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非常의 비상飛上"


오랜만에 교정을 거닐고
오정못 가에 앉아 가만히 바라봤다.
쉼....

"비상飛上"이란 제목의 저 조형물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곤 한다.

물방을 떨어지는 모습같았는데
어느날 녀석의 이름이
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음이 하나 떠올랐다.
" 왜 비상일까?..."

그 물음을 쫓아
오정못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면
"존재의 거대한 날개짓"이 보인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인 비춤인가?
무엇이 안이고 무엇이 밖인가?
그 경계의 일렁임이 숨죽이고 부드러워질 때
존재의 소리없는 음성이 탈은폐된다.

나무 한 그루, 돌맹이 하나...
모든 존재는 이 세계의 날개이고 깃털인 것을...

나무도 돌맹이도 나도 그득한 "빔空"임을 깨칠 때
"나"란 내 안의 "또 다른 나",
그 노래의 "울림"이자 "공명共鳴"이고
모든 것을 맛보는 "비춤"이자 "잔영殘影"임을 깨칠 때

내 의식의 수면 위로, "나" 위로
모든 존재의 추락이 비상飛上으로
일상이 비상非常으로 탈각脫却된다.

비상非常은 일상이, 일상은 비상이 되고
하늘로 떨어지고
심연으로 날아오른다飛上.

내 근저로부터
비상飛上과 탈각脫却의 침묵이 울려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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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24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무늬 2004-05-24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사진이 뭔가 묘한 구석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셨군요. 누군가가 찍어놓은 사진을 퍼왔습니다. 제가 오정못을 보면서 묵상한 것을 너무나 잘 반영하고 또한 그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는 사진이었습니다. 합성한 것은 아니고요. 잘 보시면 그 사진이 뒤집어 진 것임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거울처럼 잔잔한 연못에 비친 세상이 오히려 더 진실해보이는 묘한 사진이죠.

이곳의 다른 사진들도 제가 찍은 것은 아닙니다. 제 동생이나 아는 지인들, 혹은 여기 저기서 퍼온 것이죠. 저도 요즘들어 디카에 대한 소유욕이 가득해집니다. 특히 이곳 서재들을 돌아다니면서 그런 필요성을 절감했죠. 님의 말씀처럼 오래 고민해서 진득하게 우려낸 글보다는 순간 순간의 영상과 반짝이는 상념을 담은 글들이 요즘은 더욱 주목을 받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호들이 나름대로 의미와 호소력을 전해주더군요. 저 역시도 일상 속을 급히 내달리다 문득 문득 잡아두고 싶은 장면과 상념이 그냐 쓰러져 갈 때 참 안타까운 때가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그냥 그렇게 자연스레 붙들지 않아도 되는, 아니 붙들지 말아야 되는 것들에 대한 어리석은 욕망을 새로운 소비재가 자극하는지도 모르겠네요....

님의 말씀처럼 거대한 교회들이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포착하고 이용하는 모습들에서는 성육신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배울점이 참 많죠. 하지만 교회의 역사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늘 천대받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치면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뭔가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 것은 아닐까하는 혐의을 거두기 어렵네요. 가장 큰 실패의 순간 속에서 하느님을 가장 투명하게 드러내셨던 예수님을 생각해본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분은 너무 많이 앞서 가신 분이셨기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죠. 우리 시대의 교회가 현실에 대한 적응이라는 명분으로 조금만 앞서 가는 것은 아닌지....

그 책 저도 참 읽기 싫더군요. 서울이면 당장에 달려가서 돈을 환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이제 처음 부분만 읽은 것이라 평하기는 이르지만 아까운 나무들만 죽어나간 게 아닌가 싶군요...그 책 저도 이제 3장 읽을 차례입니다. 이놈의 게으름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힘내서 남은 시간 잘 활용해봐야겠네요... 


2004-05-25 0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무늬 2004-05-26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님께 오랜 기도의 저력이 있으시군요. 저 역시 에크하르트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제가 그분의 가르침에 깊이 공감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말로 설명되기는 어렵다시면서도 그렇게 직관적으로 느끼시는 분들이 그져 대단하다 느낄 따름입니다. 하여튼 저도 제가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정배 교수님이나 이경재 교수님 같은 분들의 글과 가르침에는 저 역시 고개가 숙여집니다. 학문적 깊이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은 회의가 들다가도 그런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그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어쩌면 또다른 욕심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 중요성은 부정되지 않으니까요.

