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c2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한창우 감수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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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E=mc2라는 위대한 - 사실 그 위대함에 대하여 나는 잘 모르겠는데 세상 사람들이 위대하다고 하는 - 공식이 세상에 태어난지 100년째 되는 해다.

나는 아인슈타인이 그저 위대한 과학자이며 '상대성이론'을 만들어 낸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는, 하지만 내 주위의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그다지 모자라지는 않은 평범한 사람이다. 적어도 아인슈타인이 미국 사람이라고 우기는 우리집 최모 아저씨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런데 올해는 때가 때이기도 하고, 알라딘을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리뷰를 썼던 책이 '과학콘서트'이기도 하고(과학을 소재로 한 책이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더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여러 알라디너들이 극찬을 하기도 하고 등등의 이유로 보더니스의 'E=mc2'를 읽어봐야 겠다고 마음을 먹게되었다.

여러날 내 책상에 꽃혀있는 이 책을 보고 내 주변의 사람들은 장식용이라는 둥, 이해는 되냐는 둥, 그게 수학책이냐는 둥 여러 시답지 않은 소리로 이 책을 향한 나의 열정을 무시하려고 애썼으나 결국 나는 읽어내고야 만것이다. 바로 오늘, 2005년 6월 14일!

지금도 사실 잘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에너지와 질량, 그리고 빛의 속도를 각기 다룬 부분들은 그저 글자가 내 눈에 박혔다는에 의의를 두는 정도로 지나갔기 때문에 아마 누군가 ' E=mc2'이 뭐냐고 묻는다면 허둥지둥대며 '아인슈타인 몰라? 아인슈타인!'하면서 스리슬쩍 넘어가려고 애쓸 것이다.

그보다는  E=mc2를 위한 기나긴 여정에서 결코 아인슈타인에 비해 처지지 않는 천재성을 보이며 눈부신 이론적 업적을 쌓았던 리제 마이트너(핵분열 연구의 창시자 중 한 사람)나 세실리아 페인(태양이 무거운 철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수소와 헬륨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에밀리 뒤 샤틀레( 그녀는 뉴턴의 mv1에 맞서 속도의 제곱을 곱해야 에너지값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등의 천재적인 여인들과 반면에 그들을 인정해 주지 않았던 세상,  그리고 세상 밖으로 나온  E=mc2가 처음 인간에게 사용된 계기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이었다는 데 웃고, 울고 한숨을 쉬면서 이 책 속에 빠져들어갔다.

그 과정은 마치  E=mc2를 소재로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와 과거, 동시에 서구의 여러 나라를 한 화면에 펼쳐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영화를 보는 느낌을 내게 선사해 주었고 더불어 대립과 갈등이 반복되는 인생의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는 해답도 안겨 주었다.

"만약 내가 당신에게 광선이 지금쯤 특정한 지점을 지나쳤을 거라고 말하고, 당신은 나에게 미쳤다, 틀림없이 더 오래 걸릴거다, 라고 말한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당신이 말하는 '더 오래'라는 개념이 내가 생각하는 '오래;의 개념과 다르기만 하다면. 그러면 내가 본 것은 진리이고 당신이 본 것과 다르지 않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그동안 모순으로 보였던 현상들에 대해 우리의 지각에 관한 용어들을 명확히 함으로써 해결해 주었다."(책의 부록 : 주석123번 중에서)

과학은 철학이 아니고 인생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지만 이보다 더 멋진 인생의 해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으랴. 네가 알고 있는 것이 나와 다르기 때문에, 너의 사고 방식이 나와 다르기 때문에 너는 틀렸고 옳지못하다며 상대를 향해 칼을 들이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의미를 주는 문장아닌가.(크하하..이쯤되면 엄청난 오버 해석이긴 하다)

마지막으로, 본문만큼이나 흥미진진하며 재미있는 부록이 마지막에 포진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치치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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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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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 100권이 처음 출간됐다 했을 때 특이한 제목때문에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이렇게 읽게 될 거라서 필연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이라는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었다.

