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 , 바람, 웃음, 농담. 아름답고 무용한 그런 것들을 좋아하던 희성도 죽고, 화초 같은 계집의 치마 끝을 그토록 섹시하게 잡고 그윽한 눈총 뿜뿜 쏘아대던 동매도 죽고, 그거면 됐다는 유진도 죽고, 애기 씨만 불꽃으로 살아났던 작품. 주인공들 대부분이 시간차 몰살을 당했어도 여운이 길게 남았더랬다. 오다가다 스냅 사진 같은 장면만 보았으면서도 충분히 임팩트 있는 뭉클함을 주던 드라마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나니 뜬금없이 떠오르는 드라마. 교집합이 전혀 없는데 대체 어느 부분이? 한참 생각하다 이유를 깨닫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는 허무였다. 드라마에서 인상 깊게 등장한 무용한 것이란 말이 겹쳐진 것이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뭐 이런 소설이 다 있나. 초반에는 파티 작렬하며 남주인공의 정체에 대한 진실게임이 느릿하게 진행되다 등장인물들이 우루루 한군데로 모이더니 그때부터는 폭풍 전개가 이어진다. A가 여주인공이 운전하던 차에 치여 죽고, A의 남편은 남주인공이 그런 줄 알고 권총으로 쏴죽이고 자살한다. 이틀 만에 책을 읽고 나흘을 고민했다. 도대체 책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단 말인가. 좋아, 이토록 허망하고 재미없었음을 써봐야겠어. 소설 구성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이다. 소설의 관점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제대로 분석해보기로 했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깔 수 있으니.

 

첫째, 인물을 살펴보았다.

주요 등장인물의 관계를 보면, 개츠비의 첫사랑은 여주인공 데이지, 머틀의 첫사랑은 톰이다. 데이지와 톰, 머틀과 윌슨은 각각 부부이다. 톰과 머틀은 몰래 만나는 사이이고, 개츠비와 데이지는 5년 만에 재회한 후 대놓고 만난다. 조던은 소설 내내 등장하지만 존재감 제로에 허세 쩌는 인물이다. 그녀와 살짝 썸을 타다 마는 닉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이며 개츠비의 위대함을 묘사하는 역할을 한다.

잠시 등장하는 머틀의 여동생은 언니의 모습을 보고 이런 말을 한다. ‘서로 안 맞는 사람끼리 왜 같이 사냐는 거예요. 내가 저들이라면, 이혼하고 당장 재혼할 거예요.(p48)’ 처음에는 공감했지만 조금 더 생각하니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안 맞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사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같이 살지 않을 경우보다 다만 1%라도 유리한 점이 있을 거라는 말이다. 사람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스스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사람만큼 이기적인 존재는 없으니까. 데이지가 톰의 외도를 알면서도 같이 사는 이유는 톰이 자신의 허영을 만족시켜주는 인물이기 때문일 터이다. 머틀 역시 윌슨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거다. 이런 시각으로 판단하면 오로지 맹목적인 인물은 개츠비이다.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 사랑하는 데이지를 대신해서 죄를 뒤집어쓰려고 했고 자신의 성장 배경에 대한 거짓말 역시 탐욕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향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니까.

일반적인 로맨스 소설에서 대부분 여주인공만은 꽤나 그럴 듯하다. 악녀 캐릭터는 서브 여주의 몫이다. 주인공이라면 무릇 비련의 캐릭터이거나 유쾌함을 장착했거나 어떤 내용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도 아름답거나 공감을 끌어내는 인물이다. 한데 이 작품은 핀트가 어긋난다. 이토록 돈 냄새를 좋아하는 존재가 있을까. 개츠비가 보유한 수많은 셔츠들을 보며 너무 너무 아름다운 셔츠들이라며 흐느끼지를 않나, 개츠비조차 그녀를 가리켜 돈으로 충만한 목소리(p151)’라 표현했으리만큼 세속적인 밉상이다. 여타 로맨스 소설과의 차별점이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의 매력이 도드라지는 것처럼, 데이지의 허영은 개츠비의 순수함을 드높이는 장치를 한다. 부를 끌어 모은 개츠비와 지향점이 다르다.

