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인과 이런 저런 대화속에서 문득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지인은 책 좀 읽어보겠노라 시리즈물 책을 몇 권을 빌려와 열심히 다 읽고 나니 읽었던 책이었음을 뒤늑게 깨닫고 허탈했노라고 말했다.하지만 나는 반대라고...늘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 들면 기억이 전혀 없어 생전 처음 읽는 듯한 책들이 대다수라서 늘 내 머리가 좀 이상한가?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는다고 답했다.)

그 후로 책을 읽을때마다 나의 기억력의 한계를 더없이 깨닫게 되고, 조금 의기소침해지곤 한다.

기억하지 못할 내용이라면 왜 읽는 것인가??

특히 데미안을 읽으면서 더욱 더 그랬던...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고자 의기양양 책을 펼쳐 읽은 책있어다.헌데 첫 소절부터 생전 처음 읽는 책인 것처럼 낯설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의 기억력에 확신이 들지 않게 되고,급기야 읽지 않은 소설인데 읽었다고 착각하고 살았나?란 생각마저 들어, 삶에 있어 늘 겸양의 자세를 지녀야 겠구나!란 생각을 심어 준 책이었다. 

기억되거나 말거나....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지금 읽어도 좋다.

유약하고 예민한 싱클레어의 곁에서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데미안이 없었더라면 끔찍했겠다고 여겼는데 읽다 보니 데미안은 싱클레어 자신이 만든 허상이었나?란 생각이 아리쏭하게 들었다.내가 살고 싶은,하고 싶은,담고 싶은 삶의 목적을 흔들리지 않게 제시해 주는 데미안 같은 존재가 가장 섬세한 사춘기 시절에 함께 한다면 행운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잊고 있었던 친구 한 명이 내내 떠올랐었다.

국민학교 6학년 무렵 잠깐 편지를 주고 받은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다.

5학년 시절 전근 가신 담임선생님의 주선으로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나는 그 아이에게 선택을 당했고(?) 편지가 와서 답장을 주고 받으며 친분을 쌓았는데 그 친구의 편지 내용이 좀 오묘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사춘기가 벌써 시작되었던 듯하다.

알 듯 말 듯한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나보다 좀 조숙한 언니 같은 생각이 들어 늘 신경이 쓰였고,거슬리기 싫었고,동생같은 이미지를 남기기 싫어 한 문장,한 문장 신경을 쓰며 답장을 부쳤던 기억이 난다.그러다 중학교 들어가선 몇 통 서신이 오고 가다 연락이 끊겼는데 두고 두고 이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지곤 한다.(멋진 여성으로 살고 있길...제발^^)

내겐, 그 아이 앞에서 실수할까봐 바짝 다가서기 어려웠지만 늘 그 아이의 생각을 닮고 싶어 몰래 동경했었던 얼굴도 모르는 친구였는데, 문득 책을 읽으면서 내게 그 아이가 데미안 같은 존재였었나?이제 깨닫게 된다.

 

주옥 같은 문장들이 많아 열심히 밑줄을 그었지만,역시 어려운 문장들도 많다,

이 나이가 되었어도 어려운 문장들은 어렵다.

언제쯤이면 귀가 술술 열릴 것이며,눈이 번쩍 뜨일 것인가?

갈길은 아직 아득하다.

 

 

 

 

 

 

 

 

 

 

 

 

 

 

 

 

 

 

'여행의 이유' 책 표지가 바캉스 에디션이라고 바뀌어 있는데 좀 더 늦게 살껄 그랬나!!

조금 후회가 된다.

여행서 산문집이다.

여행에 대한 정보를 구한다면 정보만을 따로 묶어 놓은 책을 구입해야만 할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에 들어맞는 책이었던지라 이번엔 팬심이 아닌 마음으로 별 다섯 개를 달았다.

이것은 아마도 그 전에 읽은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책의 영향이 컸던 듯하다.(물론 지금은 별 세 개에서 네 개로 마음이 좀 변했지만.) 기대가 컸던 하루키의 여행서는 왠지 하루키 스럽지 않고 여행 정보책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고,읽으면서 계속 눈에 거슬렸던 중간 중간마다 튀어 나오는 존칭어 때문이었던 듯하다.처음에는 오타인가? 넘기다가 나중에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인가? 그러다 이것이 하루키의 유머코드인가? 난 웃을 수 없는데?(몇 부분 웃긴 했다만..) 물론 여행 관련 책이어 재미나게 읽긴 했다만 뭔가 아쉽다.고 여기던 때, '여행의 이유'를 읽으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내가 읽고자 했던 내용들이 있고,없고의 차이??

 

비슷한 일을 소설이 한다.부부관계의 파경을 다룬 소설을 읽고 나면 독자 자신의 부부관계도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된다.탁월한 문장력으로 맥주의 맛을 묘사한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문득 냉장고로 달려가고 싶어진다.그때 마시는 한 잔은 늘 경험하던 그 맛이 아니다.문득 새롭다.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한 것이다.여행은 고되고,위험하며,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 들고 안전하다.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205,206쪽,여행의 이유)

 

새로운 소설과 새로운 여행을 찾은 일은, 비슷하게 신비한 일임과 동시에 일상의 권태로움을 이겨내는 힘이 되어 준다.

 

 

 

 

 

 

 

 

 

 

 

 

 

 

 

 

 

하루키의 책에서 미국 포틀랜드 도시에서의 맛집을 잠깐 언급했었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포틀랜드라는 도시가 변화를 거듭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과정을 그리고자 그곳에서 오랜시간 고군분투하여 자리를 잡고 있는 6명의 기업인을 찾아가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일본작가다 보니 일본 사람이 대다수인 인터뷰집이긴 한데 읽어 보면 흥미롭다.

이 도시는 경쟁의 도시가 아닌 협업과 상생의 도시임을 깨닫게 된다.

이런 구도가 지금의 도시를 만든 창조성의 기본 자산이 된 것이다.

 

 

 

 

 

 

 

 

 

 

 

 

 

 

 

 

 

읽으면 읽을 수록 더욱 애정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뒤늦게 배워 수필집을 내고 다시 낸 소설집이기에 아무래도 모국어로 표현하는 깊이감은 좀 반감되겠으나 군더더기를 뺀 산문집 같은 느낌이 들어 나름의 읽는 맛은 있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장소에서 문득 문득 떠오른 단상들에 귀 기울이다 보면 휘리릭 어느새 책의 끝장까지 와 있어 못내 아쉽다.

앞서 데미안의 책은 읽었지만 처음 읽는 부류의 책이었다면,

줌파 라히리의 책들은 처음 읽는데도,읽었던 전작들의 그 주인공들이 다시 연결된 내용들처럼 친숙하게 느껴져 읽었던 책인가?싶다.이것도 기억들이 뒤죽박죽 뒤엉킨 아주 별난 느낌이다.

그녀의 깔끔한 문체가 좋고,속 깊은 고민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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