요새는 경기가 불황이라 비디오 가게에 가도 신작들을 소개하는 소책자 인심이 매우 나쁘지만 (보급사에서 아예 제작을 안 하기도 한다고..) 5-6년전만 하더라도 비디오 빌리지 않아도 주인 아주머니나 아르바이트 총각이 인심 좋게 하나씩 주곤 하던 그 팜플렛. 언젠가 거기서 이 소설을 영화한 한 동명의 작품 소개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매우 인상이 깊었나보다.

뭐? 막내딸은 시집도 못 가고 평생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고? 개뿔....

인상 깊기만 했지 여적지 영화도 소설도 접해보지 못 하다가 이참에 읽게 된 이 책의 내용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막내딸이 시집도 못 가고 어머니를 죽을 때까지 모셔야하는 전통(이걸 전통이라 한다면)이 내려오는 한 가문의 막내딸 티타와 그녀를 사랑해서 그녀의 언니와 결혼하는 페드로의 사랑 이야기.

이쯤되면 지고지순한, 그러면서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사랑 얘기가 펼쳐쳐야 하는데 의외로 이 소설은 지고지순과는 거리가 좀 있다. 티타는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택한다거나 수녀원을 택한다거나 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가두는 어머니와 맞서고 온 힘을 다하여 그녀의 요리 속에 자신의 감정을 담는다.

그녀의 요리는 이해할 수 없는 전통으로 사랑을 옭죄는 낡은 세상과 운명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것.

내용 중간중간에 어랏! 하면서 읽게되는 감칠맛나는 에피소드('믿거나 말거나'에나 나올법하지만 제법 설득력있게 보이는 상황들)와 책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티타와 페드로의 운명적인 사랑....

소재와 구성을 종합하여 볼 때, 시간과 공간을 - 현실과 상상 속을 요리를 매개로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만큼 매력넘치는 소설을 찾아보기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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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6-1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안 보셨는지요?
같은 이름으로 오래 전 나왔는데......
(전 책은 아직 안 읽었어요.^^;)

서연사랑 2005-06-12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영화는 아직요. 이제 책도 읽어봤으니 조만간 꼭 한 번 보려고 한답니다^^
 
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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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는 540년에서 681년까지의 기간 동안 임명되었던 32명 풍월주의 전기이다.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은 대를 이러 풍월주를 배출한 가문이었다. 풍월주 중 1세 위화랑, 4세 이화랑, 12세 보리공, 20세 예원공, 28세 오기공은 김대문의 직계 조상이었다. 681년 김흔돌의 난에 전임 풍월주와 화랑도들이 관여하였던 까닭에 신문왕의 어머니 자의태후가 명하여 풍월주를 우두머리로 하는 화랑도를 폐지하였다. 이는 풍월주를 배출한 김대문의 가문으로서는 커다란 위기였다. '화랑세기'는 바로 그와 같은 김대문 가문의 위기때문에 저술된 책이다. 김대문으로서는 그의 가문이 화랑의 우두머리 풍월주를 배출한 대단한 가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두기 위하여 이 책을 저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당시 신라 최고의 지배세력은 왕을 중심으로 근친 관계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중복된 근친혼을 하며 지배세력으로서의 지위를 다른 세력들에게 개방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화랑세기는 크게 화랑의 세보, 낭정의 대자, 파맥의 정사에 대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각 풍월주의 전기에는 풍월주의 가문과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일을 하였는지 등에 대한 전기, 풍월주의 행적을 정리한 찬(贊) 그리고 세계(世系)가 나오고 있다. 그 중 세계에는 풍월주의 부모를 비롯한 조상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고 그들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세계는 각 풍월주의 사회, 정치적 지위를 밝혀주는 좌표였다. 세계는 신라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장치였고 누구나 알고 있던 사실들이었으며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신라는 출생에 의하여 사회, 정치적 지위가 정해지는 골품제 사회였기 때문이다. 세계에 대한 이해는 신라사회를 옳게 인식하는 출발점이 된다. 그런데 '삼국사기' 등은 세계가 얼마나 중요한 장치였는지를 이야기하지 앓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세계에 나오는 근친혼 등의 관계를 유교적, 기독교적 관점에서 비판하여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화랑세기'를 위작으로 보는 발상 자체가 신라 사회를 움직이던 원리를 옳게 파악하지 못한 것들이다. '화랑세기'는 단순히 풍월주만의 전기일 수 없다. 그 안에 나오는 겹겹이 쌓인 많은 이야기들은 신라의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일 수 밖에 없다. 다른 어느 사서에서 구할 수 없는 생생한 신라의 이야기다.

