘어진 머리털에서 케첩 방울 뚝뚝 떨어뜨려 주거나 나사못 서너 개 머리에 박고 튀어나올 것 같은 눈깔을 희번덕거리는 미니 식빵 두상을 보유한 괴물이 비, 바람, 번개 3종 풀세트로 장착한 오밤중에 펄럭이는 커튼에서 갑툭튀 정도는 해줘야 으헉! 등골이 오싹하리라.

풍문으로 수없이 들어 읽기도 전에 벌써 읽어버린 느낌을 주는 <프랑켄슈타인>. 공포영화는 아예 보지 않고 TV에서 비스무레한 장면이라도 등장할라치면 배경음악의 인트로 단계에서부터 어김없이 두 손으로 덮이던 얼굴. 뒤표지를 보니 작가의 의도가 적혀있다. ‘우리 본성의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일깨워 소름 돋게 만드는 이야기, 읽는 이가 겁에 질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피가 얼어붙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책장을 펼치기 전에 나란 인간은 마음의 준비부터 해야 했다.

후아~ 후아~ 심호흡 몇 번, 먼 산 몇 번 바라보다 겉장을 넘겼다. ! 이제 드루와~! 다행히 배경 그림은 없어. 꿈에 나올만한 선명함은 없다는 거지. 어여 드루와~ 라며 껄껄거리고 싶... 호루라기를 불기도 전에 심장이 부정 출발을 해 버렸나.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갯벌의 맛 조개 구멍처럼 쏙 들어가 저 혼자 펄떡거리는 마음이라니!

 

하도 널리고 널려서 오히려 구미호보다 이미지가 친숙한 괴물. 섬뜩함을 스멀스멀 풍기며 책 속을 낱장 낱장을 휘젓고 싸돌아다니는 내용인 줄로만 알았더랬다. 편견이란 얼마나 두터운 안대인가. ‘같은 사건이라도 경험의 주체에 따라 전혀 다른 체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따라서 모든 이야기에는 이면이 있음도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었다.(p310, 해설)’ 무서우니즘을 체험하는 줄 잔뜩 쫄며 들어갔다가 깊이 있는 뭉클함을 안고 나오다니. 허를 찔린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고 한동안 멍했다.

소름이 돋기는 했다. 이 모든 걸 열아홉 살에 생각했다는 작가의 천재성이 확 다가와서. 그 나이에 나는 뭐했다냐. 쩜쩜쩜. 하다못해 지금의 나이에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를 올려다보며 비루한 나의 글을 내려다보며 점점 쪼그라드는 자신을 붙들었다.

또 소름이 돋았다. 이제껏 프랑켄슈타인이 괴물 이름인 줄 알았던 나의 무식함에. 프랑켄슈타인이 멀쩡한 인간으로 나와서 이상하다 이상하다 했다. 뭐 과학실에서 생명체를 창조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 멀쩡하다 볼 수는 없지만. 소설의 내용을 전혀 몰랐으므로 이 인간이 나중에 윗옷 좀 가닥가닥 나풀거리면서 근육질 오빠로 변하는 줄 알았던 거다. 짐작하신 대로다. 잠시 헐크랑 헷갈렸다. 가만있자,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였나. 흐아! 더 이상의 무식은 이제 그만!

 

내가 꼽는 이 책의 매력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놀라운 흡인력이다. 시소처럼 번갈아 솟아오르며 감정과 행위의 당위성을 어필했던 두 캐릭터, 프랑켄슈타인과 괴물. 이 둘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될까. 끝까지 가늠할 수 없어 빨려들 듯 이야기에 집중했다. 감탄할수록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둘째, 섬세한 심리묘사이다. 이야기의 힘도 대단했지만 내내 뭉클했던 건 이름조차 없어 괴물 혹은 악마로 지칭된 캐릭터의 감정선 이었다. 그러데이션 되는 노을빛처럼 이토록 섬세한 심리 변화를 영상으로 구현하기는 어려웠으리라. 그래, 글의 힘이란 이런 거지. 문장을 통해 서서히 전달되는 마음에 동화된 나는 점점 설득되고 있었다. 점진적인 괴물의 변화에 마음이 아팠다. ‘사랑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면 공포의 근원이 될 테다.(p194)’ 이런 말을 꺼내기까지의 과정이 점층적으로 묘사되었기에 무모한 살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정당방위가 아니고서야 수긍이 가는 살인이란 있을 수 없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셋째, 공간적 배경을 묘사하는 문장들이다. 작가는 따뜻한 가족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가족은 크게 두 그룹이다. 그들로부터 말과 글과 인간세계를 배우며 괴물이 속하고 싶어 했던 가족과 프랑켄슈타인이 속해있던 가족이다. 구성원들은 모두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해주며 온기를 나눈다.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를 질시했던 계모로 인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17세에 유부남과의 도피를 감행한 작가. 생후 11일 만에 사망한 첫 딸, 동복언니와 남편의 전처의 자살. 19세의 감성으로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일들이었으리라. 그런 그녀에게 위안을 준 대상 중 하나는 바로 자연의 풍광이 아니었을까. ‘외경심을 불러일으키고 품위로 가득한 자연의 풍경은 언제나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삶의 덧없는 근심들을 잊게 하는 힘이 있었다.(p128)’ 알프스와 북극의 빙하와 주변 풍경들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그녀가 묘사하는 풍경들은 BGM처럼 작품에 깔리면서 설원의 냉기가 흐르도록 한다. 작품 속에 등장한 장소들을 성지순례 하듯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게 표현된다. 이에 대비되는 소설 속 캐릭터는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넷째, 작가의 관점이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과학자를 말하면서 작가는 농부의 삶을 언급한다. ‘인간을 먹여 살리기 위해 땅을 일구는 일이 인간의 죄악을 목도하고 가끔은 공범자가 되는 일보다는 훨씬 훌륭한 일이잖아. 그래서 부농의 삶이 명예는 차치하더라도,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계속 상대해야 하는 판사보다 행복한 직업이라고(p82)’ 농부라는 직업은 직업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숭고한 영역의 일이라 생각한다. 없던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니. 농사를 짓는 일은 한 사람의 힘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농부는 이를 무엇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햇살과 바람과 대지와 비와 나비와 벌과 미생물 등의 힘이 합쳐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해서 무엇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을 마주하는 존재, 바로 농부이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사람의 영혼이 겉모습처럼 형상화된다면 어떨까. 거리에서 마주 다가오는 낯선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영혼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스케치해볼 때가 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보이는 모습만큼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을까. 실제로 나의 미모를 드러낼 일은 없으니 마음껏 멘트를 투척한다. ! 우리 가족이나 내 얼굴을 아는 인간들만 이 글을 안 보면 된다. 보안 유지는 문제없다. 내 주변인들은 나의 공간에 별관심이 없으니. 나는 잠시 미모의 인간으로 거듭난다. 후후.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돼! 말은 번드르르 하다. 걸어가다 훈훈한 인간이 말이라도 걸어올라치면 첫 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입 꼬리가 올라가는 세속적인 인간이 당당하게 꺼낼 말은 아니지만. . 몰랑해지는 마음은 재채기처럼 당최 감출 길이 없다. 취향을 저격하는 남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이유 하나로 그지 같이 후진 드라마를 얼마나 숱하게 섭렵했던가. 이 책을 보며 반성한다. 겉모습만으로 괴물을 판단하고 그의 선의를 팽개치는 인간들을 보며 시각적인 요소가 대상을 성급하게 재단하는 잣대임을 새삼 깨닫는다. 괴물로 하여금 고민 끝에 한 걸음 다가가도록 용기를 준 최초의 존재가 눈이 먼 아버지라는 점은 이런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껍데기는 가라!

