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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을 걷는 법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 지음, 이지혜 옮김 / 포이에마 / 2015년 5월
평점 :
물을 가득 담고
어두운 우물에서 끌려 올라와
밝은 빛 속으로 들어 올려지는
두레박이 되어라. _루미
( 필립 시먼스의 『소멸의 아름다움』70)
삶의 힘겨운 무게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방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이고 빛 한 자락 드리울 수 없는 어두움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시원한 생수를 길어 누군가의 갈증을 풀어주는 길이 있다, 하늘 길이 열려 있다. 시한부 투병 중에도 옆 병실의 낯선 이를 위해 기도하는 이, 누구보다 힘겨운 투병 중에도 만나는 타인들을 위로하는 이, 질게 뻔 한 걸 알면서도 불의와 끝까지 싸우는 이, 헬조선 한복판 그 어둠 속에서 생수를 퍼 나누는 이들이 있다. 십자가의 암흑 속에서 부활의 생수를 퍼 올리는 그런 길이, 그런 삶이 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는 두레박의 삶을 보여주는가? 북돋아 주고 있는가? 지울 수 없는 어둠 속을 살아가야 하지만 그 어둠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그 속에 이미 깃든 빛을 누리게 하는가? 아니면 작정기도, 금식기도, 일천번제, 신유은사, 성령충만… 온갖 긍정의 힘으로 어둠일랑 남김없이 몰아내라고 무조건 밝은 낮에 대한 집착만 부추기는가? 저자인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는 후자를 전적 태양 영성 full solar spirituality으로 이름 한다(16).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축복을 누리려는 영성이다.
전적 태양 영성을 누리고 전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한다. 불치의 병이나 억울한 고통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 앞에선 더욱 간절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태양 영성이 무력한 경우가 너무나 많은데다 자칫 이중의 상처를 주기까지 한다. 전적 태양 영성을 강조하는 교회에선 결국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그 원인이 당사자에게 돌려지기 쉽다. 믿음이 부족해서,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해서 하나님 응답하지 않으신 것으로. 반대로 온갖 불의와 부정을 통해 권력과 부를 축적해도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축복으로 포장되기 쉽다. 어차피 인간은 용서받아야할 죄인이니 그럴 수 있다고 면죄부를 주고, 어쨌든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을 통해 선을 이루셨다며 부러움을 산다. 그래서 기독교인임내 하는 정치가, 사업가가 불의와 부정으로 권력과 부를 축적하고 불의한 구조를 견고히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달의 영성은 그래서 더 절실하다. 달의 영성은 쉬 걷히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빛을 의지한다. 때론 더 밝기도 하고 때론 더 어둠기도 한 빛을 의지하는 영성이다. 어둠을 받아들이되 그 속에서 빛을 찾아 나누는 영성이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는 않는 문제들 속에서 탄식하는 이들에게 절실하지 않겠는가, 그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이. 어둠 속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절실하다. 또한 하나님의 의를 위해 어둠을 기꺼이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억눌리고 가난해지는 어둠을. 달빛처럼 기꺼이 자신의 권력과 부를 덜어내고 가난해지는 영성이 필요하다.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의 『어둠 속을 걷는 법』은 달의 영성을 탐구한다. “영혼의 깊은 밤, 상실을 안고 살아야 하는 많은 날들을 위한 마음의 나침반”이라는 부재 그대로다. 그 구성 자체도 달이 차고 기우는 움직임을 따라 전개된다. 초승달, 반달(상현달), 보름달, 반달(하현달), 그믐달의 흐름을 따라 달의 영성을 보여주려 한다. 어둠에 대한 편견을 벗겨내고 그 의미를 새롭게 보여주는 다양한 방식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것은 빛과 어둠의 경계를 허물어 빛 속에서 어둠을,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눈을 뜨게 한다. 전혀 다른 낮과 밤 그 경계를 본 자 누구일까. 낮과 밤은 경계 없이 이어지니 그늘 없는 낮이 어데 있고 빛이 없는 밤은 어데 있을까. 아픔 없는 행복이 어데 있고 행복 없는 아픔은 또 어데 있을까.
제랄드 메이는 『영혼의 어두운 밤』(6)에서 암투병을 경험한 후 좋은 일과 나쁜 일의 구분을 포기했다고 한다. 나 역시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사랑하는 이의 시한부판정과 함께 살아온 몇 개월 시간, 무엇이 좋은 일이고 무엇이 나쁜 일일까? 이 일이 좋은 일이 될까, 나쁜 일이 될까? 이를 구분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며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기도하고 찬양한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이의 미소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도 알게 되었다. 밤하늘의 별을 더 많이 보게 되었고, 맑은 가을 하늘도, 해가 뜨고 지는 그 붉은 빛깔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주위를 둘러보며 소중한 사람들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지인들의 아픔에 더 많은 관심이 가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낯선 이의 그늘진 얼굴과 굽은 등에도 더 많이 마음이 가게 되었다. 삶은 무척이나 단순해졌고 무엇이 헛된 것이고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분명해졌다. 함께 아파해주고 함께 기도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 주님의 임재와 사랑이 나날이 분명해졌다. 웬만한 걱정꺼리는 이제 걱정하지 않게 되었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대로도 소망이 될 수 있는 그 신비도 맛보게 되었다.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은 이 목록들은 시한부 판정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전해준 선물들이다. 행복과 불행, 축복과 저주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불행한 일은 피하고 행복한 일만 맞이하려고 정확히 구별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 차별이 더 불안하게 한 건 아닌지. 경계가 모호한 그대로, 모르는 그대로 맞이할 때, 통제할 수 없는 그대로 통제하지 않을 때, 불안이 아닌 신비를 만나기도 한다. 오늘도 축복과 저주의 구분이 희미해진 그 들판을 소중한 이들과 함께 걸어가려 한다. 지금 이 순간 한걸음씩만 신비를 밟으며…
늦은 밤 기도를 마치고 교회 앞마당에서 밤하늘 별빛을 바라보곤 한다. 가만히 바라보면 별빛은 다 다르다. 반짝이는 별, 고요한 별, 흔들리는 별, 춤추는 별… 깊은 어둠이 오히려 눈을 밝혀 보여준 것이다. 향기를 맡거나 맛을 볼 때 또 키스할 때도 마음을 다하면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지 않던가. 촛불을 켜고 식사를 하면 더 맛있고 대화도 깊어진다. 모닥불은 마음을 활짝 열어주고 우리 안의 빛을 비춰준다. 촛불, 모닥불은 빛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어둠 곁으로 초대하는 손짓이다. 그 어둠이 빛보다 더 풍성한 맛과 향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빛이시다. 하지만 잊지 말자. 그 빛을 본 사람들은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이다. 빛이 충분하다 착각한 이들에게 주님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 황금의 빛, 왕관의 빛, 칼날의 빛에 눈이 먼 이들에게 주님의 빛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삶을 둘러싼 어둠, 언제 끝날지 모를 어둠 속에 있다면 영혼의 망막을 활짝 열어볼 일이다. 그 어둠 속에 숨겨진 보물의 빛과 열매의 향을 맛볼 수 있도록… 이 책 『어둠 속을 걷는 법』은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첫 걸음을 뗄 수 있도록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흥미롭고도 포근하게.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_이사야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