-이하생략-

['화랑세기'를 통해 본 신라의 역사 - 이종욱(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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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을 읽다보니 '화랑세기'에 가장 많이 등장한 여성이라는 소개글이 있어,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화랑세기'를 검색해 보았다. 그 중의 하나가 위에 소개한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교수의 논문이다. 이교수의 글에 다르면 신라는 골품에 의해 사회, 정치적 지위가 결정되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으므로 지배계층은 그들의 신분과 기득권을 폐쇄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당시는 남녀의 문제보다 성골을 왕으로 삼는 일이 더 중요하였으므로 아들이 없던 진평왕을 이어 성골 신분을 가지고 있던 선덕이 여왕이 될 수 있었던 것.) 근친혼이나 사통 관계가 신라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으며 그러한 관계가 부끄러운 일이거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는 것.

으흠.....그렇다면 '미실'에서 그려지는 복잡한 근친의 관계도 작금의 우리들에게나 놀랄 노자요 입이 떡 벌어지는 관계였던 것이지 그때 당시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는 말이로군.....

하기는 에스키모족 중의 어느 부족은 거의 다른 외부인과의 접촉이 없고 혼인이 부족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바 멀리서 외부의 사람이 부족을 방문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환영의 뜻으로 자기 부족의 처녀와 함께 동침하도록 하고 나중에 그 처녀가 임신을 하면 기뻐하며 자기 부족의 일원으로 그 아이를 길러낸다고 하고 티벳의 고산지대에서는 노동력 확보와 재산의 분할을 막기 위해 형제가 모두 한 여자와 결혼하는 일처다부제를 택하고 있다 하니 일부일처제와 혼인을 통한 성관계의 제도적 규제가 진리는 아닌 바, 당시의 '미실'이라는 여인이 비로서 이해되기 시작한다.

당시의 자유분방한 풍속이나 화랑도의 세부적인 묘사도 충분히 인상적이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더 감탄했던 것은 아름다운 고어(古語)들이었다. 문장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매력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런 소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이런 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릴 무렵으로 갈수록 흡인력이 떨어지고 너무나 서둘러 마무리를 하려는 작가의 모습에 괜히 서운해졌다. '미실'을 통하여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 도대체 뭐야(버럭!)싶은 생각 - 그만큼 내게는 미실이 역동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는 이야기 - , 화랑세기의 내용에 조금 더 살을 붙여 내었을 뿐 온전한 창작의 몫은 부족하지 않았는지........

나야말로 재미있게 읽어놓고 뭣도 모르면서 리뷰 쓴답시고 떠들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으나 이토록 강렬한 이미지의, 그야말로 뚜렷한 개성을 지닌 '미실'을 만났음에도 그녀의 삶을 통해 느껴지는 것이 나를 사로잡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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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5-3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연이 얼굴 구경하러 왔어요.
서재 이미지 속의 아이 맞죠?
너무 참하고 예쁘네요.
리뷰도 읽고 갑니다.
<미실>은 이상하게 제 보관함에도 진입 못한 책이에요.
김별아 씨 글에 대한 호감이 없어서.
님의 리뷰 보니 역시 그렇군요.^^;;

서연사랑 2005-05-31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하고 예쁘게....키우려고 노력중이지요^^. 우리 아이도 주하처럼 그림도 잘 그리고 책임감도 강하게 잘 컸으면 한답니다. 엄마인 제가 잘 키워야 할 터인데.
미실은, 1억을 탄 수상작이라는데 너무 기대가 컸었나봐요.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저는 이 작가의 소설은 처음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품은 아니지 싶어요.
 
