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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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를 구석구석 살핀다. 겨드랑이 보듯 앞뒤 책날개를 들춰본다. 앞날개에서 저자의 윤곽선을 파악하고 뒷날개에서 파생된 책들이나 연관검색어를 파악한다. 컬러풀한 속지를 조금 바라보며 책과의 연관성을 파악한다. 1페이지부터 시작! 한 권의 책을 읽는 나의 순서도이다.

뒷날개에 한 개 이상 해당된다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합니다.’의 체크리스트가 8개 제시되어 있다. 미술책만 펼치면 졸음이 쏟아진다? NO! 미술관을 동물원 간 듯 구경하고 나온다? NO! 일곱 번의 NO!를 지나 마지막 문항을 체크한다. 재미없고 지루한 건 딱 질색이다? 격하게 YES! 이런 목적으로 쓴 책이라면 적어도 집어던지고 싶어지지는 않겠구나.

이 책을 보며 광활한 시야가 깊이 있게 펼쳐지는 장면을 떠올렸다. 여수에 있는 카페에서 본 장면과 겹쳐졌다.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모양의 스카이타워의 67m 전망대에 있던 카페에서였다. 들어갈 때에는 인식하지 못했다. 중앙에 두터운 유리로 된 바닥의 존재를 나올 때가 되어서야 인지했다. 순간 발바닥이 바르르 떨렸다. 발 아래로 펼쳐진 공간감이 확 몰려오면서 자이로드롭을 타고 내려올 때처럼 쭈뼛했다.

 

뭉크, 칼로, 드가, 고흐, 클림트, 실레, 고갱, 마네, 모네, 세잔, 피카소, 샤갈, 칸딘스키, 뒤샹 등 열네 명 예술가의 삶이 작품들과 함께 우르르 심장으로 쏟아졌다. ‘자신의 심장을 열고자 하는 열망에서 태어나지 않은 예술을 믿지 않는다.(p13)’던 뭉크의 말에, ‘예술에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개인과 그의 삶이며, 우리는 죽어버린 자연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p16)’는 생각으로 그려진 뭉크의 작품에, ‘색에 나의 감정을 온전히 담고 싶다(p94)던 고흐의 열망에, ‘정열은 생명의 원천이고, 더 이상 정열이 솟아나지 않을 때 우리는 죽게 될 것(p163)’이라던 고갱의 붓끝에, ‘단순함도 아름다운 것(p189)’이라던 마네의 관점에, ‘오직 빛이 보여주는 세상을 솔직하게 포착해 그린(p217)’모네의 인상주의에, ‘그림 속 사물 간에 화음(p237)’으로 완벽한 조화와 균형(p237)’을 꿈꾸던 세잔의 구성에, 수백 개의 시점을 한 작품에 녹여낸 피카소의 혁명에, <나와 마을>(p274)에서 가느다란 선으로 디테일의 극치를 보여준 샤갈의 표현에, ‘인생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p333)’했다는 뒤샹의 답변에 심장이 후끈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라도 한 듯 말이다.

 

적당한 온도를 지닌 죽을 떠먹듯 가뿐하게 소화시킬 줄 알았다.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마음에 전혀 부담이 없을 줄 알았던 거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갑자기 다가오는 뭉클한 느낌에 당황스러웠다.

예술을 한다는 건 고독을 안고 걸어가는 걸까. 나의 심장을 뜨겁게 한 지점은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내던 과정이었다. 열네 명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기존의 흐름에 얹혀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표현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입체주의, 야수주의, 추상주의, 다다, 초현실주의, 분류되지 않음에 이르기까지. 책에 소개된 미술가들은 사조들의 선구자였다. 첫걸음이란 얼마나 설레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가. 치열하게 엎치락뒤치락하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세계를 창조했던 그들의 심장은 한결같은 열정으로 뜨거웠으리라. 그들의 삶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며 예술적인 세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의 전율만큼이나 강렬했다. 삶이 이끌었든 누군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든 얼떨결에 문을 열었더라도 독특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그들의 몫이었다.

 

매력적인 책이다. 어디에선가 들어본 듯 익숙한 내용은 조금도 담겨있지 않다. 익숙한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들을 보면서도 신선했다. 등장하는 미술가들 역시 기존의 틀을 고집하는 보수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조원재작가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틀에 속하기를 거부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리라.

재구성된 에피소드와 작품들을 좇아가다보니 아담한 미술관을 들렀다 온 듯 했다. 작가는 순간순간 지루할 틈 없게 관람객들을 이끌어가는 도슨트이자 전체적인 기획을 영리하게 해낸 큐레이터였다. 기획의도와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인다. ‘뜨겁게 가슴으로 공감하는 미술이 되기를(p7, 들어가며)’ 바란 그의 의도대로 미술가의 삶에 공감했고, 그들의 작품에 마음이 몰랑몰랑해졌다.

사람은 사람으로 큰다.(p226)’며 미술가들의 관계를 통찰했던 작가의 시각도 마음에 든다. 덕분에 감성의 키가 한 뼘쯤 자라났다. 미술이란 예술 분야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다. 색과 형태를 넘어 폭넓은 시각으로 미술을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졌다.

 

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화가의 삶과 그림에 담긴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구성된 내용이라 작품들을 감상하며 즐기면 그만이었다. 한데 미술에 대한 책을 읽었건만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진다. ‘관객은 작품이 지닌 심오한 특성을 해독하고 해석함으로써 창조적 프로세스에 고유한 공헌을 합니다.(p326)’ 뒤샹이 한 이 말은 문학에도 적용되는 의미일 거다. 이 책을 문학의 관점에서 읽고 받아들였다. 동일한 작가의 책이 서로 다른 독자에 의해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와 같은 맥락이다.

문학을 예술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예술이 되는 글이 담아야 할 필수 요건이 무엇인지 감이 온다. 유일무이한 작품을 낳은 미술가들처럼 작가도 세상에 단 한 편밖에 없는 작품을 써야 하는 것이리라. 글을 쓰는 관점에서 책속의 문장들을 바라보니 마음에 와 닿는 깊이가 달랐다.

뜨거워진 심장으로 나의 삶을 바라보았다. ‘삶을 살아가는 데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각자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삶의 빛이 있을 뿐이죠.(p168)’ 내가 옳다고 여기는 삶의 빛은 무엇일까. 글을 쓰는 것일까. 나만의 답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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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10-04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은 청각 예술, 미술은 시각 예술이라면 문학은 촉각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글이 주는 감각은 머리보다 피부로 느끼는 경우가 더 많아서요^^

나비종 2019-10-05 08:48   좋아요 1 | URL
따뜻한 글을 부드러운 감촉으로 심장을 어루만지고, 슬픈 글은 따끔한 감촉으로 심장을 찌르는 듯 고통을 주죠. 음.. 심장으로 스며든 글이 피부감각으로 감지가 되는 촉각 예술이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