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아웃 높은 학년 동화 30
박효미 지음, 마영신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는 나라라 들었다.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던 나라, 인도는. “근데 거기는 자주 씻기 어려워. 벌레도 무지 많고.” 이런! 간절한 바람이 순식간에 바람처럼 사라졌다. 외출하지 않으면 잘 씻지 않을 정도로 청결을 중요시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맘대로 씻지 못한다는 사실은 마음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상상만 해도 찜찜했다.

일주일간의 블랙아웃이 그려진 동화를 읽으면서 인도를 떠올렸다. 땀이 삐질삐질 나는 여름의 한복판에서 씻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식수뿐 아니라 변기 물도 내리지 못하는 장면이 묘사될 때, 몸에서 작은 벌레가 슬금슬금 기어가는 듯 소름이 돋았다.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학교일이 대폭적으로 많아졌다. 편리하라고 도입된 기기이니 일이 줄어야 정상일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수작업으로 채점을 하거나 생활기록부를 쓰던 때보다 일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학년 초와 학년말에 집중적으로 바쁘고 간간이 한적한 시기도 있었건만 지금은 일 년 내내 일이 끊이지 않는다.

언젠가 학교에서 한 시간 정도 정전된 적이 있다. 정적이 감돌았다. 가쁘게 호흡하던 일들이 한순간에 숨을 멈추었다. ‘어둠은 모든 할 일을 삼켜 버렸다.(p37)’ ‘전기가 나가고 나니 별안간 할 일 없는 시간이 용도를 모르는 선물처럼 던져졌다.(p92)’ 빠르게 달리는 기차 속에서 멈추지 않고 달려왔던가 싶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니 업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해방감조차 들었다. 삶속에 이런 시간들을 간지처럼 끼워도 괜찮을 듯싶었을 정도로. 전기 없는 시간을 만든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동화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인간의 이기심이다. ‘블랙아웃은 끝내 미제의 사건으로 마무리되지만 일부 이기적인 인간들의 의도된 행위가 아니었을까 의심할만한 정황이 곳곳에 드러난다. ‘이런 와중에도 몰래몰래 자기들끼리 사는 인간들이 있다는 거야.(p187)’ 블랙아웃으로 인해 생필품을 독점으로 공급하게 된 에이마트. 그곳에만 환히 켜진 전기불 앞에 개미떼처럼 줄을 서는 사람들을 바라보자니 체한 것처럼 가슴이 막혔다.

게다가 동화 속에서 툭 튀어나오는 왕자님도 아니고 현실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비슷한 상황들이라니! 뭉쳐야 힘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장면들은 중간 중간 또 나를 답답하게 했다. 교회 신도들에게만 몰래 주는 물이라든가, 물건을 도둑맞았다고 호소하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적으라고 종이를 내미는 경찰관이라든가, 아이들에게서 쌀을 빼앗아가는 이웃집 아줌마라든가, 새벽에 몰래 열어 생필품을 비싸게 파는 시장 안 슈퍼라든가. 뉴스를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몇몇 사실들을 떠올리니 화가 치밀었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동화 밖에도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일곱째 날에 독점 마트를 향해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촛불을 생각했다. ‘바람 한 점 없는 바다처럼 잠잠하다가 순식간에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아지다가 쓰나미가 될 수도 있거든. 그게 바로 민심이라는 거야.(p104)’ 내내 답답한 상황이 이어졌지만 동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방향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래도 희망을 찾아보려는 작가의 마음을 엿본다.

블랙아웃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2011915일에 전국 대규모 정전사태가 5시간 정도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태양의 흑점 활동이 활발해지면 태양풍 입자가 급증하여 정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지진이나 화산 폭발처럼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인 것이다. 하지만 이 동화에서 그려진 블랙아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블랙아웃의 형태든 또 다른 형태로든 답답한 상황들이 현실 속으로 툭 던져질 것 같은 느낌에 며칠 씻지 못한 사람인양 다시 찜찜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미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1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와 알. 표지를 펼치기 전에 더듬어보았던 고등학교 때의 기억은 두 글자였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p110)’ 책을 읽지 않아도 지식의 바다에 동지 팥죽 새..심으로 동동 떠있는 문구이다. 왠지 간지 나는 문장, 이게 다인 줄 알았다.