 

과학자로서의 책무와 인간의 본성을 생각한다. ‘새로운 종이 생겨나 조물주이자 존재의 근원인 나를 축복하리라.(p66)’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학문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희열이 느껴지는 일일 터이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생명을 지닌 존재라면 절대 신의 위치에 선 듯 우쭐했을 것이다.

영화 <쥐라기 공원>이 떠오른다. 알에서 깨어난 공룡이 맨 처음 인간을 보게 함으로써 인간에게 해를 끼질 수 없도록 한다. 또한 한 가지 성만 지닌 공룡을 탄생시키면서 생명체의 본성을 관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과학은 본성을 뛰어넘을 수 없다. 멸종으로 치 닫을 만한 극한 상황에서 일부 공룡이 성전환을 한다. 자체적으로 번식할 수 있는 통로를 찾아낸 것이다. 두 작품 속 모두 인간의 오만이 겹쳐진다.

복제인간에 대하여 수업 시간에 언급한 적이 있다. “과학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할 거다. 하지만 생명에 관한한 이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나사나 타이어 같은 부속품을 교체하는 개념이라면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병에 걸린 이들의 입장을 고려하면 대환영할 일 일거다. 하지만 쌤은 완전체로서의 정체성이 존재하는 영역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해야한다고.”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며 고백하듯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열정적인 광기로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나는 이성적인 존재를 창조했으니, 내 능력이 닿는 한 행복과 복지를 보장했어야 합니다.(p294)’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의 잔상이 남아서일까. 이어서 읽은 이 책 곳곳에서 동양의 연기설과 무소유의 개념을 발견하며 새삼 놀란다.

훗날 내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그 격정의 탄생을 스스로에게 설명하다보면, 그것이 마치 산을 따라 흐르는 냇물처럼 미미하고 거의 잊힌 원천에서 솟아나는 걸 알게 된다.(p46)’ 이 문장을 본 순간 연기설이 떠올랐다. 단절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반드시 원인이 있고 원인이 달라지면 결과가 변하고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없다는 개념 말이다.

작가의 남편이 쓴 시 안에는 <반야심경>의 무(無)의 개념도 등장한다. ‘인간의 어제는 결코 내일과 같지 않으리니, 변하지 않고 남는 것은 무상뿐!(p129, 퍼시 비시 셸리)’

싸늘할 때 몸을 따뜻하게 덥혀줄 불도 있고, 배가 고플 때 먹을 맛있는 음식도 있는데. 훌륭한 옷을 입고 있고, 서로 함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날마다 애정과 친절로 가득한 표정을 서로 나누지 않는가. 그들의 눈물은 무슨 뜻일까? 정말로 고통을 표현하는 걸까?(p147)’ 최소한의 것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무소유의 개념이다. 이런 관점으로 인간 세상을 바라보았던 괴물의 순수를 어떻게 생김새만으로 괴물로 바라본단 말인가.

 

선과 악이란 어쩌면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을 지닌 것인지도 모른다. ‘타락한 천사가 사악한 악마가 되는 법이다.(p300)’ 괴물의 존재로 공포를 유발하려는 의도였다면 작가의 화살은 적어도 내게는 빗나갔다. 괴물과 인간의 심리전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본성에 더욱 소름이 끼쳤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이란 존재의 실체는 백지 상태의 괴물과 대비되며 도드라졌다. 이 책을 읽다보면 과연 어떠한 존재를 괴물로 지칭해야 할까 기준이 모호해진다. ‘! 어째서 인간은 짐승보다 훨씬 우월한 감수성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일까? (중략) 하지만 우리는 바람 한줄기, 우연한 한마디, 아니면 그 말로 전달되는 풍경 하나하나에 흔들리지 않는가.(p129)’ 무엇이 공포인가. 누가 괴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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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9-28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무서운 걸 안좋아하시는 줄도 모르고 제 맘대로 선정했네요. 다행히 공포스런 내용은 아니었지만요. 나비종님도 작가의 천재성을 주목하셨군요. 천재 작가들이 세상에 수두록한데 왜 메리 셸리는 유독 특별한 느낌을 주는 걸까요. 단지 19세에 이 책을 써냈기 때문만은 아닌데 말이죠 ㅎㅎ

집어주신 네 가지의 매력에서 1~2번은 저도 너무 공감했고, 3~4번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라 몇가지 코멘트를 답니다. 말 그대로 두 가정이 나오는데 둘다 말로는 좋지 않았죠. 그것이 작가의 평탄치 않았던 가정사가 반영된 거라 볼 수 있겠군요. 그런 작가에게 위로가 되준건 자연의 풍광이라 하셨는데요, 제가 계속 눈에 밟히던 것이 바로 이거였습니다. 스토리나 메시지와 관련도 없는 자연 풍광의 설명이 왜 이리 자주 나오는 것인가. 이것때문에 별5개에서 1개 깎았더랬죠. 근데 제가 캐치못한 부분을 설명해주시니 작가의 의도가 납득이 갑니다. 또한 과학자와 농부의 이야기도 생각을 못했어요. 알아주지 않는 농부의 위대함은 과학자의 위대함과 같다는 메시지도 이제서야 신선하게 와닿습니다.

