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변기의 구조는 크게 나누어보자면 똥을 담는 그릇과
똥을 빼내는 구멍으로 되어 있다. 요강은 그렇지 않
다. 요강의 똥은 빠져나갈 곳이 없으므로 쏟아버려야
한다. 그런가 하면 똥통은 요강보다 훨씬 깊다. 그걸
퍼내려면 긴 막대기 끝에 똥바가지를 매달아야 한다.
제대로 된 똥은 천천히 꿈틀대면서 변기 물 속으로 떨
어진다. 똥! 이보다 더 우주적인 말이 있을까. 항문
괄약근은 뱃속 찌꺼기들을 내보낸다. 빅뱅! 오므렸다
펴고 오므렸다 펴는 空의 대설사. 태초에 내보내야 할
엄청난 찌꺼기들이 있었는지 모른다. 한꺼번에 내보
낼 수밖에 없었던 먼지들의 離合集散.
똥, 離合 속의 삶
똥, 集散 속의 죽음
창자에서 똥을 빼내고 돼지 아닌 것들로 빈 창자를 가
득 채워 삶은 것이 순대다. 비 오는 날 순대광주리 옆
에서 헤벌쭉 웃는 돼지머리, 그 돼지이빨 틈에 지폐를
끼워넣고 우리는 길바닥에 엎드려 넙죽 절할 수도 있
을 것이다.
* 최승호 시집 모래인간 중에서 "똥"
채워진 것을 비우는 허허로운 여백.
우주적 대설사가 비운 空은 모든 삶과 죽음의 터가 되었다.
그 터에서 나뉘고 흩어진 주검들이 모여 생명으로,
맺힌 생존이 흩어져 죽음으로,
그렇게 고동치며 춤추고 있다.
흩어짐에서 나를 나눠주는 기쁨을,
모임에서 너를 먹는 감사를,
그렇게 채우려 하지 않고 비우려 할 때,
맺힘과 풀림의 춤사위에 몸을 실어
타고 노닐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난 아직도
그 빔을 견디지 못하고 안절부절 불안해하여
결국은 뭔가 다른 것으로 끊임없이 채우곤 하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