데이지의 남편 톰도 만만치 않다. ‘어쨌든 그가 자신이 저지른 모든 일을 전부 다 제 입장에서 정당화해버렸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p222)’ 개츠비의 죽음을 도발한 결정적인 인물이다. 머틀의 남편 윌슨이 총을 들고 개츠비를 향해 뛰쳐나가게 만들었으니까.

또한 톰의 말을 그대로 믿고 불끈한 윌슨은 바보다.

관찰자 닉을 작가의 아바타라고 가정한다면 유일하게 밉상이 아닌 인간은 위대한 개츠비이다. 이토록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지질할 수 있을까. 각각의 속성이 지질하다 못해 일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섯 행성들의 등장인물이 연상된다. 권위적인 왕, 자기 칭찬 외에는 듣지 않는 허영쟁이, 술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술을 마시는 술꾼, 5억 개의 별이 모두 자기 것이라는 상인, 1분마다 불을 켜고 끄는 점등인, 자기별도 탐사 못한 지리학자. 독자 입장에서는 한심해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각종 캐릭터들은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심오한 메시지들을 건네준다. 우리가 한심해하는 요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소설 속 인물들은 복잡다단한 인간의 속성을 분별 증류한 극단적인 캐릭터이기는 하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심리를 따로 따로 심도 있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작가는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둘째, 사건이다.

윌슨과 다툼 끝에 갑툭튀한 머틀이 데이지가 운전하는 차에 치여 죽고, 톰의 발고로 개츠비를 오해해 불끈한 윌슨이 개츠비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 어쨌든 주요 인물 셋이 죽고 화자를 제외하면 데이지와 톰, 밉상 부부 둘만 남는다. 허무도 이런 허무가 없다. 허망하기 그지없으나 인생 다 그렇지 뭐라는 흔한 말처럼 삶의 속성을 가장 흡사하게 스케치한 모습이다. 공식에 대입하여 완벽한 X값을 얻어낼 수 있는 수학이 아니라 무한소수로 애매하게 흐드러지는, 갑자기 등장한 Z로 인해 일차방정식에서 순식간에 삼차방정식으로 변모하는, 분모에 0이 등장하여 불능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이토록 허무해 보이는 사건들을 대하는 자세와 해석하는 관점, 그 안에서도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심미안일지도 모르겠다.

개츠비의 죽음 이후에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들도 숙고할 여지가 있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닉은 개츠비의 죽음 이후에 존재감을 강하게 어필하며 인간의 비정함을 그려낸다. 개츠비의 파티에 그렇게나 모여들던 이들이건만 개츠비의 죽음을 알리자 각자 핑계를 대며 장례식을 외면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무정한 단면은 개츠비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셋째, 배경이다.

작가는 대조되는 배경을 마주 보게 함으로써 서로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기득권 세력, 올드머니, 톰과 데이지 부부를 이스트 에그에 배치하고 신흥 부자, 뉴머니, 개츠비를 웨스트 에그에 배치한 다. 서로 다른 세력의 모습은 당시 독자들의 피부에 직접 와 닿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금주법의 시대인 1925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술이 금지되던 시기에 주인공 개츠비는 밀주업으로 돈을 번다. 그가 일주일마다 열었던 파티에서는 술이 질펀하게 등장한다. 나는 소설 앞부분에 나오는 파티 장면에서 지루함과 이질감을 많이 느꼈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민감한 이슈였을 터이다. 소설 출간 당시 29세였던 작가로서는 현재를 생생한 배경으로 시대상에 정면으로 도전한 셈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검은 마스크 쓰고 두 손 공손히 모으며 TV에 등장하는 각종 인물들과 관련된 배경 정도 되었을까. 그렇다면 영향력의 강도가 상당했으리라.

 

소름이 돋았다. 허술한 것이 아니라 삶의 속성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완벽한 구현이었다. 이토록 지질하고 적나라한 욕망과 허무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고 싶은 것을 드러내고 싶었구나. 주제가 선명하다. ! 소설의 3요소가 주제, 구성, 문체인데 주제와 인물, 사건, 배경이 뚜렷하다면 문체는? 문체의 입장에서 소설을 훑어본다. ‘은빛 후춧가루가 뿌려진 별밭(p34)’이라는 비유도 뛰어나고 닉이 말하는 다음의 문장에서는 유머 감각도 보인다. ‘모든 사람은 여러 주요한 미덕 중에서 최소한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내 경우에는 이것이다 :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정직한 사람들 중 하나다.(p78)’ 섣불리 판단할 게 아니었구나, .