그리고 역시, 겉만 보고 판단하는 실수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네요. 저도 그 점에 대해 생각이 많았습니다. 정치인들이 자주 써먹는 프레임 씌우기가 생각나네요. 흡연자들은 이렇다, 페미니스트는 저렇다 등등 전체를 싸잡아 결론내려버리니 해당 안되는 사람들은 억울할 뿐이죠. 괴물도 그랬을 거 같아요. 괴물이 처음 사람들에게 다가갔을때 먼저 비명지른 사람을 따라 옆사람들도 겁먹고 줄행랑쳤겠지만, 정작 괴물은 아무런 액션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이처럼 선입견이란게 건강치 못한 사회를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더라구요. 개인적으로도 반성되고요^^;

쥐라기 공원을 이 책과 접목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ㅋㅋ 인간의 오만함으로 파멸에 이른 여러 작품에서, 과학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을 건드려 재앙을 초래했다는 공통점이 아주 딱이네요! 인간은 인간을 낳고, 괴물은 괴물을 낳는다는 생각을 해본다면, 괴물을 만든 인간 또한 괴물이라 불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미 우리는 인간의 추악함을 알만큼 아니깐요. 오늘도 내안의 헐크를 깨우지 않기 위해 여러가지의 마음 수련을 하며 삽니다 ㅎㅎㅎ

9월 한 달도 수고 많으셨어요. 다음 책도 좋은 리뷰 부탁드립니다 ^^

나비종 2019-09-29 00:54   좋아요 1 | URL
이것은 댓글인가 리뷰인가 댓글의 탈을 쓴 리뷰인가! 서로의 공간에 거의 리뷰 수준의 댓글을 쓰고 있군요.ㅋㅋ

무서운 걸 안좋아한다기보다 무서운 게 무서울 뿐입니다.^^; 또, 점점 크면서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워지게 되네요.
메리 셸리가 천재라 느껴지는 이유는 그 나이의 감성 이상의 깊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IQ의 수치를 계산하는 식 중에 나이가 포함된다고 들었어요. 평균의 나이대보다 뭔가를 더 많이 할 수 있을 때 천재라는 말을 붙이잖아요. 미적분을 한다는 사실보다 미적분을 10세에 한다면 감탄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 책 맨 뒷부분에 나오는 메리 셸리 연보를 보면 <프랑켄슈타인>을 쓰기 시작한 이듬해에 호수와 빙하와 유럽 나라들을 여행한 기록이 출간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거든요. <프랑켄슈타인>은 그 다음 해에 출간되었구요. 빙하나 풍경에 대한 여행 기억이 생생해서 그것이 이 책에 유달리 많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생명의 탄생은 그게 뭐든 생각할수록 너무 경이로운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각을 하며 농부를 바라보면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답니다.

맞아요! 겉모습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더욱 크더군요. 오해와 편견의 주범입니다. 사람을 볼 때마다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라며 내면을 받아들이려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구요.^^;

이 책에서 생물학적인 특성을 기준으로 인간과 괴물을 구분하여 지칭한다면, 독자들은 내면의 특성을 종합하여 인간인지 괴물인지 판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작가가 의도한 점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음 수련ㅎㅎ 책읽고 글쓰고 토론하는 과정이야말로 매우 좋은 방법이겠죠? 다음 책을 향해서 또 부지런히 걸어가야겠습니다.^^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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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이었던 것 같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반야심경>의 무려 260개의 글자를 외우도록 끌어당기던 막강한 힘은. 아이에게 사탕은 돌멩이계의 다이아몬드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이었나. 몇 살 때인지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워낙 달달 외웠던 탓에 아직도 익숙한 유행가 후렴구처럼 툭 치면 '고득아뇩다라~'가 바로 튀어나올 정도이다. 어머니께서 공양주로 일하시던 동네 절에서는 주말마다 어린이 법회를 열었다. 언니, 동생들과 법당에 들어가 절을 하고 밥을 먹고 스님의 말씀도 종종 들었던 기억이 난다. 딱히 작정하고 불교를 믿은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계신 거기, 절이 있었고 학교 가듯 친숙한 장소였던 까닭이다.

코를 막고 양파를 먹으면 달짝지근하고 사각거리는 그것이 양파인지 사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우리는 냄새와 함께 맛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코를 틀어쥔 손을 떼어내는 순간 매콤한 냄새가 훅 스치며 이런! !!” 임을 깨닫는다. 반가웠다. 이제 양파 맛이 나는 양파가 양파임을 알게 될 거라서. 단지 글자의 배열에 지나지 않던 글귀의 뜻을 알려줄 책이라는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단순한 몸짓에 지나지 않던 그의 이름을 불러 꽃으로 피어나기 직전의 두근거림이랄까.

 

후아! 그래서 대체 반야바라밀다심경이 무슨 뜻이냐고요! 제목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광활했다. 불교의 4법인, 연기, 동양 문명의 테마, 3, 팔정도, 사성제, 계정혜, 슐로카, 3, 금강경, 선불교, 대승불교, 삼승, 비구, 아라한, 6바라밀, 오온, 육불, 이런 십..! 영화 <알라딘>에 나올 법한 양탄자를 타고 마음은 슝 날아갈 준비를 마쳤건만 푸르르 고장 나서 불시착한 채로 비포장도로를 꿀렁거리며 지나온 기분이다. 멀미, 멀미, 이건 멀미였다. 거침없이 밀려드는 불교 지식의 쓰나미를 감당하지 못한 나는 책을 집어던지고 싶은 유혹을 언젠간 가겠지, 이 또한 지나갈 거야이제껏 없던 불심으로 뿌리쳤다. 여러 스님들과 싯달타의 이야기가 펼쳐질 때만 해도 제법 여유가 있었단 말이다. 145쪽에 와서야 반야가 지혜 혜(慧)의 음역임을 알았다. 숨이 찼다.

TV 속에서 클립 영상으로 보던 저자는 거침없는 인물의 표상이었다. 그의 책은 처음 접한다. 강연 투로 서술된 책속의 문장들은 거침이 없었지만 혼자만 거침없고 장황하다는 느낌이다. 종교와 철학과 문화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보유하신 분이라는 것은 잘 알겠는데 그 서술방식이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 예컨대 나는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르기를 원하는데 저자는 한달음에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서 설명하고 다시 불쑥 올라가는 방식이다. 다소 어수선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저자의 걸음을 따라가다 지쳐버린다.

 

기다리던 부분은 4<반야바라밀다심경> 주해가 시작되는 201쪽부터 등장하였다. 하아! 이 스무 장을 보기위해 200쪽의 걸음을 동동거리며 기어왔던가. 막상 해설은 명쾌하고 이해하기 쉬웠다. 그것도 배경지식이라고 꾸역꾸역 종이에 메모하면서 공부한 효과가 마지막 장에 와서 효과를 발휘했다. 이러려고 그렇게나 열심히 불교의 흐름과 용어를 펼쳐놓으셨던가. 머쓱해졌다.

