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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사상사
J.L.곤잘레스 / 컨콜디아사(재단법인한국루터교선교부유지재단) / 1984년 8월
평점 :
품절
되찾은 날개옷, 입을 때와 벗을 때
곤잘레스의 “세 가지 신학의 유형으로 살펴본 기독교 사상사”는 현대 기독교인들이 겪는 문제 상황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두 가지 점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고 본다. 첫째는 전통적인 자유주의/근본주의 또는 카톨릭/프로테스탄스 사이의 대립에 의한 혼란, 둘째는 전통적인 신학으로 대처할 수 없는 현대의 새로운 상황들이다. 그는 초대 교회에서 현대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이외에 세 번째 다른 신학 유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이 성서와 그 메시지를 다르게 읽을 수 있게 하고 오늘날의 혼란들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의미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p.24)
저자는 기독교 사상사의 복잡한 흐름들을 세 패턴의 신학으로 유형화하고 그 중에 유형C 신학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기독교 역사는 복잡하고 무질서하게 뒤엉킨 듯 보이기 쉽다. 그러나 저자의 이런 유형화는 기독교 역사의 심연 깊이 감춰져있던 거대한 사상의 흐름들을 엮어내는 대가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그는 근본주의 혹은 정통주의의 원류인 유형A신학과 자유주의의 원류인 유형B신학이 현대의 새로운 문제 상황에 적절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고 본다. 그리고 오히려 잊혀졌던 유형C신학-목회적이고 역사적이며 해방을 통해 새 인간과 새 나라의 비젼을 지녔던 초대 교회의 또다른 신학유형-이 새로운 대안이라는 것이다. 마치 선녀가 잃어버린 날개옷 이야기처럼 전통의 옷을 벗고 그 날개옷-유형C신학-으로 갈아입을 때 현대의 문제라는 높은 벽을 날아올라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끝없는 대화를 통해서 미래를 그려보는 해석이다. 이렇게 볼 때 저자의 해석은 무엇보다 현재 한국 교회의 위기 상황과 미래을 향해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한국 개신교는 그 성장이 정체되고, 다른 종교나 비종교인으로 개신교를 이탈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종교이고, 사회적 신뢰도 역시 가장 낮은 종교로서 젊은 층이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런 위기는 한국 개신교가 급속한 사회변화에 휩쓸려 사사화(私事化)되면서 사회적 참여에 무관심하고 더욱 배타적이며 보수적인 신앙만을 강화해온 경향과 깊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1) 바로 한국 개신교의 주류를 형성해온 그런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경향은 곤잘레스가 말하는 유형A신학에 속한다.
곤잘레스의 세 유형의 관점은 한국 개신교 전통에서 현대의 위기를 초래한 중요한 원인인 정통주의 신학이 기독교 사상사를 통해 흘러온 세 흐름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진실을 폭로한다. 절대적인 신앙의 척도로 군림해온 정통주의 신학의 한계를 보여주고, 근본주의 혹은 정통주의, 자유주의 등의 다양한 관점 중에 어느 한 전통만을 절대시하는 우상화의 오류를 드러내준다. 그리고 유형A신학에 속하는 그 전통이 초대교회 전통의 유형C신학이 지녔던 해방과 승리의 복음, 사회를 향한 구체적 실천을 가져오는 역사적 관점 등을 상실하게 했다는 점도 폭로하고 있다. 또한 그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초대교회의 유형C신학의 전통을 회복해야할 급박한 필요성을 알려준다. 이런 면에서 현대적인 문제들에 대처하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 저자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세 유형이 모든 하나의 신학 유형으로써 어느 하나가 규범이 될 수 없다는 스스로의 관점을 유지하지 못했다. 저자가 세 유형으로 기독교 사상사를 유형화하는 과정에서 A와 B유형의 신학 자체가 뭔가 문제를 내포한 관점이거나 적어도 유형C신학보다는 부족한 관점으로 보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것은 “전통적인 신학들은 자유주의든 근본주의든 현대의 혼란에 대처하는 데 큰 도움이 못된다”(p. 24)는 저자의 언급에 단적으로 나타나있다. 유형C신학이 현대적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역시 어떤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만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하나의 신학 유형이다. 구체적 역사성을 초월하는 절대 보편의 관점은 아닌 것이다. 즉, 날개옷은 허공을 날아올라 벽을 넘을 때에만 유용하지 깊은 강물 속을 헤엄칠 때나 목욕할 때는 벗어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자유주의/근본주의 또는 카톨릭/프로테스탄스 사이의 대립이 초래한 혼란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저자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이런 두 유형의 대립에 오히려 세 번째 대립의 축을 안겨줌으로써 더 혼란스러운 형국이 되었다.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사이의 혼란은 어느 유형도 규범화하지 않고 각 유형의 통찰력과 한계를 균형있게 전달해주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등의 각 유형들은 자신의 시대에 기독교가 새롭게 대처해나간 방법으로서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각 유형이 문제가 된 것은 적합하지 않은 역사적 상황을 향해 절대화되고 규범화되었기 때문이지 그 유형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맥락 속에서 지녔던 각 방법들의 장단점은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히 규명해야 한다. 그럴 때 현대의 문제들에 접근하는 다양한 모범으로서 역사적 실례를 제공하는 의미를 지니고 양자택일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럴 때 상황과 용도에 맞는 옷을 자유롭게 골라 입고 창조적으로 만들어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