사람 VS 사람 - 정혜신의 심리평전 2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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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년이 시작되고 새학기가 시작될 때 나의 업무 리스트 상위랭킹에 반드시 올라가고야 마는 일 중의 하나는 바로 아이들과의 상담이다.

올해는 오랜만에 담임을 하지 않는지라 상담에 대한 부담이 없지만 담임을 맡게 되면 피해 갈 수 없는 관문이기도 한 상담.

우선 처음에는 아이들 번호와 얼굴 익히기를 시도한다. 특히 아이들 이름 중에 지영이나 은영이, 지현이(그리고 요즘에는 보람이, 아람이)같은 이름은 한 반에 두 명씩 있는 경우가 많고 그것고 성까지 같을 경우에는 하루라도 빨리 이름과 얼굴을 매치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일단 담임맡은 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새 반을 맡고서 하루나 이틀지나 일차 얼굴익히기가 끝나면 확인도 할 겸 번호순대로 상담을 시작한다.

그런데 요즘에와서 특히 이 책을 읽는 도중 중간중간, 머리 속을 스치는 상담의 상황상황들을 돌아보며 느끼는 것은 "과연 나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정말로 이해하고자 하였는가"하는 점이다.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10대 초반의 소녀 가장에게 '나도 사글세방에 살아 보아서 잘 안다. 그래도 너는 내가 겪은 가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은 이렇게 정부에서 도움이라도 주고 있지 않니. 용기를 잃지 말거라" 라는 식의 위로가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그 소녀 가장이 이명박의 어린 시절보다 덜 가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그 소녀가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허구헌 날 폭력에 시달리며 성장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때는 물리적 궁핍함보다 정서적 황폐함이 더 문제가 된다. 배를 곯지는 않지만 생활보호대상자라는 처지가 부끄러워 친구들과의 관계가 힘겹다면 그 또한 어떤 식으로든 배려할 방법을 찾아야 할 문제다. 가난의 정도라는 하나의 잣대로만 한 사람의 상황을 판단할 수는 없다. '배부른 투정'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무지한 관용구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자신의 개별적 경험과 단순비교하여 '그래도 니가 나보다 낫다'는 식의 포괄적 인식은 인간의 개별성을 휘발시켜버린다. 동일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로 인한 고통이나 기쁨 같은 감정보타 똑같은 것은 아니다.(본문 28쪽)

아차싶었다.

꼴에 그들보다 몇 살 더 먹었다고, 그들처럼 힘든 고등학교 생활을 했으며,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때문에 가출충동을 매일 느끼고 살았으며 부모님과의 심각한 갈등도 경험해 보았고 입시에 시달리며 죽고 싶었던 기억도 있기에 너희들의 고민 내가 다 안다 - 는 식으로 아이들을 대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의 특수한 상황을, 부모의 이혼과 가출과 가난과 집단따돌림  등등을 선생님이기 때문에 다 안답시고 아는 척하면서 주절대는 내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으로는 쓴 웃음만 짓다가 교실로 돌아갔던 것은 아닐까.

상담 열심히 하고 아이들 입장에서 이해하고 그래서 아이들과의 관계가 어느 선생님보다도 도탑다고 자부했던 나의 교만함때문에 챙피해 미칠 지경이다. 그런거였구나... 상담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어깨가 그토록 무거워 보였던 것은 그때문이었구나.