<반야바라밀다심경>600권이나 되는 방대한 저술의 핵심을 260개의 문자로 요약한 단행본이다. ‘심경은 핵심을 요약한 경전이란 뜻이다. 이 책에 나온 것은 삼장법사 현장이 저술한 것이다. ‘반야지혜를 의미하는 음역이며, ‘바라밀다극치, 완성을 의미한다. 합치면 지혜의 완성이다. 반야경은 대승불교의 출발이다. ‘대승큰 수레로 대중을 향해 열려있는 불교이다. 대승불교는 보살의 불교이다. ‘보살보리살타의 줄임말이다. 지혜와 깨달음을 의미하는 보리와 본질, 실체를 의미하는 살타가 합쳐진 말로 깨달음을 지향하는 사람, 그 본질이 깨달음인 사람이다. 이는 수행자에 국한된 소승불교가 대중에게로 확대됨을 의미한다. 당신도 보살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반야심경>의 지향점은 무(無)이다.

 

책속에 언급된 일화와 이론들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일상에 바로 적용하여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팁을 몇 가지 얻었다.

첫째, 경허 스님의 이야기를 통한 방하착(放下着)’이다. 정작 여인을 업고 개울을 건넌 스님은 여인을 내려놓았는데, 이를 지켜본 사미승은 그 생각을 계속 내려놓지 못하며 생각으로 여인을 업고 가는 셈이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유난히 피곤한 하루였다. 종일 실험 평가를 하느라 5분도 쉬어보지 못했다. 화학 실험이라 안전사고가 일어날까 예민했고 빈 시간이면 다음 반 실험을 위한 준비에 분주했다. 피곤의 극치는 마지막 반에서 터졌다. 평소 수업 태도가 그지 같아서 들어가기 전에 몇 번 릴렉스를 한 다음 들어가는 반이다. 역시나 나머지 반들에게서는 일어나지 않던 일이 발생한다. 지금 생각하면 사고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단지 내말대로 실험하지 않은 것뿐인데. 순회하는 내 눈에 띤 장면은 지시약을 1방울 넣으라는 나의 주의사항을 깔끔하게 저버리고 뚝뚝 떨어지는 방울들과 보란 듯이 보라색과 진청색으로 그득 채워진 홈판 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희미한 파스텔 톤으로 눈물 몇 방울 정도의 양이 들어있어야 할 그곳이, 보여서는 안 되는 색깔을 띤 단청 색 찰랑거리는 오줌단지가 되어버린 거다. 이거 누가 그랬어! 늘 그렇듯 결과는 있으나 원인 제공자는 밝혀지지 않는,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황이다. 사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누가 그랬다고 말하기도 어려웠을 거다. 조원 전체를 태도에서 감점을 한다고 버럭 하니 몇 마디씩 변명이 쏟아진다. 심증 가던 그 아이는 바로 옆의 조였다. 아이의 문장 하나가 마음에 꽂힌다. 아이들이 방해된다고 만져보지 못하게 해서 떨어뜨려보고 싶어서 한 방울 넣어본 거예요. 족히 10방울은 넘어 보이는 색깔을 현미경 수준으로 축소한 아이의 마음이 순간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깔 확인은 다 한 거야? . 얼른 뒷정리 해.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아까의 버럭이가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경허 스님의 내려놓음이 생각났다. 그 순간까지 버럭이를 놓지 못하고 업고 왔구나. 뭐 좋은 거라고 붙들고 있나, 얼른 내려놓아야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둘째, 연기(緣起)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싯달타 깨달음의 핵심이다. ‘어떠한 사물도 그것 자체로 단절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의 변화가 오면 결과는 반드시 변하게 마련입니다.(p123)’ 사랑이나 사람이 변하는 것도 연기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던 거다.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없는 것이었던 거다. 의식하지 못한 원인들이 계속 쌓이고 쌓인 것이 갑작스럽다고 느껴지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조금 더 세심하게 잘 바라봐야함을 깨달았다. 분명 최초의 한 방울이 있었을 거다. 그걸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셋째, 저자의 표현대로 하면 나는 좆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 비하와는 전혀 다른 의미일 터이다. 나를 바라보며 겸손해지고 욕심을 버리라는 의미라 해석한다.

 

<반야심경> 해설을 음미해보니 나의 생활 패턴에 대한 학문적인 지지 기반이라도 얻은 듯 뿌듯하다. 어렴풋이 해답을 얻었다. 비행기를 타고 뿌연 구름 속을 지나며 여기로 가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시야가 탁 트이며 맑아진 공간으로 들어와 버린 느낌이랄까.

260개의 문자 중 자주 등장하는 한자는 공(空)과 무(無)이다. 몇 번이나 나올까 헤아려본다. 공은 7, 무는 21번이다. 흥미로운 점은 초반에는 공이 계속 등장하다 무가 나타나면서 릴레이 바턴을 이어받은 듯 공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무소유와도 연결이 되는 없을 無. 글자의 의미와 느낌이 참 좋다.

어느 순간부터 갖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50대에 들어서면서 심장 언저리를 맴도는 생각이다. 물건을 볼 때면 이것도 결국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무소유를 지향하기로 했어. 나를 위한 물건을 사는 일이 줄었다. 지금 가진 옷, 구멍 날 때까지 입을 거야. 주변인들에게 웃으며 말하는 나. 옷을 사지 않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나마 소비하는 분야가 책인데 지금 책장에 꽂힌 책이라도 다 읽자 하니 현저하게 구입량이 줄었다. 허무함이라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홀가분하다는 느낌이 섞여 점점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사물에도 기가 있어 색으로 표현된다면 어떨까. 손길이 닿은 횟수만큼 다른 색으로 진화하는 거다. 손이 많이 닿은 물건일수록 찬란하고 화려한 빛을 뿜어내고 전혀 닿지 않는 것은 흑백으로 음영 처리되어 콕콕 집어내어 버릴 수 있도록. 무소유의 관점에서 집안을 바라보니 버릴 것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몇 년 간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을 찾으면 되는 거다. 서른 한 가지도 넘게 골라내는 재미가 붙는 중이다. 버리니까 공간이 생기고 공간이 생기니까 숨통이 트인다. 물건 대신 공간을 얻는다. 새로운 공간이 신선한 공기로 채워져 덩달아 가벼워진다.

