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雨期의 노래, 탁류濁流의 통곡

아침에 귀가 밝아오면, 이젠 그쳤겠지라는 기대를 여지없이 깨버리는 잔잔한 빗소리에 놀라곤 합니다. 하루를 보내면서도 정말 비가 많이 온다는 말을 몇 번은 하는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우기가 생긴게 아닌가 싶고, 열대지방이나 팔레스틴 지역의 우기가 이런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스쳐갑니다.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는 이렇게 많은 비가 땅으로 다 스며드는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많이 오는데, 고인 빗물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늘 잠잠하던 땅에 그렇게 깊은 목마름이 있을줄이야. 더욱 놀라운 것은 긴 가뭄의 끔찍한 목마름에 말없이 기다릴 줄 알고, 이렇게 긴 비의 지루함에도 담담한 줄 아는 땅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동경하게 됩니다.

늘 흔들리지 않고 잠잠할 줄 아는 마음(평상심平常心)이 풀과 나무를 품어 길러내고 모든 동물의 집이 되어주며, 모든 생명이 죽어서 돌아갈 고향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랑이란 생각이 깃들었습니다. 그 사랑이 모든 생명의 주검을 품어주기에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는 영원함이 끊이지 않는 것이겠죠.

박재순님이 주역 계사(繫辭)편에 "하늘은 확연(確然)하니 사람에게 쉬움을 보여주고, 땅은 퇴연( 然:부드러움)하니 사람에게 간단함을 보여준다."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깊이 묵상해볼 말-씀입니다. 우리 안 어딘가에서 솟아난 '말(logos)'을 받아쓴 "말-씀", 그 결에서 하늘향이 풍깁니다.

이렇게 우기의 길고 단순한 곡조가 차분해진 마음의 귀를 깨웁니다. 땅을 촉촉히 울려 그 마음을 살며시 보여주는군요. 함께 들어보실래요?^^

땅은 낮고 흙은 부서진다. 예수는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
한다고 했는데 낮고 부서지는 땅이야말로 온유하다. 그런데
이상하지. 낮은데서 깨지고 부서져야 아름다운 빛이 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흙에서 얼마나 눈부시게 빛이 피어나
는가! 봄이 오면 흙 밭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빛이 솟아나는
가!


원자 알갱이가 깨지고 부서질 때 엄청난 힘과 빛이 나오듯,
인간의 자아도 깨지고 부서질 때 엄청난 힘과 빛이 나온다.
빛 날려면 흙처럼 깨질 줄 알아야 한다. 흙처럼 부서질 줄
알면 모든 일이 간단하고 단순해진다. '내'가 부서지는 판에
복잡하고 어려울 게 없다.


단순하면 힘있고 아름답다. 물질의 신비와 힘을 드러내는
'탄소나노튜브'(나노: 10억분 1m)의 분자구조는 놀랄 만큼
단순하다. 놀랄 만큼 단순한 구조가 바로 '꿈의 신소재'가
될 수 있는 '뛰어난 물질특성의 원천'이라고 한다. 그렇지.
어린아이처럼 단순해야 하늘나라의 힘과 신비가 드러날 것
이다.


그런데, 땅과 하늘이 비로 만나는 이 잔잔한 곡조가 통곡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길고 긴 비에 물이 범람하여 집이 침수되고, 산사태가 일어나며, 농작물이 물에 잠겨버리고.....너무나 가슴 아프고 안쓰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죠. 그 통곡마져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이 비가 얼마나 원망스러울지....그 상처난 마음은 하늘을 원망의 눈길로 쏘아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스며들고 흘러갈 자리에 물이 고여 넘치고, 평화로울 수 있는 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하늘과 땅이 만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눈먼 욕심과 집착이 땅을 콘크리트로 생매장하고, 산의 생살을 찢어내서 길을 트며, 하늘에 욕정의 배설물을 가득 싸갈겼죠. 그렇게 땅과 하늘을 할퀴어 놓은 상처가 덫나고 곪아 터진 게 아닐까요?

"최근 지구촌이 유례없는 기상이변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남아시아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오염구름층이 발견되는 등 지구환경 파괴의 악영향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 지구촌 유례없는 가뭄…홍수재앙- 한겨레 신문2002년8월12일자 국제면, 정재권 기자 jjk@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07000000/2002/08/007000000200208122029736.html

범람하는 흙탕물의 거센 물결엔 하늘이 비치지 않습니다. 그 거친 수면과 탁한 물 소리는 하늘과 땅의 부당함을 비춰주지 않죠. 오히려 그 격한 노래는 통곡하는 수재민들의 아픔과 함께 울면서, 인간이 스스로에게 낸 자해自害의 아픔을 슬퍼하고 있지 않을까요? 인간이 또 다른 자신인 자연에, 자신의 어머니인 하늘과 땅에 깊이 찔러넣은 자해自害의 처참한 아픔으로 인한 통곡으로 들려옵니다. 그리고 이대로 우리의 욕망이 정화되지 않을 때, 일어날 수밖에 없는 더 큰 주검의 그림자를 예언하는 안타까운 외침으로 울려옵니다.
그렇게 범람하는 탁류는 하늘이 아니라 인간의 악취나는 욕망을 비추고, 그것이 낳을 처참한 주검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힘겨운 사람들은 하늘을 탓하고, 남을 비난하기 쉽습니다. 반복되는 수해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고, 고쳐나가야할 일이죠. 하지만, 어리석은 자해自害의 광기를 잠재우고, 스스로 깨달아 덫에서 벗어나는 자해自解의 구원이 없다면 헛일이 되기 쉽습니다. 정치가, 공무원, 건설업자 등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람들의 게으름과 욕심에서, 그리고 재해민들 자신의 상처 위를 흐러는 탁류에서 우리 모두의 욕망을 발견하는 깨달음,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이 재해민들의 통곡에 함께 우는 깨달음이 없이는 헛일이 되기 쉽습니다.

너와 나, 우리와 자연, 우리와 하늘을 나누는 어리석은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으로 자해自解하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홍수와 수해의 아픔이 바로 땅과 하늘과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공명共鳴하는 예수님의 눈물이 우리 모두의 눈시울과 뺨에도 범람해야 합니다. 이런 일은 너무나 멀리 있는, 불가능할 것 같은 기적으로 보이지만, 예수님처럼 단 한 사람이 그 아픔에 시선을 주고, 함께 울리면 그 십자가 위에서처럼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의 눈시울에 범람하는 따뜻한 공명의 눈물.

바로 그 눈시울이 바로 내 얼굴에 있죠. 그런데 아직도 건조하기만 하기에 마음이 답답하고 무거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 모든 생각이 유희요, 기만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어두운 상념이 스쳐갑니다. 그러나 내 안 깊은 곳에 그분의 눈물이 가득하다는 것을, 그것이 솟아오를 것이라고 속삭이는 음성이 있습니다. 모세처럼 가냘픈 지팡이로 바위처럼 단단하게 굳은 마음 내리치기만 하면 솟아날 것이라고, 이미 내 안에 시작한 착한 일을 꼭 이룰 것이라는 위로와 격려의 음성이, 그 포근한 곡조가 들려옵니다. 탁류의 통곡을 내 안에 울려오게 할 곡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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