오늘은 송교수님과 김교수님의 논쟁적인 세미나를 참관했습니다. 무척 흥미진진한 논쟁이었습니다. 역시 구경 중에 불구경과 싸움구경이 제일이라더니....그 세세한 상황에 대해서는 다음에 직접 중계해 드릴께요. 이제 대전으로 돌아가서 살림의 신학 늦었지만 계속 봐야겠습니다. ^^::

2004-05-27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무늬 2004-05-28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얼 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이곳에 있는게 중요한거야" 제가 듣기에도 무척 괜찮군요...감동입니다^^

남이섬의 기억 이야기, 인상적입니다. 뭔가 특별한 사건에 대한 기억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느낀 그 무엇인가가 더 깊은 흔적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어릴 적(초등학교 저학년즈음..)에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의 화단에 물을 주고 그 앞에 앉아서 집에서 함께 살던 개 쫑을 쓰다듬으며 앉아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고요함, 그 잔잔한 평화의 느낌이 제겐 참 소중하군요...그런 화단을 봄이면 만들어 주시던 아버지의 손길도....

학술 세미나의 분위기가 제게는 좀 아쉬웠습니다. 지난번의 그 웨슬리 세미나도 그랬군요. 좀더 진지하고 냉정하게 논의를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기독교 초기의 종교회의들에서 벌어진 그 냉혹할만치 치열한 논쟁들을 통해서 신앙이 형성되고 전해진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목숨을 걸지는 않더라도 보다 진지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님 말고....혹은 둘다 일리가 있네...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식은 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은 주관성이 지닌 위험성을 견제해주고 보다 발전하고 깊어질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죌레가 이야기했었죠. 저 역시 그런 의견에 동의하게 됩니다.

이정배 교수님의 질문을 들으면서 "역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 천지비괘, 지천태괘 등의 명칭을 정확하게 사용하시는 걸 보니 님께서도 주역을 좀 아시는 가 봅니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학부때 주역을 공부한 적이 있어서도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감을 잡았었죠. 주역에서는 각 괘에 위와 아래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天地否: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있는 비괘는 안정적인 위치를 보여주지만 이미 굳은 안정성 때문에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地天泰: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 있으면 땅이 쏟아지고 무너지면서 엄청난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그 위치가 거꾸로 되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괘의 위치를 역위逆位라고 합니다. 물이 아래 있고 땅이 위에 있으면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오히려 물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있어야 비가 내리고 싹이 돋는다고 보는 식이죠. 만일 비괘를 중심으로한 정치신학을 구상하면 질서, 안정, 조화로운 체계를 중시하게 합니다. 어떤 혁명도 일어날 수 없고 지배체계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게 되기 쉽죠. 하지만 태괘를 중시하면 혁명이 가능합니다. 사실 성육신은 하느님이 낮아져서 인간이 되는 역위의 상징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괘로 본다면 지천태괘가 되겠죠. 이렇게 보면 서창원 교수님이 말씀하듯이 그리스도가 역의 완전한 실현인 것 만이 아니라 태괘의 실현이 될 것입니다.  

사실 주역은 하늘을 중심으로 하는 관점입니다. 그것을 역전시키고 오히려 땅을 중시하는 역이 정역이라는 우리 고유의 역이죠. 바로 그 정역에서 후천개벽의 혁명사상이 가능해집니다. 그런 후천개벽은 기독교 식으로 하면 종말사상과 유사하죠. 그래서 이정배 교수님은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 있는 괘를 근본으로 하는 정치신학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랬을 것입니다^^::

할게 정말 많이 밀려있습니다. 다음주에 발제 세 개, 과제 두개, 길희성 교수님과의 만남 준비, 그리고 시험에 그 후에나 에크하르트는 생각해야할 것 같습니다....그런데 왜이렇게 집중이 않되는지....^^:: 그래도 이렇게 치열하게 공부할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큰 복이죠^^ 님도 화이팅^^

 


 


2004-05-28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무늬 2004-05-29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보다 세미나의 내용을 훨씬 정확하게 파악하신 것 같군요. 괜히 아는 척 했나봐요^^:: 사실 전 그 괘 상의 의미와 이정배 교수님의 관점은 이해했지만, 서창원 교수님께서 뭔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었거든요. 그 대화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는 것 같았는데 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그 상황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주역이 체제 전복적인 사상의 기반이었다고 배우셨다는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전 오히려 반대로 된 관점의 책을 본 적이 있어서....사실 좀 이상했거든요. 역위를 중시하는 관점이 주역에 나타나는데 왜 체제 옹호적인 관점일까 하고요....그런데 님의 말씀을 들으니 제 생각과 비슷해서...
두개는 저희 수업이고 하나는 학회의 것입니다. 시간은 없는데 게을러서....그냥 대충해야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