삶은 수학이 아니다. 3-3=0 이라는 수식의 수학적 결론은 0이지만 삶에서는 + 가 제로로 되는 과정이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는 까닭이다. (無)로 돌아가는 과정이란 이런 걸까. 매순간 변화하는 나에게서 무언가를 더하거나 덜어내면서 0으로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 말이다. 감당하기에 버거운 물건들을 소유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은 물건을 덜어낼 시기이다. 조금 더 과감하게 버릴 생각이다. 감정이 될 수도 있고 관계이거나 사물이 될 수도 있는 무언가를 향한 치열한 영점 조절을 해볼 작정이다.

 

 

p112, 8째줄 : 못했다는데 못했다는 데

p130, 밑에서 3째줄 : 영예 명예

p169, 2째줄 : 있어났는데 일어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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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령 2019-12-27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제대로 읽고 제대로 이해하셨네요. 끝까지 정독했습니다.🙏

나비종 2019-12-28 09:50   좋아요 0 | URL
두께가 만만한 책이었는데 내용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읽는 데 어찌나 오래 걸리던지요.^^; 하지만 몇 번의 역경을 넘기면 마음에 남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로 돌아가신 도깨비님처럼ㅎㅎ
 
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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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에서 책 읽고 있어.”

혼자?”

.”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집에서 읽지, 왜 혼자서 그러고 있어.”

집은 노동의 공간이라 집중이 잘 되지 않아. 3 둘째가 밤 10시 반 넘어서 집에 오니까 겸사겸사 기다리는 거야.” 가뿐한 듯 말을 보탰다.

집에서 나는 밥통이다 세탁기였다 가전제품이 되는 기분이 들어. 정서적인 교류 없이 왔다갔다 기능을 하는 인공지능이랄까. 그래서 집에서 나오는 거야. 여기서는 커피 값만 지불하면 존중받는 느낌을 받으니까. 아무도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공간이지. 억지로 마음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점점 가라앉다 방바닥이 되어버릴 것 같거든. 나는 지금 안간힘을 쓰는 중이야.’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하는 말은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다 모습을 감추었다.

얼른 읽고 집에 들어가.”

그래.”

마음 따뜻한 친구지만 내 마음을 공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버티는 중이었다. 맨발로 얼음 바닥을 걷는 마음은 종종 휘청휘청 시렸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야. 스스로 다독일 때면 감각이 마비된 듯했지만 탄성력을 지닌 채 되돌아오는 냉기를 안아야 했다. 책을 읽고 시를 쓰고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글쓰기 대회에 참여하며 나의 존재를 활자로 확인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고요하고 따뜻한 공기가 온몸을 휘돌고 지나갔다. 글을 쓰며 마음에 박힌 가시를 하나 둘 빼내었다. 하지만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낮 동안 웃고 말하는 가면을 쓰던 나는 퇴근 후 말간 민낯으로 가라앉은 마음을 마주했다. 역류성 식도염이라도 걸린 듯 가슴 깊숙이 고여 있던 물컹함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올랐다. 커피숍으로 가는 길은 따끔한 자유였다. 껄끄러움이 먼지처럼 눈가에 고여 물기가 어렸다.

 

5교시에 들어가 보니 여학생들 대부분이 자리에 없다. 하나 둘 들어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어둡다.

무슨 일 있었니?”

점심시간에 배드민턴 반 대항을 했는데 졌어요.” 남학생들이 답을 해준다.

훌쩍거리며 다시 울먹이는 몇몇 여학생들. 맨 마지막에 자리로 돌아온 A의 눈이 뻘겋다. 본인 생각에 억울한 상황이 있었던 거다. 수업을 진행하는 내 눈치를 보며 뒷자리 친구에게 억울함을 토로한다.

‘CPR의 핵심은 타이밍이다.(p304)’ 수업보다 더 중요한 긴급 상황이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잠시 수업을 멈추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가 많이 속상한가보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속상했을까?”

제가 한 시합은 이겼는데요, 친구에게 체육복 바지를 빌려주고 저는 친구 치마를 입고했는데 그게 짧아서 움직이기가 불편했는데 선생님이 자꾸친구에게 했던 말을 반복하는 A.

아이의 대답에 집중하고 궁금해 하는 태도가 어떤 좋은 질문보다 더 좋다.(p275)’ 가만히 옆에 서서 A의 말을 들어주었다. 본인의 옷까지 빌려주고 불편을 감수했는데도 그 노력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진행 과정에서 서운한 일이 있었나보다. 다시 생각해도 속상한지 A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예전의 나라면 아마도 진행하는 선생님 입장에서 말하고, 시합을 하다보면 질 때도 있는 거지 승부에 연연하지 마라 정도의 말을 하고 수업을 진행했을 터이다.

누군가의 고통에 눈길을 포개는 이들의 섬세한 뜨거움이 필요하다.(p12)’ ‘공감 과녁의 마지막 동그라미는 존재가 느끼는 감정이나 느낌이다.(p145)’ 이 문장이 떠오른 나는 A의 마음을 공감하는 말을 건넨다.

저런! **샘이 이런 마음도 몰라주고. **가 많이 속상하고 억울했겠구나.”

어깨를 감싸고 토닥이며 A가 친구들에게 디테일한 상황을 다시 설명하는 시간을 지켜보았다.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않고 단지 아이의 울컥함을 다독이기만 했다.

!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잠시 후 A가 한결 차분해진 어조로 말한다.

그래! 세수도 좀 하고. 어유! **가 많이 속상해서.”

결과적으로 아이의 마음이 낸 문제를 맞힌 셈이 되었다. 이전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향해 한 발자국 더 들어간 느낌이었다.

 

6교시에는 한창 수업을 하는데 B가 벌떡 일어나서 아무 말 없이 뒷문을 열고 나가려한다.

갑자기 어디 가니?”

그제야 물을 뜨러 간다며 500mL 빈 페트병을 흔든다.

아니, 허락을 받고 나가야지 갑자기 그렇게 나가려하면 어떻게 해? 이따 쉬는 시간에 가!” 예전의 나라면 아마도 살짝 황당해하며 조금 높아진 톤으로 이랬을 거다.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p50)’ 순간 이 문장이 떠오른다.

잠깐 복도로 나와 볼래?” 부드럽게 말했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쟤 또 시작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런 종류의 행동을 자주 하며 수업의 흐름을 깨뜨리는 아이였다.

물을 뜨러 가고 싶다면 선생님한테 허락을 먼저 받았어야 하지 않을까?” B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며 말을 했다.

샘 말씀하시는 도중 끊길까봐 말씀이 다 끝난 다음에 허락을 받으려했어요.”

그랬구나. 샘이 잠깐 오해를 한 거네. 미안하다. 얼른 다녀오렴.”

