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이해가 어려운 비밀을 머금고 있는 것같다. 규칙적인 것이나 예상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비껴감", 또는 압도하는 철벽 앞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순간에 그 벽의 원자 사이를 유연히 뚫고 지나가게 하는 "부드러운 스며듦", 또는 절벽 앞에서 한 걸음을 더 내딛고도 허공을 가볍게 날아로는 "이완의 날래". 비껴가고 스며들고 나풀거리는 웃음은 수많은 역설과 틈새를 자유롭게 넘나들기 때문에 더욱 아련하게 잡히지 않는 듯하다.


가끔씩 도대체 왜 웃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칠 때가 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웃을 일이 아닌데 웃음이 터져나오는 때 그런 의문이 스친다. 웃음 역시 존재가 존재자를 통해서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는 한 길이 아닐까? 다양한 상황에 따라 터져나오는 웃음들은 제각기 다른 의미와 영향을 낳는다.


절망적인 자신의 모습이나 어쩔 수 없는 한계 상황 앞에서 힘을 잃고 흘리는 자조적 웃음, 때론 그 절망을 향해 미친 듯이 퍼붓는 웃음이 되기도 한다. 이런 웃음은 극단적인 한계 상황 앞에서 어떻게 할 바를 모르는 당혹스러움과 분노를 분출시켜 그 긴장을 풀어주는 것같다. 아름다운 날들이란 영화에서 유태인 수용소에 끌려간 아버지가 아들에게 선사하는 웃음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말뚝을 박다가 그 밑에 있는 대전차 지뢰를 눌러서 죽음 사병의 이야기를 들으며 폭소를 터뜨리는 중대원들을 본적이 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상황이 우습다는 이유로 웃는 그 소름끼치는 상황. 이런 면은 누군가 넘어지거나 바보같은 모습이 되면 터지는 웃음과도 그 맥이 통하고 있다. 이런 웃음은 가학적인 본능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공격하기엔 너무 강한 상대거나 공격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격본능을 해소하는 장치와도 비슷한 듯하다.


공공의 적이란 영화는 웃기는 영화다. 그런데 웃기려는 제스추어를 보여주지 않고 너무나 심각한 상황들로 이어가는데, 그럼에도 너무나 웃기는 영화다.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목숨을 걸고 사건을 해결하는 강력계 형사들의 삶,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무참히 살해하고 아무런 죄없는 사람들을 장난처럼 죽이는 살인마가 등장한다. 대부분의 장면이 심각하고 절망적이다. 과장된 면이 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 사건들이 있어왔고, 경찰의 삶이 힘겹다는 것도 알려진 바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것으로 공감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심각한 장면들의 육중한 무게가 자꾸만 폭소로 흩어져 버린다. 압력과 긴장의 답답함이 일순간 가볍게 날아오르기 때문에 계속 시선을 붙잡지만 동시에 씁씁한 현실에도 눈길을 머물게 한다. 주인공의 마쵸맨적 힘으로 악당을 물리치는 장면이나 희망적으로 변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실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악당을 물리치는 그 통쾌한 모습을 기대하는 관객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도 그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라는 허탈함을 뒤에 숨겨둔 것만 같다.

그리고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그 무거운 짐을 조금은 가볍게, 조금은 희망적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외면하기만 하는 현실에 작은 틈을 만들어내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틈은 너무나 작고 농담처럼 욕하고 마는 무력한 것이지만. 하지만 어쩌랴 정면을 돌파해서 부딪히기엔 너무나 역부족이고 그냥 두자니 너무나 절망적인 것을. 이렇게 라도 절망의 벽에 흠집을 내고 비웃어 주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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