다른 이들은 이 책에 실린 여러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평을 두고 호, 불호가 정확히 나뉜다. 그런데 나는 엉뚱하게도 그 여러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재미있다, 없다를 떠나  이 책을 상담 실전서로 읽었다. 그러면서 위와 같은 상황에 대한 고민때문에 더없이 마음이 무거워 졌으니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하나를 뺐다. 하지만 나에게 상담자로서 내가 가져야 할 자세와 '진심으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라는 고민거리를 던져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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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3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5-23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담 실전서로 정말 굿!이겠어요.
리뷰 재밌게 읽고 갑니다.^^

서연사랑 2005-05-23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 신고접수, 수정완료!
왜 그랬대요...(부끄부끄..졸면서 썼나..으으)
꼼꼼히 봐 주시고 재미있다 해 주셔서 감사해요^^

딸기 2005-05-26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추천.

돌바람 2005-07-05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처럼 좋은 선상님한테 상담 받고 싶어지는걸요. 왜 서른 넘은 아줌마의 이야기는 수다가 될까, 잠깐 생각해보았습니다.

서연사랑 2005-07-06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 중의 하나는, 저는 절.대.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는 것입지요....과찬이세요.
하지만 상담말고 대화는 언제든지 가능해요. 제가 은근히 상대방 얘기를 잘 들어주거든요^^
 
까만 크레파스 웅진 세계그림책 4
나카야 미와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웅진주니어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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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지금이야 선물이라면 뭐니뭐니해도 머니가 제일 좋긴 하지만(으으..속보여...)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는 색연필이나 크레파스정도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아이들 12색이나 24색 크레파스 쓸 때 왕자표 48색이나 60색 크레파스 하나면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주위를 평정하고도 남았으니까.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도 문방구에 들릴때면 집에 래핑도 뜯지 않는 새 크레파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크레파스를 만지작만지작하면서 애처로운 눈길을 내게 보낸다. "엄마, 집에 있는 크레파스, 다 써버리면 어떡하지?" 하면서...

그러니 크레파스가 주인공인 이 그림책이 우리 아이의 레이다망에 포착되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

처음에는 '색깔 공부하는 그림책인가보다' 하고 무심히 책장을 넘겨보기 시작했다. 노랑 크레파스가 나와서 예쁜 나비를 그리니 빨강과 분홍 크레파스가 튤립과 코스모스를 그리고 초록과 연두가 나와서 줄기와 이파리를 그리고 황토색와 갈색이 나와서 나무와 땅을 그리고....

선명한 색감도 예쁘고 크레파스 고유의 질감이 잘 나타나는 귀여운 그림속에 흠뻑 빠져 있는데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까망이, 친구들에게 묻는다. "나는 뭘 그리지?" 

아차, 까만색이 남아있었구나. 크레파스를 쓰다보면 제일 먼저 노랑색이나 살색(인종편견이 고스란히 살아있는)이 닳아 없어지고 마지막까지 남는 색깔이 하얀색과 검정색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까만색은 도화지 뒷면에 이름을 쓰거나 창문의 창살을 표현할 때 말고는 쓸 일이 없어 쓰다가 부러져도 별로 안 아까와 했었지.

그런데 까망이의 활약은 이제부터다. 다른 색깔 친구들이 잘난 척 하면서 결국에는 그림을 망쳐버리자 이것을 멋진 불꽃놀이 장면으로 바꾸어 놓는 우리의 까망이.

슬며시 아이 얼굴을 보니 다른 색깔들이 까망이를 무시할 때는 입을 삐죽삐죽하더니 까망이가 제대로 자기 역할을 해내자 소리없이 빙그레 웃고 있다. 어린 눈에도 까망이가 쓸모있게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이나 보다.

그래, 아이야. 살다보면 우리가 너무나 쉽게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지나치는 것들이 바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보석과도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단다.

내가 아니라고 해서, 나와 다르다고 해서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지 말자.

나와 '다름'을 '틀린 것'이라고 하지 않을 때,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릴 때 비로소 나도 타인에게서 인정을 받는 사회가 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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