소설 초반에는 주인공 싱클레어가 프란츠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내용이 전개된다. 학교 폭력을 다룬 청소년 소설이었던가. 이런 내용이 있었나. 새삼스러웠고 이게 다인 줄 알았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몽롱함으로 정신이 몽롱해질 때 알았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좀 더 심오한 차원이었음을.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구나! 요즘 퇴근길에 하는 생각이다. 수업을 주로 들어가는 3학년의 마지막 시험이 지난 1121일에 끝났다. 겨울방학은 117일에 시작한다. 교사라면 앞의 문장들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것이다. 그렇다. 제대로 수업 듣는 인간이 한 명일 때도 있다. 수업 시작종과 동시에 심호흡을 할 때, 힘이 되어준 문장이 있다.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자기를 지배할 힘을 내주었기 때문이야.(p48)’ 두렵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들이 간혹 훅 들어올 때가 있다. 그들의 당당한 행동을 보면서 내 안에 있는 마그마가 불끈 올라오려할 때, 마인드컨트롤을 하게 해준 문장이다.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 법이니까.(p136)’라는 문장을 떠올리며 관찰자의 입장이 되기도 했다. 올해가 지나면 사리 몇 개는 어딘가에서 만들어져있을 거라며, 이제는 화도 나지 않는 편안함으로 나머지 한 달을 맞이할 지경에 이르렀다.

 

싱클레어라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포장되어있으나 <데미안>은 인간이 품고 있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동시에 열어 보이며 존재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철학과 윤리학과 심리학이 문학과 어우러진 모습. 두 번째 읽으면서 나는 홀로그램을 떠올렸다. 평면적이다가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이중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이는 묘한 느낌의 이미지. 그 세계에 나를 대입해보며 인간이란 존재와 내 자신의 무의식에 대하여 생각했다.

 

무의식에 접근하는 통로가 꿈이라는 게 신기하다. 날마다 꿈과 현실을 오가며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니! 의식 세계보다 훨씬 크다고 알려져 있는 무의식의 세계. 내안에 있지만 내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 두렵다.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무의식이란 말이 다시 떠오른다. 거울 속으로 보이는 모습은 크게 두 가지이다. 바로 선 상과 거꾸로 선 상. 거울의 상은 거꾸로 맺히는 것을 실상, 바로 맺히는 것을 허상이라 한다. 선과 악, 의식과 무의식, 두 세상을 경험하며 갈등하는 싱클레어를 보면서 거울을 떠올렸다. 무의식의 세계가 꼭 거울 속에 거꾸로 선 실상인 것만 같아서. 거울 밖에서 내가 느끼는 의식 세계와 거울 속에 거꾸로 서서 실존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점점 가까워지는 상상을 했다.

 

드라마 <남자친구>의 박보검이 가진 매력은 솔직함이다. 느낀 대로 행동하고 내면이 원하는 바를 드러내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하나가 아닐 때만 두려움을 갖는 법이야.(p163)’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은 무의식 속 자신이 원하는 자아인지도 모른다. 작품 속 캐릭터의 힘이든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힘이든 드라마를 보면서 자주 설렘을 느꼈다. 남녀 관계를 떠나서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의 외로움을 어루만져 주려는 그 순수에 가슴이 뛰는 거다. 아마도 드라마 속 박보검은 의식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와 가장 근접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바라보는 나는 홀로그램처럼 이중적일 때가 있다. 드러내지 못하는 모습들이 구석구석에 숨어있음을 간혹 느낀다. ‘누구나 오직 자기 자신만을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p9)’ 나란 인간을 해석하고 싶어졌다. 무엇이 숨겨져 있을지 알지 못하지만, 때론 에둘러가려는 유혹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더욱 먼 길이 될 지도 모르지만, 소설 <데미안>이 나에게 용기를 준다. 그 모습까지 받아들여야 진짜 를 만날 수 있다고. ‘바깥 세계가 처음으로 나의 내면세계와 순수하게 일치하는 울림을 냈다.(p166)’ 말하던 주인공은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작가는 이 문장을 쓰면서 스스로 얼마나 공감했을까. 의식과 무의식이 일치하여 공명을 하는 순간의 희열을 내 것으로 경험하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몸안의 지식여행 인체생리 - 신비롭고 놀라운 몸의 원리를 찾아 떠나는 호기심 탐험!, 재미있는 교양 과학 산책
다나카 에츠로 지음, 황소연 옮김 / 전나무숲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생물이란 끝도 없이 외워야하는 암기 과목에 불과했다. 해면동물, 환형동물, 편형동물, 극피동물, 절지동물, 강장동물, 연체동물,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균류, 양치식물, 선태식물, 종자식물, 균류, 원핵생물, 원생생물, 고세균, 진정세균... ,, 헝클어진 머릿속을 진정시켜도 방앗간 가래떡 나오듯 희한한 이름들은 줄줄이 이어졌다. 뭔 생물이 이리도 수없이 꿈틀거린단 말인가. 세포 내 소기관들의 명칭은 또 어떤가. 리보솜, 리소좀, 미토콘드리아, 골지체, 중심체, 중심립, 소포체, 방추사, 액포는 그나마 나은 축에 속했다. 아밀라아제(아밀레이스), 리파아제(라이페이스), 펩티다아제(펩티데이스), 말타아제(말테이스), 락타아제(락테이스). 아제 아제 시리즈에서 남아있던 미련의 찌꺼기가 싸악 설거지되었다. 하아, 생물과는 맞지 않아, .

