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기도에 관한 가장 중요한 조언을 건네준 것도 안셀름이었다. 그는 나를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 "마샤, 그 어떤것도 요구하지 말고 침묵으로만 기도하세요." 그건 생각지 못한 조언이었고 나는 아마 이렇게 반문했을 것이다. "아무 말 없이 어떻게기도를 할 수 있어요?" 안셀름은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만 말했다. "마샤, 그냥 한번 시도해 보세요."
그 경험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기도할 때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면 그것은 당신에게서 떨어져 있는 누군가와의 대화가 된다. 하지만 침묵하면 당신에게서 떨어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신과 하나로 존재한다. 침묵의 기도를 반복하면 언젠가는 마침내 그 일체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사랑을 표현하기 어렵듯이 내 언어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 자신이 신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경험이라고.
나는 자취방 바닥에 바로 누워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바닥에 둔 채 "이뤄지이다"라고 읊조린 뒤 곧바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침묵 상태로 침잠했다. 신에게 어떤 대답도 요구하지 않는 기도. 나를 변화시킨 것은 결국 이 기도 훈련이었다. 그로써 신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영적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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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으라, 당신이 믿든 그렇지 않든 믿는 것이 쉽지 않더라도 당신은 믿어야 함을 믿으라고 나는말한다. 당신은 할 수 있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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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나는 자살 위험이 높은 사람을 통제하려고 드는 일은 문제를 해소하는 게 아니라 더 악화할 때가 많음을 깨달았다. 역기능적 행동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그 행동을감소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거나 촉진할 수 있다. 이통찰은 치료사로서 내 작업에 중요한 의미였다. - P63

그날 나는 피아노가 있는 방에 홀로 앉아 있었다. 병원의 수많은 외로운 영혼 중 하나일 뿐이던 나는 과연 무슨 연유에서 그다음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하느님께 맹세의 말을 내뱉기시작했다. 나는 반드시 이 지옥에서 탈출할 것이며 여기서 벗어나는데 성공하면 곧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마저 구해내겠다고 말이다. 그때의 맹세는 이후 지금까지 내 인생을 이끌고 지배해왔다.
그 순간에는 내 맹세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결의에 차 있었고 결의야말로 결정적 힘이었다. - P66

병원에서 나를 포기하려 하고 있고 부모님이 나를 정말로 주립병원으로 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나는 결심했다. 그들모두가 틀렸다는 걸 기필코 증명해 보이겠다고 부모님이든, 그 밖의 누구든 내 회복의 공로를 남들이 가져가게 놔두지 않겠다고 그런 차원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을 만회하기위해 야간학교도 다니기로 했다. 나는 이 병원을 내 힘으로 걸어 나가자는 결심도 했다.
모두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의지는 내가 버텨나가는 힘이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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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그린 사람 - 세상에 지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18인의 이야기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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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려가지 않고 자신만의 생명력으로 거슬러 살아가는 열여덟 인생들이 마음을 흔들어 유혹한다. 자신답고 아름답게 사랑으로 살아갈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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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매는 반성폭력 운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었다는대단히 중요한 이야기를 이렇게 전했다. "사람들이 성폭력상담소에 있으면 힘들고 피폐하고 괴롭지 않냐고 물어봐요. 무겁고 어둡고 힘들게느껴지지만, 거기에 압도되고 짓눌리는 게 아니라 사건을 대응해보고시간을 버텨보며 깊이가 생기죠. 상담소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면 배우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인터뷰에 몰입하면 감동세포가 두 배로 활성화되는 나는 또 감화받아 고개를 끄덕끄덕 "피해자들의 어둡고 무겁고 아픈 이야기들을 꾸준히 듣고 견디며 길러진 힘이네요" 했더니, 그가 (이번에도 구름에 달 가는 말투로) "음, 어둡고 무거운 건 피해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했다.
상대방이 ‘무안하지 않게 말의 오류를 잡아주는 일은 나한테도늘 숙제였는데 지적받는 입장이 되어보니 그 자연스럽게 짚어주고 넘어가는 포인트와 뉘앙스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 P246

한국은 ‘유가족이 할 일이 너무 많은 나라‘라는 슬픈 말이 있다.
가족을 잃고 활동가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소중한 가족을 잃지않기 위해서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직업적으로‘ 관심 갖고 목소리를내는 사람이 늘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공무원이나 교사 같은 안정된 직업을 선호하는 사회가 아니라 어떤 직업이라도 안정된 일자리가보장되고, 인간다움이 지켜지도록 싸우는 활동가가 대접받는 사회가더 좋은 사회라는 생각을, 김오매 인터뷰를 통해 믿게 됐다. - P247

《나, 조선소 노동자>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자기가 산재 사고를당하리라고 생각하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나부터도 그렇다. 그렇지만우린 누가 산재 사고를 말할 때 들어주는 사람이 될 가능성은 높다.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신체‘가 많아지는 세상. 적어도 그런 사고가 ‘비일비재한 죽음‘이라고 말하는 게 부끄러운 일임을 아는 사회를 만드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 같다. 김도현은 ‘비일비재한 죽음‘이란 단어를 없애기 위해 앞장서는 사람이다. - P276

비슷한 시기에 다른 친구도 죽음을 맞았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생은 유한하다 같은, 현의 머리에 있던 문장이 비로소 가슴으로 내려와 ‘쓸쓸하다‘는 감정이 되었다. - P279

그리고 개. 어릴 적 엄마가 술에 취해 있을 때 내게 다가와 손등을 핥아주는 존재, 사랑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사랑을 주는 반려동물이다.
"쓰고 나서 알았어요. 애정, 희망, 긍정의 순간엔 늘 작은 개가등장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개를 키웠어요. 개가 갖고 있는 항상성, 항애정성을 어린 나이에 체감하고 있어서 그걸 신비화해서 보는 거 같아요. 일방적이고 조건 없이 주는. 작은 개에게 투영되긴 했지만, 인간은 아마도 해내지 못할, 불가능한 사랑에 대한 염원도 있는 것 같아요. 두려움 없는 사랑을 인간은 할 수 있을까요?" - P291

그러니까 ‘호시절‘이라는 시집은 ‘일러두기‘부터 허밍처럼 속삭인다. "우리 같이 있어요." 여기, 사람이 있는데 늘 하나가 아닌 둘이 있고, 혼자 있을 때조차도 고독이 너무 커서 자신을 둘로 분리해서 대화하고 있다. 《호시절》은 어떤 시집이야? 누가 내게 묻는다면이렇게 답하리라.
"사랑 시집 // 이곳은 두 사람이 사는 집" (<영원 칸타타>>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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