B를 보내고 교실로 들어와서 수업을 계속 진행했다. 평온한 표정으로 다시 들어온 나를 조금은 의아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위기를 모면하려 둘러댄 말이었는지, 말한 대로의 마음이었는지 진실은 B만이 알 것이다. 이 작은 경험에서 나는 세 가지를 얻었다. B의 말이 사실이었다면 내가 B에게 입혔을 지도 모를 상처를 주지 않게 된 것이다. 관성대로 B는 원래 저렇게 버릇없는 아이라 규정짓고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은 거다. B의 말이 거짓이었더라도 목이 말랐을 아이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니까 귀여운 거짓말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나의 감정이 하나도 상하지 않은 점이 내가 얻은 가장 큰 이득이었다.

 

제목이 따뜻해서 집어 들었다. 영감자 이명수가 표현했듯 읽는 책이 아니라 행하는 책(p7)’이다. 번드르르하고 거만한 전문가의 냄새 없이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실전지침서라서 좋았다. 두 명의 학생에게 적용해본 결과, 생각보다 효과가 커서 놀랐다. 막연하게 가정했던 효과 이상이었다. 소박한 집 밥 같은 치유라는 적정심리학은 맞춤형 옷인 듯 어울리는 말이었다. 아이들을 상담하는 노하우를 제대로 전수받은 느낌이다. 그동안 교사로서의 나는 상처 입은 아이들의 마음에 심리적 CPR은 하지도 않고 시술부터 하려고 달려든 셈이다. 마음을 어루만지며 공감하는 행동을 제일 처음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요즘 왜 지치는지 알았다. ‘누군가를 공감하기 위해 누가 재가 돼버리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감정 노동이다.(p264)’ 나는 감정노동을 하고 있던 거다.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듣고 위로해주고 답을 제시해주는 축에 속한다. 그들은 자신의 얘기를 하느라 나의 마음이 어떠한지 관심이 없다. 대화를 끝낸 상대방은 뭔가를 잔뜩 얻은 듯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떠난 후 혼자 남은 나는 종종 공허함을 느꼈다. 그게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거다.

누구에게도 나의 무거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혼자서 견디다 결국 연락을 하게 되는 두 사람이 떠오른다. 평소 연락을 자주 하는 대상은 아니지만 가만히 분석해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A는 매번 대화의 끝에 “**은요?”라며 나의 마음이 어떤가 묻는 이다. B는 나의 존재가 얼마나 의미 있고 소중한 지 표현해주는 사람이다. 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주는 B와 대화하다보면 내가 썩 괜찮은 인간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모두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며 듣고 싶어 했다. 일방통행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내 이야기가 적절히 섞여 들어가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주고받는 상황이 된다. ‘내 존재 자체에 반응한 사람이니 그 사람만이 내 삶에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p68)’ ‘요즘 마음이 어떠냐는 질문은 바로 그곳, 그녀 존재의 핵심을 정확하게 겨냥한 말이다.(p103)’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이거였나. 요즘 넌 어때? 네 마음은 어때? 라는.

 

어젠 좀 울적했어. 글짓기 대회 결과가 나왔는데 떨어져서 좌절했어.”

뭐 그런 걸 가지고 좌절씩이나 하냐?” 안부전화를 건 그 친구는 웃으며 가볍게 넘겼다.

사실 내 마음은 내가 한 말보다 더 의기소침한 상태였는데.

글짓기대회에 도전하는 내 심리를 생각해본다. 이 책을 읽다보니 답이 보였다. ‘자기 존재가 집중 받고 주목받은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확보한다.(p45)’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생각보다 강해졌던가보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마음을 안정적인 곳에 기대고 싶었나.

총량 불변의 법칙은 여러 모로 적용되는 규칙으로 보인다. 어느 한 쪽이 많아지면 다른 쪽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백혈병에 걸려 암세포인 백혈구 수치가 증가하면 정상 백혈구나 적혈구나 혈소판의 자리가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면역기능이 떨어지고 빈혈 등이 생기는 거라 들었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인정 욕구로 채우고 싶었던 마음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시리고 황량한 적막함이 출렁거리는 마음을. 매일 밤 울고 싶은 마음으로 잠들곤 했던 시간들을. 먹고 살기도 버거운 세상에 멀쩡한 직업 있고 그럭저럭 사는데 이런 감정은 사치이지 않나. 사람들이 했을 법한 말을 스스로 내안으로 던져 넣었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옳다는 명제는 언제나 옳다.(p162)’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고 그래서 모든 감정은 옳다.(p218)’ ‘타인을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공감하는 일이다.(p274)’ 누구보다 나의 마음을 잘 아는 내가 나의 마음을 거부하고 있었던 거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세 여자 주인공 중 한 명은 죽은 연인을 잊지 못해 다른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연인의 환영과 계속 대화를 하면서 지낸다. 주변 친구들은 자살까지 시도했던 그녀의 모습을 그저 마음 아프게 지켜보기만 한다.

어제는 그녀가 본인의 상황을 인지하고 친구들에게 손을 뻗는 장면이 등장했다. “나 힘들어!” 그녀의 투명한 연인에게 건네는 말인 줄 알고 친구들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시 그녀가 말한다. “너희들에게 하는 말이야. 나 힘들어!” 그제야 그녀에게 울컥하며 다가선 친구들과 그녀의 남동생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다. 친구들은 그녀에게 말한다. “고마워, 힘들다고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카카오 톡의 프로필 뮤직을 이하이의 <누구 없소>로 바꿨다. ‘누구 없소/ 나를 붙잡아줄 님은 없소/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는데/ 어디 있소~’ 매력적인 목소리와 가사 내용이 와 닿아서. 표현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책속에서는 당신이 옳다란 문장이 몇 번이나 등장했다. ‘심리적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산소 같은 것이 있다.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다.(p48)’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아픈 배를 문지르는 엄마의 손길을 느낀 아이처럼 내 마음은 그녀의 문장들에 반응했다. ‘네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내가 몰랐었구나.(p9)’ 책속에서 저자가 슬며시 걸어 나와 나를 향해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거로구나. 순간적으로 목이 메었다.

가느다란 선으로 그려진 책속의 그림이 적절하게 어울렸다. 두 사람이 안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한붓그리기다. 소제목 옆에 간단한 테두리로 있는 그림은 차라리 장식에 가까웠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울컥했다.