 

생물을 이해과목이라 주장하시는 고등학교 생물 선생님을 연수 때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대변이 왜 황금색인 줄 아세요?” 내 선입견을 깨뜨려버린 운명의 질문이다. 산소를 잃은 적혈구의 찌꺼기로 만들어진 쓸개즙이 소화 과정에서 분비되어서 그렇다고 하셨다. 찌꺼기까지 남김없이 활용하는 인체의 신비에 반해버렸다. 몇 가지 사례를 더 들면서 생물 과목의 재미를 어필하신 선생님은 나를 생물 마니아로 포획하는 데 성공하셨다. 아하! 몰입도가 확 높아지면서 전공인 물리보다 더 좋아져버렸으니. 방학 때 연수를 받고 난 후, 수업 시간에 신이 나서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당시 많은 아이들은 내 전공이 생물인 줄 알았다고 했다. 몰랐으니 여기 저기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를 했고, 공부하다보니 점점 더 생물의 매력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여전히 나는 별자리 다음으로 생물 단원을 가르칠 때 가슴이 뛴다.

 

이 책에서 나는 두 번째 운명의 기회가 다가왔음을 느꼈다. 휘리릭 넘겨보았을 때에는 교과서 같은 냄새가 풍기더니, 정독할수록 재미있는 거다. “이거 너무 재밌다!” 지나가던 고2 딸에게 말하니, “엄마도 역시 이과 체질이네.” 한다. 어떤 부분은 소설보다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니 이과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문과와 이과적인 요소가 적절하게 배합되었다. 몰랐던 점도 많이 알게 되었다. 씹던 껌이 풍선껌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느낌이랄까. 책을 향해 숨결을 불어넣으니 상식이 확 부풀어 올랐다.

1부는 <인체 생리>로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한 번씩은 얕은 지식으로 언급되는 내용들이다. 혈액, 소화, 호흡, 순환, 배설, 내분비, 신경, 감각, 대뇌, 반사, 근육, 피부, 생식 등. 수업 시간에 해당 단원을 가르칠 때 투입하면 살짝 깊이 들어가면서 흥미를 끌만한 요소가 담겨있다. 두고두고 읽어보려 한다.

2부는 <임상 생리>로 현대 과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내용들이다. 줄기세포, 한방치료, , 항생물질, 기생충, 프리온, 외인성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 프리라디칼, 방사선, 전자파 등. ‘과학책 읽어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학업에 대한 의지가 바닥을 드러내는 요즘의 중 3교실에서 매시간 한 쪽씩 읽어주고 싶다.

 

몇 주 전, 어깨 도수치료를 받으러 다니면서 <도수 치료>라는 시를 지은 적이 있다.

맨손으로 / 몸을 치료받는다는 것은 / 매번 뭉클하고 / 벅차오르는 일이다 // 금속성의 날카로움이나 / 화학물질의 건조한 치유에는 /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 내 안으로 조금씩 흘러든다 // 아픔에 반응하는 몸이 / 정직하게 움츠러들면 / 정성스레 조절되는 / 세심한 강약의 다독임 // 36.5도를 품은 경계가 / 나의 경계와 맞닿을 뿐인데 / 따뜻한 물에 뿌려지는 소금인양 / 나의 고통은 서서히 녹아든다 // 손과 몸 사이 / 그 미세한 간극을 통해 / 설명될 수 없는 무언가가 / 건네어지는 걸까

이 책을 통해 시에서 언급한 존재하지 않는, 설명될 수 없는 무언가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아이가 상처를 입었을 때, 엄마가 달려가서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 통증이 누그러진다. 통증은 대뇌에서 감지하는데,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행위가 뇌에서 엔돌핀이라는 물질을 분비시켜, 그 결과 통증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p147~148)’

