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 6:45-52 [산에 비친 하나님 ; 폭풍과 폭발의 힘]

"그들과 헤어지신 뒤에,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올라가셨다."(46절)

남자 어른만도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인 예수는 그들과 헤어져 기도하러 산에 홀로 올라간다. 어떤 대단한 업적을 이루거나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절정의 순간, 그 직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자아도취의 망아적 쾌감에 취한 현실도피적 휘청임? 아니면, 절정에 오른 속도와 높이 만큼 빠르게 내리꽂을 추락의 아찔함? 다 채웠어도 만족되지 않는, 공허하고 허탈한 마음의 끈질긴 목마름, 더해만 가는 갈증? 군중이 우러러보는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자화상을 부정하고 싶어 고개젖는 자괴감? 자신의 솔직한 모습이 받아들여 지기보다는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도구로만 이용되는 자기 소외감?

어떤 것이든 절정의 폭발은 그 불꽃이 사그러들면 분명 무엇인가 혼란스운 파편들로 흩어진 흔적을 남긴다. 그 파편에는 자신의 살과 피도 섞여있을 수밖에 없다. 망아의 순간에서 벗어나면서 살점이 찢겨나간 상처의 아픔들도 강하게 밀려올 것이다.

결국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폭발, 빅뱅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의 모든 것과 함께 자신의 존재가 찢겨져 흩어지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내 존재의 파괴가 단순한 삭제가 아니라 실은 내가 모든 존재와 하나이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의 과정일 뿐임을 온 몸으로 깨닫고 있어야 한다.

어쩌면 예수의 그 절정은 폭발이 아니라 폭풍이었지도 모른다. 폭풍은 폭발과 달리 그 중심에 평화와 고요가 깃들어 중심의 핵에서 주변의 모든 것이 하나되어 회전하는 춤을 지켜보고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폭풍의 중심이었다고 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지러움과 현기증에 몸을 가누기 어려워지고, 자칫 주변의 폭풍에 휩쓸려 들기 쉽다. 그래서 폭풍의 중심에 흔들림 없이 서려면 보고 즐기려는 욕망의 눈을 질끈 감고, 온몸으로 그 흐름을 듣고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결국 새로운 변화와 생명의 시작이 될 폭발과 폭풍을 일으킬 수 있고, 그 절정의 순간이 지난 후에 엄습하는 혼란과 소외감 앞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깊은 뿌리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예수는 그 절정의 시간이 지나고 모두들 돌아간 빈 시간에 그는 산으로 간다. 그렇게 머무는 시간과 공간이 지난 후에 그 쉼의 힘으로 다시금 자신이 가야할 가시밭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고, 그 앞을 가로막는 폭풍치는 물결 위를 걷는 힘을 보여준다. 예수에겐 이렇게 그 뿌리가 바로 산에 혼자 머무는 시간 속에 든든하게 뻗어있는 것 같다.

산! 주역에서 산을 상징하는 괴는 양으로 둘러싸인 음으로 표현된다. 그 상징에서 "산이 겉보기에는 험란하고 크며 무섭게 보이는 양이지만, 그 속에는 다가오는 누구도 물리치지 않고 모든 생명을 감싸안아 키워주는 어머니의 기운인 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다. 그렇다 산은 언제나 무겁고 듬직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숨어드는 들짐승과 새들의 둥지가 되어주며 생명을 움트려는 모든 씨앗들에게 살과 피를 내어준다. 생명을 키우고 살리는 이런 산의 기운은 죽음에 도달한 생명들이 돌아갈 자리가 되어 그 죽음이 주검에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생명으로 영원히 거듭나게 하는 부활의 태반이 되어주기도 한다.

얼음장 밑의 물소리를 귀를 담궈 듣는다는 법정 스님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런 귀기울임은 모든 존재마다 각기 다른 신의 지문을 쓰다듬는 기도요, 명상이다. 이런 산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잠잠히 귀기울이는 예수님의 기도. 그것이 절정을 담담히 타고 넘을 수 있고 기적을 일으키면서도 흔들림없이 겸손할 수 있는 예수의 힘이 울려나오는 근원이 아닐까? 어머니되는 산의 모습 속에서 자신이 일으키는 폭풍과 폭발의 근원이 자기 힘이 아니라 키우고 기르는 하나님의 힘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산산히 흩어지는 주검이 끝이 아니라 산 전체가 하나되어 영원을 향해 흘러가고 있음을 발견할 때 자신이 폭발하여 흩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잔잔해 질 것이다. 또한 산 전체가 실은 저 구석에 이름없는 들풀을 위해서 함께 숨쉰다는 것을 발견할 때, 절정에 서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해갈될 것이다.

이렇게 산에 비춰진 어머니되신 하나님의 품에 안겨 그 오묘한 사랑을 느끼고 쉴 때, 그 어떤 두려움과 공허함, 착각이나 교만함도 잠잠해 지고, 흔들리지않는 뿌리의 신선한 물줄기를 맛본 후 다시금 산 아래로 돌아가 가야할 길을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힘으로 너무나 불안하게 출렁이는 파도 위를 유유히 걸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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