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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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학년도 3월, 00고등학교 0학년 0반 교실. 정치시간.

교사가 학생들에게 말한다. "자, 오늘은 교과서에서 제일 처음 나오는 단원 국가의 성립과 본질에 대해 수업하자. '국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자유롭게 얘기해 볼 까?~"

조금 머뭇거리는 아이들....국가? ㅎㅎ 대한민국? 조국?  웅성웅성웅성.......

"너희, 사실 '국가'에 대해서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지? 월드컵때나 조금 , 그것도 아주 잠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랑스러워 했을거고, 안 그러니?"

"맞아요~"

"자, 그렇다면 오히려 잘 됐구나. 지금부터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보자. 국가는 뭘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머리속에 떠오르는데로 말이야. 이런게 바로 브레인스토밍 기법이지(교사의 잘난 척~)"

"공동체예요~"

 "법을 만들어요~"

"법 안 지키면 벌 줘요~"

"다 맞는 말이구나. 그런데 얘들아, 어떤 집단이든 그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고 다른 집단도 그 집단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제재를 받기 마련인데 어떻게 국가랑 구별할 수 있을까?"

이런 대화를 통해 이르게 된 결론은 "국가란 일정한 영역 안에서 물리적 강제력을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공동체 혹은 집단 " 이라는 것이다.

새학기 첫시간부터 배우게 된 국가에 대한 정의는 꽤 기억에 오래 남나보다.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에 물어도 아이들은 앵무새마냥 "국가는 물리적 강제력을 정당하게..."하면서 읊어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국가는 강제력을 행사하는 집단이고 따라서 국민은 그에 대해 복종하고 따라야만 한다"는 무의식적 고정관념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를 사랑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국가에 대한 '사랑표현'을  강조할 수는 없으며, 국가를 '사랑'하는 것조다 몇 배 더 중요한 것이 국가를 '통제'하는 일임을 강조하고 싶을 뿐입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강조한 나라보다 국가를 통제하는 것에 돤심을 가진 나라가 그나마 '덜 나쁜' 나라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본문 2장 국가라는 이름의 괴물 : p83)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력의 횡포, 약자를 보호해야 할 법이 왜 약자위에 군림하는지, 세상이 왜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는 거꾸로 돌아가는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정된 수업 시간과 이런 내용을 적절하게 비판해가며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스스로의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 또한 교사가 '비판자'로서가 아니라 '중립자' 내지는 '전달자'로서의 위치를 지키기를 바라는 사회적 시선 앞에 자유롭지 못한 비굴한 내 모습때문에 하기 어려웠던 말들, 그런 것들을 조목조목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전달해 주는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저자의 말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우리들 모두는 어려서부터 '순종'을 최고의 미덕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다 별 문제없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일 때 그 흐름을 벗어나는 것은 확실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특별히 그것이 선생이나 성직자, 통치자 등 강력한 권위를 지닌 사람들에 저항하는 길일때는 더욱 어렵습니다.-------(그러나) 그들의 말이기 때문에 옳은 것이 아니라, 정말 옳은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진짜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이 진정한 교육입니다."  

나같은 용기없는 교사들에게, 한쪽 방향만을 바라보도록 길러지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될 대한민국의 모든 평범한 시민들에게 내가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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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5-04-29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로군요. 추천.

서연사랑 2005-04-29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싸라비아! 서재 지존 딸기님께서 제게 추천을 해 주시다닛!^^
 
퉁명스러운 무당벌레 - 꿈을 그린 에릭 칼, 개념 탄탄 그림책 꿈을 그린 에릭 칼
에릭 칼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더큰(몬테소리CM)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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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칼, 에릭 칼.....이 작가 이름 어디서 봤더라?

으흥~ ' Brown Bear, Brown Bear, What do you see?'의 그 작가로군!

