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만을 위해선 내 자식을 위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유가족들이 계속 싸울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피해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해자임을 깨닫고 자신을 가해자로 만든 위치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하기 때문이다."(후이지 다케시, [무명의 말들])p.22,23.
기쁨을 나누는 일은 배우지 않아도 사는 데 무리가 없지만, 슬픔을 나누는 일은 반드시 배워야하는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강석경 씨를 만나면서 알았다.p.20.
그러니까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용하는 모든 일상 영역에‘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 흩어진 사고의기록을 모아놓으면 공통의 문제점이 보인다. 사회초년생으로서초반 적응 시스템이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는 것, 기본적인 노동조건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 모두가 꺼려하는 일이 조직의 최약자인 그들에게 할당됐다는 것,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자신의 고통을 공적으로 문제 삼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것이다. 안전교육을 받기보다 ‘이런저런 거 조심하라‘는 식으로말 몇 마디를 듣고 바로 업무에 투입되었고 욕설과 명령 등 비인간적인 대우에 노출됐다. 노동에 단련되지 못한 서툰 몸으로 야근까지 감당했다. 학습도 실습도 아닌 중노동에 심신이 극도로피폐해진 상태에서 그들은 사고를 당하거나 자기 구제로서 죽음을 택했다.p.17
TV나 영화에는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만 나왔고, 어머니는 아름답고 위대하다고만 했다. 물론 김지영 씨는 책임감을 가지고 최대한 아이를 잘 키울 것이다. 하지만 대견하다거나 위대하다거나 하는 말은 정말 듣기 싫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힘들어하는 것조차 안 될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p.150.
TV나 영화에는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만 나왔고, 어머니는 아름답고 위대하다고만 했다. ... 대견하다거나 위대하다거나 하는 말은 정말 듣기 싫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힘들어 하는 것조차 안 될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p.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