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기억, 전쟁의 소리, 전쟁의 환영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고, 어느 다른 소녀였다.라는 읊조림은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독일군은 여자병사들은 포로로 잡지 않았어・・・・・… 바로 총살해버렸지 아니면 자기 병사들 앞에 끌고 나와 ‘자, 여기 이것들은 여자가 아니다. 추악한 괴물이다‘라고 하거나.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총알을 따로 가지고 다녔어. 불발될 경우를 대비해 두 발씩.
우리 간호병 하나가 독일군에게 붙잡혔어. 하루가 지나 우리가그 마을을 공격해 들어갔는데 사방에 죽은 말이며 오토바이며 장갑수송차 등이 나뒹굴고 있더라고. 독일군에게 잡혀간 우리 간호병을 찾아냈지. 세상에, 눈알이 도려내지고 가슴이 잘려나가서는…………… 놈들이 말뚝에 박아놓았더라고. 몸은 살을 에는 추위에 꽁꽁 얼어 새하얗고 머리는 완전히 백발이 되어 있었어. 그 아이는 겨우 열아홉 살이었어. 우리는 그 아이 배낭에서 가족이 보낸 편지들과 고무로 된 작은 파랑새를발견했어. 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장난감 고무새를・・・ - P243

전쟁터에서는 사람이 사람 같지 않다는 게 를 또다른 끔찍함이었어. 전쟁터에서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절대 믿지 않아. 항상 소매를 팔꿈치까지 말아올리고 다니는독일군이 모습을 드러내고 오 분이나 십 분쯤 지나면 공격이 시작됐어.
그러면 온몸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하지. 오한도 나고, 하지만 그건 처음· 막상 전투가 시작되고………… 지휘관총을 한발 쏘기 전까지만 그래의 명령이 떨어지면, 어느새 그런 기억은 모두 사라져버려. 다른 전우들과 함께 정신없이 앞으로 돌진하는 거야. 무서운 거고 뭐고 느낄 새도없지. 하지만 다음날이면 벌써 잠이 안 와 또 무서워져서. 전부 다 기억이 나는 거야. 하나하나 전부 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미치면 이제 무서워서 미칠 것 같지. 전투가 끝나면 사람들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 게 차라리 나았어. 다들 평소에 보는 보통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으니까 완전히 딴 얼굴이 되어 있었으니까. 서로 눈을 피하는 거야. 나무도 똑바로 못 쳐다보고 서로, 가까이 가려고 하면 그러지. 저리가 저리 가라고! 아・・・・・・ 그게 무엇이었는지, 표현할 방법이 없어. 조금씩 정신이 나갔다고들 해야 할까. 짐승 같은 뭔가가 번뜩였다고 할까.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았어. 나는 아직도 내가 살아남았다는 게 안 믿어져. 살아 있다는 게……… 부상도 당하고 상처도 입었지만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
눈을 감으면 그 모든 게 다시 눈앞에 나타나.... - P262

기억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끝도 없이 ・・・・… 그런데 가장 중요한게 뭔지 알아?
나는 전쟁의 소리를 기억해. 사방에서 으르렁, 쾅쾅, 쨍쨍 불을 뿜어대던 그 소리들‥………… 전쟁터에서는 사람의 영혼마저 늙어버리지. 전쟁이 끝나고 나는 다시는 젊음으로 돌아갈 수 없었어………… 그게 제일 중요한 점이지. 내 생각엔 그래
--결혼은 하셨나요?
ㅡ했지. 아들 다섯을 낳아 길렀어. 아들만 다섯. 딸은 하늘이 주시지않더라고, 나 스스로도 가장 놀라운 일은 그 끔찍하고 무서운 일을 겪고도 예쁜 아이들을 낳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 게다가 좋은 엄마에 좋은할머니까지 되었다는 사실이지.
이제 와서 모든 걸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내가 아니었던 것 같아. 어느 다른 소녀였지..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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