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순님의 글 : 너는 거기 있고 나는 여기 있구나

박재순님의 글을 퍼다 놓는다. 마지막 구절이 가슴에 박힌다. 글의 힘을 느끼고 말았다.


강릉에는 하루에 비가 800mm나 왔다. 온 마을이 물에 잠겼
고 길이 끊어졌다. 경남 지역에도 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에 자동차가 휴지처럼 구겨져 처박히고 집은 무너지고 살림
살이도 며느리와 손자도 물에 쓸려 내려갔다며, 며느리를
부르며 우는 할머니의 일그러진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살림
의 터전을 짓밟은 물이 잔인하다.


나는 북한산 자락 아래 높은 곳에 산다. 물난리 걱정이 없
는 곳이다. 저 아래서 살자고 몸부림치며 정성과 힘을 다해
일구어 온 살림을 하루아침에 잃고 몸도 마음도 지친 이들
의 마음을 나는 헤아리기 어렵다. 이들의 아픔과 절망을 함
께 느껴보려고 하나 느낄 수 없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서로 멀리 있듯이 너는 거기 있고 나는 여기 있구나. 너는
거기서 아픔과 절망으로 죽고 나는 여기서 사랑이 없어 말
라죽겠구나.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를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서 보셨는데,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이른 아침에 그들이 지나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을 보았다. (마가복음 11: 12-14, 20)

잎이 풍성했지만, 아직 열매를 맺을 시기가 않되서 열매가 없던 무화과 나무...
처음 이 말씀을 보면서는 참 이상했다. 아직 열매 맺을 시기도 아닌데, 왜 저주를 하는지...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열매는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선물이다. 필요한 누군가를 위한. 이웃이나 친구가 뭔가 간절히 필요한데, 내 줄기의 잎만 가득 키우고, 줄 것은 준비하지 않는다면.....그건 나 자신에 대한 저주가 아닐까?

얼마전 홍수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었다. 사실 대전에는 홍수피해가 없어서 그렇게 깊이 다가오는 아픔은 아니었다. 홍수 피해를 받은 사람이 서있는 자리와 내가 선 자리가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거리감 때문에 내 마음에는 그들의 아픔이 깊이 느껴지지 않고, 그러니 당연히 뭘 도와주거나 하려는 마음도 없었을 것이다...열매맺을 때가 않된 나무처럼.
결국 홍수 피해에 고통 받는 사람들은 그 절망 때문에 죽어가고, 난 그들의 아픔과의 거리감 때문에, 사랑이 없어서 말라죽어가는 것이다.

우리 삶에 자주 일어나는 사건이 아닐까?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그렇게 사랑이 없어 말라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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