 

문학은 고전을, 과학은 최신판을 읽으라는 말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발전되고 변화하는 과학계에 절대적인 진리는 없어 보인다. 아이들에게 종종 말한다. 과학교과서에 실린 지식들은 교과서가 출판되기 직전까지의 진리이지 고정 불변의 것은 아니라고. 이 책이 나온 2003년으로부터 15년이나 지난 책이기에 새로이 발견되었거나 변경되어야 할 지식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일부 번역서에서 보이는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도 몰입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적혈구의 찌꺼기가 쓸개즙의 형태로 남김없이 활용된다는 점, 사구체에서 걸러진 포도당이 세뇨관에서 재흡수 되어 단 한 분자의 포도당도 버려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고, 우리의 몸은 스스로를 소중하게 아끼는 방향으로 시스템화 되어있음을 깨닫는다.

표현방식은 달라도, 지식의 깊이가 세월에 따라 달라지더라도 인체에 대하여 변하지 않는 사실들은 선명하게 존재함을 알았다. 몸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을, 정신 못지않게 소중히 여겨야한다는 것을, 이유 없는 변화는 없으므로 몸이 하는 말에 세심하게 마음을 기울여야함을, 방대한 지식을 훌쩍 넘어 신비한 매력을 지녔음을. 이런 이유로 인체는 세상에 존재하는 감동스런 대상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하려 한다.

 

 

p50, 그림 : 글리세린 글리세롤

p60, 9째줄 : 암모니아로 암모니아를

p99, 1째줄 : 차단하더라고 차단하더라도

p268, 3째줄 : 전자파 전파

p269, 그림과 본문 : 양자 양성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8-12-04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죠?
생물이 워낙 문과와 이과적 요소가 섞여 있는 과목이기도 해요 (저, 생물 전공자 ^^).

나비종 2018-12-04 22:54   좋아요 0 | URL
예!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생물의 매력이 흠씬 묻어나는. . 지식이 업그레이드 되었어요ㅎㅎ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개 낀 날, 회색빛 거리를 걷는 듯 불확실한 시야 속에서 눈에 띄는 무엇이든 찾아보려 안간힘을 쓰는 분위기. 입맛에 맞지 않는 고급 음식을 맛본 느낌이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감이 오는데 이런 식의 전달 방식, 나와는 맞지 않는다. 수분이 덜 마른 종이 탈을 쓴 기분이랄까. 채 마르지 않은 종이와 풀 냄새가 뒤섞여 텁텁하고 건조한 냄새가 나는 내용이다. 읽는 내내 걸쭉하고 질척한 것이 느린 속도로 서서히 흘러내려 마음 바탕에 깔렸다. 답답한 묵직함을 안고 소설을 읽었다.

 

파랑새를 찾아 헤매다 결국 출발지로 터벅터벅 돌아온 동화 속 주인공인양 마지막까지 갔다가 처음으로 되돌아오니 결론처럼 첫 문장이 선명한 마침표를 찍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p9)’ 작가는 세상의 빛과 먼지와 어둠과 습기를 묻히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삶의 허무를 전하고 싶었을까. ‘모래는 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p76)’ 혹은 어딘가에 잠시라도 새겨져있을 삶의 짧은 흔적이 주는 의미를 말하고 싶던 걸까.

 

지워진 기억을 좇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서를 찾아가는 주인공. 어릴 때 하던 스무고개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주인공을 따라 걷는다. 주인공이 만난 이들 대부분은 무언가를 그에게 건네어준다. 상자에서 꺼낸 사진이나 책, 작은 단서가 적힌 종이 등. 소설 곳곳에는 주소나 전화번호, 건물, 장소가 등장한다. ‘건물들도 거리의 폭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 시절에는 빛이 달랐었고 다른 무엇이 대기 속에 떠돌고 있었다......(p170)’ 잠시나마 그와 가까이 있던 사람들의 흔적이 묻어있다. 삶의 흔적들은 그를 스쳐간 물건 곳곳에 의미로 새겨진다. 물감 묻힌 붓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별 의미 없는 선을 긋는 것처럼. 기억을 복기하여 도화지를 펼치면 그 순간의 냄새, , 소리 등이 그대로 재현된다.