아이랑 재미나게 책을 읽고나서 이렇게 감각있는 작가가 누굴까 하고 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집에 있는 그림책 중에는 아무래도 없는 작가인데...하던 참에 저 구석에 비디오 테이프 모아놓은 걸 들춰보니 예전에 서연이 돌 되었을 즈음 사 주었던 'Brown Bear'의 작가.

그럼 그렇지. 어쩐지 낯익더라니......

'Brown Bear, Brown Bear, What do you see'는 뭣도 모르고 영어그림책 읽기로 영어영재를 만들어볼까 맘 먹고 사 준 처음 영어그림책인데 영어영재에 대한 나의 열정은  곧바로 사그라들었다. '영어는 무슨!우리 말이나 제대로 가르치지....'하면서. 사실 나의 열정에 찬물을 확 끼얹은 것은 무엇보다 나의 타고난 게으름때문이다.

어쨋거나 그 이후로 그 유명하다는 '배고픈 애벌레'도 거들떠 보지 않았는데 오늘 '퉁명스러운 무당벌레'를 보고 나니 또다시 에릭 칼의 작품에 대한 소유욕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퉁명스러운 무당벌레가 상냥한 무당벌레에게 자신감을 보여주기 위해 떠난 하루동안의 여행. 그 길에 퉁명스러운 무당벌레는 한 시간씩 지날때마다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동물들을 차례로 만나게 되고 무당벌레의 그 여행길이 차례로 넓어지는 페이지와 점점 커지는 글씨로 표현되어 있어서 그 장단에 맞추다 보니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수록 덩달아 읽어주는 내 목소리도 점차 커진다. 결국 고래를 만나는 장면에 가서는 엄청난 over~!호들갑을 떨며 읽어주니 목은 아프지만 아이가 마냥 좋아하기는 하네~ㅎㅎ

시계보는 법 그리고  점차 넓어지는 지면크기와 글씨크기를 보면서는 '비례'를 통한 수학적 사고를 ,

시간에 따라 뜨고 지는 해의 위치와 진딧물을 먹는 무당벌레가 이파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 지식을 함께 알 수 있게 해 줘서 과학그림책으로도 best of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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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책 (100쇄 기념판) 웅진 세계그림책 1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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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직 꽃샘추위가 물러가지 않고 심술을 부리긴 하지만 어디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있나요.........바라보기만 해도 투명하게 눈부신 봄햇살을 만끽할 수 있는 봄이네요. 제가 누군지 잘 모르실텐데 덥석 이렇게 얘기를 건네자니 저도 좀 쑥스러워요.

제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피곳 부인은 굉장히 유명한 분이시랍니다. 모르고 계셨죠?^^

저희들은 대체로 혹은 막연히, 생각했더랬죠 - 피곳부인이 계신 그 나라는 남녀평등이 제대로 자리잡고있고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여성이 인정받고 대우받는 그런 사회를 이루고 있을거라고요.  그런데 저희가 알게된 피곳부인의 이야기는 정말 새삼스러웠어요. 너무너무 중요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 피곳씨와 너무너무 중요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사이먼과 패트릭이 피곳부인에게 하는 말들이란!  - 밥 줘! 밥 줘! 밥 줘!

사실, 피곳부인도 너무너무 중요한 직장에 다니고 계시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피곳부인은 쇠로 만든 안드로이드인양 하기싫은 일도, 도움받고 싶은 일도 모두 내색하지 못하셨던거죠. 늘 그렇게 움직이도록 입력되어 있는 것처럼.....

여기의 상황도 다르지 않답니다. 오히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을거예요. 물론 예전에 비해 자꾸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남아선호사상은 대단하구요. 아무리 학교에서 남녀평등을 가르쳐도 사회에 나가기만 하면, 결혼을 하기만 하면, 여성은 언제나 일, 육아, 가정의 삼박자에 딱 맞게 끊임없이 움직여야하는 콘베이어벨트 위에 올라가 있게 되거든요.