안는다는 것은 참으로 뭉클한 스킨십이다. 저마다의 정체성으로 따로 뛰던 하나의 심장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안는 순간 심장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이의 가슴을 데워준다. 두 사람이 마주하는 경계에서 심장은 두 개로 뛴다.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지 당신의 심장이 펄떡이는 건지. 공명하는 울림은 구분하기 어렵다. 구분할 필요도 없는 순간이 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 그림들과 정혜신의 문장들이 뜨끈한 차 한 잔이 되어 나의 숨결을 데워주었다. 마음을 정면으로 들여다본 내 눈엔 계속 눈물이 스몄지만 내내 따뜻한 다독거림을 느끼며 위안을 받았다. 두 개의 심장을 느껴본 시간이었다.

 

 

p109, 1째줄 : 숨길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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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7 09: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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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7 20: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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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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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바람, 웃음, 농담. 아름답고 무용한 그런 것들을 좋아하던 희성도 죽고, 화초 같은 계집의 치마 끝을 그토록 섹시하게 잡고 그윽한 눈총 뿜뿜 쏘아대던 동매도 죽고, 그거면 됐다는 유진도 죽고, 애기 씨만 불꽃으로 살아났던 작품. 주인공들 대부분이 시간차 몰살을 당했어도 여운이 길게 남았더랬다. 오다가다 스냅 사진 같은 장면만 보았으면서도 충분히 임팩트 있는 뭉클함을 주던 드라마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나니 뜬금없이 떠오르는 드라마. 교집합이 전혀 없는데 대체 어느 부분이? 한참 생각하다 이유를 깨닫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는 허무였다. 드라마에서 인상 깊게 등장한 무용한 것이란 말이 겹쳐진 것이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뭐 이런 소설이 다 있나. 초반에는 파티 작렬하며 남주인공의 정체에 대한 진실게임이 느릿하게 진행되다 등장인물들이 우루루 한군데로 모이더니 그때부터는 폭풍 전개가 이어진다. A가 여주인공이 운전하던 차에 치여 죽고, A의 남편은 남주인공이 그런 줄 알고 권총으로 쏴죽이고 자살한다. 이틀 만에 책을 읽고 나흘을 고민했다. 도대체 책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단 말인가. 좋아, 이토록 허망하고 재미없었음을 써봐야겠어. 소설 구성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이다. 소설의 관점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제대로 분석해보기로 했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깔 수 있으니.

 

첫째, 인물을 살펴보았다.

주요 등장인물의 관계를 보면, 개츠비의 첫사랑은 여주인공 데이지, 머틀의 첫사랑은 톰이다. 데이지와 톰, 머틀과 윌슨은 각각 부부이다. 톰과 머틀은 몰래 만나는 사이이고, 개츠비와 데이지는 5년 만에 재회한 후 대놓고 만난다. 조던은 소설 내내 등장하지만 존재감 제로에 허세 쩌는 인물이다. 그녀와 살짝 썸을 타다 마는 닉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이며 개츠비의 위대함을 묘사하는 역할을 한다.

잠시 등장하는 머틀의 여동생은 언니의 모습을 보고 이런 말을 한다. ‘서로 안 맞는 사람끼리 왜 같이 사냐는 거예요. 내가 저들이라면, 이혼하고 당장 재혼할 거예요.(p48)’ 처음에는 공감했지만 조금 더 생각하니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안 맞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사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같이 살지 않을 경우보다 다만 1%라도 유리한 점이 있을 거라는 말이다. 사람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스스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사람만큼 이기적인 존재는 없으니까. 데이지가 톰의 외도를 알면서도 같이 사는 이유는 톰이 자신의 허영을 만족시켜주는 인물이기 때문일 터이다. 머틀 역시 윌슨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거다. 이런 시각으로 판단하면 오로지 맹목적인 인물은 개츠비이다.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 사랑하는 데이지를 대신해서 죄를 뒤집어쓰려고 했고 자신의 성장 배경에 대한 거짓말 역시 탐욕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향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니까.

일반적인 로맨스 소설에서 대부분 여주인공만은 꽤나 그럴 듯하다. 악녀 캐릭터는 서브 여주의 몫이다. 주인공이라면 무릇 비련의 캐릭터이거나 유쾌함을 장착했거나 어떤 내용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도 아름답거나 공감을 끌어내는 인물이다. 한데 이 작품은 핀트가 어긋난다. 이토록 돈 냄새를 좋아하는 존재가 있을까. 개츠비가 보유한 수많은 셔츠들을 보며 너무 너무 아름다운 셔츠들이라며 흐느끼지를 않나, 개츠비조차 그녀를 가리켜 돈으로 충만한 목소리(p151)’라 표현했으리만큼 세속적인 밉상이다. 여타 로맨스 소설과의 차별점이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의 매력이 도드라지는 것처럼, 데이지의 허영은 개츠비의 순수함을 드높이는 장치를 한다. 부를 끌어 모은 개츠비와 지향점이 다르다.

데이지의 남편 톰도 만만치 않다. ‘어쨌든 그가 자신이 저지른 모든 일을 전부 다 제 입장에서 정당화해버렸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p222)’ 개츠비의 죽음을 도발한 결정적인 인물이다. 머틀의 남편 윌슨이 총을 들고 개츠비를 향해 뛰쳐나가게 만들었으니까.

또한 톰의 말을 그대로 믿고 불끈한 윌슨은 바보다.

관찰자 닉을 작가의 아바타라고 가정한다면 유일하게 밉상이 아닌 인간은 위대한 개츠비이다. 이토록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지질할 수 있을까. 각각의 속성이 지질하다 못해 일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섯 행성들의 등장인물이 연상된다. 권위적인 왕, 자기 칭찬 외에는 듣지 않는 허영쟁이, 술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술을 마시는 술꾼, 5억 개의 별이 모두 자기 것이라는 상인, 1분마다 불을 켜고 끄는 점등인, 자기별도 탐사 못한 지리학자. 독자 입장에서는 한심해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각종 캐릭터들은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심오한 메시지들을 건네준다. 우리가 한심해하는 요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소설 속 인물들은 복잡다단한 인간의 속성을 분별 증류한 극단적인 캐릭터이기는 하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심리를 따로 따로 심도 있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작가는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둘째, 사건이다.

윌슨과 다툼 끝에 갑툭튀한 머틀이 데이지가 운전하는 차에 치여 죽고, 톰의 발고로 개츠비를 오해해 불끈한 윌슨이 개츠비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 어쨌든 주요 인물 셋이 죽고 화자를 제외하면 데이지와 톰, 밉상 부부 둘만 남는다. 허무도 이런 허무가 없다. 허망하기 그지없으나 인생 다 그렇지 뭐라는 흔한 말처럼 삶의 속성을 가장 흡사하게 스케치한 모습이다. 공식에 대입하여 완벽한 X값을 얻어낼 수 있는 수학이 아니라 무한소수로 애매하게 흐드러지는, 갑자기 등장한 Z로 인해 일차방정식에서 순식간에 삼차방정식으로 변모하는, 분모에 0이 등장하여 불능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이토록 허무해 보이는 사건들을 대하는 자세와 해석하는 관점, 그 안에서도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심미안일지도 모르겠다.