 

의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한다. ‘그녀는 어느 길을 따라왔을까? 왼쪽으로 왔었을까, 오른쪽으로 왔었을까? 나는 그것을 카페의 주인에게 물어보는 것을 잊어버렸다.(p140~141)’ 그에게는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방향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의 그녀가 걷던 길이었기에 특별한 경로로서의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뇌에 새겨진 흔적들도 어쩌면 이토록 사소하게 보여 지는 기억들의 집합 아닐까. 그 때 그가 입었던 옷의 색깔이라든지, 흩날리던 머리칼에서 풍겨 나오던 향기라든지, 함께 듣던 유행가라든지. 작은 기억들이 보석처럼 박혀 지치고 힘든 삶의 순간에 떠올라 반짝이며 위안을 주는.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만큼이나 빨리 저녁 빛 속으로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p262)’ 작가가 말한 허무 속에서도 나는 의미를 찾고 싶다. 삶은 물론 맑은 물이 아니다. 오염되어 혼탁해진 폐수와도 다르다. 적당히 뿌연 빛깔로 묵직하게 흘러가는 강물로 삶을 정의해보려 한다. 맑은 강물로 시작했다가 곳곳에서 유입되는 타인의 삶과 마주친 흔적들이 함께 흘러가는 것. 삶과 삶이 마주 본 순간들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의미 있는 흔적으로 남으리라 믿는다. 잊히더라도 어딘가에는 부유물로 남아 내 안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줄 것이라 믿는다.

 

<후기>

콘스탄틴 폰 위트에서 어쩐지 기분이 쎄하더니 게이 오를로프에서 무너졌다. 인물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이런! 분명 한글로 된 책인데 당최 내용 파악이 되지 않았다. 결정적인 과속방지턱들은 이노무 이름들이었다.

종이를 펼쳐놓고 볼펜을 들었다.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왔다. 한 명 한 명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기록을 하고 관계도를 그려나갔다. 이 인간은 요 인간의 할아버지, 이 인간들은 친구 사이, 얘네들은 연인, 저 인간은 간지처럼 사이사이 끼워지는 탐정. A4용지를 빽빽이 메운 이름들을 보며 점점 인내력의 배터리는 방전이 되어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그래도 노벨문학상 작가의 작품이라니 참아보기로 했다.

콘스탄틴 폰 위트, 기 롤랑, 폴 소나쉬체, 장 외스퇴르, 스티오파 드 자고리에프, 조르주 사셰, 조르지아제, 게이 오를로프, 갈리나, 키릴 오를로프, 이렌 조르지아제, 장 피에르 베르나르디, 월도 블런트, 러키 루치아노, 하워드 드 뤼즈, 존 길버트, 장 심티, 마벨 도나위, 프레디 하워드 드뤼즈, 클로드 하워드, 로베르, 앙드레 빌드메르, 페드로 맥케부아, 루비로사 포르피리오, 오르주 스테른, 주비아 시라노, 지미 페드로 스테른, 레옹 반 알엔, 드니즈 쿠드뢰즈, 알레그 드 브레데, 장 미셀, 망수르, 호이닝겐 후네, 알렉 스쿠피, 자크, 드 스베르, 카안 부인, 키릴, 보브 베송, 앙이 위베르누아, 조르주, 자클린, 앙드레 카를, 캉팡 부인, 프리부르...’

이 안에 기억 잃고 그 기억 찾아가는 주인공 한 명 있다.

차라리 우리나라 이름이면 나았을까. ‘이종혁, 송중기, 안재현, 양세종, 공유,...’ 이런 식이면 얼마든지 흐뭇하게 상상하며 읽었을 지도 모를 일인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의 책은 몇 걸음을 걷다 이내 덮어지곤 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첫 페이지는 아마 대여섯 번도 넘게 읽었으리라. 스스로 묻고 싶었다. 왜 나는 이 책을 번번이 사양하는가. 지루해서도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명쾌하고 가독성이 좋으리라는 예상은 두 세 페이지면 충분했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p57)’ 울화는 아니더라도 내 주춤거림의 원인은 불안이었다. 1969년생. 그와 나는 동갑이었으므로. 읽고 나서 다가올 느낌에 지레 겁이 났던 걸까. 너무 좋을까봐. 같은 세월동안 살아온 나는 뭐했나 생각이 들까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도대체 불안이라는 명제로 어떤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361페이지의 지면에 담겨있을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 결국 불안을 앞질렀던 모양이다.

 

과학적인 탐구활동을 한다면 저자는 A+ 를 받았을 거다. 철학이나 문학, 역사를 담아 문장을 표현하는 방식이 분석적이고 체계적이다. 원인을 분석하고 다양한 각도에서의 해법을 제안한다. 역사적인 근거를 곳곳에 제시하여 주장에 무게감을 싣는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체가 마음에 든다.