내 취향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의 공감에는 한계가 있다.(p170)’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가 비판의 대상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p11)’ 무엇이든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로 해석되는 이 문장 앞에서 슬그머니 반성을 한다.

작가는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아름답고 무용하지만 맑은 사랑을 위대한이라는 단어로 코팅하고 싶었던 걸까. 개츠비가 동경하며 바라보던 저 멀리 데이지의 집에서 반짝이던 불빛을 그린라이트로 설정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으리라. 레드의 열정도 아니고 옐로우의 질투도 아니고 블루의 우울함도 아닌 나무의 자연 빛을 닮은 그린의 순수함 말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감 2019-07-15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군요, 저는 아직 밀린게 있어서 차후에 토론 댓글을 달겠습니다ㅎㅎ

나비종 2019-07-15 23:53   좋아요 1 | URL
네~ 저는 다른 거 읽을 것이 있어서 조금 빨리 읽고 독후감 마무리를 했어요. 어떤 리뷰를 쓰실지 기대하겠습니다.ㅎㅎ

물감 2019-07-30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드디어 다읽었습니다. 휴가랑 겹쳐서 독서가 게을러지네요^^; 안그래도 읽는속도 느린데...ㅎㅎ

개츠비는 보는 사람에 따라 확 갈릴 인물이겠더라구요.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사람이 되거나, 반대로 남의 가정 파탄내는 쓰레기가 되거나.
개츠비 인생이 작가인생과도 닮았던데 그러면 피츠제럴드도 자기가 쫓았던게 뭐였는지 알고 있었다는 거겠죠? 어느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꽃을 피웠지만 그것역시 한 때이고 시들면 다 똑같아지는 허무함을 보았습니다.

맨처음에 아버지가 닉에게 한말도 다양한 해석이 되네요. 저는 중립이 되어 사람을 볼 줄아는 시각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책속에 많은 이들이 뚜렷한 개성과 성향을 갖다보니 한 방향으로만 가려고 하는데 닉은 그렇지않아서 유리한 입장이 아니었나 합니다.
여하튼 이번 리뷰는 분석력이 엄청나시네요ㅎㅎㅎ공부가 많이 되었어요.
8월은 잠깐 쉬었다 가면 어떨까요? 책도 다시 선정해야겠네요^^

나비종 2019-07-30 11:07   좋아요 1 | URL
7월 안에 해내셨군요.^^

저도 개츠비가 썩 낭만적이고 로맨틱하게 보이지는 않더라구요. 쓰레기...까지는 아니고 음, 약간 집착 쩌는 분리수거용 정도쯤 되겠습니다.^^;
소설이든 시이든 작가로부터 나오는 글은 작가의 삶과 완벽하게 별개일 수는 없나봅니다. 하다못해 SF판타지라도 등장인물의 대사 안에 작가의 삶이 어느 부분은 묻어나는 것 같으니까요.
허무...맞아요. 허무하다못해 허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반복되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구요. 쓰읍~

닉이나 그 아버지나 중립의 위치에 서 있다는 말씀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라는 얘기죠. 제가 보기에 완벽한 중립에 서게 되는 사람은 없는 것 같거든요. 조금쯤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게 된다고 봅니다. 중립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경우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볼 때 정도일까요.

쥐어짜내서 리뷰를 썼지만 재미 드럽게 없었어요. 고전의 길이 참, 험난하구나 싶었습니다.ㅎㅎ
동의합니다. 8월은 좀 쉬어요. 다른 책으로 에너지 충전해서 9월에 나물모임 재개장해요. 책은 물감님께서 선정하시면 따라가겠습니다~^^

물감 2019-07-30 11:47   좋아요 0 | URL
중립의 위치를 서는건 지난 과거를 돌이켜볼때란 말, 명언 탄생입니다ㅎㅎㅎ
8월중에 책 선정하겠습니다. 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나비종 2019-07-30 12:20   좋아요 1 | URL
중립에 대한 저의 견해에 공감하신다니 기분 좋은 친구를 얻은 기분입니다.ㅎㅎ
기다리겠습니다. 천천히 생각해보시고 말씀해주세요. 어떤 책이든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니 마음 편하게 정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