그런 면에서 피곳부인의 결단은 정말 통쾌했어요. 사실 어떤누군가는 그런 상황을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한치의 고민없이 살아갈 수도 있죠. 또 어떤누군가는 마음속의 화를 억누르면서 참다가 마음의 병이 걸릴수도 있겠고요.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앞으로도 우리의 딸들이 단지 '여성이기때문에' 가정에서 , 사회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자기 몫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 아닐까요?

피곳부인의 단호한 결단이 피곳씨와 사이먼, 패트릭의 생각을 그리고 그들의 인생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듯이 피곳부인의 이야기가 더욱 많이 알려져서 많은 엄마들과 아빠들, 그리고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지금보다 더 인간답게,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변화가 이곳에서도 일어나기를 바란답니다.

변덕스러운 봄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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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7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3-22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연사랑 2005-03-22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맞아요. 딸기님 서재 페이퍼에 지금 글 남겼어요.^^

아영엄마 2005-03-2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연사랑님~ 리뷰 당선되신 거 축하드려요!! ^^

서연사랑 2005-03-23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게 꿈인가요 생시인가요......알라딘 메인화면에는 제 리뷰가 뜨지 않아서 첨엔 '어, 알라딘이 망가졌나?' 이렇게 생각했지 뭐예요....근데 맞더군요.

오늘의 이 영광을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알게 해 주신 아영엄마님과 제 서재를 찾아주시는 모든 알라디너들과 함께 나누겠어요. 여러분~ 아름다운 아침이예요!!!
(ㅋㅋㅋ 마구 망가지는군요~~)

라주미힌 2005-03-23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 귀엽네요. ^^' 따님도 귀엽고.

책읽는나무 2005-03-24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글을 읽으면서 님의 상황(직장생활 하시는~~^^)과 똑같아 많이 공감하셨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 저도 참 감동적으로 보았더랬습니다...^^

서연사랑 2005-03-24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들러주셔서 감사해요. 지금 님 서재에 갔더랬는데...우와~! 스펙트럼이 넘 다양하세요. 자주 놀러갈께요.^^

책나무님....히히^^ 진짜루 쑥쓰러워요. 뽑힐 리뷰가 절대 아닌데, 제가 알라딘 로그오프도 안 하고 24시간 들락날락하는 걸 알라딘에서 가상히 여겼나봐요.
직딩 엄마로서 공감 아니할 수 없는 책이죠....부러 신랑 다니는 길목에 막 펴 놓는다니까요?ㅋㅋㅋ
 
좋은 꼬맹이 고르기 - 아이들이 작동하는 법 과학 그림동화 19
배빗 콜 지음, 조세현 옮김 / 비룡소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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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우리 동네에 대형 서점이 하나 생겼다. 이 서점이 좋은 점 2가지, 책을 얼마이상 사면 바로 그 지하에 위치한 찜질방 무료 입장의 혜택이 주어지고 (야호! 나는야 찜질방 매니아~) 두번째는 바로 엄마와 아이들이 서점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눈 앞에 어른거리는 알라딘 할인과 적립금을 뿌리치고 가끔씩 이 곳에서 책을 구입하게 된다.

그리하야 어제 나와 딸아이가 골라 구입을 한 책은 바로 베빗 콜의 '좋은 꼬맹이 고르기 - 부제 : 아이들이 작동하는 법'

 지난 주엔가 안 그래도 알라딘에서 소개가 되었던 책이다. 그래서 척~하니 보관함에 넣어 두었는데 아이에게 책을 골라오게 했더니 어느 구석으로 다가가서 뽑아 온 책이 바로 이것. 나도 반가운 마음에 바로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런데....과학 그림동화라고 그래서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반응! 아이가 너무 재미있어 한다.

