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사흘 전

부활절 사흘 전 필리핀에서
자진해서 십자가에 달려 손에 쇠못 박히는 신도를 보고
군중 속에 섞여 있던 예수가 발했다.
"꼭 원숭이 같다고 할까 걱정이구나."
참지 못할 아픔에 이를 악물고 신도가 물었다.
"허나 예수의 삶을 따르는 것이 참삶이 아니겠습니
까?"
"왜 누가 너를 죽이려 했더냐?"

이 얘기를 전해 듣자 불타가 말했다.
"타는 넝쿨 숲의 불을 누가 끄랴."

# 황동규,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중에서

 

신과 인간의 깊은 교제와 신화(deification, 神化)를 위해
광야로 홀로 들어가는 수도자들.
"무용지대용無用之大用", 숲은 공기를 맑게 한다?
허나 "쓸모 없음"의 "더 큰 쓸모"는
자기 중심성이 보지 못한 더 큰 쓸모를 보는 시선이고,
숲은 공기를 맑게 하지 태양을 맑게 하지 않는다.

 

쿰브 멜라*에 간 예수

2001년 1월 9일 인도 알라하바드
갠지스 강과 야무나 강이 온몸으로 만나
천천히 서로 몸을 더듬는 곳
영상 3도,
피부에 소름 돋은 나체(裸體) 사두**들이 먼저 물에
뛰어들자
인간 물결에 소떼까지 뛰어든 어지러운 강가에서
27년 동안 한결같이 오른팔을 하늘 향해 쳐들고 수행
하는
오른 어깨 위에 붙은 긴 뼈 하나 한없이 말리고 있는
사두를 만나 예수가 물었다.
"27년 전 그대는 왜 오른팔을 들었는가?"  
"나는 오른손잡이요."

예수가 돌아서자
사두가 물었다.
"그대는 40일간 수도를 했다고 들었는데......"
"나는 40일 동안만 수도를 멈췄었지."

*Kumbh Mela: 흰두교 순례 축제. 3년마다 4개 도시를 돌며 열리는데 12년마다 알라하바다에서 40일간 열리는 축제 규모가 가장 크며 2001년엔 7천만 명이 순례를 했다.
** 흰두교 수행자. 혹은 성인(聖人).

# 황동규,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중에서/ 아래 사진 "칠레의 예수"

# 음악; Seiko Sumi의 "Your Touch",  Miracle J 앨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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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09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무늬 2004-04-1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네요. 허무한 농담 같은 느낌이 있네요. 경박하긴요. 오히려 님의 웃음이 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문득 제가 너무 무겁게만 시를 읽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편안하게 읽어도 되는데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처럼 긴장해서....
전 여전히 홀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에 대해서 고민중입니다. 이 시들과 사진은 그런 고민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허무하게 오른 손잡이라 오른손을 들었던 수도자와 40일만 수도를 쉬었다는 예수님의 모습...교수님께선 숲은 공기를 맑게 한다시며 광야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영성을 옹호하셨죠.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숲은 공기(이웃을 위한)를 맑게 하지 태양(하나님)을 맑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그리고 또 반문에 반문들이 제 머리 속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너무나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참 어렵군요. / 칠레의 예수 상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극에 달한 고통이 형상화된 그 예수의 비명은 하늘이 아니라 땅을 향해 있더군요.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인간들을 향하고 있는 비명....여러 가지 생각이 비명의 침묵으로부터 울려오고 있었습니다.