불안의 원인은 결국 지위에 있다. 사회에서든 가정에서의 지위이든 불안정적인 위치는 불안을 끌어내고 이는 곧 다양한 욕구로 이어진다. 저자가 제시하는 불안의 원인은 5가지이다.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속물의 독특한 특징에 대한 서술이 마음에 남는다.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p29)’ 나에게도 속물근성이 있다는 생각에 반성을 한다. 전업 작가가 아닌 저자의 이력을 읽을 때 무의식적으로 직업에 따라 속물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기억이 나서이다. 똑같은 책이라도 카이스트 교수나 의사가 썼다고 하면 호감도가 급상승한다던지 하는 선입견 말이다.

해법 역시 5가지로 제시된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불안이라는 명제와 별개로 해법에 제시된 문장들이 마음에 차곡차곡 스며든다.

예술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한다. ‘이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략) 그 이유를 보여준다.(p171)’ 시각적인 예술, 특히 미술은 한 작품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한다. 여러 음이 복합적으로 중첩된 하모니 같기도, 여러 빛이 합성되어 보이는 백색 같기도 하다. 이를 바탕으로 나만의 멜로디나 내안에서 꺼낸 그림을 얹는다.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예술 작품이 각기 다른 의미를 안겨주는 이유일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동기와 행동을 깊이 탐사하는 영역(p199)’ 미술 작품에 특히 잘 들어맞는 정의이다. 사진은 빛과 함께 작업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영역이 되지만, 내 마음은 그림에 조금 더 치우친다. 간혹 화가의 붓끝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상상을 한다. 가슴이 간질간질하면서 붕 뜨는 기분이 좋다.

언젠가는 장-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읽으려한다. 우리는 자신의 요구를 이해하는 능력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그는 말한다. 곳곳에 언급된 사상이 꽤나 매력적이다. 이에 관련해 저자는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p247)’는 통찰적인 견해를 보인다. 마르크스의 사상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p256)’라는. 내가 감당하기에 벅찬 감이 있지만 간혹 다른 책에서도 언급되는 문장을 보면 공감하게 되는 생각이 의외로 많다.

홍세화 선생님은 <생각의 좌표>에서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내 생각이라고 착각하는 생각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 중요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p271)’ 다른 사람들의 욕망과 생각에 의해 움직이는 아바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남궁인의 <만약은 없다>를 읽고부터였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줄어든 것은. ‘죽음에 대한 생각의 가장 큰 효과는 (중략) 우리가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로부터 가장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리게 해준다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덜 의존하게 해준다는 것이다.(p276)’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매순간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며 살고 싶다.

아무래도 나는 보헤미아 기질이 있는 가보다. 다섯 번째 해법으로 언급된 보헤미아부분을 순식간에 몰입하며 지난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던 책 <월든>이 등장한다.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p337)’ 소로우의 삶은 상상만으로 머릿속이 온통 초록색으로 물드는 느낌이다.

저자는 불안 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의 팁도 제시한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의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실제로 또는 예술작품을 통하여- 것일 수도 있다.(p297)’ 가슴이 탁 트인다. 책장을 넘기자 두 페이지에 걸쳐 <나이아가라 폭포>가 펼쳐진다. 산다는 게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확 다가온다. 1차원 평면의 느낌으로도 사이다를 마신 듯 후련한데 입체로 보면 어떨까. 가장 좋은 카메라, 인간의 눈으로 웅대한 자연을 담는 순간은 얼마나 경이로운 벅참으로 가슴을 채울까.

 

바빠질 것 같다. 거대한 공간도 여행하고, 예술작품도 감상하고, 읽고 싶은 책도 주문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순간순간 생각하며 살다보면 불안할 틈이 없겠다.

넘어가는 책장이 많아질수록 쓸데없이 불안해했음을 깨달았다. 나이만 같았다. 그의 지적인 성취는 아주 먼 곳에 있어 비교대상이 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에메랄드가 칭찬을 받지 못한다고 더 나빠진다더냐?(p148)’ 철학적인 해법에 나온 문장이다. 나노 수준으로 집요하게 대조해본다면 내가 그보다 나은 점이 한 가지쯤은 있지 않을까. 나는 다른 종류의 보석일 테니. 이렇게 생각하니까 불안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p157)’ 친구로 불리는 줄도 모를 알랭이는 먼 나라 동갑친구에게 숙제 하나를 던져주었다. 내가 독특한 보석이듯 너도 어떤 빛깔을 내는 보석인지 스스로 바라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