사실 그림이 아주 예쁘거나 내용이 아주 쉽다거나 교훈적이거나 하지는 않다. 특히 나쁜 꼬맹이를 설명하고 있는 그 그.림.들.이란 정말 뒤로 넘어가시게 만드는 수준이므로~(이 부분은 보시고 확인하시기 바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반응은 즐겁고 발랄하다. 끊임없이 스스로의 일상과 좋은 꼬맹이의 모습을 비교해보면서 "엄마, 나는 치카도 잘 하고 비누로 손도 잘 씻으니까 착한 꼬맹이지?" "엄마, 아빠는 회사 갔다와서 머리 안 감으니까 - 그림책에서는 나쁜 꼬맹이의 '떡진 머리'로 설명되어 있음 - '떡진 머리'지? 그럼 아빠는 나쁜 꼬맹이네?"(오오~ 서연 아빠....미안.....) 하는 식이다.

생활 습관 이외에도 소화와 신진대사가 이루어지는 과정, 뇌와 근육의 구조, 눈과 귀가 어떻게 보고 들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는지...등등 일반적으로 어려운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어서 그림책이지만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충분히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듯.

 내일은 '우리 몸의 구멍'(돌베개어린이)에 나오는 그림들과 함께 비교해 가면서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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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9
사라 스튜어트 지음, 데이비드 스몰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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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마르고, 눈이 나빠 얼굴의 반을 가리는 안경을 썼으며, 다른 또래의 소녀들이 관심있어 하는 그 어떤 것도 즐겨하지 않는 특이한 소녀이다. 그녀에게 세상의 전부이자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모든 것은 바로 책을 읽는 것.

그녀의 책들때문에 침대가 무너져 내리고 물구나무서기를 하고서도 책을 읽으며, 청소를 하면서도 책을 보다가 문설주에 부딪히고 마는 그녀.

책을 모으다모으다 더이상 집에 책을 들여놓을 공간이 없는 비극적인(?) 상황에 직면하게되자 우리의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내린 결단은?!

책장 한 장 한 장마다 시화같은 고운 수채화들이 마치 액자에 담긴 듯 펼쳐지며 실제 인물을 모델로 씌여졌다는 이 그림책을 보며 책을 읽으라고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책을 사랑하고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기르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머릿 속을 스쳐지나가는 나의 기억 속의 어릴적 풍경 하나...... 

내가 예닐곱살 무렵, 우리집은 2차선 도로가 바로 앞을 가로지르는 도로변 상가건물이었다, 우리집은 양장점이었고 왼쪽 옆은 담배가게, 오른 쪽 옆은 서점. 정면에서보면 각기 다른 가게들이지만 가게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당과 수도를 같이 쓰게 되어있는 일종의 다세대  주택이었던 셈. 담배가게 아줌마네는 언니가 하나, 오빠가 하나 있었고 건물 이층 미장원집 정님이가 나랑 동갑내기였다. 친구들이랑 어울려 소꿉장난과 땅따먹기에 열중할 나이에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놀이는 우리 옆집, '청문서점'에 가는 것이었다.

나이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십대 중반 정도 되었을 것 같은) 단발파마머리에 안경을 쓰고 사람좋은 서점 주인 언니는 일곱살자리 꼬맹이가 와서 아무데나 앉아서 책을 볼 때 어떤 싫은 소리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눈치'라는 걸 모를 나이. 책 고르는 서점 손님들 사이에서 쭈그려 앉아 보고 싶은 책들을 마음껏 보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5.18 민주화운동때문에 찻길이 한산하고 어른들이 모여 웅성웅성할 때(그런 사건이었다는 것도 20살이 넘어 대학에 가서야 알게 되긴 했지만) 나의 피난처는 '청문서점'이었다.

벌써 이십 몇 년 전 얘기......며칠 전 아이와 함께 '도서관'이라는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때 '청문서점'언니가 생각이 났다.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커다란 안경과 아무렇게나 핀을 꽂은 곱슬머리위로 자꾸 서점언니의 모습이 오버랩된다.그 뒤로 몇 년 뒤에 우리집은 이사를 갔고 그 후로 지나가면서 몇 년 더 그 자리에 서점이 그대로 있었던 것은 생각이 나는데 지금쯤 책 좋아하던, 사람 좋던 그 언니는 무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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