개츠비의 죽음 이후에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들도 숙고할 여지가 있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닉은 개츠비의 죽음 이후에 존재감을 강하게 어필하며 인간의 비정함을 그려낸다. 개츠비의 파티에 그렇게나 모여들던 이들이건만 개츠비의 죽음을 알리자 각자 핑계를 대며 장례식을 외면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무정한 단면은 개츠비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셋째, 배경이다.

작가는 대조되는 배경을 마주 보게 함으로써 서로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기득권 세력, 올드머니, 톰과 데이지 부부를 이스트 에그에 배치하고 신흥 부자, 뉴머니, 개츠비를 웨스트 에그에 배치한 다. 서로 다른 세력의 모습은 당시 독자들의 피부에 직접 와 닿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금주법의 시대인 1925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술이 금지되던 시기에 주인공 개츠비는 밀주업으로 돈을 번다. 그가 일주일마다 열었던 파티에서는 술이 질펀하게 등장한다. 나는 소설 앞부분에 나오는 파티 장면에서 지루함과 이질감을 많이 느꼈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민감한 이슈였을 터이다. 소설 출간 당시 29세였던 작가로서는 현재를 생생한 배경으로 시대상에 정면으로 도전한 셈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검은 마스크 쓰고 두 손 공손히 모으며 TV에 등장하는 각종 인물들과 관련된 배경 정도 되었을까. 그렇다면 영향력의 강도가 상당했으리라.

 

소름이 돋았다. 허술한 것이 아니라 삶의 속성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완벽한 구현이었다. 이토록 지질하고 적나라한 욕망과 허무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고 싶은 것을 드러내고 싶었구나. 주제가 선명하다. ! 소설의 3요소가 주제, 구성, 문체인데 주제와 인물, 사건, 배경이 뚜렷하다면 문체는? 문체의 입장에서 소설을 훑어본다. ‘은빛 후춧가루가 뿌려진 별밭(p34)’이라는 비유도 뛰어나고 닉이 말하는 다음의 문장에서는 유머 감각도 보인다. ‘모든 사람은 여러 주요한 미덕 중에서 최소한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내 경우에는 이것이다 :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정직한 사람들 중 하나다.(p78)’ 섣불리 판단할 게 아니었구나, .

내 취향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의 공감에는 한계가 있다.(p170)’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가 비판의 대상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p11)’ 무엇이든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로 해석되는 이 문장 앞에서 슬그머니 반성을 한다.

작가는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아름답고 무용하지만 맑은 사랑을 위대한이라는 단어로 코팅하고 싶었던 걸까. 개츠비가 동경하며 바라보던 저 멀리 데이지의 집에서 반짝이던 불빛을 그린라이트로 설정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으리라. 레드의 열정도 아니고 옐로우의 질투도 아니고 블루의 우울함도 아닌 나무의 자연 빛을 닮은 그린의 순수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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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7-15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군요, 저는 아직 밀린게 있어서 차후에 토론 댓글을 달겠습니다ㅎㅎ

나비종 2019-07-15 23:53   좋아요 1 | URL
네~ 저는 다른 거 읽을 것이 있어서 조금 빨리 읽고 독후감 마무리를 했어요. 어떤 리뷰를 쓰실지 기대하겠습니다.ㅎㅎ

물감 2019-07-30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드디어 다읽었습니다. 휴가랑 겹쳐서 독서가 게을러지네요^^; 안그래도 읽는속도 느린데...ㅎㅎ

개츠비는 보는 사람에 따라 확 갈릴 인물이겠더라구요.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사람이 되거나, 반대로 남의 가정 파탄내는 쓰레기가 되거나.
개츠비 인생이 작가인생과도 닮았던데 그러면 피츠제럴드도 자기가 쫓았던게 뭐였는지 알고 있었다는 거겠죠? 어느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꽃을 피웠지만 그것역시 한 때이고 시들면 다 똑같아지는 허무함을 보았습니다.

맨처음에 아버지가 닉에게 한말도 다양한 해석이 되네요. 저는 중립이 되어 사람을 볼 줄아는 시각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책속에 많은 이들이 뚜렷한 개성과 성향을 갖다보니 한 방향으로만 가려고 하는데 닉은 그렇지않아서 유리한 입장이 아니었나 합니다.
여하튼 이번 리뷰는 분석력이 엄청나시네요ㅎㅎㅎ공부가 많이 되었어요.
8월은 잠깐 쉬었다 가면 어떨까요? 책도 다시 선정해야겠네요^^

나비종 2019-07-30 11:07   좋아요 1 | URL
7월 안에 해내셨군요.^^

저도 개츠비가 썩 낭만적이고 로맨틱하게 보이지는 않더라구요. 쓰레기...까지는 아니고 음, 약간 집착 쩌는 분리수거용 정도쯤 되겠습니다.^^;
소설이든 시이든 작가로부터 나오는 글은 작가의 삶과 완벽하게 별개일 수는 없나봅니다. 하다못해 SF판타지라도 등장인물의 대사 안에 작가의 삶이 어느 부분은 묻어나는 것 같으니까요.
허무...맞아요. 허무하다못해 허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반복되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구요. 쓰읍~

닉이나 그 아버지나 중립의 위치에 서 있다는 말씀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라는 얘기죠. 제가 보기에 완벽한 중립에 서게 되는 사람은 없는 것 같거든요. 조금쯤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게 된다고 봅니다. 중립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경우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볼 때 정도일까요.

쥐어짜내서 리뷰를 썼지만 재미 드럽게 없었어요. 고전의 길이 참, 험난하구나 싶었습니다.ㅎㅎ
동의합니다. 8월은 좀 쉬어요. 다른 책으로 에너지 충전해서 9월에 나물모임 재개장해요. 책은 물감님께서 선정하시면 따라가겠습니다~^^

물감 2019-07-30 11:47   좋아요 0 | URL
중립의 위치를 서는건 지난 과거를 돌이켜볼때란 말, 명언 탄생입니다ㅎㅎㅎ
8월중에 책 선정하겠습니다. 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나비종 2019-07-30 12:20   좋아요 1 | URL
중립에 대한 저의 견해에 공감하신다니 기분 좋은 친구를 얻은 기분입니다.ㅎㅎ
기다리겠습니다. 천천히 생각해보시고 말씀해주세요. 어떤 책이든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니 마음 편하게 정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