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심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우리 자신의 고통조차도, 상상력으로 증폭되고 수천 번 메아리치면서 깊어진, 타인과 함께, 타인을 위해, 타인을 대신해 느끼는고통만큼 무겁지는 않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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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법으로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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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체주의 신앙은 이제까지 모든 것이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만 증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과정에서 전체주의 정권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처벌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 때, 그것은 처벌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악이 된다. 절대악은 이기심, 탐욕, 시기, 적개심, 권력욕이나 비겁함 같은 사악한 동기로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그래서 분노로도 복수할 수 없고, 사랑으로도 참을수 없으며, 우정으로도 용서할 수 없다.
전체주의의 기원, 251~252
- P43

그렇지만 우리는 최대의 악과 근본악이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죄의 모티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근본악이 실제로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떻든 다음의 현상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을 남아도는 존재로 만드는 잉여화, 그것은 인간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수단화는 존재는 건드리지 않고 오직 인간의 존엄만 해치지만, 인간의 잉여화는 인간을 남아돌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사람에게서는 자발성에 상응하는 모든 예측 불가능성을 제거하자마자 일어납니다.24 - P56

권리를 박탈당한 자들에게 닥친 곤경은
법 앞에서 평등하지 않다는 점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어떤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아렌트의 근본악은 다음과 같은 명제로 명료하게 서술될 수 있다.
1. 근본악은 인간의 잉여화를 추구한다.
2. 인간의 잉여화는 인간의 자발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제거될 때일어난다.
3. 이러한 전능의 망상은 인간의 복수성과 다원성을 파괴한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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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도르프백작은 이렇게 썼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무엇을 해드리는 사람보다 무엇을 해주실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리는 사람을더 고맙게 여기신다. 그는 당신의 주변에 무엇인가 좋은 일을해 드릴 수 있는 사람보다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 예수님께서 빈틈없이 의로운 사람에게 무슨일을 해 주실 수 있겠는가? 그는 누구든지 당신을 필요로 하는사람을 찾으신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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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촉매이다. 한나 아렌트는 우리 시대의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결코 명확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도, 보편타당한 정치 이념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아렌트는 특정한 길로 직접 이끌어주는 길잡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도록 우리를 끊임없이 이끄는 자극제이다. 만약 우리가 확실한 길잡이를 갖고 있다면 더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도없을 뿐 아니라 생각할 마음조차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하여 문제를 생각하고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정치와 함께 결국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다. - P11

전체주의 "운동의 목표는 되도록 많은 사람을 운동으로 끌어들여 조직하고, 그들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운동을 멈추게 할 정치 목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주의는 정체적 목표가 없는 폭력적 운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 "전체주의 운동은 원자화되고 고립된 개인들의 대중조직이다." - P26

아렌트는 "복종하면서, 꼭두각시처럼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인간들의 행렬보다 더 무서운 것을 없다."고 말한다.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개성이 존재하는 한 자발성은 항상 나타나며, 자발성이 존재하는 한 저항과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주의 정권은 궁극적으로 개성을 총체적으로 파괴하고자 한다. 전체주의 정권은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개인들보다는 단순히 반응하는 꼭두각시를 원할 뿐이다. 결국 "전체주의는인간에 대한 전제적 지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는 시스템을 갖고자 노력한다. 전체주의가 권력을 얻고 지킬 수 있는 곳은 조건반사의 세계, 자발성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꼭두각시의 세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용소의 피수용인들이 가스실에서 죽기 이전에 이미 인간으로서 철저하게 살해되었다고 할 수 있다.
- P38

이렇게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전체주의는 히틀러와 스탈린의 몰락과 함께 사라진 것인가? 우리 시대에는 이제 인간을 무용지물로 만들려는 전체주의의 경향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한나 아렌트는이 물음에 대해 이렇게 경고한다. "전체주의의 해결책은 강한 유혹의형태로 전체주의 정권이 몰락한 이후에도 생존할 것이다. 즉 인간다운 방식으로는 정치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고통을 완화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때면 언제나 나타날 강한 유혹의 형태로 생존할 것이다."
전체주의를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아렌트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인간다운 방식의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 - P38

자신의 의견에 갇혀 기만과 거짓 속에 살아가는 동료 시민들이 바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인 셈이다. 그렇지만 이관계를 뒤집어보면 진실만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을 외면한 독선과 독단에 빠져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진실은 현실 속에서 무력한 것이다.
- P186

전통적으로 합리적 진리의 반대는 과학의 영역에서는 오류와무지이고, 철학의 영역에서는 오해와 견해였다. 그렇지만 정치적 영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이다. 많은 철학자가 여전히 단순한 견해를 넘어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치적 영역에서 영원한 진리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에게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에 속하는 것은 견해이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 P187

올바른 정치적 판단력을 가지려면 진리와 거짓말의 대립보다는오히려 사실적 진리와 거짓말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정치적 무대에 오르려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한다. 거짓말은 정치적 행위에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이 말은 상당히 도전적이다. 정치꾼들의 수많은 빈말과 거짓말에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거짓말쟁이는 행위 하는 사람(man of action)인데,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단연코 아니다.11 간단히 말하면 거짓말은 정치적 행위이고, 진리는 비정치적이다. 정치는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행위이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이야기할 뿐, 바뀔수 있는 현실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192

"거짓말쟁이는 이미 정치적 현장의 한가운데 있다는 상당핫 이점을 갖고 있다. 그는 본성상 행위자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것과는 다른 것들을 바라기 때문에 있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요컨대 그는 세계를 바꾸고자 한다." 거짓말은 이처럼 세계를 바꾸는 행위의 능력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우리의 현실이 다를 수 있다.
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거짓말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지 않는것을 말하는 것이다. 거짓말은 현실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거짓말은 정치적 행위이다. 아렌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인간의 자유를 확인하는 몇 안 되는 명백한 자료에 속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자유는 현재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력에 기반을 둔다. 우리는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고, 자유롭게 이 세계를 바몰수 있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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